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유도, 어떤 동기도, 어떤 절망도, 어떤 유토피아도 갖지 않은 사람이야말로 남들에게 가장 쉽게 이용당한다. - P36

몸을 마음과 분리된 것으로 품평하려는 것은 당신의 성격을 수시로 변하는 당신의 그림자 윤곽으로 평가하는 것과 같다.
- P38

당신의 몸은 숨을 쉬고 코를 골고 웃고 울고 당신을 아침부터저녁까지 운반하는 기적으로 존중받는다. 그래서 당신은 의문의여지없이 몸을 사랑한다. 당신은 자신에 대한 사랑을 통해 타인에대한 더 큰 사랑을 경험한다. 어떤 몸도 한 사람을 내부나 외부로부터 처벌하거나 불이익을 주는 빌미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 - P40

어떤 식으로든 계획된 단체 모임은 재앙을 예고한다. 여기 현실세계에서 내 일상의 문제들은 거의 모두가 이미 잡힌 약속에 대한혐오에 뿌리를 둔다. 내 인생에서 약속을 몰아낼 수만 있다면 기분이 적어도 13퍼센트는 나아질 것이다. - P45

아, 맙소사. 또 여기로 돌아왔네. 내가 남자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진짜로 싫어하지 않는다. 그냥 서점에 여성학이라고 이름붙은 조그만 칸이 따로 있는 게 너무 화날 뿐이다. 남자가 작은 칸을 차지하면 왜 안 되지? 대부분의 책은, 인간에 대한 책은, 왜 여자들이 쓰면 안 되지? 나는 그냥 인간으로 불리고 싶다. 여교사니여의사니, 여‘ 자를 덧붙이는 것도 그만두면 좋겠다.
- P51

엄마는 ‘인간이 두 끼만 먹어도 전쟁이 멈출 것‘이라고 매일 짜증을 부리셨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계급성을 음식으로 증명하고자 했다. 완벽한 식단에 대한 강박과 자부심이 컸다. 내가 어른이 되고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이문제였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평생을 남의 밥걱정을 하고 살아야 한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 문명이란 무엇인가? 정의란 무엇인가!
- P54

그래서 작업을 거는 게뭔지, 자빠뜨리는 게 뭔지 알아냈어요. 박는 것과 박히는 것도 알아냈죠. 걸레랑 선수의 이중 잣대에 관해서도 알아냈어요. 처녀성은 잃지만 총각 딱지는 뗀다는 것, 섹스가 흔히 제로섬 게임이 된다는 것, ‘걸레‘라는 딱지를 피하려면 따라야 하는 규칙이 있다는것도 알아냈고요. 이 모든 정보를 부지런히 분류하면서 말 그대로계산 프로그램으로 총합을 구하려던 우리는 그게 불공정한 게임임을 알게 됐어요. 수치에 관해 알게 됐지요. 여자들한테 섹시함‘을 요구하고는 섹시하다는 이유로 그들을 경멸하는 이상한 모순의 문화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건 다 알아냈어요. 그 문화가 섹스에 대한 묘사로 흠뻑 젖어 있으면서도 막상 실제 섹스에 관한이야기는 몹시 불편해한다는 것, 성 해방을 찬양하면서도 두려워한다는 것, 섹스라는 게 뭔지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는 것까지요.  - P67

 "여자들은 갈수록 높아지는 성적 주체성을 누렸어도 여전히 성적 문지기 구실을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남자들의 성은 생래적으로 포식자의 것으로 여겨졌고, 여자들은자신의 성이 (젠더 불평등과 성을 둘러싼 수치심의 복잡한 상호작용을통해) 남자의 성을 자극하거나 자극하지 않도록 알아서 관리해야하는 책임을 맡았다." 이런 기조였지요.
- P68

"그건 그냥 섹스일 뿐이야." 섹스를 하찮게 만드는 한편으로 섹스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주장하는, 참 묘한 방식이지요. - P73

그들이 섹슈얼리티를자신들이 열망한 모든 것과 가망 없이 단절된 것으로, 실은 종종대립하는 것으로 여겼다는 사실도요. 섹스와 사랑 사이에, 육체와감정 사이에, 단순한 쾌락과 그 이상의 무언가 사이에 선을 그어버렸어요. 섹스가 모든 것을 의미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하고는그릇된 이분법에 따라 섹스를 아예 무의미한 것으로 무시하기 시작했어요.
- P73

없을 것이다. 전에는 내 말을 들어 달라는 신호를 보내려면 소리를 질러야 했다. 진지한 대우를 받으려면, 내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보이려면 왜 꼭 소리를 내야 할까? 여자한테는 상황이 너무 복잡하다. 인정받으려면 소리를 내야 하는데, 큰소리를 내면 여자답지 못하다고 외면당한다. 내가 꿈꾸는 더 나은 세상에서는 내가알맞다고 느끼는 소리로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 - P82

여자라는 이유로, 아이라는 이유로, 레즈비언 게이 · 바이 · 트렌스젠더라는 이유로,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몸과 마음에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가슴 아픈 일을 겪을 일이 없잖아, 여기는, 우리는 서로 다 다른 빛으로 빛나고 있지. 하지만 그곳처럼, 당신이 죽어야 했던 그곳처럼 그 빛을 꺼뜨려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없잖아. 그저 자기 자신으로 빛나고 있을 뿐.
이곳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목소리로 노래 부를 수 있지. 정해진 목소리가 아니라고 입을 다물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없어. 자신보다 조금이라도 약하다면 함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잖아.
- P89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을 텐데. 차별이니 폭력이니 학대니, 그런 것들을 처음부터 아는 사람이 있었을까? 아무것도 모르고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배워 나갔겠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를 감춰야 하는구나, 나를 숨기고 나를 고치고 나를 세상에 맞게바꿔야 하는구나. 짓밟히지 않기 위해서 짓밟아야 하는구나. 세상이 내 몸에 붙이는 온갖 편견들이 진짜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이들의 몸에도 편견의 딱지를 붙이고 살아가지. 다르다는 말과 틀리다는 말을 섞어 쓰면서 말이야.
- P88

더 약한 인간이라는 이유로 학대하고 이용하면서 그것이 모두당신 탓이라고 말했지. 당신이 당신의 빛깔로 피어날 수 없다고말했어.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누군가의 권력과 만족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협박했지. 당신 가슴에서 쿵쿵 울리는 소리, 당신의 진짜 마음을 듣지 못하도록 귀를 막고 살라고 했어. 그렇게 상처받은 마음으로 자기 자신의 어리석음을 원망하라고 했지, 다 네 탓이라고.
- P89

이곳의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지. 어떻게 차이가 위계가 될 수있는지, 사람 사이의 높낮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들이만들어 놓은 위계라는 것이 어떻게 인간을 해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지를, 심지어 타고난 성별과 성적 지향으로 인간을 차별할 수있다는 개념을 결코 이해할 수 없지.
우리는 겨우 저쪽의 세계를 상상해 봐. 생명과 존엄조차도 공평하게 다루어지지 않는 곳, 당신이 흘리는 눈물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 자기가 저지르는 일들이 반동이 되어 자기 자신을 해치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 P90

젓가락 같은 몸매와 바비인형을 모방하는 행위를 그만뒀으면 했다. 몸을 모방한다는 것은우리의 몸과 우리 자신이 구분된다는 생각 때문에 가능하다. 영혼(자아)을 몸과 구분하거나 떨어트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몸과 자아 사이에 거리가 없다면 몸은 (유행하는 식이요법, 단식, 보정속옷 같은 수단으로) 통제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통제는, 극단으로 치달으면, 몸이 더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님을 뜻하게 된다.
- P93

그 말씀을 들으니 주변인 개입이라는 개념이 떠오르네요. 성폭력을 멈추는 데 모두가 책임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는 거죠. 사람들은종종 자기 팀의 일원이 무슨 짓을 하든 싸고돌기 때문에, 공동체가끔찍한 학대의 현장이 될 수 있지요. 하지만 공동체는 가치와 관심사를 공유하잖아요. 팀은, 우리가 그들을 스포츠 팀으로 보든 같은목표를 향해 노력하는 공동체로 보든, 서로 책임을 지우는 방식을결정할 수 있죠. 그래서 맹목적인 지지가 아니라 가치를 중심에 둔헌신이 중요한 것 같아요.
- P103

나는 내 공동체의 다른 일원들과 교류할 수 있고, 폭력에 대한 두려움 없이 변화무쌍한 도시의 화려함을 감상할 수 있다. 내가 한 남자에게 웃음을 보이면, 그는 내 몸에서 발산하는 즐거움을 느낄 뿐 굳이 내 몸을 만지고 싶다는 충동은 느끼지 않는다. 우리는 말 한마디 주고받지 않고도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인사를 나눌 수 있다. - P130

우리 별은 아주 작고 작아서, 그 안에서 조각조각 나뉜 나라란게 우스워 보일 지경임을 알 것을우리 모두가 하나하나의 나라이며 그 모임은 더 큰 생명의 일부임을 알 것을그게 바로 내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 P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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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중국인들은 과거의 이 한 부분을 뒤에 남겨두고 전진하는것으로 만족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중국인들이 그 길을 택한다면, 세계인들 역시 그들과 함께 전진하려 할 것입니다.
- P479

과거를 누가 통제할것인가 하는 문제는 오랜 세월 동안 갖가지 형태로 우리 모두를 괴롭혔으니까요.  - P483

국가는 공간이라는 요소뿐 아니라 시간이라는 요소도 함께 보유합니다. 시간의 변천에 따라 국가는 성장과 쇠퇴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민족을 예속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 후손들을 해방시키기도 합니다. - P484

 사람들은 언제나 ‘주권‘이나 ‘사법권‘ 같은 용어를 단지 책임 회피용으로, 또는 거치적거리는 굴레를 끊어 버릴 때사용하는 편리한 도구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독립‘을 선포하면 과거는 순식간에 망각됩니다. ‘혁명‘이 일어나면 기억과 피로 얼룩진원한은 어느 날 갑자기 깨끗이 지워져 버립니다. ‘조약‘에 서명하면과거는 한순간에 땅속에 묻혀 사라져 버리지요. 현실의 삶은 그런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데 말입니다.
- P487

전쟁은 그런식으로 에번의 삶을 결정지었던 겁니다. 모든 중국인에게 그랬던것처럼요. 본인은 그 여파를 다 알지 못했겠지만요.
에번에게 역사에 대한 무지는, 그것도 여러 면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결정지은 역사에 대한 무지는, 그 자체로 죄악이었습니다.
- P497

비참한 사건이 일어났다‘느니 ‘고통이 뒤따랐다‘느니 하는 식의목적어 없는 자동사 구문 뒤에 숨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 P522

우리가 부분적으로 부정과 은폐의 공범인 까닭은, 우리가 스스로의 양심보다. 그러한 잔학 행위의 오염된 열매를 더 귀하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 P522

홀로코스트 추모비와 마찬가지로 그러한 선언의 가치는 오로지우리가 희생자들과 인류애라는 공통된 유대관계를 지닌다는 것, 또우리가 731부대 도살자들 및 그들에게 허락과 지시를 내린 일본 군국주의자 집단의 잔악성과 야만성에 한뜻으로 반대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데에 있습니다.
- P523

 만약 우리가 ‘전략적 이유 때문에 단기적인 이익이 될 어떤 것을 얻으려고진실을 희생시킨다면, 그러면 우리는 2차 대전이 끝났을 때 우리선배들이 저지른 과오를 단순히 되풀이할 뿐입니다.
- P524

평화‘나 ‘사회주의‘ 같은 보편적 이상의 기치 아래 과거를 잊어버리고, 전쟁의 기억과 애국주의를 결합시키고, 희생자와 전쟁 범죄자 모두를 추상적인 상징으로 만들어 국가에 복무시켰던 겁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추상적이고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기억을 보유한 중국과 침묵하는 일본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 P531

부정론자들은 잔학 행위의 희생자들에게 새로운 범죄를 저지르고있습니다. 그들은 단지 고문자와 살인자의 편에 서 있기만 한 것이아니라, 희생자들을 역사에서 지우고 침묵시키는 행위에도 가담하고 있는 겁니다. 희생자들을 새롭게 죽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 P536

마찬가지로 어떤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들보다 더 진실에 가까우며, 우리는 언제나 가장 인간적이면서도 가장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완전하고 완벽한 지식을 결코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악을 심판하고 악에 맞서야 할 우리의 도덕적 의무를 면제해 주지 않습니다.
- P538

문화란 단순히 이성의 산물이 아니라 생생하고 본능적인 공감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 P542

 그러나 공감과 개인 서사의 극히 주관적인 관점을 역사에 덧붙인다고 해서 진실이 훼손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진실의 가치를 높입니다. - P543

역사라는 급류 속에서 태어나는 이상 우리가 할 일은 헤엄치는것 아니면 가라앉는 것뿐, 운이 없다고 불평하는 건 우리 몫이 아니니까요.
- P555

제 외할아버지 또한 저라는 사람의 일부이고, 외할아버지가 한 일은 제 어머니와 저와 제 아이들의 이름으로 저지른 짓이었습니다.
- P556

어떤 사람에게 괴물이라는 꼬리표를 다는 것은 그 사람이 우리하고는 아무 상관도 없는 딴 세상에서 온 존재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괴물이라는 말은 애정과 두려움이라는 굴레를 끊어 버리고 우리가 그들보다 더 나은 존재라는 느낌을 주지만, 그래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고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그건 간단하지만 비겁한 짓입니다. 이제 저는 외할아버지 같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어야만 그가 초래한 고통의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압니다. 괴물 같은 건 없습니다. 우리가 괴물인 겁니다.
- P556

진실은 연약하지 않고, 누가 부정한다고 해서 훼손되지도 않습니다. 진실은 아무도 진짜 이야기를 하지 않을 때 비로소 숨을 거둡니다.
- P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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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서 - P159

평범하고 이름 없는 것들에서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데 명수인 신경림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 속에 멋진 반전을 기획해 놓았다. 실루엣‘이 바로 그것이다. 망막에 남은 것은 다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뿐이다. 실루엣에는 디테일이 없다. - P161

아무리 과거를 사랑해도 그 디테일을 모두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세대도 전 세대의 삶을 단순하게 반복할 수는 없다. 윤곽,
‘실루엣‘만이 남는 것이 옳다. 실루엣은 말 그대로 우리의 윤곽, 지지대가 될 수 있고, 디테일을 채워 가면서 다음 세대는 자기의 역사를만들어 나가고 더 나아가 실루엣 자체도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비워야만 비로소 다시 채울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질주를 멈추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새겨 보는 일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P161

인류는 후손에게 생물학적인 유전만이 아니라 보다 나은 생존을 위한 문화적인 유전자 ‘밈(Meme)‘을 함께 전해 준다. 일종의 사회적유전자라 할 수 있는 ‘밈(Meme)‘은 재현과 모방을 되풀이하며 전승되는 언어·노래·태도·의식·기술·관습 문화를 통칭한다. 신경림 시인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은 바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내재된 "밈(Meme)"의 자각 과정을 시로 보여 주는 가장 멋진 예가 될 것이며 사진에서는 구본창의 작품이 그렇다.
- P162

얼굴을볼 수 없는 아낙의 뒷모습은 여전히 상상을 자극한다. 아낙의 얼굴,
표정, 목소리, 숨결, 살아온 내력 그 모든 것이 궁금하다. 신경림 시인의 실루엣에 디테일을 채우는 것도, 구본창 작품 속 아낙에 대한 궁금함을 채우는 것도 모두 우리 각자의 몫이다. 어떤 어머니와 할머니를 기억하는가는 바로 자신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기억이 정확하기보다 풍부하기를 바란다. 변화는 달라지는것이기 때문이다. 원본 그대로의 복제가 아니라 시대에 맞게 변화하면서도 살아남는 것이 문화적 유전자 밈(Meme)의 힘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재구성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이 다시 내 "세상의 전부가되는 법이다.
- P169

구본창
1953-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국립조형미술대학교(함부르크)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 사진 예술에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명상의 분위기를 담아내서 큰 영향을 끼쳤다. 백자, 탈,
비누 시리즈로 유명한데, 특히 남들이 보지 못한 순간을 찾아내 주는 고마운작가다.
- P170

신경림
1936-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책에 적은 글이 교사의 눈에 띄어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고등학교 때는 국어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가 그벌로 시 다섯 편을 내야 했는데, 당시 국어 교사의 아들이었던 유종호 문학평론가의 눈에 띄어 문단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뒤늦게 준비한 시집 『농무(農舞)』(1973)는 ‘창비시선‘ 1번으로 출간되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1984년에는 ‘민요연구회‘를 꾸려 민요채집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와 소통하였다. 1974년 만해문학상(1회),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 1990년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P171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는 하나의 발원지가 되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문화를 흥건히 적셨다. 음악에서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의 전주곡이 탄생했고, 무용에서는 러시아의 진실적인 발레리노니진스키의 전위적인 발레가 되었고, 미술에서는 마티스의 그림이 되었다. 이들은 각기 고유한 어법과 독창성을 가진 비교 불가능한 예술작품들이다.
- P181

「생의 기쁨은 목신의 오후가 가지고 있던 관능성과 도피의 욕망을 더욱 감각석인 것으로 만들었다. 말라르메의 시대가 데카당스의시대였다면, 마티스의 시대는 신선한 파괴를 통해 새로운 종합과 일보 진전이 이루어지던 아방가르드의 시대였다. 마티스의 「생의 기쁨,
은 지금까지 그려진 모든 여성 누드들의 여러 요소들을 총동원한 종합판이며, 새롭고도 낙천적인 확장판이다.
- P181

그림 속 인물들의 자세는 그리스의 화병 그림, 중세 태피스트리,
폴라이우올로, 티치아노, 조르조네, 카라치, 크라나흐, 푸생, 와토, 앵그르, 퓌비 드 샤반, 모리스 드니 등 서양미술사의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여러 누드화의 매혹적인 자세에서 따온 것들이다. - P182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 예술의 거장, 특히 보색대비를 이용한 강렬한 색채를 통해 관능적인 낙원의 세계를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재현해 냈다. 에콜데 보자르에서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가난한 시절에도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구입해 평생 존경의 표시로 간직했다.
1905년 살롱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한 작품들이 ‘레 포브(LesFauves, 야수들)‘라는 조롱을 들었는데, 이들을 일컫는 ‘야수파는 여기서 유래한다. 말년에 건강 악화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 힘들게 되자 "가위로 그리는 종이 오리기 작업을 시작했는데, 『재즈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아름다.
운 작품들 또한 매혹적인 감각을 전한다.
자신의 작품이 안락의자 처럼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많은 오해를낳았지만, 그의 헤도니즘(hedonism)적인 태도를 잘 보여 준다. 마티스는 미술사에서 보기 드물게 청아하고 감각적인 쾌락의 세상을 만들어 냈다. "나는사물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오직 사물 간의 차이를 그린다."
- P181

스테판 말라르메
Stéphane Mallarmée, 
1842-1898

프랑스 상징파 대표 시인,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푹 빠져 보들레르가 좋아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을 번역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영어 교사가되어 평생을 은둔자처럼 조용히 살았지만 곁에는 늘 그를 사랑하는 동료 예술가들이 함께했다. 말라르메의 아파트에서 위스망스, 쥘 라포르그, 폴 클로델,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피에르 루이 등의 문인들과 휘슬러, 오딜롱네, 모리소 등의 화가들이 모여 화요회‘라는 모임을 가졌다. 그의 시는조금씩 퍼져 나가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고 그는 ‘시인들의 왕자‘라 불렸다.
- P185

로 사물을 바라본다. 이것은 신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근대로옮아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라보기 방식이다. 원근법은 인간을세상의 중심에 놓을 만큼 위대하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의 불완전함때문에 인간 시각의 한계를 그대로 노정한다.
나(일인칭 시점)이든, 너(이인칭 시점)이든, 그(삼인칭 시점)이든 인간은자기의 위치에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한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모나리자는 가장 완벽한 원근법과 시각의 움직임을 고려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완벽한 모나리자의 뒷모습과 모나리자에 의해 가려진 풍경은 볼 수 없다. 다만 유추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는 혹은 그는 ‘지금 여기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90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는 죽은 사람도, 값싼 종이에 그려진 한 마리 개나 나무도, 금화도, 살인자도, 죽음도, 빨강도 자기만의 말을 한다.  - P190

이슬람의 전통 미술인 추상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전체 속에서 조화를 이루듯이, 이슬람 세밀화의 빛나는 세부들이 하나의 큰 그림 속에서 조화를 이루듯이, 오르한 파묵의 소설에서는 모두가 당당하게자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 P190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질서가있는 것처럼 보이고 순수해 보인다. 그러나 개성적인 것은 상대적이고무한하다. 그래서 개성적인 것이 존중되는 곳에는 일견 모든 것이 제각각인 무질서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며 불순해 보인다. 그러나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등장하면서 단일성에서 다양성으로 나아가는 것이근대화의 방향이고, 소수만 자유로운 세상에서 모두가 자유로워지는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발전의 방향이다.
- P196

소설 속에서는 새롭고 이질적인 것의 수용을 거부하고 이슬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근본주의자들이 내지르는 선동의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높아진다. 그것은 영광의 시기가 지나고 서서히 몰락해 나가는 사회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이슬람 전통의 순수함을 지킨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리던 기득권을지키려는 불순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절대적인 단일성을 추구하는 문화는 결과적으로 모든 자연스러운 발전을 왜곡시킨다. 절대성에 도달한 대가로 주어지는 행복한 눈덮을 얻지 못한 나이 든 장인들은 가짜로 장님인 척해야 하는 위선에 빠지고 만다.
- P196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테러 단체화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든 형태의 순수주의들은 사실은 가장 배타적인지배욕을 가진 불순한 사상들이다. 세상에 나만 옳고 나만 존재할 이유를 갖는다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이슬람 화풍도, 서양화풍도, 동양 화풍도 모두 각각의 존재 의미를 갖는 아름다운 양식들이며,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 P197

"동방도 서방도 나의 것"이라는 신의 말은 세상 모든 것은 존재의 의미가 있고, 부분적인 진실만을 담아낼 뿐이니 모든 것이 함께공존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진정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이자 개방된 이슬람 국가, 터키 출신 작가다운 멋진 결론이다. 에니시테의 마지막 기도는 이것이었다. 신이여, 순수함을 향한 의지로부터 우리를보호하소서."
- P198

비흐자드
Kamal ud-Din Behzad, 
1450-1535년경

중세 페르시아의 대표 화가. 티무르 왕조의 술탄 후세인 미르자와 사파비 왕조의 샤 이스마일 1세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다.
당시 오스만제국에서는 전범으로 확립된 ‘이슬람 세밀화가 정통 화풍이었다.
‘신의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것처럼 그리기 때문에 평면적이고 그늘진 곳이 없는 게 특징이다. ‘절대성‘을 구현하고자 한 것.
헤라트 화파가 주도했는데, 비흐자드가 바로 이 화파의 거장이다.
그러나 비흐자드 시대에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둔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화가들이 새 화풍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원근법과 그림자를 넣어서 사실적으로 그렸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이를 ‘베네치아 스타일‘이라 부르는데, 당시 오스만제국 술탄들은 점차 베네치아 스타일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헤라트 화파의 계승자들의 반발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지속적으로 세밀화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나 색깔, 소리가 과연 있는가, 혹은 있어야만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전통의 고수와 새로운 방식의 흡수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은 바로 오늘날 터키 젊은이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 P199

오르한 파묵
Orhan Pamuk, 
1952-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한 대가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 화가가 되고싶어 했으나 대학을 자퇴하고 두문불출 글만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칠 년 후에 내놓은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982)을 비롯하여 『순수 박물관,
(2008)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설이 주목을 받으며 세계인의 이목을 터키 문학에 집중시켰다. 오르한 파묵은 2006년에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 P201

솔로몬의 말대로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지나가게 만드는 시간은 지상에 사는 우리에게 선물이기도 하다. 왜나하면 변화의 방향이 단순한 부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좋은 변화를 우리는 성숙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흐름은성숙의 기회이다. 지상에서 느끼는 지옥 같은 고통도, 짜릿한 환희도모두 성숙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시간 속에서 사는 우리의 가장 커다란 과제는 인간적인 성숙이다.
- P211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성숙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연민이없었던 도리언 그레이에게 성숙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발효로 깊어질 수는 없고 흉측하게 부패할 뿐이었다.
- P212

아이반 올브라이트
Ivan Le Lorraine Albright, 
1897-1983

아버지는 풍경화가였고, 쌍둥이 형제와 함께 시카고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엘그레코와 렘브란트를 좋아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의학 스케치를 한 경험이 화가의 후기 스타일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30년부터 수많은 자잘한 붓 터치를 보이는 정교한 테크닉의 작품들을 선보이면명성을 얻게 되었다. 아이반 올브라이트는 초현실주의적인 것과는 달리 가기운 현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지만 과장되고 왜곡된 관점을 드러내면서 미국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 화풍의 계보를 잇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

도리언은 "관능을 수단으로 영혼을 치유하고 영혼을 수단으로 관능을 치유하는 것"이 인생의 위대한 비밀이라는 헨리의 말에 매혹된다. 또한 삶에서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 청춘"이라는 헨리의 유혹에 세뇌당하고 만다.
- P214

나는 영원히 아름다운 모든 것을 질투합니다. 당신이 나를 모델로그린 초상화를 질투해요. 왜 이 그림은 내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간직할 수 있는 거지요? 흐르는 시간이 내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고, 대신에 그 무엇을 이 그림에 줄 것입니다. 오. 그것이반대로 될 수만 있다면! 변하는 것은 그림이고, 나는 영원히 지금의 나로 머물 수 있다면! 이 그림은 언젠가 나를 조롱할 겁니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에서 - P214

마르셀이 바라본 시간의 타락, 무의미의 범람, 정신적인 고결함의 망실 등은 사실 세계사의 진행 방향인 대중화, 개인화,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필연적인 현상들이다.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느닷없이 루이 16세풍의 가구가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몰락시킨 귀족들의 취향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 귀족들이 그리스 문화의 정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복제품을 만들어 냈다. 언제나 문화의 정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하방하여 보급되며 실루엣만 전해지기 때문에 디테일은 다르게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보급은 불가피하게 다소 조악한 모방을만들어 내며, 이것은 정통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취향의 타락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 P217

아주 오래 살아서 르네상스의 성립과 몰락까지를 모두 보았던미켈란젤로 (1475-1564)는 네덜란드 풍속화를 보고 격노했다. 혹자의눈에 괜찮아 보이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예술성도 없고 논리도 없으며, 대칭도 없고 비례도 없으며, 엄격한 선택도 없고 분별력도 없으며데생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 골격도 없고 힘줄도 없다." 이 위대한 예술가가 생각하는 골격과 힘줄은 역사적, 신화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삶을 예찬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영웅이아닌 평범한 사람도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곳에 신화가 깃들지 않아도, 위대한 역사적 영웅의 활동지가 아니어도 풍경은 그려질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 P230

세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은 덧없어진다. 인간의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채 의미를 챙기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덧없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의미를 챙길 여유도 없이 많은 정보가 오가기 때문에 시간은 과거보다 더 빨리 흘러간다. 원인과 결과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면서 빨리 흘러가는 시간은 무의미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
- P233

고정되어 경직된 머리의 논리가 아니라 무엇으로 영원에, 사물의 본질, 그 정수에 도달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 프루스트가 주는 답은 바로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감각은 나중에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것은 말초적인 감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 존재함을 전 인격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감각은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그것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등가물이다. 그것은 논리적 지성이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세상을 감지하는 것이다.
- P233

세계의 감각적 상태는 종교적 교리나 이데올로기, 혹은 모든 지성적 논의에 의해서 제단된 상태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적 상태" 머리와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종합적인 상태에서 그대로 느끼는 진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헛되이 지나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방법이다.
- P233

프루스트에 따르면 "시간은 인간의 단일성과 생명의 법칙을 존중 하면서도 결국은 변화를 일으킨다. 어제의 그가 오늘의 그와 같지않음을, 내일의 그와도 같지 않음을, 이 변화의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감각의 작동만이 "보통 상태에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것 — 번쩍하는 한순간의 지속— 순수한 상태로 있는짧은 시간을 붙잡아 떼어 내고 고정시킬 수 있게 해 주는 예술을 하는 일이다. 예술만이 무의미 속에서 흩어진 삶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술가로서 그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본질의 계시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기억의 재현, 무의식적인 기억의 방식, 인상, 심상을 적극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골격, 근육에 관한 예술이 아니라세계의 살, 그것도 아주 물컹물컹하고 무의식화된 삶을 포착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예술이 열한 권에 이르는 방대한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 P234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절대왕정 시대였던 프랑스와 달리 상업의 발달과 함께 문화의 다양성을 꽃피웠던 강소국 네덜란드에서는 시민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리하여 시민의 일상도 그려질 가치가 있는 주제로 부각되었다. 델프트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메이르는 바로 이 평범함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페르메이르는 19세기에 와서야 그 진가가 알려진작가다. 최근에는 그의 작품 가운데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일컬어지는 진주귀고리 소녀를 둘러싼 이야기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베스트셀러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지면서 인기 화가가 되었다.
- P235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

의사 아버지와 교양 있는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했으며,
철학자 베르그송과는 외가 쪽 친척이다. 파리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병약한 몸에 예민한 성격의 프루스트는 문학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결국 질적으로나양적으로 모두 19세기 최고의 소설이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으며, 그 가운데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로 콩쿠르상을 수상했다.
- P236

김환기는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등과 더불어 한국 근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이다. 특히 그를 ‘한국의 피카소라 부르는 이유는 우선 다른 작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3000여 점(드로잉과과슈 작품 포함)이 넘는 작품이 남아 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세계가구상화로 일관되게 남아 있던 반면 김환기의 작품 세계는 반구상-구상-반추상 추상으로 역동적으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의 그림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살았던민중적인 정서를 그린 애틋한 그림들이다. 반면 김환기의 작품은 같은시대를 살았지만 시대의 궁핍으로부터는 약간의 거리를 갖고 있다.
- P238

지금도 회자되는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나온 것은 1953년, 모두가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시절,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에 한국문화의 글로벌화를 고민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김환기는 우리민족이 도달했던 아름다움의 깊이와 넓이를 보았던 것이다. - P242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에서 - P245

그녀의 에세이집에 실린 1988년의 글에는 감동적인 한 구절이실려 있다. 사람의 칠십 대는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여기엔 남녀도 빈부도 없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다 소멸되는 기록이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시간에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며 비로소 말문을 연다. 그녀의 첫 남편 천재 시인 이상(李箱)에 관한 말이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이상은 안타깝게 요.
절했고 젊은 과부 변동림은 세 아이가 딸린 이혼남 김환기와 다시 인연을 맺어 김향안이 되었던 것이다. 그 변동림이 반세기 만의 침묵을깨고 말한다. 이상의 소설은 상상의 산물일 뿐 이상과 자신의 결혼생활과는 별개라고,
- P247

김환기
1913-1974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절제된 조형미와 한국 시문학의 서정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라남도 작은 섬마을에서 푸른 바다와 끝없는 하늘을 보며 자랐으며, 그림과 글 모두에 능한 문인화가의 마지막 후예였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그는 한국 최초의 추상화를 그려서 한국 현대 회화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 주었다.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으로 "그림이 팔리는 신바람 나는 사회"를 이루었다.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김향안)과결혼했으며, 화가는 평생 든든한 내조를 받았다. 신안에 있는 화가의 생가 ‘김환기 고택‘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251호로 지정되었다.
- P249

김광섭
1905-1977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에서 의대를 진학하려고 했으나 색맹이 밝혀져 와세다대학교 영문학과를졸업했다.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죄목으로 옥고를치르기도 하고, 광복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보비서,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나는 인간이 비참하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지만 자유를 완전히 잃은 때처럼 비참한 것은 없었다." 민족주의 문학론을 강조하는 시론을 펼쳤는데, 후기시들에서는 산업사회의 모순을 건드렸다. 호는 이산(台山)이다.
- P250

앞서 말한 대로 최순우는 한국 미술은 "자연과 예술을 하나의격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최순우는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과정에도 주목했다. 즉 그 조화조차 의식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행위, 말 그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이 말은 창작 과정 역시 서구적으로 신비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즉한 인간의 노동처럼 반복적인 것이고, 창작은 나날의 일과와 같이 더디게 진행되며 변화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김홍주가 캔버스에 남긴 무수한 붓질들은 이러한 노동의 집산이다. 이 노동의 집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그러함‘이라는 자연의 관념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김홍주의 그리기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한국미의 최고 덕목을 현대화한 작품이다.
- P263

김홍주

충청북도 화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원대학교미술교육과 명예교수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리는세필화 작업에 대하여 화가는 붓이 화면에 닿을 때의 육감적인 감정을 표현했다."라고 말한다. 특히 ‘꽃의 화가‘로 명성을 얻었는데, 꽃을 소재로 선택한이유는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며, 가장 얇은 붓으로 그리기‘ 자체에만 전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기 작가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이전에 미술 평단에서는 전부터 그의 회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김홍주는 한국 현대 회화의 성과를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중요한 작가다. 2005년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한국 회화 작가로서는 최초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고, 제6회 이인성 미술상을수상했다. "꽃잎의 세세한 잎맥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는 것이 꽃이 아니라 길이거나 강이거나 산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 P264

김소월
1902-1934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조만식이 교장으로 있던 오산중학교에서 김억에게 시를 배웠다.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민요의 운율에 민중적인 정감을 담아 여성적인 목소리로 표현하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한 명이 되었다. 김소월의 시비는 남산에 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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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두 가지를 볼 수 없다. 하나는 자신의 얼굴이다. 그래서거울이 필요했다. 또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볼 수 없다. 자신의 죽음을 보여 주는 마법 거울은 발명되지 않았다. 볼 수 있는 것은 타인의죽음뿐이다. 타인의 죽음은 타인의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더 이상자신의 죽음에 관여할 수 없다. 그것은 내 죽음을 비춰 주는 거울이다. 타인의 죽음을 통해 우리는 죽음을 배우고 스스로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갖게 된다. 지구상에 태어난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오래된 문제, 죽음, 4800여 년 전 쓰인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의 핵심 내용도 죽음이었다! 그리고 이 죽음으로부터 예술과 종교가 자라나왔다.
- P93

현대인의 타나톨로기는 과학의 힘을 빌려 죽음으로부터 죽도록달아나는 일이다. 현대인들은 죽음이 가져다주는 정신적인 성숙을 거부하고 오로지 육체적인 삶을 연장하는 데에만 몰두할 뿐이다. 우리가 여전히 흥미를 가지고 『길가메시』를 읽고, 데이미언 허스트의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는 이 작품들이 우리가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상키시키기 때문이다. - P103

 거울을 보고 ‘이만하면 되었다.‘는 생각과 함께 출근을 하듯이,
나는 오늘도 죽음을 타인의 것으로 미루면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러나 문밖에 있는 타인의 죽음은 결코 타인만의 것이 아니다. 전쟁기난, 사고 등 슬픈 죽음이 많이 일어나는 사회에서 나와 내 가족만 예외가 될 수는 없다. 타인의 죽음에 대해 냉정한 사회는 철학적으로빈곤한 사회이며, 비인간적인 사회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돈을 그러모으고, 영원히 살 것처럼 권력을 휘두르는 오만한 자에게 보내는 삶의 경고가 타인의 죽음이다. 죽음은 삶을 돌아보게 하는 고마운 거울이다.
- P104

데이미언 허스트
Damien Hirst, 
1965-

1995년 터너 상을 수상한 영국의 설치작가. 1988년에 골드스미스 미술학교졸업전인 ‘프리즈‘전을 유명하게 치러내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의 에너지와 끊임없는 창의력, 직관적이고 이목을 집중시키는 작품은 젊은 영국 아티스트들을통칭하는 yBa(young British artists)들의 대표 작가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데이미언 허스트는 설치, 조각, 회화 등 모든 분야를 총망라하며 예술과 과학, 팝 문화의 경계에 도전한다. 허스트는 일상의 경험들(사랑, 삶, 죽음, 충성과배신)에 대한 불확실성을 생각지 못한 자유로운 기법으로 탐구한다. 죽음을직접적이고 충격적으로 표현해 ‘악마의 자식‘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 P105

길가메시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된 점토판길가메시 신화는 최초의 문명이었던 메소포타미아 남쪽 수메르의 도시 우르크를 다스렸던 왕의 전설이다. 기독교의 성경,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게르만 민족의 최초 서사시 『베어울프, 그리고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웅 문학의 시조가 되는 작품이다. 시인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그일부가 최초로 번역이 되었을 때 인류 최초의 서사시인 길가메시 서사시는 죽음의 공포에 대한 위대한 서사시"라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 P106

영혼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성숙이라는 영광이, 혹은 위로가 주어지지만 육체의 성장의 끝에는 노쇠와 소멸만이 존재한다.
- P109

늙어 가는 사람의 지혜는 오줌 주머니뿐만 아니라 "내 이명, 내 신트림, 내 불안증, 내 비출혈, 내 불면증" 같은 노쇠의 징후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조금씩 기능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몸이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인생이라는 임대차 계약의 마지막 기간을 함께살아가는 동거인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 P109

늙어 가는 나를 인정하기가 쉽지 않다. "몸 구석구석이 다 퇴화하고 있는데도 삶의 환희는 변함없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욕망의생생함과 육체의 쇠락이라는 불균형은 노화를 더욱 슬프게 만든다.
- P110

자식보다 애틋했던 손자를 앞세운 노인의 일기는 자포자기의 말로 가득하다. 주인공은 누군가가 떠난 뒤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게 되는 것은 "우리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들, 즉 실루엣, 걸음걸이 목소리, 미소, 필체, 몸짓, 표정, 냄새, 촉감"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몸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도 사무친다는 말이다. 그리움은 관념이 아니라 그렇게 구체적이고 생생한 것에 대한갈구이다.  - P114

루치안 프로이트
Lucian Freud,
1922-2011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손자. 나치의 탄압을 피해 가족이영국에 정착, 영국의 대표적인 화가가 되었다. 사실주의 초상화가라고 하지만어느 유파에도 속하지 않는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프로이트가 작품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1950년대는 초현실주의의 물결이추상화로 넘어가고 있었던 때로, 구상 인물화의 자리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떤 흐름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간 루치안 프로이트는 인간의 몸(body)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을 창안해 냈다. "내가 진짜로 흥미를 느끼는 것은 동물로서의 사람이다." 그는 "당신의 육체는 바로 당신이다. "라고 말 하는 듯하다.
- P116

다니엘 페나크
Daniel Pennac 
1944-

다니엘 페나크모로코 카사블랑카에서 태어나 군인 아버지를 따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자랐다. 파리 근교 중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다문화가 특징인 동네를 배경으로 말로센 시리즈‘ 여섯 권을 출간했는데 각 권이 밀리언셀러가 되면서 프랑스의 인기 작가가 되었다. 2007년 자전적 에세이 『학교의 슬픔으로 르노도 상을 수상했다.
몸의 일기』의 주인공은 "두려움은 내 인생의 유일한 열정이었던 것 같다."라는토머스 홉스의 고백이 바로 자신의 마음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은그렇게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맞서는 한편 몸의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
- P117

사 아닌가? 요즘은 웰빙만큼 웰다잉이 중요하다고 누구나 말한다. 그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 없는 웰빙은 과시적인 유행이되었고 그저 마케팅의 일환이 되었다. 웰빙을 위한 상품 구입이 웰빙을 대체하지 않았는가? 웰빙이 삶과 죽음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철학적 태도와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했던 것처럼 웰다잉도 마찬가지이다. - P125

빌럼 칼프
Willem kalf
1619-1603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가. 네덜란드에서는 화가들 사이에서 장르상의 분업이 발달했는데, 칼프는 정물화의 대가로 널리 알려졌다. 로테르담의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으로 파리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작품 세계는 명백히 황금기의 네덜란드 화풍이었고, 앙투안 르냉 같은 프랑스 현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어두운 배경으로 몇 개의 정물화를 세밀하고 우아하게 그려 넣는 칼프의화풍은 동시대 다른 네덜란드 정물화가들의 작품과도 확연히 구별된다. 렘브란트의 영향을 반영하는 어두운 배경에 호화로운 금은 식기들과 동양의 도자기들을 장식적으로 배치하여 독창적으로 표현해 낸 장엄한 작품들은 바니타스정물화의 계보를 이으면서도 과시용 정물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냈다.
- P127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Luis Fernando Verissimo, 
1936-

엉뚱한 상상력과 허를 찌르는 날카로운 유머로 유명한 브라질 작가. 아버지를따라 미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은 다니지 않았으나 에디토라 글로브‘ 출판사 미술부에서 일하면서 영어 번역을 하기도 했다.
재즈를 좋아하고, 신문사에서 논객, 카투니스트 등 다양한 글을 썼으며 예순권이 넘는 책을 출판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는 브라질의 인기 작가이다. 특히 『비프스튜 자살클럽(천사들의 클럽)』은 뉴욕공립도서관의 ‘올해의 책으로선정되는 등 해외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 P128

지상의 우리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나이가 들고 병들고 죽는다. 누구도 피할 수 없이 그렇다. 생로병사의 고단한 길에 우리는 웃고운다. 지상에서는 어떠한 것도 영원하지 않다. 그러나 사후 세계의 가장 커다란 특징은 시간이 흐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천국이 천국인 이유는 그 행복, 그 기쁨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옥이 지옥인이유는 그 고통, 그 괴로움이 영원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는 지옥은 그 고통을 끝낼 수 있는 죽을 희망조차 없는 곳이다. 지금힘들더라도 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 우리는 노력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라는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노력만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다. 반대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변화의 희망이 없는 곳에서는 현실도 지옥이 되고 만다.
- P133

오귀스트 로댕
Auguste Rodin, 
1840-1917

근대 조각의 새로운 장을 연 프랑스 조각가. 생계를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서 칠년간 건축장식업에 종사했는데 이때 여행한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미술에 영향을 받고 프랑스로 돌아와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1978년 살롱전에서3등상을 받은 「청동시대는 선배들의 작품과는 다른 매우 사실적인 표현으로 충격과 불쾌감을 동시에 일으켰으며, 이후 「지옥의 문」, 「생각하는 사람 등을 통해 당시 건축의 장식물에 불과했던 조각을 웅장한 예술의 위치로 올려놓았다.
- P141

단테 알리기에리
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

피렌체 출생의 시인, 아홉 살 때 처음 만난 베아트리체를 평생 연모하여 그의모든 작품들은 그녀와의 사랑과 연관이 있다. 『신곡』에서는 베아트리체의 안내로 천국의 문 앞에 이르게 된다. 정쟁에 휩싸인 단테는 계략에 빠져 고향 피렌체에서 추방당했다. 추방된 지 이 년 후인 1304년에 『신곡』의 집필을 시작해 십칠 년 뒤인 1321년에 이 작품을 완성하고 사망한다. 최고의 도덕주의자시인인 단테는 『신곡』으로 중세를 정리하고 르네상스를 열었다.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도움으로 지옥을 여행한다. 지옥을 여행하면서 그는 중세적인 도덕에충실히 입각해서 때로는 냉정한 평가를 내리기도 하지만, 인간적인 문제에는기꺼이 공감하며 동시대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 P142

츠베탕 토도로프의 말에 따르면 그림은 언제나 그려진 것에 대한 예찬이다. 화가가 그 장면을 도덕적으로 그리고 미학적으로 그려질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다. 고흐에게 의미가있는 저녁 식사는 서양미술사에시 숱하게 그려진 예수의 최후의 만찬이나 클레오파트라가 안토니우스를 유혹하기 위해 식초에 진주를녹여 마시는 화려한 잔칫상 같은 거대한 것들이 아니었다.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온 가족이 둘러앉아 먹는 소박한 저녁 식사의 의미를고흐는 잘 알고 있었다.
- P144

그리고 가을의 덕수궁에서 만난 유순이. 유순이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끄집어내 준다. 삶은 감자를 건네 준 나, 다락에 잠을재워 준 나, 거지라고 놀려 대는 마을 아이들 속에서 유일하게 제 편이 되어 준 나,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끄집어 낸다. 그런일들은 기억이 나지 않고, 주인공의 기억 속에서 유순이는 "밥도 제대로 얻어먹지 못하고, 등이 짓무르도록 아이를 업고 있었던", "금촌댁네에서 아기 보던 여자애 였다. 결국 나의 기억 속에 있는 것은 나가아니라 ‘너였던 것 아닐까? 반대로 가까운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결국 ‘나‘가 아닐까?
- P148

"내가 이미 누군가의 존재를 잊었듯이, 나의 존재를 기억할 나의증인들도 사라지겠죠. 나의 아버지를 시작으로 해서 이제 나는 끝도 없이 나의 증인들을 잃어 갈 것입니다."
- P151

죽음을 생각하면 인생은 쓸쓸하기 짝이 없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 떠난 자리에 태어나서 살다가 또 후손에게 자리를 비워 주기 위해떠나야 하는 상실의 자식들이다. 주인공은 다시 질문한다. 그러면 한사람의 일생으로부터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이제 고흐가 담을 할 차례다. 고흐는 이 그림의 핵심이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이라고 말했다. 삶의 쓸쓸함을 견디게 해 주는것은 다만 거친 밭일을 끝내고 돌아온 뒤 허기 앞에서 나보다 더 배고플 누군가에게 따뜻한 감자 한 알 권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 P152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1890

살아서보다 죽어서 더 유명해진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전도사가 되었으나 지나치게 열정적이어서 설교를 두 시간이나 하는가 하면, 순수한 마음으로 창녀를 도와주지만 오해만 받았다. 동생 테오의 권유로 그림을 시작했는데 파리에서도 동료들로부터 소외를 당했다. 신인상주의 화가 폴 시냐크는 고흐를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소리를 지르고, 손짓을 하고, 여전히 꽤 젖어 있는 커다란캔버스를 휘둘러 대며 자신과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감을 끼얹었다." 이외에도 고갱과의 갈등 때문에 귀를 자르는 등 여러 기행에 관한 일화를 남겼지만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중요한건 뜨거운 것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것"이므로,
- P154

신경숙
1973-

전라북도 정읍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상경하여 구로공단에서 일하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문학에 대한 동경을 발판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서울예전에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이러한 체험은 신경숙의 작품 세계에 배어있는 깊은 인간에 대한 이해의 토대가 된다. 1995년 「깊은 숨을 쉴 때마다」로현대문학상을, 2001년 「부석사」로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 특히 엄마를 부탁해』(2008)로 해외에 한국문학을 알리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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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느릿느릿 떠오르자 연못을 덮은 안개는 물에 풀어지는 먹처럼 옅어져 갔다. - P434

"나도 영웅은 아니야. 그저 내 힘이 필요할 때 해야 할 일을 했을뿐이지."
- P455

전호리, 세상에 영웅 같은 건 없어. 사가법 상서는 용기 있는 사람이었지만 겁쟁이이기도 했고, 유능한 인물이면서도 어리석은 자였어. 왕수초는 기회주의자였기 때문에 살아남았지만 한편으로는영혼이 고결한 인물이었고, 난 이기적이고 허풍이 심하지만, 가끔은 나 스스로도 내가 한 일 때문에 놀랄 때가 있어. 우린 누구나 평범한 인간이야. 뭐, 내 경우엔 평범한 요괴라고 해야겠지. 그렇게 평범한 우리가 특별한 선택에 직면할 때가 있어. 그 선택의 순간에, 영웅적인 대의는 우리에게 자신의 현신이 되라고 요구하기도 해."
- P458

"전호리, 양주의 백성들은 100년 전에 죽었어. 그건 무슨 수로도바꿀 수 없는 사실이야. 하지만 과거는 기억이라는 형태로 계속 살아가게 마련이고, 그래서 권력을 쥔 자들은 언제나 과거를 지우고,침묵시키려 해. 원혼들을 땅속에 묻어 버리려고, 이제 자네도 과거를 알아 버렸으니 더는 무지한 방관자가 아니야. 만약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으면 자넨 황제와 그가 부리는 혈적자와 한패가 되는 거야. 그들이 저지르는 이 새로운 폭력, 과거를 지워 버리는 작업에서 말이야. - P458

자넨 특별한 선택에 직면한 평범한 사람이었어. 그때 자네가 한 선택을 후회하나?
- P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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