일곱 번째 달의 무르무르 Nobless Club 13
탁목조 지음 / 로크미디어 / 2009년 5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설정부터가 무척 흥미롭다. 프롤로그를 지나고 첫 장(chapter)을 넘어갈 때쯤, 머릿속에는 이미 하나의 행성계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둠속에 묻힌 작은 달위에 하나씩 생명이 꿈틀거린다.

책을 읽어가면서 문득 아이작 아시모프의 <전설의 밤(Nightfall)>이 떠올랐다. 태양이 여섯개나 되는 그 행성에는 낮이 계속된다. 그곳에 사는 인간들에게 밤은 말 그대로 ‘전설’이다. 이와 반대로 가이아의 일곱번째 달은 항상 어둠에 덮여 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자면 행성의 그림자에 가려져 이곳에 사는 인간들은 태양을 직접 볼 수 없다.

<전설의 밤>에서는 2천년에 한번 일식이 일어나 어둠이 대지를 덮는데 반해 무르무르의 달은 시작도 끝도 없이 일식 상태가 계속되는 셈이다. 그들은 별을 모르고 무르무르는 태양을 모른다. 그나마 주기적으로 찾아 오는 ‘전설의 밤’과 달리, 이미 행성의 그림자에 갇힌 일곱번째 달은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구미가 당기는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이 이야기는 무르무르족 스포러를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과 사건을 다루며 마치 한 영웅의 일대기처럼 보인다. 남다른 출생 배경속에 영웅이 태어나고 자라고 여러 모험을 겪으며 성장해 마침내 운명과 마주한다.

그런데, 한편으로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곱번째 달 그 자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이 세계는 치밀하고 유기적으로 구축되어 있다. 수십종에 이르는 인간형 종족, 다양한 식물과 동물, 심지어 사후세계라고 할 수 있는 영혼까지도 작가가 창조한 세계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전설의 밤>에서 인간들이 천문 현상을 ‘전설’로 취급하는 것처럼, 일곱번째 달의 각 종족들 사이에 전해져오는 온갖 전설들도 결국은 자연 현상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록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전설 뒤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가는 것은 마르지 않는 호기심과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스포러 같은 인간이리라.

저주네 유배네 하지만, 나는 이 달이 오히려 축복받은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토록 다양한 생명이 온땅에 퍼져 살아가는 그것을 과연 저주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일곱번째 달이 키운 위대한 탐험가들은 이제 대지를 박차고 신세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달 전체를 덮는 결계란 것도 안에 있는 것을 가둔다고 볼 수도 있지만, 보호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밖은 물도 공기도 생명도 없는 진공의 우주 공간이니 말이다. 그래도 그들은 계속 대지를 벗어나려고, 결계밖으로 나가려고 몸부림친다. 끊임없이 또다른 세계를 꿈꾸고 우주를 동경하는 우리 지구인들 처럼.

키메리에스가 몸을 숨겨도 스포러는 그의 존재를 알아 차리는 것 처럼 일곱번째 달이 그림자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밖에서 그 존재를 인지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 가이아가 빛의 고리 모양으로 보이고 낮과 밤을 구분하는 것으로 봐서 태양을 직접 보지는 못 해도 약하게 나마 간접적으로 빛을 받는 것으로 보인다. 혹은, 다른 여섯 개의 달과 가이아의 궤도를 통해 또다른 천체의 존재를 유추할 수도 있다.

그림자 뒤에 가려진 진실을 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거창한 힘이나 화려한 기술이 아니다. 돌아서서 어둠속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편견이나 두려움 없이 있는 그대로.

*‘무르무르(Murmur)’라는 이름이 낯설다는 독자들이 간혹 보이더라지. 무르무르는 마족의 일종으로 죽은 영혼을 소환해 부리는 능력이 있다. <판타지의 마족들>(들녘) 참고. 다른 종족들도 작가가 완전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기 보다 기존의 전설 등을 어느 정도 참고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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