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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 인문학자와 함께 걷는 인상파 그림산책
이택광 지음 / 아트북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그림에 관한 책을 꾸준히 읽었지만 그래도 인상파의 배경이 도통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을 잡았다. 단조롭고 무미건조한 제목이다.
한데 제목 그대로 인상파가 파리를 그려냈다는 이야기다.
날로 예술을 먹으려 한다는 비평가의 조소에도 꺾이지 않고
숨을 거둘 때까지 붓을 놓지 않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는
활기차게 도시를 개발해낸 파리,
그 뒤에 사라지지 않고 잔재하여 숨겨진 채 존재하는 가난한 파리, 가 있었다.
우리 역사도 모르는 판에 남의 나라 역사까지 샅샅이 알고자 하는 건 아니지만
인상주의 그림 속의 꼼꼼이 가려진 이야기들은 꽤 흥미로웠다.
책에는 전시회를 가더라도 감질나던 그림들도 꽤 많았다.
내게 유독 인상 깊었던 그림은 모네의 포플러 연작인데,
보통 유명짜한, 아련한 수련이나 화려한 일본식 다리가 있는 정원보다 소박하며 깊었다.
하늘로 솟구쳐 오른 포플러는 갸날프고 여려 보이는데
바람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흔들리는 것이 책을 덮어도 잔상으로 남았다.
개인적으로는 르누아르의 그림이 화려하기만 하다는 선입견을 가졌는데,
가난하지만 부르주아를 동경했던 화가는 대단히 의지 굳고 강인한 사내였나 보다.
죽는 순간까지 아들의 팔에 기대 그림을 그려냈다는 걸 보면.
그러고 보면 그림을 그림 그 자체로 받아들이기보다
하나의 인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그림을 모르는 사람들의 눈일까.
르누아르의 투지 담은 그림이 그의 삶을 알고 보면 새삼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책 속에는 내가 몰랐던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도 꽤 알게 된다.
젊은 후원자이자 화가로 열렬하게 활동했다는 카유보트의 그림이나,
그 시절 여성 혐오자였으면서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여성을 그렸던 드가의 그림,
또 그에게 영감을 주면서도 독특한 작품을 만들어냈던 모리조나 커넷 같은 여성 화가들의 그림...
그들은 기성 살롱의 권위에 눌려 뒷골목 화가들로 살았지만
그럼에도 시대에 저항하며 또 정확히 증거했다.
살롱의 엄숙한 그림들은 어느 것에서도 그 시절 파리의 모습이 없지만
가난에 찌들어 있으면서도 도전을 아끼지 않던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는
파리 곳곳의 숨결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