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6
찰스 디킨스 지음, 이인규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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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의 그림은 혁명의 주동자 아내가 손에 들고 있던 뜨게질이다.
그녀는 이 뜨게질 속에 혁명을 준비했다.
뜨게질의 문양은 복수해야 할 인물 같은 것을 암호로 만들어낸 것이다.
문양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원래의 실과 다른 색의 실이 끼여들어가야 할 것이다.
다른 색의 실 입장에서는 왜 이런 문양 속에 끼이는지 알지 못한다.
그건 뜨게질 주인의 몫. 바늘과 실에게 일일이 설명하지 않는 것이다.  

치열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말려들어간 사람들은 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오로지 그 역사의 장소에 서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정한 수레바퀴에 말려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역사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해버리기엔 턱없이 불만족스럽다.
역사란 원래 그렇다니, 말도 안 된다.
사람이 자기의 의도와 관계없이 바늘 쥔 사람의 의도에 따라 종이인형처럼
배치된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소설 속에는 그냥 눈을 감았으면 그냥 모른 체했으면
원래의 실 속에 숨어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굳이 정의와 선의를 드러낸 것이 발목을 잡아채
눈에 띄는 문양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뜨게질 실과 다른 건, 바로 그 지점일 것이다.
오로지 그 장소에 있었기에 문양이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이라 자기의 뜻에 따라서도 문양이 될 수도 있는 것.  

찰스 디킨스의 이 소설은 역사 속에서 선악이 뭉그러져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러니 말미에 부록으로 담은 여러 도움말처럼
우리의 4.19 혁명이나 광주민주화운동까지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나아가 피해자라고 마냥 선일 수는 없는 문제까지도 더듬어볼 수 있겠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면서 만들어내는 순환이랄까.
이를테면 역사의 희생자였던 이스라엘 민족이 팔레스타인을 억압하는
엄청난 가해자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광주항쟁 속에 희생자가 광주시민뿐 아니라 광주를 학살하도록 지시받은
군인들까지 모두 해당되는 것처럼.  

원래 이런 축약본은 읽지 않는다.
어렸을 때 읽었던 걸리버 여행기를 오랜 시간이 흘러 원작으로 읽었을 때
마치 사기당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를 읽으려면 달리 방법이 없었다.
원작소설은 수요자가 적어 금세 절판되는가 보다.
축약본은 마치 가려운 곳을 두툼한 천을 대고 긁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그나마 이 책이라도 읽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것도 선택이겠다. 둔하게 긁을 바에 안 긁겠다, 와 둔하게라도 긁어야겠다, 의 선택.
후자였지만 그나마 찰스 디킨스의 이 대단한 소설을 읽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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