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원의 붉은 열매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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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았다.
지금 이 감정이 부풀어오르는 지점을 정확하게 누르고 싶은데
마치 까만 과녁만 놔두고 변두리만 꾹꾹 눌러대는 식이었다.
소설을 읽다보면 아, 바로 그런 표현을 원했어, 라고
속시원해지는 걸 내가 원하고 있다는 걸 발견한다.
내가 그때 왜 그 모양으로 멈추었는지,
내가 그때 왜 우울한 것도 아니고 불쾌한 것도 아닌 감정으로 돌아서야 했는지,
모르지 않으면서도 정확한 모양새로 알아내지 못했던 그것들을,
알게 되는 소설에서, 나는 탄복한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소설을 읽는지 몰라도, 나는 그랬다.  

권여선의 소설은 꼭 그 자리에 있어야 할 단어와 문장을 집어넣어
한숨과 감탄과 성찰을 끄집어내는 문학, 이라고 생각한다. 
작가와 나는 엄연히 다른 사람인데도
그가 얘기하는 지점에, 나도 언젠가 엉거주춤 서 있었던 적이 있었어, 라고 회상하게 된다. 
내 삶을 돌아보는 건, 거기서 시작된다.
내 감정이 그때 파이고 꺾여 지금의 내 감정이 구부러져 자라났다는
생각도 찬찬히 하게 된다.  

소설은 대놓고 정의를 내리거나 알려주지 않는다.
나 같은 사람, 나처럼 방황하고 머뭇거리는 사람을 보며
나를 생각하게 된다.
특히나 권여선의 소설은, 그랬다.
나를, 내 감정을, 내 지난 날을 돌아보게 하는, 묘한 힘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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