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점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가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에서 - P159
평범하고 이름 없는 것들에서 삶의 본질을 통찰하는 데 명수인 신경림 시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시 속에 멋진 반전을 기획해 놓았다. 실루엣‘이 바로 그것이다. 망막에 남은 것은 다만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뿐이다. 실루엣에는 디테일이 없다. - P161
아무리 과거를 사랑해도 그 디테일을 모두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어떤 세대도 전 세대의 삶을 단순하게 반복할 수는 없다. 윤곽, ‘실루엣‘만이 남는 것이 옳다. 실루엣은 말 그대로 우리의 윤곽, 지지대가 될 수 있고, 디테일을 채워 가면서 다음 세대는 자기의 역사를만들어 나가고 더 나아가 실루엣 자체도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비워야만 비로소 다시 채울 수 있다. 그래서 가끔은 질주를 멈추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을 새겨 보는 일이 역설적으로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 있다. - P161
인류는 후손에게 생물학적인 유전만이 아니라 보다 나은 생존을 위한 문화적인 유전자 ‘밈(Meme)‘을 함께 전해 준다. 일종의 사회적유전자라 할 수 있는 ‘밈(Meme)‘은 재현과 모방을 되풀이하며 전승되는 언어·노래·태도·의식·기술·관습 문화를 통칭한다. 신경림 시인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은 바로 우리의 기억 속에 내재된 "밈(Meme)"의 자각 과정을 시로 보여 주는 가장 멋진 예가 될 것이며 사진에서는 구본창의 작품이 그렇다. - P162
얼굴을볼 수 없는 아낙의 뒷모습은 여전히 상상을 자극한다. 아낙의 얼굴, 표정, 목소리, 숨결, 살아온 내력 그 모든 것이 궁금하다. 신경림 시인의 실루엣에 디테일을 채우는 것도, 구본창 작품 속 아낙에 대한 궁금함을 채우는 것도 모두 우리 각자의 몫이다. 어떤 어머니와 할머니를 기억하는가는 바로 자신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나는 그 기억이 정확하기보다 풍부하기를 바란다. 변화는 달라지는것이기 때문이다. 원본 그대로의 복제가 아니라 시대에 맞게 변화하면서도 살아남는 것이 문화적 유전자 밈(Meme)의 힘이니까. 그리고 그렇게 재구성된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이 다시 내 "세상의 전부가되는 법이다. - P169
구본창 1953-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국립조형미술대학교(함부르크)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1세대 사진작가 가운데 한 명, 사진 예술에철학적이고 사색적인 명상의 분위기를 담아내서 큰 영향을 끼쳤다. 백자, 탈, 비누 시리즈로 유명한데, 특히 남들이 보지 못한 순간을 찾아내 주는 고마운작가다. - P170
신경림 1936-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공책에 적은 글이 교사의 눈에 띄어 시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고등학교 때는 국어 시험지를 백지로 냈다가 그벌로 시 다섯 편을 내야 했는데, 당시 국어 교사의 아들이었던 유종호 문학평론가의 눈에 띄어 문단에서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뒤늦게 준비한 시집 『농무(農舞)』(1973)는 ‘창비시선‘ 1번으로 출간되었다. 1980년에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되기도 하고, 1984년에는 ‘민요연구회‘를 꾸려 민요채집에 나서는 등 적극적으로 사회와 소통하였다. 1974년 만해문학상(1회), 1981년 한국문학작가상, 1990년 이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P171
말라르메의 목신의 오후는 하나의 발원지가 되어 19세기 말20세기 초의 문화를 흥건히 적셨다. 음악에서는 드뷔시의 목신의 오후의 전주곡이 탄생했고, 무용에서는 러시아의 진실적인 발레리노니진스키의 전위적인 발레가 되었고, 미술에서는 마티스의 그림이 되었다. 이들은 각기 고유한 어법과 독창성을 가진 비교 불가능한 예술작품들이다. - P181
「생의 기쁨은 목신의 오후가 가지고 있던 관능성과 도피의 욕망을 더욱 감각석인 것으로 만들었다. 말라르메의 시대가 데카당스의시대였다면, 마티스의 시대는 신선한 파괴를 통해 새로운 종합과 일보 진전이 이루어지던 아방가르드의 시대였다. 마티스의 「생의 기쁨, 은 지금까지 그려진 모든 여성 누드들의 여러 요소들을 총동원한 종합판이며, 새롭고도 낙천적인 확장판이다. - P181
그림 속 인물들의 자세는 그리스의 화병 그림, 중세 태피스트리, 폴라이우올로, 티치아노, 조르조네, 카라치, 크라나흐, 푸생, 와토, 앵그르, 퓌비 드 샤반, 모리스 드니 등 서양미술사의 여러 작가들에 의해 그려진 여러 누드화의 매혹적인 자세에서 따온 것들이다. - P182
앙리 마티스 Henri Matisse, 1869-1954
피카소와 함께 20세기 회화 예술의 거장, 특히 보색대비를 이용한 강렬한 색채를 통해 관능적인 낙원의 세계를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재현해 냈다. 에콜데 보자르에서 상징주의 화가 귀스타브 모로에게서 그림을 배웠고, 가난한 시절에도 세잔의 목욕하는 사람들을 구입해 평생 존경의 표시로 간직했다. 1905년 살롱도톤(Salon d‘Automne)에 출품한 작품들이 ‘레 포브(LesFauves, 야수들)‘라는 조롱을 들었는데, 이들을 일컫는 ‘야수파는 여기서 유래한다. 말년에 건강 악화로 더 이상 그림을 그리기 힘들게 되자 "가위로 그리는 종이 오리기 작업을 시작했는데, 『재즈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아름다. 운 작품들 또한 매혹적인 감각을 전한다. 자신의 작품이 안락의자 처럼 편안했으면 좋겠다는 그의 말은 많은 오해를낳았지만, 그의 헤도니즘(hedonism)적인 태도를 잘 보여 준다. 마티스는 미술사에서 보기 드물게 청아하고 감각적인 쾌락의 세상을 만들어 냈다. "나는사물을 그리지 않는다. 나는 오직 사물 간의 차이를 그린다." - P181
스테판 말라르메 Stéphane Mallarmée, 1842-1898
프랑스 상징파 대표 시인,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푹 빠져 보들레르가 좋아했던 에드거 앨런 포의 시집을 번역하기 위해 영어를 공부했다. 영어 교사가되어 평생을 은둔자처럼 조용히 살았지만 곁에는 늘 그를 사랑하는 동료 예술가들이 함께했다. 말라르메의 아파트에서 위스망스, 쥘 라포르그, 폴 클로델,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피에르 루이 등의 문인들과 휘슬러, 오딜롱네, 모리소 등의 화가들이 모여 화요회‘라는 모임을 가졌다. 그의 시는조금씩 퍼져 나가 많은 추종자들이 생겨났고 그는 ‘시인들의 왕자‘라 불렸다. - P185
로 사물을 바라본다. 이것은 신 중심의 중세에서 인간 중심의 근대로옮아오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바라보기 방식이다. 원근법은 인간을세상의 중심에 놓을 만큼 위대하지만, 동시에 모든 인간의 불완전함때문에 인간 시각의 한계를 그대로 노정한다. 나(일인칭 시점)이든, 너(이인칭 시점)이든, 그(삼인칭 시점)이든 인간은자기의 위치에서만 사물을 보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한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지닌 한계이기도 하다. 모나리자는 가장 완벽한 원근법과 시각의 움직임을 고려해서 그린 그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완벽한 모나리자의 뒷모습과 모나리자에 의해 가려진 풍경은 볼 수 없다. 다만 유추할 뿐이다. 왜냐하면 나는, 너는 혹은 그는 ‘지금 여기에만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 P190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 소설에서는 죽은 사람도, 값싼 종이에 그려진 한 마리 개나 나무도, 금화도, 살인자도, 죽음도, 빨강도 자기만의 말을 한다. - P190
이슬람의 전통 미술인 추상적인 아라베스크 문양이 전체 속에서 조화를 이루듯이, 이슬람 세밀화의 빛나는 세부들이 하나의 큰 그림 속에서 조화를 이루듯이, 오르한 파묵의 소설에서는 모두가 당당하게자기 말을 하는 와중에도 이야기가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 P190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하나이다. 그러므로 그곳에는 질서가있는 것처럼 보이고 순수해 보인다. 그러나 개성적인 것은 상대적이고무한하다. 그래서 개성적인 것이 존중되는 곳에는 일견 모든 것이 제각각인 무질서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며 불순해 보인다. 그러나 개성을 가진 개인들이 등장하면서 단일성에서 다양성으로 나아가는 것이근대화의 방향이고, 소수만 자유로운 세상에서 모두가 자유로워지는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이 발전의 방향이다. - P196
소설 속에서는 새롭고 이질적인 것의 수용을 거부하고 이슬람의 순수성을 지켜야 한다는 근본주의자들이 내지르는 선동의 목소리가 위협적으로 높아진다. 그것은 영광의 시기가 지나고 서서히 몰락해 나가는 사회의 전형적인 현상이다. 이슬람 전통의 순수함을 지킨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그것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누리던 기득권을지키려는 불순한 몸부림일 뿐이었다. 절대적인 단일성을 추구하는 문화는 결과적으로 모든 자연스러운 발전을 왜곡시킨다. 절대성에 도달한 대가로 주어지는 행복한 눈덮을 얻지 못한 나이 든 장인들은 가짜로 장님인 척해야 하는 위선에 빠지고 만다. - P196
이슬람 근본주의를 주장하는 자들이 테러 단체화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모든 형태의 순수주의들은 사실은 가장 배타적인지배욕을 가진 불순한 사상들이다. 세상에 나만 옳고 나만 존재할 이유를 갖는다는 생각만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이슬람 화풍도, 서양화풍도, 동양 화풍도 모두 각각의 존재 의미를 갖는 아름다운 양식들이며,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 P197
"동방도 서방도 나의 것"이라는 신의 말은 세상 모든 것은 존재의 의미가 있고, 부분적인 진실만을 담아낼 뿐이니 모든 것이 함께공존해야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 진정 동서양 문명의 교차점이자 개방된 이슬람 국가, 터키 출신 작가다운 멋진 결론이다. 에니시테의 마지막 기도는 이것이었다. 신이여, 순수함을 향한 의지로부터 우리를보호하소서." - P198
비흐자드 Kamal ud-Din Behzad, 1450-1535년경
중세 페르시아의 대표 화가. 티무르 왕조의 술탄 후세인 미르자와 사파비 왕조의 샤 이스마일 1세의 총애를 받는 궁정화가였다. 당시 오스만제국에서는 전범으로 확립된 ‘이슬람 세밀화가 정통 화풍이었다. ‘신의 시각을 표현하기 위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본 것처럼 그리기 때문에 평면적이고 그늘진 곳이 없는 게 특징이다. ‘절대성‘을 구현하고자 한 것. 헤라트 화파가 주도했는데, 비흐자드가 바로 이 화파의 거장이다. 그러나 비흐자드 시대에 아드리아 해를 사이에 둔 이탈리아에서는 미켈란젤로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화가들이 새 화풍을 완성하고 있었다. 이들은 원근법과 그림자를 넣어서 사실적으로 그렸다. 『내 이름은 빨강』에서 이를 ‘베네치아 스타일‘이라 부르는데, 당시 오스만제국 술탄들은 점차 베네치아 스타일에 매혹되기 시작했다. "내 이름은 빨강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서 헤라트 화파의 계승자들의 반발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에서는 지속적으로 세밀화가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이나 색깔, 소리가 과연 있는가, 혹은 있어야만 하는가?"라고 질문한다. 전통의 고수와 새로운 방식의 흡수 사이에서 생기는 갈등은 바로 오늘날 터키 젊은이들의 고민이기도 하다, - P199
오르한 파묵 Orhan Pamuk, 1952-
터키 이스탄불의 부유한 대가족 가정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 화가가 되고싶어 했으나 대학을 자퇴하고 두문불출 글만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칠 년 후에 내놓은 첫 소설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1982)을 비롯하여 『순수 박물관, (2008)에 이르기까지 모든 소설이 주목을 받으며 세계인의 이목을 터키 문학에 집중시켰다. 오르한 파묵은 2006년에 "문화들 간의 충돌과 얽힘을 나타내는 새로운 상징들을 발견했다."라는 평가를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비교문학과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다. - P201
솔로몬의 말대로 ‘모든 것은 지나간다. 그러나 결국 모든 것을지나가게 만드는 시간은 지상에 사는 우리에게 선물이기도 하다. 왜나하면 변화의 방향이 단순한 부패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좋은 변화를 우리는 성숙이라고 부른다. 시간의 흐름은성숙의 기회이다. 지상에서 느끼는 지옥 같은 고통도, 짜릿한 환희도모두 성숙이라는 거대한 흐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시간 속에서 사는 우리의 가장 커다란 과제는 인간적인 성숙이다. - P211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지는 가장 커다란 선물은 성숙이다. 자신에 대한 성찰과 타인에 대한 연민이없었던 도리언 그레이에게 성숙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는 발효로 깊어질 수는 없고 흉측하게 부패할 뿐이었다. - P212
아이반 올브라이트 Ivan Le Lorraine Albright, 1897-1983
아버지는 풍경화가였고, 쌍둥이 형제와 함께 시카고 미술학교를 다니면서 엘그레코와 렘브란트를 좋아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의학 스케치를 한 경험이 화가의 후기 스타일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1930년부터 수많은 자잘한 붓 터치를 보이는 정교한 테크닉의 작품들을 선보이면명성을 얻게 되었다. 아이반 올브라이트는 초현실주의적인 것과는 달리 가기운 현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지만 과장되고 왜곡된 관점을 드러내면서 미국특유의 ‘마술적 사실주의 화풍의 계보를 잇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 Oscar Wilde, 1854-1900
도리언은 "관능을 수단으로 영혼을 치유하고 영혼을 수단으로 관능을 치유하는 것"이 인생의 위대한 비밀이라는 헨리의 말에 매혹된다. 또한 삶에서 가질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것이 청춘"이라는 헨리의 유혹에 세뇌당하고 만다. - P214
나는 영원히 아름다운 모든 것을 질투합니다. 당신이 나를 모델로그린 초상화를 질투해요. 왜 이 그림은 내가 잃을 수밖에 없는 것을 간직할 수 있는 거지요? 흐르는 시간이 내게서 무엇인가를 빼앗아 가고, 대신에 그 무엇을 이 그림에 줄 것입니다. 오. 그것이반대로 될 수만 있다면! 변하는 것은 그림이고, 나는 영원히 지금의 나로 머물 수 있다면! 이 그림은 언젠가 나를 조롱할 겁니다. - 오스카 와일드,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화에서 - P214
마르셀이 바라본 시간의 타락, 무의미의 범람, 정신적인 고결함의 망실 등은 사실 세계사의 진행 방향인 대중화, 개인화, 세계화 과정에서 드러나는 필연적인 현상들이다. 19세기 말 파리에서는 느닷없이 루이 16세풍의 가구가 대대적으로 유행했다. 혁명으로 권력을 잡은 부르주아들은 자신들이 몰락시킨 귀족들의 취향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 귀족들이 그리스 문화의 정수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류의 복제품을 만들어 냈다. 언제나 문화의 정수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하방하여 보급되며 실루엣만 전해지기 때문에 디테일은 다르게 채워지는 경우가 많다. 대중적인 보급은 불가피하게 다소 조악한 모방을만들어 내며, 이것은 정통 취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취향의 타락처럼 보이기 마련이다. - P217
아주 오래 살아서 르네상스의 성립과 몰락까지를 모두 보았던미켈란젤로 (1475-1564)는 네덜란드 풍속화를 보고 격노했다. 혹자의눈에 괜찮아 보이는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예술성도 없고 논리도 없으며, 대칭도 없고 비례도 없으며, 엄격한 선택도 없고 분별력도 없으며데생도 없다. 한마디로 말해, 골격도 없고 힘줄도 없다." 이 위대한 예술가가 생각하는 골격과 힘줄은 역사적, 신화적으로 의미 있는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삶을 예찬했던 네덜란드에서는 영웅이아닌 평범한 사람도 그림의 주인공이 될 수 있고, 그곳에 신화가 깃들지 않아도, 위대한 역사적 영웅의 활동지가 아니어도 풍경은 그려질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겼다. - P230
세상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시간은 덧없어진다. 인간의 삶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채 의미를 챙기지 못하는 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덧없다‘는 느낌이 더 강해진다. 의미를 챙길 여유도 없이 많은 정보가 오가기 때문에 시간은 과거보다 더 빨리 흘러간다. 원인과 결과가 뫼비우스 띠처럼 연결되면서 빨리 흘러가는 시간은 무의미만을 만들어 내고 있다. - P233
고정되어 경직된 머리의 논리가 아니라 무엇으로 영원에, 사물의 본질, 그 정수에 도달할 것인가? 거기에 대해 프루스트가 주는 답은 바로 감각에 의존하는 것이다. 이 감각은 나중에 들뢰즈가 『감각의 논리』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이것은 말초적인 감각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 안에 존재함을 전 인격적으로 느끼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감각은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그것을 넘어서는 정신적인 등가물이다. 그것은 논리적 지성이 설명할 수 없는 세계의 미묘한 변화 속에서 세상을 감지하는 것이다. - P233
세계의 감각적 상태는 종교적 교리나 이데올로기, 혹은 모든 지성적 논의에 의해서 제단된 상태가 아니라 세계를 "감각적 상태" 머리와 마음과 몸이 하나가 된 종합적인 상태에서 그대로 느끼는 진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헛되이 지나간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방법이다. - P233
프루스트에 따르면 "시간은 인간의 단일성과 생명의 법칙을 존중 하면서도 결국은 변화를 일으킨다. 어제의 그가 오늘의 그와 같지않음을, 내일의 그와도 같지 않음을, 이 변화의 상태를 포착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이다. 감각의 작동만이 "보통 상태에서는 결코 포착할 수 없는 것 — 번쩍하는 한순간의 지속— 순수한 상태로 있는짧은 시간을 붙잡아 떼어 내고 고정시킬 수 있게 해 주는 예술을 하는 일이다. 예술만이 무의미 속에서 흩어진 삶을 구원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예술가로서 그가 해야 할 유일한 일은 본질의 계시가 드러날지도 모르는 "기억의 재현, 무의식적인 기억의 방식, 인상, 심상을 적극활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세계의 골격, 근육에 관한 예술이 아니라세계의 살, 그것도 아주 물컹물컹하고 무의식화된 삶을 포착해 나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예술이 열한 권에 이르는 방대한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 P234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Johannes Vermeer, 1632-1675
17세기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 절대왕정 시대였던 프랑스와 달리 상업의 발달과 함께 문화의 다양성을 꽃피웠던 강소국 네덜란드에서는 시민이 사회의 주역으로 등장했다. 그리하여 시민의 일상도 그려질 가치가 있는 주제로 부각되었다. 델프트에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페르메이르는 바로 이 평범함을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페르메이르는 19세기에 와서야 그 진가가 알려진작가다. 최근에는 그의 작품 가운데 ‘북유럽의 모나리자‘로 일컬어지는 진주귀고리 소녀를 둘러싼 이야기가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베스트셀러 소설과 영화로 널리 알려지면서 인기 화가가 되었다. - P235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1871-1922
의사 아버지와 교양 있는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유복한 생활을 했으며, 철학자 베르그송과는 외가 쪽 친척이다. 파리대학교 법학과에 들어갔으나 병약한 몸에 예민한 성격의 프루스트는 문학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결국 질적으로나양적으로 모두 19세기 최고의 소설이 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성했으며, 그 가운데 2권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서」로 콩쿠르상을 수상했다. - P236
김환기는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 등과 더불어 한국 근대미술에서 가장 중요한 화가 중 한 명이다. 특히 그를 ‘한국의 피카소라 부르는 이유는 우선 다른 작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3000여 점(드로잉과과슈 작품 포함)이 넘는 작품이 남아 있고, 다른 작가들의 작품 세계가구상화로 일관되게 남아 있던 반면 김환기의 작품 세계는 반구상-구상-반추상 추상으로 역동적으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박수근, 이중섭, 장욱진의 그림들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격동의 역사를 살았던민중적인 정서를 그린 애틋한 그림들이다. 반면 김환기의 작품은 같은시대를 살았지만 시대의 궁핍으로부터는 약간의 거리를 갖고 있다. - P238
지금도 회자되는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의 유명한 말이 나온 것은 1953년, 모두가 먹고살기에 급급하던 시절, 예술에 대한 이야기는 사치처럼 느껴지던 시절에 한국문화의 글로벌화를 고민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김환기는 우리민족이 도달했던 아름다움의 깊이와 넓이를 보았던 것이다. - P242
저렇게 많은 별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김광섭, 「저녁에」 에서 - P245
그녀의 에세이집에 실린 1988년의 글에는 감동적인 한 구절이실려 있다. 사람의 칠십 대는 인간으로서 완성되어 가는 시간이다. 여기엔 남녀도 빈부도 없다. 하나의 인간이 존재하다 소멸되는 기록이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완성의 시간에 그녀는 과거를 돌아보며 비로소 말문을 연다. 그녀의 첫 남편 천재 시인 이상(李箱)에 관한 말이다. 김향안의 본명은 변동림, 결혼한 지 석 달 만에 이상은 안타깝게 요. 절했고 젊은 과부 변동림은 세 아이가 딸린 이혼남 김환기와 다시 인연을 맺어 김향안이 되었던 것이다. 그 변동림이 반세기 만의 침묵을깨고 말한다. 이상의 소설은 상상의 산물일 뿐 이상과 자신의 결혼생활과는 별개라고, - P247
김환기 1913-1974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서 절제된 조형미와 한국 시문학의 서정을 담은 아름다운 그림들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전라남도 작은 섬마을에서 푸른 바다와 끝없는 하늘을 보며 자랐으며, 그림과 글 모두에 능한 문인화가의 마지막 후예였다. ‘한국의 피카소‘라 불리는 그는 한국 최초의 추상화를 그려서 한국 현대 회화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 주었다. 김환기는 자신의 그림으로 "그림이 팔리는 신바람 나는 사회"를 이루었다.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김향안)과결혼했으며, 화가는 평생 든든한 내조를 받았다. 신안에 있는 화가의 생가 ‘김환기 고택‘은 2007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자료 251호로 지정되었다. - P249
김광섭 1905-1977
함경북도 경성에서 태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북간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에서 의대를 진학하려고 했으나 색맹이 밝혀져 와세다대학교 영문학과를졸업했다. 교사 시절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시켰다는 죄목으로 옥고를치르기도 하고, 광복 후에는 이승만 대통령의 공보비서, 경희대학교 교수 등을 지냈다. "나는 인간이 비참하다는 것을 여러 번 체험했지만 자유를 완전히 잃은 때처럼 비참한 것은 없었다." 민족주의 문학론을 강조하는 시론을 펼쳤는데, 후기시들에서는 산업사회의 모순을 건드렸다. 호는 이산(台山)이다. - P250
앞서 말한 대로 최순우는 한국 미술은 "자연과 예술을 하나의격으로 간주한다고 말했다. 최순우는 "자연과의 조화를 최고의 덕목으로 여겼을 뿐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과정에도 주목했다. 즉 그 조화조차 의식적으로 추구하지 않는 행위, 말 그대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이 말은 창작 과정 역시 서구적으로 신비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즉한 인간의 노동처럼 반복적인 것이고, 창작은 나날의 일과와 같이 더디게 진행되며 변화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한다. 김홍주가 캔버스에 남긴 무수한 붓질들은 이러한 노동의 집산이다. 이 노동의 집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 자체로 그러함‘이라는 자연의 관념을 닮아 있기 때문이다. 김홍주의 그리기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 한국미의 최고 덕목을 현대화한 작품이다. - P263
김홍주
충청북도 화인에서 태어나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목원대학교미술교육과 명예교수이다.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리는세필화 작업에 대하여 화가는 붓이 화면에 닿을 때의 육감적인 감정을 표현했다."라고 말한다. 특히 ‘꽃의 화가‘로 명성을 얻었는데, 꽃을 소재로 선택한이유는 ‘하찮은 존재이기 때문이며, 가장 얇은 붓으로 그리기‘ 자체에만 전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인기 작가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이전에 미술 평단에서는 전부터 그의 회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김홍주는 한국 현대 회화의 성과를거론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중요한 작가다. 2005년 서울 로댕갤러리에서 한국 회화 작가로서는 최초로 대규모 개인전을 가졌고, 제6회 이인성 미술상을수상했다. "꽃잎의 세세한 잎맥을 그리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그리는 것이 꽃이 아니라 길이거나 강이거나 산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지요." - P264
김소월 1902-1934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났으며, 조만식이 교장으로 있던 오산중학교에서 김억에게 시를 배웠다. 전통적인 한(恨)의 정서를 민요의 운율에 민중적인 정감을 담아 여성적인 목소리로 표현하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가운데한 명이 되었다. 김소월의 시비는 남산에 있다. - P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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