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원 - 안톤 체호프 선집 3
안톤 체호프 지음, 장한 옮김 / 범우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체호프 선집 중 세 번째.
이 책에서 두드러진 작품은 '초원'이다.
여행기 성격을 띤 중편인데, 집을 처음 떠나온 소년이 주인공이다.
한 소년이 어미의 곁을 떠나 공부를 하러 나선다. 
낯선 사람들 속에서 초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험하고 두렵다.
하나같이 다르고 또 둘째라면 서러울 이색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초원을 지난다.
아이의 눈으로 초원과 무리를 바라보기에
모든 일들이 어렴풋하고 기이하다.  

아마도 체호프는 직접 여행을 떠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가 되어 세상을 둘러봤을 것 같다. 
난생 처음 세상을 나간 소년의 두려움과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데 두려움과 떨림은 내게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가슴 두근거리게 좋다.
그건 무언가를 시작할 때 느낄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을 때의 조금씩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절망보다는
걸음이 엉키면서도 조금씩 나아가고 혹은 더듬거리는 게 낫다.  

소설은 소년이 어느 한 곳에 정착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 지점에서 끝난다.
이제 그의 삶은 어떻게 펼쳐질까, 가 작가의 마지막 문장.
놀랍도록 가슴 벅차고 두려움에 떨리는 상황 속에 소년을 놔두고
작가는 돌아섰다.
거기 선 채 작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소년이 아니라,
마치 나 자신 같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이라면, '초원'도 좋았지만
'구세프'가 더 좋았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죽어가는 두 남자를 그렸다.
한 남자의 시선 속에서 다른 남자가 죽었고,
곧 그 시선의 주인공도 죽어, 객관적인 시점으로 죽음이 분해되는 결말을 그렸다.
주제의식도 생각해볼 만하지만, 죽음의 분해를 다루어낸 미학이 전율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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