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파워를 가지려고 하면 할수록 파워를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별 생각 없이 올린 일상 트윗은 열렬한 공감을 얻었다. 그런데 일상 트윗인 척 슬쩍 책을 홍보하면 언제나 불순한 의도를 간파당했다. - P20
뭔가를 하려고 애쓸수록 트위터는 점점 더 부자연스러움을 극대화했다. 그건 어찌할 수 없는 산이었다. 나는 머릿속에서 트위터 책 홍보를 지워버렸다. 그리고 자연인 트잉여로서의 삶을 설계했다. - P21
소통하고 싶지만 소통하고 싶지 않은 마음, 혼잣말이지만 혼잣말은 아니면서 혼잣말인 말, 무언가 입 밖으로 내뱉고 싶지만 그 말에 꼭 반응을 기다. 리지는 않는 상태. 그런 나의 애매한 상태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 그걸 기대하기에 가족 단톡방은 너무 오랜 관계의 역사가 깃들어 있다. 모바일 메신저라는 것은 그러라고 만들어진 것이 아니므로 출구는그곳에서 찾을 일이 아니었다. 나는 자주 트위터로 도망쳤다. 어떤 말에 반응하고 어떤 말을 모르는 척해야 할지 귀신같이 아는사람들로 가득한 타임라인, 공을 물고 달려와 던져달라는 시늉을 하면서도 정작 가져가진 말라며 공을입에서 놓지 않는 개를 닮은 마음들이 가득한 곳. - P27
다른 모든 SNS가 그렇듯이 트위터 역시 자기세계를 자유롭게 구축할 수 있다. 나와 관심사가 같은 사람, 정치 성향이 비슷한 사람, 직업이 비슷한사람, 유머 사진을 자주 올리는 사람, 반려견 또는반려묘 사진을 공유하는 사람을 선택해 팔로우할 수있다. 이거저거 다 필요 없이 그냥 호감 가는 사람만팔로우해도 좋다. 그렇게 내 성향대로 잘 다져놓은타임라인은 내게 강 같은 평화를 주는 아늑한 아랫목이 된다. - P29
그래서 우리난 서로 끊임없이 오해하면서 이해하고 이해하면서 오해한다. - P36
나는 갤러리를 빠져나오며 ‘그건 당신이 그 안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에요‘ 라고 중얼거렸다. 작은 동네의 정, 여유, 소박함, 느림, 낭만, 그런 것은선택권이 있을 때나 느낄 수 있는 사치일 뿐이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이방인의 낭만을 그곳의 주민이었던 내가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 P49
나에게 익명성의 가치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채 나의 영역을 존중받는 것이다. 무관심이라 해도좋다. 그로 인해 나는 조금 더 자유로울 수 있으니까. - P50
그렇다, 프리랜서가된다는 것은 마감노동자가 된다는 것이다. - P70
세상에 트위터도 못 하는 바쁨과 트위터 밖에못 하는 바쁨이 있는 것 같다. 물고기자 님의 트윗을 보고 머리를 감싸쥐며나는 역시 아직 덜 바쁜 것인가 괴로워하다가 아니야, 나는 트위터밖에 못하는 바쁨의 상태다! 여러분이거 뭔지 알죠, 나만 이런 거 아니죠, 동의를 구하고 싶은 것이다. - P70
표현은 아니지만, 본 트윗을 쓴 사람이 그 분야 전문가임을 모르고 그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겠다고 말을 보탰다가 시원하게 얻어터지는 안타까운 경우가있으나, 설명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이들은 대체로상식을 전문 지식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 P85
못하는 소리가 없다 정말).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오빠와 내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했다. 아니, 다르게 키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아빠는 언제나 우리 모두를 똑같이 사랑한다고 했다. 그 마음을 의심한 적은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아주 전형적인 남자와 여자로 키워졌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어렴풋하게 무언가 이상하고 부당하며 잘못됐다는 생각을 내내 품고 있었다. ‘왜 오빠는 송편도 안 만들고 설거지도안 해?‘ ‘왜 오빠만 예뻐해?‘ ‘왜 오빠 편만 들어?‘ - P95
아주 오랫동안 나는 여성으로서 내가 느낀 감정들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었다. 무언가 잘못됐다. 는 것을 논리적으로 반박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확히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이 여성학 특강을 들으면서 나는 비로소 언어를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98
그로부터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나는선언하게 됐다. "나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자각한 순간부터 따지면30여 년이 걸렸다.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들을까 입을 닫았던 내가 ‘나는 페미니스트다 이놈들아!‘ 외칠수 있게 됐다. 용기의 원천은 트위터였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말하지 않으면 달라지지 않는다고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대로 힘껏 외치는 이들이 여기 있었다. 가부장제의 자장 안에서 여성에게 행해지는온갖 부당한 일에 의문을 품어도 된다고, 그것을 거부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있었다. 착한 며느리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성실한 아내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도 좋다고 응원하는 이들이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억압을 견디며살아온 시간을 뒤집고자 하는 삶들이었다. - P99
나는 이제 시댁에 안부전화를 몇 번 할지 고민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의무가 아니다. - P100
여성에게 당연한 듯 부여되는 삶을 거절할 권리가 있다는 트위터자매님들의 목소리 위에 내 목소리를 겹쳐 올린 것이었다. - P100
세상의 모든 차별과 억압은 가장 약한 존재로 향하기 마련이다. 내가 여성이라서 당하는 차별에 분노하면서 한편으로는 나보다 더 약한 존재인 아이들 그리고 양육의 책임을 강요당하는 엄마들을 혐오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질서를 모른다고 비난하면서 정작 그 질서를 배울 기회를 앗아간다는 것, 저출산 문제 운운하며 비출산 여성을 사회적으로 비난하면서 정작 세상에 나온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은 보고 싶어 하지 않는 것, 양육의 책임이 여성에게만 전가되어 모든 문제를 여성의 문제로 치부하는 것, 배제의 논리가 확대되면 계속되는 약자 배제를 막을 수 없다는 것, 아동혐오는 곧 여성혐오로 이어진다는 것. - P102
트위터에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트위터를 하면서 타인의 삶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 장애인, 성소수자, 노인, 여성 등 약자가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은 그저 막연했다. 그냥옳은 것이니 그래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생각. 오직그 생각만 존재하는 상태. 그러다 타임라인으로 여성 각각의 구체적인 삶을 읽어내려가면서 나의 못남을 매일 새롭게 깨달았다. - P103
"아이는 사회가 같이 키우는 거야. 트위터에서 배웠어." - P108
나 하나의 입을 하찮게 여기지 않는 것. 자신을함부로 내버려두지 않고 끊임없이 아끼고 보살피는것. 트위터 사람들의 일상에 나는 자주 자극을 받았다. 혼자 살수록, 혼자 일할수록 사소한 일상 루틴을소중히 하라고 다독이는 것 같았다. K님의 꽃에서, C님의 요리에서, 0님의 부엌에서, 나는 스스로 삶의리듬을 만들어가는 즐거움과 균형 감각을 익혔다. - P114
그 순간 내가 더 이상 라디오를 듣지 않는 이유를 깨달았다. 나는 라디오라는 매체가 싫어졌다기보다는 라디오의 사연과 DJ의 리액션이 싫어진 거였다. 십수 년 만에 우연히 다시 들은 라디오는 짜고 치는 고스톱 같았다. 방송심의에 걸리지 않을 만한, 논쟁적이지 않은, 누가 들어도 이의를 제기하지않을 평범하고 일상적인 사연들만 전파를 탔다. DJ는 그 재미없고 지루한 이야기에 더 재미없고 지루한 코멘트를 덧붙였다. 모든 게 다 잘될 거라는, 좋은 날이 올 거라는, 힘을 내라는 영혼 없는 응원이 이어졌고 대책 없는 긍정의 단어들이 마구 흩뿌려졌다. - P121
김애란 단편소설 「가리는 손의 화자는 요양병원 영양사다. 위아래 따지고 들며 장유유서 운운하는 노인 환자들 때문에 그녀가 힘들어하자 그녀의남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마. 가진 도덕이, 가져본도덕이 그것밖에 없어서 그래."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우와! 트위터 띵언 같다!‘ 세련된 화법으로 날카롭게 상황을 정리하는 똑똑한 트위터 사람들이 쓸 법한 트윗 같았다. 그리고소설은 이렇게 이어진다.
병원 어르신들을 보면 가끔 그 말이 떠올랐다. 나는 늘 당신의 그런 영민함이랄까 재지에반했지만 한편으론 당신이 무언가 가뿐하게요약하고 판정할 때마다 묘한 반발심을 느꼈다. 어느 땐 그게 타인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이해하는, 한 개인의 역사와 무게, 맥락과 분투를생락하는 너무 예쁜 합리성처럼 보여서. 김애란, 『바깥은 여름. - P124
빛나는 ‘띵언류‘의 트윗을 봤을 때 속 시원히정리된 문장들에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설명할수 없는 서늘한 기분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소설 속이 대목은 그 서늘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주는 말 같았다. 특히 ‘일침뽕에 취해 확신에 가득 찬 태도로 어떤 것을 정의하는 말들을 볼 때, 그것은 그것대로 너무 납작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트위터로 세상 구석구석을 배워간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때론 이렇게 멈칫하는 순간들이 온다. 덕분에 무턱대고 질주하지 않고 적당한 경계 속에서 트잉여의 리듬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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