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이 조촐한 낭패들은 지나고 보면 웃을 수 있는 귀여운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이방인‘으로서의 내 존재를 어렴풋이 자각시키곤 했던것은 언어나 문화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그런 낭패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눈에 잘 안 보이는 소소한 차이, 이를테면 세심함의 정도 차 같은 부분에서 그들과 나 사이에 깊은 강이 흐른다는 것을, 나라는 사람은 그 강을 결코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 P31

하지만 이방인인 내게는 이곳에서 무엇이 보통의 친절이고 배려인지를 판정할 경험치나 기준이없었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부담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표출되는 내 행동은 늘 어딘가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섬세하게 분화된 지느러미로 살랑살랑 헤엄치는 가운데 나만 둔탁한 지느러미로 물살을 따라잡지 못하는 기분.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이질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듯한 느낌,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이상한 감정이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이런 내 심리 자체가
‘뭘 그렇게까지..‘일 수도 있겠지만.
- P32

한편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메리트 중의 하나는 자기가단순히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 가령 약자로서 무능력한 사람으로서, 그런 식으로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혹은 될 수바에 없는) 상황을 가져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십대 때 읽은 이 책을 최근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는 가볍게 흘러모낸 이 대목에서 100 년 전 내가 맛본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실감‘이 되살아났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으로서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스스로를 세련된 교양인쯤으로 끝까지착각했을 수도 있다.  - P34

욕구가 있었다. 그 애와 나의 만남에는 특수한 상황과 제약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의 연애도지극히 평범했다는 사실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뒤늦게나마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현재의 내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과거를 미화하고거기에 매달리지 않기 위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 위해.
- P45

아이의 미소를 보면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는 거짓말은 누가 먼저 퍼트렸던가.
내 경험상 미소가 사랑스러운 것과 피로는 별개다.
꽃향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걸 맡았다고 결린 어깨가 풀어지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9

요컨대 얼핏 보기에는 내성적이고 고독한 소년 같지맘 함께 있으면 그 다정하이 서서히 배어나는 사람, 자신에 대해 큰소리로 떠벌리지않아도 그 내부에는 틀림없이 근사한 게 있으리라는믿음을 주는 사람에게 나는 매번 반한다.
- P58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오랜만에 다시읽다가 어떤 단락에서 내 이상형의 원형 같은 것을발견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지메는 고등학생 시절의 자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는 많은 책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 그러나나는 그런 책과 음악에 대한 체험을 다른 누군가와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은 없었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며 다른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 편히 느끼며 만족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지독히도고독하고 오만한 소년이었다. 팀 플레이가 필요한 운동은 아무리 해도 좋아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점수를 놓고 겨루는 경기도 싫었다. 내가 좋아한 운동은 오로지 혼자서 묵묵히 하는 수영뿐이었다.
- P59

로그 말대로 고흐의 그림처럼 동시대인들에게는 외면당해도 나중 세대로부터는 인정받는 일,
요컨대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 나가는 일이 소설이나음악, 그림과 같은 예술 분야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번역은 대체로 동시대인에게만 유효하다. 고전 작품은 시대마다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들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나 당대의 상황, 심지어 표준어규정과 외래어표기법마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대를 뛰어넘는 소설‘은 있어도 ‘시대를 뛰어 넘는(=견디는)번역‘은 웬만해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 P87

그러므로 번역에서는 정확도가 아름다움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때로 번역가는 거친 문장을 굳이 그대로 두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루키도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처음부터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이류이며, 번역의 참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에 있다고 말하지않았는가.
- P90

그런데 지금 생각해뵈 주인공이랑 감정적인 관계를 맺는 여자들이 속속 나오고 또 사라지면서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게좀 싫어져서 안 읽게 되었던 것 같네.
윤정 : 하루키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지. 시대 보정을 안 하면 참을 수 없는 지점이 많아.
- P136

지수 -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단편 기억 나? 하루키 초기작인데, 이 단편의 ‘서로에게 100퍼센트로 완벽한 남녀‘라는 구도는 『국경의 남쪽태양의 서쪽의 시마모토와 하지메의 관계에서그대로 나타나지.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사에키와 고무라, 『1Q84」에서는 아오마메와 덴고.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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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가끔 그런 생각한다.
내가 자살을 하는 거야.
오빠 새끼가 괴롭혀서 힘들다고 유서 남기고…근데, 그러면 내가 김대훈 새끼가 죄책감 느끼는 걸 못 보잖아.
그래서 죽고 나서 한 하루만 유령으로 있는 거야.
그 새끼 막 울고 아빠한테 혼나.
그럼 난 그걸 천장에서 다 내려다보는 상상을 한다?
엄마, 아빠 다 울고… 그러면 막 상상만 해도 후련해.
- P59

칠판에 문장들이 완성된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영지]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여러분 아는 사람들 중,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 P96

S#100, 실외, 학교 앞 현수막 길 - 밤은희와 영지, 은희 등굣길 근처의 허름한 컨테이너 집들을 지난다. 컨테이너 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은희) 선생님. 여기 사는 사람들, 왜 현수막 거는 거예요?
영지) 집을 안 뺏기려고 하는 거야.
은희) 왜 남의 집을 뺏어요?
영지,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난감하다.
영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그래도 …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
은희) 네?
영지)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 P133

영지)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두 여자의 눈 마주침.
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할까. 스산한 얼굴의 영지, 그 침묵을 힘겹게깨고 영지가 말한다.

영지) ...응.많이. 아주 많이. 나도 똑같아.

은희, 영지의 말에 놀라서 묻는다.
은희)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는데도요?

영지, 아이의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지) …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은희.

영지)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 P135

말투가 ‘불손하다‘라는 이유로 내가 남자 교사에게 맞아서 기절했을 때, 좋아하는 친구가 갑자기 나를 차갑게 대했을 때, 술을 마시고들어온 아빠가 자신의 분노를 아무 죄도 없는 내게 쏟아 냈을 때, 교실 창가에 앉아서 내가 앞으로도 영영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고 예감했을 때, 어린 나의 고통은 어른이 된 나의 고통에 비해 조금도 사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생생했다.
- P207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안다. 고통은 파도처럼 마음에 들이 쳤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쉽 없이 마음으로 들어와서 자국을 내고, 다시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가도 돌아온다. 나의 잘못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노력했는데도, 잘해 보려고 했는데도 겪어야 하는 상처들이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상처받으면서도 내가 나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게는 어느 정도의 힘이 있고, 내 힘으로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수 있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낸다면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리라는믿음도 있다. 그러나 은희 시절의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상처는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내가 누구에게도 맞설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느껴졌으며,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곧 나 자신의 가치로 여겨져서 작은 일들에도 쉽게 다쳤다. 그건 사소한 일들이 아니었다.
- P208

Love yourself.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에 대한 태도는 많은 경우 자신을 대했던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의 태도를 닮기 마련이다. 많이 아팠니?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니? 하고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면 은희 또한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희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가 지워진 사람, 공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존중하고 심지어 사랑하기까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은 함부로 다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게 될까.
- P208

어른들은 은희에게 말한다. 착하게 행동해, 날라리가 되지 마. 나는남자아이에게 ‘착함‘이라는 가치가 여자아이만큼 요구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이스께끼‘라는 이름으로, 브라자 튕기기‘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에게 베풀어졌던 숱한 ‘관용‘이 기억날 뿐이다. - P209

은희와 내가 요구받았던 착함은 수동성이었던 것 같다. 누가 널 때려도, 부당하게 대해도, 맞서지도 싸우지도 말고 그저 참고 삭이고 너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칠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착함‘
이라는 구울로 여자아이들에게 강요되었다. 너 참 예쁘다. 너 참 착하다. 여자아이를 향한 이런 칭찬은 결국 여자아이를 수동적인 대상으로 고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넌 네 의견을 잘 표현하는구나,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용기가 있구나, 네 감정에 솔직해서 좋다.
같은 칭찬을 받아 본 여자아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예쁘다. 착하다 같은 말 대신 우리 자신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을 하고, 우리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받았다면 어른이 된 이후의 삶리 얼마나 달라졌을까. - P209

왔다. 아무도 제대로 받아 주지 않는 감정은 언제나 추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럴 때 영지 선생님 같은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은희를 바라보듯 나를 그저 잠시라도 바라봐 주었다면,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불러 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했을 것이다.
- P210

고통은 언제 고통이 되나. 누군가의 시선으로, 공감으로 고통은 고통이 된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싸우지 좀 마‘라는 말을들어야 할 때, 은희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철없는 칭얼거림이 된다. ‘싸우지 좀 마라는 말에는 ‘오빠라면 여동생을 때릴 수있다‘라는 승인이, 여자애는 남자가 때려도 참아야 한다‘ 라는 주문이 들어있다. - P210

이런 사회에서 자란 많은 여성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진위를 의심한다. 아파도 자신이 아픈 것이 맞는지 검열하고,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자신이 예민해서‘가 아닌지 확인하고 확인한다. 여성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언어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영지 선생님의 눈빛을 통해서 은희의 고통은 비로소 고통으로 이해받는다. - P210

영지 선생님이 자기 자신이 싫었던 때가 아주 많았다고 말하는 순간, 은희는 진심 어린 공감을 받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싫어할 수 있으며, 그건 단죄하거나 혐오할 일이 아니라고,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마음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진심 어린 공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따져 묻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함께 느껴 주는 태도는아픈 사람을 자신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 마음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다. 비록 그늘지고 아픈 마음이더라도 그 마음을 박해할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데 억지로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된다.
- P212

은희의 시기를 살며 나는 어떤 말들을 들었나. 바르게 살아라, 좋은대하에 가라,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단정해라, 몸 간수 잘해라......
불안과 두려움에 두 발을 딛고 선 나의 삶은 언제나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있었다. 지금은 미래에 투자하기 위한 자원이었고, 현재의 고통은 부정되거나 사소한 일로 취급되었다.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가자"
라는 영화 속 담임의 말을 비웃을 수만은 없었던 건, 내게도 은희의시절이 비인간성을 강요받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P212

한국 사회에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고 강해지는 서사를 환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사람으로 살면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겠지만,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최대한 받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나,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는 가해자에게 언제나 얼마간의 정당성을 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가. 인간은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사랑은 상처가 상처로만 머물게 하지 낞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하도록 두지 않는다. - P213

집합적 몽상의 질서 안에서 우리는 꿈을 누군가 침탈할까,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나만 실패할까 불안하고, 그 꿈이 내 인생을 전혀 설명할 수 없어서, 그 꿈 이외의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우울하다. 이 감정들의 에너지는 때로 직접적인 폭력으로 전환되어 가장 약한 곳에 위치한 은희에게 도달한다. 불안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전환되고, 우울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 P230

이런 검에서 영지는 사실상 은희가 처음으로 만난 의미 있는 타자‘
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동일한 꿈의 질서에서 살아가는 공간에서은희는 지숙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지만 그들은모두 질서에 복무하다 잠시 일탈하여 은희를 만나고는, 다시 사라질 뿐이다), 영지는 질서 바깥에서 은희와 접속하고, 이 질서의 외부를 생각하도록격려한다. 세상에는 질서의 외부로 밀려나 사는 집조차 빼앗기는 타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은 질서 안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듯 보이지만 모든 걸 걸고 맞서야 하는 내부의 ‘타자‘ (폭력적인 오빠)도 있다는 것을, 은희에게 알려 준다.
- P231

우리가 타자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순간 그 타자는 나의 일부와 연결될 것인데, 그에게서 언젠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면 우리는 그의 모습을 미래의 나에게 투영한다. 그 미래가 도래하여현재가 되면, 이제 우리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기억 속의 바로 그타자, 영지‘의 모습으로 과거의 시간을 방문해 어린 나(은희)를 만나고, 영지의 눈과 손을 빌려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꿈에 복무해야 할지 우리중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며 삶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이렇게 타인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형성하고, 과거의 자신을 돌보면서, 여러 사람의 존재를 품고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갈 것이다.
- P234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 앞에서 애도는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우울하다. 집단의 꿈과 질서로부터 독립한개인이면서, 타인을 쉽게 동정하지 않으며, 작고 약한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절대로 부당한 것에는 맞서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해야만 우리는 그 사람의 존재를 통해 미래의 우리를 꿈꾸고, 과거의 우리를 돌보는 일이가능할 것이다.
- P235

나는 지아 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2007)가 1994년을 배경으로 하는 벌새〉와 현재를 연결한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 모두 글로컬glocal 자본주의의 전조가 이미 로컬에서 실현되고있음을 잘 보여 준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로 노동의 종말이 시작되던 무렵, 지구 한편에서는 금융 유통 자본주의의질주가 시작되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개발독재(‘건설‘)가 낳은 비극이본격적으로 가시화한다. 공간의 파괴 자체가 스틸 라이프〉와 〈벌새〉의 주제다.  - P239

이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가족 영화들이 생각났다. 임권택의 걸작 <길소뜸> (1986) 부터 도형일기(日記) (1999), <가족의 탄생>(2006).
똥파리》(2008), 〈박쥐〉(2009), 〈반두비〉(2009), 〈비밀은 없다〉(2016),
<우리들>(2016) 까지 .
위에 나열한 가족 소재 영화들은 대개 강렬하다. 계급의식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간단히 제끼며, 남성은 여성과 아이를 때리고, 아이들은 방치되어 있다. 근대 가족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제도다. 여성은 전쟁보다 배우자에 의한 살해와 출산 중 사망으로 더 많이 죽었다. 그럼에도 가족 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미투"가 어려운데, 이는 가족이 가부장제의 매트릭스matrix, 母型이기때문이다.
- P240

대신에 〈벌새〉는 ‘쎄‘지 않지만 일상에 스며든 폭력을 묘사한다. "오빠가 때렸어요"라는 딸의 호소에, 부모는 "싸우지 말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 P241

한국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는 대단히 도구적이다. 모든 사회복지 비용을 여성의 가정 내성역할로 떠넘기고, 학자와 관료 들은 이를 "한국형 사회복지"라고찬양한다. 한국의 가족 문화는 부부 중심이 아니다. - P241

두 모녀의 상실감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자본주의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한국 사회는 오로지 재생산을 위한 ‘생‘에만 집착하고 ‘노병사老病死‘는 무시한다. 건강과 젊음, 동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이를 실천practice 하지 못한 이들은 우울하다. 상실과 외로움은 인간의 조건일지 모르지만, 우울과 자살은 그렇지 않다. 뻔뻔스러움의 시대에, 우울은 윤리적 능력이다. 본인의 우울을 타인에게 폭력으로 전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 P244

앨리슨 벡델) 영화를 보면서도 줄곧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장면들은) 분명 일상적인 삶을 보여 주는데도 일상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주 멋진 방식으로 증강된일상이랄까. 지배적인 감상은 그렇다.
- P251

BK 마음에 드는 감상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뻔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신에게서 직접 듣고 싶다.
AB 한 소녀의 삶을 의미 있고, 소중하게 그리고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소녀의 삶 역시 인간의 삶이며,
폄하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대서사시epic 라는 말로표현해야 할 것 같다. 온전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 P252

제목처럼 들리지 않아서 붙이게 됐다. 한국어로는 ‘벌새‘로도 충분했다.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다. 이 작은 새는 꿀을 찾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은희의 여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은희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지만, 사랑받기 위해서 또 진정한 사랑을찾기 위해서 많은 곳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동물들이 가진 상징에 대한 책을 찾아 보았을 때 벌새에는 희망, 회복, 사랑 같은 좋은 상징들만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 붙이기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 P253

대부분 소녀들의 이야기는 하찮거나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당신은 이소녀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본다. 당신은 이 소녀의 모험과 주체성을마치, 그녀가 중세의 기사인 것처럼 진지하게 다뤘다. 그게 정말로 좋았다. 당신이 이 소녀의 이야기를 거대한 서사시로 재탄생시킨 거다!
- P254

AB 이 영화의 미덕이 거기 있다. 더 정리된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벌새〉는 ‘보이지 않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영화는 아주긴 시간 동안, 큰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게 그녀를 ‘본‘다. 당신이 담으려던 메시지와 형식이 아주 아름답게 융합한 거다.
- P258

BK 그런 얘기를 들으니 기쁘다. 이 영화를 그저 그런 귀여운 성장담이라고 생각하는 건 원치 않는다.
AB 성장영화라는 분류에는 나도 반대한다. 이 영화는 ‘인간됨Coming-of-Human‘에 관한 영화다.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다.
- P258

BK사람들은 항상 여자들을 서로 비교한다. 그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해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무튼….
- P259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 대해다시 생각하면서 내가 겪은 트라우마가 나 개인의 잘못이 아닌 남성우월주의 Machoism 와 가부장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과 명상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페미니스트 친구들과함께 가족사를 써 보기도 했고,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부모님의 모습과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따라하지만 대물림해서는 안 될행동들을 쓴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에 대해, 내가누구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많은 장점이 지금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을 그저 증오할 뿐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준 좋은 영향들에 대해깨달은 것이 가족에 대한 생각에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됐다. - P282

BK 맞는 말이다. 내 의도였다. 당신 작품 속 캐릭터들도 비슷하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복잡다단하다.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다.
AB 그게 핵심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어떤 것도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 P284

53 좋다. 알겠다. 사실 영화 안에서 ‘울음‘의 기능도 무척 흥미로웠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화 안에서 울었던 캐릭터들은 아빠와 오빠뿐인것 같다. 남성중심적인 사회는 여성들뿐 아니라 거기에 속한 구성원모두를 다치게 한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방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보여 줬다.
- P286

AB (곰곰이 생각하며) 삶 자체에 이미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할일은 그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리석 덩어리 안에 이미 조각이있다는 (미켈란젤로의) 표현과도 비슷하다. 창조가 아니다. 이야기는 그냥 거기에 있고, 나는 그저 이야기가 아닌 부분을 들어내면 되는 거다.
벌새>를 보면서 항상 좋아하던 히치콕의 말이 생각났다. "드라마란인생에서 재미없는 부분을 잘라 낸 것에 다름 아니다" 라는. 그런데 당신은 그 재미없는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2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서 밥을 먹는 장면 같은…. 당신은 그 순간들을 카메라에 그냥 담았다. 그게 정말 대단하다. - P298

AB 삶은 그저 계속된다. 그게 모든 예술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어려운 이유인 것 같다.
- P304

AB 지숙이 은희에게 부모님이 이혼할 것이라고 말하는 멋진 시퀀스가 있었다. 그 사건은 아주 빠르게 전개됐다. 그러고는 1994년 10월21일 이라는 타이틀 카드가 등장한다. 그다음에 이미 철거된 컨테이너촌이 나온다. 길고 긴 느린 페이스 끝에, 갑자기 모든 것이 ...
BK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AB그랬다. 아주 빨라졌다.
BK 맞다. 그게 서사의 중추이자 병원 시퀀스에서 이어지는 플롯 포인트였다. 사람들도 나라도 가족도 병들고,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통제불가능한 어떤 지점으로 향하는 거다. 그 끝에 다리가 무너진다.
- P306

그게 핵심이다. 그게 바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만들려는 이유다. 때로는 기이하게 보이는서로 다른 방식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여 주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서로 다른 이 사람들이 각자 가진 유별난 ‘다름‘이 다 괜 괜찮다고 느끼도록 말이다.
- P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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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분석가 라캉은 "사람들이서로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서로 간의 오해 때문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 P157

 정신분석가인 프로이트는 애도를 노동에 비유하며 ‘애도작업‘이라 표현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잊히는 게 아니라, 힘든 노동을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떼어내는 고통스러운작업을 해야 한다.
그의 말처럼 고통스러운 노동이 수반되는 것이 애도입니다.
저절로 사라지는 슬픔은 없으니까요. 상실을 직면하고 통곡하는것도 일종의 기억하는 방식이고 중요한 애도작업입니다.
- P162

애도의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고, 애도의 기간 또한 정해져있지 않습니다. - P162

슬픔을 표현하는데 서툴러 애초에 애도를 시작조차 못했거나 애도를 끝내지 못한 사람은 마음속 어딘가에 무거운 슬픔주머니를 매달고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을지는 모르나, 문득문득 찾아오는 우울과 슬픔에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힘들어도, 크게 울고, 더욱 기억하며, 떠나보내야 하는 이유죠.
- P168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상처를 떠나보내려면 ‘잊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기억‘해야 합니다. - P168

이별 후 힘들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사라짐의 흔적이 남아야 기억할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말이나 글로도 사라짐의 흔적을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대화를 하거나 일기나 편지처럼 글을 쓰는 것을 권해드렸지만 사실 어떤 방식이든 좋습니다. 빈 노트 한 권 들고 추억이 담긴 장소를 찾아다녀도 좋고, 낯선 여행지에서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거기서 문득 그리움이 밀려온다면 그 감정을 노트에 담고, 눈물이 흐르면마음껏 울고 오라고 권합니다. 기억하기 위함이라면 어떤 방식이든 도움이 될 겁니다.
- P169

심리적인 용서는, 내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게 목적입니다.
용서한다고 해서 반드시 상처 입힌 사람과 화해할 필요도, 가해자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음에 원한과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은, 가해자가 내 마음의 방에 매일 매순간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내 마음의 주인 자리를 가해자가 차지하고 있어, 나는 가해자를 평생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것이죠. 가장 건강한 복수는 내 마음의 방에 자리 잡고 있는 가해자를 끌어내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상처나 원한에 얽매이지 않고 내 삶을 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상처에 대한가장 멋진 복수이자, 나 스스로를 괴롭히던 지난날의 나 자신과용서하는 방법일 겁니다.
- P178

있는 사과만이 상대의 마음을 녹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사크할 상대의 반응을 너무 기대하지 않는 거 좋다는 겁니다.
마음의 상처가 큰 경우에는 어떠한 사과로도 해소되지 않을 수있슬니다. 상대에게 용서를 강요한다면 그것은 더이상 용서가 아닙니다.
- P180

나도 누군가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고 상대도 실수할 수 있는 불완전한 사람이란 걸 받아들인다면 용서는 조금 더 쉬워집니다.  - P180

20세기를 대프하는 소설가이자 실존주의 철학가인 강 돌사르트르의 존재와 무」라는 책에는 ‘우리는 자유롭도록 선고받았다‘라는 유명한 구절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선택의자유를 누리는 동시에 그 자유를 행사해야만 한다는 걸니다. 사르트르에게 선택의 가우는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고 거주였습니다. 내가 뭔가를 마음대로 선택한다는 게 가우로운 일 같지만, 나의 선택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고 그 결과 또한 은건히 자신이 책임겨야 합니다. 그게 두려운 것이즈, 선택 강애, 결경강애에는 이러한 ‘불안‘의 감정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떠한 사람이라는 건 고정된 게 아니라 내가 일평생을 살면서 계속선택하고 수정해야 하는 것인데, 모든 게 나의 선택에 달려 있고책임을 겨야 한다는 게 그만큼 무겁고 두렵게 느껴지는 겁니다.
- P186

선택의 결과가 좋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 매사에 완벽한 결정을 해야 한다는 강박이 점점 심해져 결국 선택의 갈림길에서 도망치고 마는 것이죠. 이런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세상에는 어떤 완벽한 선택도, 완벽한 결정도 없다는 걸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그토록 힘들게 했던 선택의 문제들이 사소한 문제였다는 걸, 후회를 남기지 않는 완벽한 선택이란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면 누구든 선택의 기로에서 다시는 도망치지 않을 겁니다.
- P189

과거에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이번에 또 최악의 선택을할 거라는 근거가 어디에 있나?
또다시 잘못된 선택을 한다는 게 항상 사실인가?
나는 충분히 객관적인가? 나는 이 일의 전체를 보고 있는가?
다른 사람이 똑같이 말한다면 나는 어떻게 볼까?

소크라테스식 문답법 - P190

 또 여행에필요한 기술은 갖고 떠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여행지에서 하나하나 갖게 되는데 내가 해냈다‘는 경험은 자존감과 자긍심을 높여주고 정서적인 행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 P196

그런데 "저는 여행을 해본 적이 없어서 마음먹기조차 어려운데 어떻게 여행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분이 있습니다. 어디로 여행을 떠나면 좋을까? 혼자 가면 외롭지 않을까 고민하는 분들을 위해 저만의 여행 방법 하나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저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 서점에 들릅니다. 거기서 그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의 시집을 하나 구입합니다. 가령 제주도에 가면 제주도에서 활동하는 이생진 시인의 「그리운 바다 성산포」와 같은 시집을 사는 거죠. 시집에는 그 지역의 어떤 지명이 나오곤 하는데요. 거길 한번 찾아가 보는 겁니다. ‘그리운 바다 성산포‘를 읽고 시에 등장하는 성산포를 상상하다 보면 낯선 여행지가 친밀해지고, 도착해서는 시인의 눈으로 풍경을 느끼며 함께 대화하며 여행하는 듯한 효과를 누릴 수도 있습니다. 거기다 특별한 기념품을 통해 여행 당시의 기억과 감정을 간직하고떠올리는 것처럼, 시 구절 하나를 가슴에 새기면 여행의 효과와여운을 오래도록 간직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내 말을 하고 바다는 제 말을 하고
술은 내가 마시는데 취하기는 바다가 취한다.
성산포에서는 바다가 술에 더 약하다.
- P198

여행은 본질적으로 낯선 것,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는 경험입니다.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이 성장함을 느끼죠. 낯선 것에 막연한 불안함을 느끼고 계신 분에게는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2014, 감독 빌 어거스트, 주연 제레미 아이언스)를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이 영화는 은퇴를 앞두고 평범하게 살던 남자가 어느폭우가 쏟아지던 날, 우연히 자살 시도를 하는 낯선 여자를 구한 후 직장으로 출근하는 대신 리스본으로 가는 열차를 타면서생애 최초의 일탈을 감행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에는 여행의 효과, 여행의 마법을 잘 표현해주는 대사 몇 구절이 나오는데요.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사실 인생을 결정하는 극적인 순간은 놀라울 정도로 사소하다.


어딘가로 떠날 때 자신을 향한 여행이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간다.
- P198

다벤야민이 세상을 향해 수많은 물음표를 던지고 그토록 빼어난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또한 자신만의 여행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길을 잃어야만‘, ‘길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길을 잃는 연습, 그것이 바로 여행이라고 말이죠.


낯선 도시를 여행할 때는 길을 잃는 훈련이 필요하다. 낯선 도시에서는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이 헤매는 훈련이 필요하다. 우연히 길을 잃는 게 아니라 길을 잃는 훈련이 필요한 것이다. 마치 숲에서 길을 잃듯 도시를 헤매는 기술을 습득한 사람에게만 낯선 도시는 자신의 진짜 얼굴을 드러낸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야말로 낯선 장소에서만 가능한 색다른 경험이며, 그것을 통해 애초에 의도하지 않았던 많은 사물과 역사,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진짜 삶을 만날 수 있기때문이다.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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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말하지만제가 느끼기엔 모두 사랑에, 감정에, 표현에, 거리두기에조금씩 서툰 분들이었습니다.
- P6

번아웃 증후군은 학생, 주부, 프리랜서 등 직종에 상관없이나타날 수 있는데, 이런 분들의 공통점은 일을 자신의 한계보다더 많이 한다는 데 있습니다.
- P24

사실 번아웃 증후군의 배경에는 ‘성과‘를 우선으로 하는 사회 분위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피로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독일에서 철학 하는 한병철 씨의 『피로사회』라는 책에는 성과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완전히 타버릴 때까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말이죠. 요즘 서점가에서 잘 팔리는 책 중에는 ‘자기개발서나
‘성공을 위한 시간관리법‘에 대한 게 많습니다. 좋게 보면 가능성을 끌어내는 자기 활용방법‘을 제시하는 거지만, 냉정하게 보면 오히려 그런 책들이 성과주의 사회에서 우리 모두를 소진시키고 탈진에 이르도록 부추기고 있는 것만 같은 생각도 듭니다.
- P5

자기 자신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끝없는 주문과 강박 속에서 자발적 노동에 시달리다 탈진에 이릅니다. 사람의 의지력이란 게 화수분처럼 끝도 없이 솟아나는 게 아닙니다. 정신력이란것도 고갈되고 소진됩니다. 문제는 다른 이의 강요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신을 혹사시키기 때문에 본인이 가해자인 동시에피해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 P26

자신이 지어낸 거짓말을 자신 스스로도 철석같이 믿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의 거짓말을 현실과 혼동해 진실로 믿고 거짓말을 반복하는 증상을 ‘공상 허언증‘ 또는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경우는 병적인 거짓말에 속합니다.
- P31

보통 리플리 증후군은 학벌이나 경제력이란 현실의 벽에 부딪혀 열등감에 시달리다가, 실제의 내가 아닌 ‘되고 싶은 나를 반영한 반복적인 거짓말을 통해 허구의 세계를 진실로 믿게 됩니다. 다시 말해 리플리 증후군은 집안, 학벌이나 스펙 등을 중시하는 사회로 인해, 자신 스스로마저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 사회적 질병이 아닐까 싶습니다.
- P32

사람에게는 누구나 약점이나 부정적인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서툰 사람은 그런 약점을 인정하고 싶지도, 남에게 들키고 싶지도 않아 그것들이 마치 내 속에 전혀 없는 것처럼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약함을 알게 되는 순간이 있는데요. 바로 상대에게서 발견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나의 낮은 자존감으로 비롯된 열등감이나 콤플렉스를 타인에게서 발견할 때 미움, 분노 등의 감정이 싹트는 것을 ‘투사현상‘이라고 합니다. 칼 구스타프 융이란 분석심리학자가 소개한개념이죠.  - P33

라캉이란 정신분석학자는 "사랑은 나에게 결핍된 빈 구멍을 메워줄 것처럼 느껴지는 상대를 만날 때 생기는환상이다"고 했죠. 특히 저는 프랑스 사상가인 몽테뉴가 말한사랑의 정의가 와닿는데요. 사랑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누군가 나에게, 왜 내가 그를 사랑했는지를 묻는다면
"그였기 때문이고 나였기 때문이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
- P41

사랑에 서툰 사람은 뜨겁고 열정적인 것만을 사랑으로 생각해 연애 관계를 더 지속할지 말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불꽃놀이처럼 파바박 튀는 감정만이 사랑은 아닙니다. 촛불처럼 의지가 되는 사랑, 은근하게 따뜻함을 주는 아랫목처럼 편안한 사랑도 있죠. 서로 사랑하면서 힘든 기간을 같이 통과한 추억이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로 기울이는 노력, 안정감 같은 것도 사랑의 다른 모습일 수 있습니다.  - P43

실은 상대를 잊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 시절의 나를 잊지 못하는 거죠. 순수하고 뜨겁게 사랑했던 나 자신, 상대에게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던그때의 나에 대한 미련인 겁니다. 이러한 분들이 다시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기 위해선, 상대를 떠나보내려 애쓰는 것보다 그 시절 자신의 모습이 담긴 기억 앨범을 먼저 내려놓아야 합니다.
- P47

건강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내 마음속 구멍에 끼워 맞추려 하기보다, 상대방과 사랑하며 쌓아가는 유대감을 통해 마음 자체를 튼튼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
- P48

아닐까 싶습니다. 행복하지만 불행한, 기쁘지만 슬픈 것처럼 말이죠. 김중식 시인의 작품 ‘모과‘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사랑이 고통일지라도 우리가 고통을 사랑하는 까닭은
고통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감내하는 까닭은
몸이 말라비틀어지고 영혼이 꺼멓게 탈진할수록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지속적인 냄새를 피우기 때문이다.
꽃피우지 못하는 모과가
꽃보다 집요한 냄새를 피우기까지
우리의 사랑은 의지이다.
태풍이 불어와도 떨어지지 않는 모과, 가느다란 가지 끝이라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의지는 사랑이다. - P52

심리학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효과‘를 인지부조화 때문으로 봅니다. 자신이 선택한 사랑을 누군가의 반대로 포기하게 된다면 자기 자신이 잘못된 결정을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옳았다는걸 증명하는 방향으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그래서 반대에 직면한 연인들은 뜨거운 사랑으로서 자신들의 옳음을 입증하려니다. 또 주변에서 자신의 결정이 잘못되었다고 할 때 분노의감정이 생겨나는데요. 그런 흥분된 감정을 상대방을 사랑하는정도의 증거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결국 반대가 격렬할수록 감정이 격해지고, 사랑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도 격렬해지게 됩니다.
- P53

연애를 안 해서 외로운 게 아니라외롭기 때문에 연애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연애를 해도 근원적인 외로움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습니다.
- P65

은퇴를 경험한 분 중엔 "내가 왕년에 누군지 알아? 내가예전에 잘 나갔을 땐 말이야"를 외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건그때의 정체성을 여전히 잃어버리고 싫지 않은 마음과, 잃어버린 현실에 대한 울분과 분노 등이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 P69

은퇴 후 밀려오는 외로움, 거기서 파생된 슬픔이나 분노, 허무한 감정을 느끼는 현상을 ‘은퇴 증후군‘이라고 합니다. 이 증후군은 독특하게도 은퇴 당사자와 배우자에게 다른 이유와 양상으로 동시에 찾아옵니다.
- P69

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죠. 아내와 자녀들은 외로움을 처리하는자신들만의 방법을 구축했지만, 남편은 세상 그 누구보다 외로움이란 감정에 서툰 사람이 된 것입니다.
- P71

또한 노후를 위해 경제적인 준비를 하는 것처럼 ‘좋은 부부관계‘를 위한 ‘관계 재테크‘도 해야 합니다. 평소 대화가 많고 함께 하는 활동이 많은 부부일수록 은퇴 후에도 행복한 관계를 지속할 확률이 높습니다.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공동의 취미나종교활동, 운동 같은 걸 은퇴 전에 미리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방법이 될 겁니다. 누군가와 외로움을 공유하는데도 일종의 마일리지가 필요하답니다.
- P72

그는 ‘외로움‘과 ‘고독‘이 같은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르다고강조하더군요. 영어로 외로움은 ‘Loneliness‘, 고독은 ‘Solitude‘
인데 모두 혼자라는 의미이지만 외로움은 상대방을 전제로 한감정이고, 고독은 상대와 상관없이 오롯이 내가 나를 마주한 감정이라고 했습니다.
- P73

그러다 독일의 종교철학자 폴 틸리히를 알게 되었는데요. 그는 1952년 저서 「존재의 용기」에서 고독을 외로움과 구별해 정의해두었더군요. 외로움이 혼자 있는 고통을 표현하기위한 말이라면, 고독이란 혼자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한 말이라고요. 즉 외로움이 누군가 곁에 없어서 ‘불안한 상태라면,
고독은 상대가 없어도 혼자 있는 게 ‘자유로운‘ 상태라는 것이죠. 그런 점에서 고독은 잘 다스리면 내적으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지금 당신은 외로운가요? 아니면 고독한가요?
어쩌면 외로운 상태라 느꼈던 감정을 고독의 상태인 것으로 관점을 바꿔 본다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자유를 만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재밌는 생각을 해봅니다.
- P73

외로움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맞닥뜨릴 때마다매번 낯선 느낌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런 감정을 다루는 데조금 도움을 드린다면, 억지로 기분을 좋게 만드는 것보다 차라리 우울한 노래를 듣거나 슬픈 영화를 보며 외로운 기분을 더깊이 느껴보는 겁니다. 우울한 문화예술 콘텐츠에 공감하면 역설적으로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기도 합니다. 심리적으로 ‘인생별거 있나, 다 거기서 거기지‘라는 걸 느끼게 해준다는 거죠. - P79

화병은 전 세계 정신과 의사들이 진단기준으로 삼는 책에도 실려 있는 한국특유의 정신증후군입니다. 화라는 감정은 표현하지 않으면 자신이 피해자라는 생각에 상대를 원망하게 됩니다. 원망은 증오가 되어 더욱 공격적인 감정을 낳을 위험이 있습니다.
- P83

많은 사람들은 상대가 나를 사랑해주고 인정해주고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대가 깨질 때 순식간에 화라는 감정이 만들어집니다. 화라는 감정이 생겨날 수 있지만 문제는 화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고 원망하며 분노에 가까운 화를 표출한다.
는 겁니다. ‘나는 억울한 피해자고 모든 게 너 때문이야‘와 같은논리가 분노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고방식입니다.
- P87

특정 말이나 상황, 행동‘에 심한 분노 반응을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분의 무의식에는 아직 해소되지 않은 화가오랫동안 자리 갑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을 ‘묵은화‘라고도 부르는데요. 마음의 묵은 화나 상처, 울분은 도화선역할을 해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쉽게 분노라는 불이 붙습니다.
- P87

그런데 화를 습관적으로 내게되면 ‘분노 중독‘이란 새로운 노선이 만들어집니다. 분노 중독노선이 생겨나면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릴 때 브레이크 역할을 해주는 전두엽을 거치지 않게 되어 그 부분이 녹슬게 됩니다. 전두엽은 그렇게 화낼 일 아니잖아, 차분히 다시 생각해봐‘ 처럼이성적인 판단과 화의 조절을 도와주는 부분인데 여기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죠. 뿐만 아니라 화를 낼 상황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감지 장치가 아주 민감해져서 사소한 자극에도 쉽게 폭발하는 성격으로 잠전 변화합니다. - P88

그리고 만약 나 자신이 분노를 위장된 형태로 표출하고 있다면 그 내면의 이유 또한 내밀히 들여다보아야 할 겁니다.
- P93

"너 나 무시해!"
이 말은 자신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나오는 분노 반응입니다. 여기에 ‘왜 나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느냐, 나 아직 살아있어, 내 가치를 인정해줘‘라는 의미가 내포되고 있죠. 누군가나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존재감이 희박해진다는 두려움을 느낄 때 이 두려움은 곧장 분노로 바뀝니다.  - P94

이 세상의 모든 ‘갑질‘에는 심리적 메커니즘이 존재합니다.
동력은 열등감입니다. 나를 알아달라는 허약한 자존감이 숨어있죠. 그런데 이러한 열등감은 아무 데서나 폭발하지 않습니다. 분풀이할 대상이 있어야 하고, 함부로 화풀이를 해도 뒤탈이 없을 거라는 판단이 섰을 때 분노를 표출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한두 번이 아니라 수없이 되풀이해온 경험에서 비롯됩니다. ‘화풀이를 해도 먹히네? 분풀이 대상으로 삼아도 전혀 뒤탈이 없네?‘ 그런 원리와 경험이 축적되면서 갑질이 일상화되는것이죠.
- P95

상대가 무차별적으로 화를 내고 막말을 하면 당하는 사람은 얼어붙어 버립니다. 인간이 위험에 처했을 때 맞서 싸우거나도망가는 방어기제가 있는데, 이런 방법이 실패할 때 마지막으로 사용하는 방어기제가 얼어붙기 입니다. - P95

상대의 화가 누그러지지 않고 화를 내는 자체에 목적이 있을 때에는 상대를 진정시키기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차라리 ‘공감 수도꼭지‘를 잠가 버리는 게 현명합니다. 공감의 정서가 흐르는 수도꼭지를 잠근다는 건 심리적인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걸 뜻합니다. - P96

화가 나는 감정과 화를 표출하는 행동은 엄연히 다르다.
흔히 사람들은 화가 난 감정이 아니라, 말이나 행동으로 드출되는 화난 행동을 화로 착각하곤 합니다. 그래서 화 자체가나쁘고 위험하고 부정적인 것으로 오해하는 것이죠. 화가 나는감정 자체는 정당하고 자연스러운 겁니다. 아, 내가 화가 났구나‘라고 감정을 깨닫고 수용하는 것만으로도 감정 조절에 절반은 성공한 겁니다. - P98

이 방법은 과학적으로도 효과가 증명되었는데, 화가 나면 방출되는 분노 호르몬은 15초면 정점을 찍고 파도가 부서지는 것처럼 무너지고 15분이 경과되면 거의 사라집니다. 분노의현장에서 잠시 벗어나 심호흡을 하는 것만으로도 화를 가라앉히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 P100

저는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가아이가 화를 낼 수 있게 해주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분노 조절을 어려워하는 청소년과 상담해보면 대부분 부모 중 한쪽이 감정 조절에 매우 서툴거나, 아이의 감정을 부모가 지나치게 억누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신이 아이의 분노를 컨트롤하지 못하는 부모가 될까 봐, 또는 그런 부모로 남에게 보일까 봐두려워 아이의 감정 표현을 막고 억누르는데요. 그럴 때 아이는자신의 존재 자체를 거부당했다고 느끼게 됩니다. 아이는 자신이 분노를 드러냈기 때문에 사랑받지 못한다 여기고, 화난 감정을 꾹꾹 눌러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잘못 해석하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며 성장한 아이는 나중에 커서도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거나 슬픔, 기쁨, 화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P100

아이가 화를 내면 ‘어라 부모에게 감히 도전장을 던져? 그래 누가 이기는지 해보자‘는 식으로 반응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부모의 이런 감정적 반응은 아이들의 반항심만 더 키울 뿐입니다.
서툴게 화를 표출하는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아이 스스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을 돌아보며 어떤 생각에 도달하게 하는 것, 그것을 부모와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자녀 - P100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상대방 말이 다 맞긴 한데 듣고나면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고 불쾌했던 경험 말이죠. 사람의 대화는 90%가 비언어적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내용만큼 형식,
그러니까 표정이나 억양, 제스처도 중요한 것이죠. 그래서 화가난 감정을 표현할 때는 말뿐만 아니라 목소리나 표정, 태도에도주의를 해야 합니다.  - P101

화가 날 때 나 스스로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상대에게도 "나는 화가 나있습니다"라는 걸 전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구체적으로 나를 주어로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데요. ‘너‘를 주어로 하게 되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난하는 말투가 되기쉽습니다.  - P102

트라우마의 문제는 끔찍한 사건을 경험한 시점, 절대적인무기력 상태가 현재에도 수시로 기습해 상처로부터 떠날 수 없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끔찍한 사고는 끝났지만 마음에 남은 상처가 당시의 기억을 계속 상기 시켜, 언제 나을지 모르는 극심한 통증을 안고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게 되는 것이죠.
- P107

악몽에는 최악의 장면이 빠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자에게 공격당하는 꿈을 꾸더라도 다쳐 피를흘릴 수는 있어도 사자에게 완전히 잡아먹히진 않습니다. 아무리 무시무시한 악몽을 꾸더라도 최악의 장면 직전에 멈추게 되어 있습니다. 악몽을 반복적으로 꾸는 건 악몽을 통해 끔찍한트라우마를 좀 더 순화된 불안으로 바꾸어서 견디게끔 도와주는 우리 정신의 노력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악몽이 스펀지 같은완충작용을 하는 것이죠. 트라우마의 무자비한 기습에 대비해,
최악의 끔찍한 장면보다는 완화된 형태의 악몽을 반복적으로상영하며 우리 정신이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도록 무의식이 작용하는 겁니다.
- P112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트라우마의 원인을 재앙 수준의 금찍한 사건으로 국한시키곤 합니다. 그런데 대다수 여성과 아이들이 겪는 트라우마는 부모나 연인 등 친밀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발생합니다. 특히 아동학대의 경우, 아이 스스로가 겪는극심한 공포와 고통이 자신을 돌보는 사람, 자신을 사랑해 주어야 할 사람들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회복이 무척 힘듭니다.
- P121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에게 집은 전쟁터나 다름없습니다.
흔히 아이들은 회복력이 강하다고 말하지만 문제는 정신만은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어릴 때 경험한 학대는 아이의 뇌 발달에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주며, 특히 두 살 전에 만들어진트라우마는 평생의 흉터로 남습니다. 보호자이자 애착관계에있는 양육자의 학대와 방치는 교통사고와 같은 후유증보다 훨씬 더 크고 일생에 걸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칩니다.
- P122

아이들이 건강하지 않으면 결코 미래는 없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아동학대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어야 합니다. 만약 아동학대가 사라지면 우리나라 성인 우울증의 절반 이상이줄어들 것이고, 성인 알코올 중독은 3분의 2까지 줄어들 것입니다. 자살이나 가정폭력은 4분의 3까지 감소할 수 있습니다.  - P123

한 콘텐츠에서 제시해줍니다. 지하철이 오는 시간, 버스가 떠나는 시간을 분 단위로 알려주니 일상이 물 흐르듯 매끄럽게 흘러갑니다. 하지만 이러한 현실에 익숙해져 있다 보면 사소한 관계변화만으로도, 기차가 연착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만으로도, 일상의 실밥이 툭 터지는 것만으로도 정신적 충격을 느끼며 트라우마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분명하다, 답이 있다, 안전하다 믿게끔 만드는 사회가 우리를 트라우마로부터 더욱 연약하게 만드는 것이죠.
- P126

트라우마가 근본적으로 해소되려면 과거의 위험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머리가 아니라 몸이 깨달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 P127

문제는 우리가 감정이나 생각을 말로 바꿀 때 뇌에 저장된단어를 끄집어내는데요. 욕을 습관처럼 하다 보면 단어를 고르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욕이 나오게 되어 버립니다. 사소한 자극에도 곧바로 욕이 우선 선택되는 것이죠.
- P133

문제는 욕을 하면 할수록 아이의 두뇌가 손상을 받는다는겁니다. 공격적이고 충동적이며, 산만해지는 것이죠.  - P134

아이가 욕을 하면 대개는 "너 방금 뭐라고 했어?", "어떻게욕을 할 수 있어?"라는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는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니?"라고 먼저 물어야 합니다. 욕하는 것 자체를 야단치는 건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듣고 나서 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려주는 것이 좋습니다.
- P135

이쯤 되면 욕 자체보다는, 욕의 뒤에 숨어 타인을 공격하는나약함, 욕을 통해 자신의 모든 감정을 뭉뚱그려 표현하는 미숙함을 극복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욕을 습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의언어로 바꿔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나쁘다.
화난다, 속상하다, 짜증 난다, 무안하다 등으로 말이죠. - P136

조언에 서툰 사람이라면 ‘질문‘이 유용하단 걸 잊지 말아야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게 있는데요. 바로 조언에도 ‘때‘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리상담학에서 조언은 가장게으른 대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장 쉽게 꺼낼 수 있는 말이자, 대화의 문을 닫을 수 있는 말이 바로 조언이기 때문이죠.
조언은 하나의 결론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거기서 더이상 할 말이 없어집니다. 때문에 조언은 대화의 가장 마지막으로 미룰 수있을 때까지 미뤄야 합니다.
- P149

미래까지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심리학이나 언어분석연구에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 중 하나가 말을 바꾸면 생각이나 마음에도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겁니다. 꾸준히 운동하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습니다‘와 ‘꾸준히 운동하지 않으면 병들어일찍 사망할 수 있습니다‘는 사실 비슷한 내용이지만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릅니다. - P151

저는 상담을 할 때 환자분들이 하는 말을 이어받아서 들려주는 편인데요. 부정어일 경우 긍정적인 말로 고쳐서 들려 드립니다.

"제가 말주변이 없어서" →, "말씀하실 때 신중하시네요."
"제가 감정 기복이 심해서" → "감수성이 풍부하신가 봐요"
"제가 꼼꼼하지 못해서", "너그러운 편이군요"

이렇게 의식적으로 긍정의 표현으로 바꿔드리는가 하면,
상대의 이야기에서 긍정적인 포인트를 찾아 요약해 되돌려주기도 합니다. 가령 "요즘 너무 힘들어요,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해도 계속 실패만 해요"라고 말한다면 "실패 속에서도 힘들지만계속 노력하고 계시네요"라고 말씀드리는 것이죠. 사소해 보이지만 긍정의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자신의 감정에서 긍정적인면을 찾아 표현하다 보면 대화도, 일상도, 한결 수월하고 편안하게 느껴질 겁니다.
- P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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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수많은 나라에서 이룬 승리의 총합이 결국은 인생의 패배라는것인가? 로벤히엘름 장군은 젊은 로벤히 엘름 중위의 야망을 성취했다. 젊은 그의 야심을 다 채우고도 남을 만큼 성공했다. 세상을 다 얻었다고 해도지나친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당당하고 세상 물정에 밝은 노인이 된그가 젊은 시절의 순진했던 자신을 찾고 있는 것이다. 그는 젊은 자신에게물었다, 자기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엄숙하게, 아니 비통해하며 물었다. 어디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그는 무언가를 잃었던 것이다.
- P54

말수가 적은 노인들은 말문이 틔었고, 수년간 거의 듣지 못했던 귀가 열렸다. 시간은 영원 속으로 녹아들었다. 자정이 훨씬 지난 시각, 창문이 황금처럼 빛났고 아름다운노래가 바깥의 겨울 공기 속으로 흘러나갔다.
- P67

"마님들을 위해서라고요? 아니에요. 저를 위해서였어요."
바베트는 도마에서 일어나 자매 앞에 섰다.
"저는 위대한 예술가예요!"
바베트는 잠시 후 한 번 더 말했다. "위대한 예술가라고요, 마님."
부엌에는 다시 깊은 침묵이 흘렀다.
마르티네가 말했다. "그러면 이제 평생 가난하게 살려고, 바베트?"
"가난하다고요?" 바베트는 혼자만 아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아니에요,
전 절대로 가난하지 않아요. 저는 위대한 예술가라니까요.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아요, 마님. 예술가들에겐 다른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것이 있어요."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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