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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 사생활 - 우리 집 개는 무슨 생각을 할까?
알렉산드라 호로비츠 지음, 구세희 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글쎄, 내가 개를 좋아하거나 사랑한다는 말을 하기는 좀 어렵다.
살면서 한 번도 개를 길러보지 못했거니와 보드라운 털을 쓰다듬기에도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는, 못난 구석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개와 같은 동물(?)에 대한 이상한 관심이 있어,
시골집의 소들 앞에서 한참을 서서 눈을 마주치거나
아파트의 쓰레기통을 뒤지는 고양이들의 추운 겨울나기를 염려한다.
또 감히 어울려 놀지도 못하는 주제에 어디 여행길 펜션에서 만난 강아지에게는
유난한 눈길을 보낸다.
이 책에서는 개에 대한 모든 감각을 소상히 들려준다.
개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놀라운 후각과 청각, 그리고 침침하나 사실 그대로를 감감히 보는 시각.
나처럼 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책의 내용이 흥미로울 수밖에 없겠다.
초반에 개의 핥기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데, 실제로 그건 갯과 동물들의 본능이란다.
새끼들이 사냥터에서 돌아온 어미의 얼굴과 주둥이를 핥는 것에서 비롯된 것인데
실은 구토를 유발해 아직 소화되지 않은 고기를 얻기 위함이라는 것.
이런, 순수하게 집으로 돌아온 주인을 반기는 것이 아니었단 것?
물론 오랜 시간 그런 행위의 반복을 통해 반가움을 드러내는 의례적인 인사로 굳어졌다지만
사랑하는 개의 핥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뜨악할 수도. ^^
보통 문학에서는 의인화의 작업을 통해 개의 이야기를 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한 번도 의인화를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의인화를 경계했다.
하긴 문학에서도 사람의 생각을 개에게 입히는 것이며,
완전한 개의 생각을 상상해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저자는 오로지 개가 가진 특성을 기반으로 개의 생각을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유독 개의 시각이 부러웠다.
사람만큼 또렷한 상을 볼 수도 없으며,
제한된 시야 속에서 어둑어둑한 오후 같은 시각으로 살아가는 개들.
하지만 사람에게는 망막의 맹점이라는 것이 있어 상이 잡히지 않는 부분이 있음에도
본능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그 부분까지 볼 수 있는 데 반해,
개는 딱 보이는 지점만 본다고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보이는 것만 보는 개.
개가 추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쩌면 시각과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추상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 있는 것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걸 두고, 지금 이 순간을 사는 것,
반성과 숙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삶, 이라고 표현했다.
사람은 생각의 되새김질을 하며 스스로 괴로워한다.
특히 제한된 삶의 구역에 서 있다면 한 번의 좌절에도
삶이 끝난 듯한 절망을 겪는다.
그건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도 해당될 텐데, 개는 그 지점에서도 사람과 다르다.
죽음의 위험에 몸을 사릴지는 몰라도 사람처럼 죽음을 늘 두려워하지는 않으니까.
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사실은 그게 궁금한 것은 아닐 것이다.
개의 촛점 잡히지 않는 커다란 눈을 보며
고단한 삶을 위로받는 사람들이 있어,
개가 사람의 반려존재가 되는 것이며, 그래서 알고 싶은 게 아닐까.
나와 다른 존재로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친구를 곁에 두고 함께 사는 것도
어쩌면 삶이 따듯해지는 방법일 것 같다.
내게, 개가 친근하지는 않으나, 늘 온기 많은 존재로 호기심이 이는 건
아마 그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기대치 않았던 부분에서 언뜻언뜻
저자가 무척 아름다운 표현을 쓰는 바람에 줄을 긋고 감상하기도 했다.
이런 류의 책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표현들이 더러 있다.
개를 사랑하는 시선이 아름다워서일 거라, 내심 혼자 생각한다.
아마 그럴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