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기들의 도서관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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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고니움을 키우면서 어찌나 귀엽게 자라는지 그 감상을 신나게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걸 듣고서 누군가 이리 말했다. 어찌나 지엽말단적인 감상인지, 원...
워낙 그와 이 말 저 말 트고 지내는 터라 그리 화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당최 변하지 않는 그의 선입견은 괘씸했다.
그래서 내가 버럭 소리친 말은 이랬다.
뭐든지 사건은 지엽말단적인 데서 시작되는 거야! 

그가 동의하든 아니든 나는 그렇게 믿는다.
수습하기 힘든 사건도 실제로 그 시작은 구석진 데서 작고도 희미하게 시작되는 것이다.
소설은 그 구석진 곳에서 작고도 미비하게 시작되는 것을 이야기하기에
가장 좋은 장치가 아닐까. 
그리고 김중혁의 소설도 내가 믿는 것에 맞춤하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어쩌다 내 생각에 맞았다는 거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죽는 건 억울하다,
뭐 이런 문장 하나로 목숨을 건사하게 된 청년이 있다.
그 문장에 대단한 힘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상황이 어땠느냐는 중요하다.
그는 교통사고로 몸이 부서지도록 붕 떠오른 상황에서 그 문장을 받아들였고,
결국 살아남았다. 그리고 급기야 그 문장이 자신을 살렸다고 믿기에 이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되기 위해, 그 후에 그가 보인 일련의 행동은
그다지 생각만큼 의미심장하지도 않다.
그는, 생각은 억울하니까 어쨌든, 하고 노력을 하고 싶었겠지만
사람 사는 일이 늘 그렇듯 생각과 행동은 일치되기 힘든 것.
그럼에도 시간이 의도와 다르게 묵묵히 흐르듯, 상황도 의도치 않게 흘러
그는 악기들의 도서관, 이란 걸 만들게 되었다.
어쩌면 악기들의 도서관, 이란 건 세상에 없어도 별 문제는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이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 똑같이 처했다 해도
이 문장이 그를 살릴 것이라 장담은 못하겠다.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자면 이렇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들었으니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건 마찬가지지만
이미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닌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그렇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만들었더라도, 그걸 만들며 기뻐하고 살아있음을 감사했다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아닐 것이다, 라고 나는 소설을 나 혼자서 마무리했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뭐 하나 재미없는 소설이 없다.
그 중에 가장 통렬하게(?) 재미있었다면, 내게는 <매뉴얼 제너레이션>. 
정말 매뉴얼처럼 기막히게 못 쓰는 책자가 있을까.
사용방법을 일러준다지만 매뉴얼로 통달하기에는 무리가 많으며,
그만큼 공을 들이고도 싶지 않다.
그래서 정말 제대로 된 매뉴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이 내게도 한때 있었다.
이 단편에는 제대로 됐다기보다는 그 자체로 감동이 있는 매뉴얼이 등장한다.
아무래도 작가는 시각보다는 청각과 촉각이 엄청 발달된 사람일 것이다.
그의 매뉴얼은 얼마나 귀엽게 상상이 되는지, 그 느낌을 전달받고는 감동마저 되는 것이다.
(그의 단편들도 거의 그랬다!)  

내가 귀엽게 열심히 자라는 싱고니움을 보며 가슴이 뛴 감동을
이 작가는 소설로 얘기해준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소설보다도 어쩌면 나름대로 열심히 혹은
나른하면서도 쉬지 않는 흐름을 가진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존재들의 이야기가
감동은 더욱 절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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