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씨 - 최명란 동시집
최명란 지음, 김동수 그림 / 창비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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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동시집을 부러 두 권 빌려왔다. 
그 중의 한 권이 [수박씨].
아이에게 보여줄 책이었지만 실은 내가 더 보고 싶었다.
이 동시집은 특히 귀엽고 따끔하고 포근하다.
귀여운 동시야 흔할 수 있지만 가슴이 살짝살짝 따끔할 정도로
아이의 마음을 되살릴 수 있기란 어렵지 않을까.
더구나 되살리는 과정이 포근하다면 이보다 좋은 독서는 없겠지. 

담쟁이-  
교문 담장에 담쟁이넝쿨 하나
담벼락을 타고 기어오르다가
꼭대기에 이르러 우두커니 섰어요
더 이상 오르지도 못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요
나는 길 잃은 담쟁이가 안쓰러워서
집을 지어 주기 위해
내 실내화 한 짝을
담 위에 얹어 주었어요
담쟁이는 실내화 속으로 기어 들어가
긴 똬리를 틀었어요

담쟁이를 읽다가, 불현듯 몇 년전 기억이 새록 떠올랐다.
나도 담쟁이를 키우다가 쩔쩔 맸던 적이 있다.
타고 올라갈 것을 못 찾아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거리던 담쟁이가 안쓰러웠고
내가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난감했다.
뭔가를 세워놓고 기댈 것을 찾아줬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담쟁이는 자라기를 포기하고 갑자기 멈춰버렸다.  

동시를 읽으면서 새삼 포근했다.
사실은 내게도 아이의 마음이 있다는 걸 느꼈으니까. 
나는 소중하고 귀한 아이의 마음보다는 거칠게 어깨 부딪히는 마음이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아이의 마음이 어른에게도 있다는 걸 놓치고 산다.
나는 초생달, 이라는 동시에서도 내 마음을 본다.  

나는 엄마의 품 안의
초생달이다.
품 안에서 점점
보름달로 자란다
 

내 품에서 자라야 할 초생달도 키우고 있지만
사실 내게도 초생달 같은 마음이 있다.
그건 내가, 아이의 품 속에서, 혹은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의 품 속에서
자라는 초생달이라서다.   

아이는 내게 이 책을 건네주며 말했다.
아마 시가 너무 짧아서 내가 실망할 거라나... 
아이의 눈에 비친 나는, 그런 어른인가 보다.
물론 시를 읽고 깊이 느낄 줄 아는 눈은 없지만
동시 속에서 내 조심스러운 마음은 읽을 줄 안다.  

귀지- 
귓속에서
이상한 덩어리가 하나 나왔다
엄청나게 컸다
어쩌면 귓구멍보다 더
컸는지 모른다
어떤 기관이 하나 떨어져 나왔는지
정말 무서웠다 

귀엽고 따끔하다.
내게서 떨어진 이상한 덩어리를 보고 무서웠던 적이 있었던가.
물론 있었다. 그게 뭐든 나는 늘 무서워하는 사람이고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는 편이다.
내게 있는 아이의 마음이 포근해서 책을 덮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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