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희가끔 그런 생각한다.
내가 자살을 하는 거야.
오빠 새끼가 괴롭혀서 힘들다고 유서 남기고…근데, 그러면 내가 김대훈 새끼가 죄책감 느끼는 걸 못 보잖아.
그래서 죽고 나서 한 하루만 유령으로 있는 거야.
그 새끼 막 울고 아빠한테 혼나.
그럼 난 그걸 천장에서 다 내려다보는 상상을 한다?
엄마, 아빠 다 울고… 그러면 막 상상만 해도 후련해.
- P59

칠판에 문장들이 완성된다.

얼굴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가득하지만,
마음을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영지]

상식만천하 지심능기인,
여러분 아는 사람들 중,
속마음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 P96

S#100, 실외, 학교 앞 현수막 길 - 밤은희와 영지, 은희 등굣길 근처의 허름한 컨테이너 집들을 지난다. 컨테이너 집에서 불빛이 새어 나온다.

은희) 선생님. 여기 사는 사람들, 왜 현수막 거는 거예요?
영지) 집을 안 뺏기려고 하는 거야.
은희) 왜 남의 집을 뺏어요?
영지, 뭐라고 대답할지 몰라 난감하다.
영지)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 많지?
은희) 불쌍해요. 집도 추울 것 같은데…
영지)…그래도 …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마.
은희) 네?
영지) 함부로 동정할 수는 없어. 알 수 없잖아. - P133

영지) 선생님은 자기가 싫어진 적 있으세요?

두 여자의 눈 마주침.
이 아이에게 무엇을 말할까. 스산한 얼굴의 영지, 그 침묵을 힘겹게깨고 영지가 말한다.

영지) ...응.많이. 아주 많이. 나도 똑같아.

은희, 영지의 말에 놀라서 묻는다.
은희) 선생님은, 그렇게 좋은 대학에 다니는데도요?

영지, 아이의 그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영지) … 자기를 좋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

그 말에 마음이 움직이는 은희.

영지) 나는 내가 싫어질 때 그냥 그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해.
이런 마음들이 있구나, 나는 지금 나를 사랑할 수 없구나, 하고…은희야, 힘들고 우울할 땐,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아도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 P135

말투가 ‘불손하다‘라는 이유로 내가 남자 교사에게 맞아서 기절했을 때, 좋아하는 친구가 갑자기 나를 차갑게 대했을 때, 술을 마시고들어온 아빠가 자신의 분노를 아무 죄도 없는 내게 쏟아 냈을 때, 교실 창가에 앉아서 내가 앞으로도 영영 사랑받을 수 있으리라고 예감했을 때, 어린 나의 고통은 어른이 된 나의 고통에 비해 조금도 사소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생생했다.
- P207

어른이 된 나는 이제 안다. 고통은 파도처럼 마음에 들이 쳤다가 빠져나가기를 반복한다. 쉽 없이 마음으로 들어와서 자국을 내고, 다시물러나는 것처럼 보였다가도 돌아온다. 나의 잘못 때문인 경우도 있지만,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노력했는데도, 잘해 보려고 했는데도 겪어야 하는 상처들이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상처받으면서도 내가 나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게는 어느 정도의 힘이 있고, 내 힘으로만 감당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도 받을수 있고,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낸다면 누군가는 나를 도와주리라는믿음도 있다. 그러나 은희 시절의 나는 다르게 생각했다. 상처는 회복되지 않을 것만 같았고, 내가 누구에게도 맞설 수 없을 정도로 약하게느껴졌으며, 나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곧 나 자신의 가치로 여겨져서 작은 일들에도 쉽게 다쳤다. 그건 사소한 일들이 아니었다.
- P208

Love yourself.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이 범람하는 세상이지만, 자신에 대한 태도는 많은 경우 자신을 대했던 주변 사람들이나 세상의 태도를 닮기 마련이다. 많이 아팠니? 얼마나 억울하고 힘들었니? 하고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어른들이 있었다면 은희 또한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레 알아 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은희의 목소리는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목소리가 지워진 사람, 공감받을 수 없는 사람이 자신을 존중하고 심지어 사랑하기까지할 수 있을까. 아니면 자신은 함부로 다루어져도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게 될까.
- P208

어른들은 은희에게 말한다. 착하게 행동해, 날라리가 되지 마. 나는남자아이에게 ‘착함‘이라는 가치가 여자아이만큼 요구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이스께끼‘라는 이름으로, 브라자 튕기기‘라는 이름으로 여자아이를 괴롭히는 남자아이에게 베풀어졌던 숱한 ‘관용‘이 기억날 뿐이다. - P209

은희와 내가 요구받았던 착함은 수동성이었던 것 같다. 누가 널 때려도, 부당하게 대해도, 맞서지도 싸우지도 말고 그저 참고 삭이고 너의 감정이나 생각을 거칠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가 ‘착함‘
이라는 구울로 여자아이들에게 강요되었다. 너 참 예쁘다. 너 참 착하다. 여자아이를 향한 이런 칭찬은 결국 여자아이를 수동적인 대상으로 고정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넌 네 의견을 잘 표현하는구나, 부당한 일에 맞서 싸울 줄 아는 용기가 있구나, 네 감정에 솔직해서 좋다.
같은 칭찬을 받아 본 여자아이가 몇이나 될까.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예쁘다. 착하다 같은 말 대신 우리 자신 그대로 수용되는 경험을 하고, 우리의 개성을 그대로 인정받았다면 어른이 된 이후의 삶리 얼마나 달라졌을까. - P209

왔다. 아무도 제대로 받아 주지 않는 감정은 언제나 추하게 느껴졌으니까. 그럴 때 영지 선생님 같은 누군가가 내게 다가와 은희를 바라보듯 나를 그저 잠시라도 바라봐 주었다면, 내 이름을 그렇게 다정하게불러 주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영원히 잊지 못했을 것이다.
- P210

고통은 언제 고통이 되나. 누군가의 시선으로, 공감으로 고통은 고통이 된다.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했는데도 싸우지 좀 마‘라는 말을들어야 할 때, 은희의 고통은 고통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철없는 칭얼거림이 된다. ‘싸우지 좀 마라는 말에는 ‘오빠라면 여동생을 때릴 수있다‘라는 승인이, 여자애는 남자가 때려도 참아야 한다‘ 라는 주문이 들어있다. - P210

이런 사회에서 자란 많은 여성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의 진위를 의심한다. 아파도 자신이 아픈 것이 맞는지 검열하고, 분명히 부당한 일을 당해도 자신이 예민해서‘가 아닌지 확인하고 확인한다. 여성의 고통을 고통이라고 언어화하지 않는 상황에서 고통받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이해하기도 어려운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영지 선생님의 눈빛을 통해서 은희의 고통은 비로소 고통으로 이해받는다. - P210

영지 선생님이 자기 자신이 싫었던 때가 아주 많았다고 말하는 순간, 은희는 진심 어린 공감을 받게 된다. 사람은 자신을 싫어할 수 있으며, 그건 단죄하거나 혐오할 일이 아니라고, 그건 그저 자연스러운마음일 뿐이라고, 그리고 그래도 된다고, 진심 어린 공감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 따져 묻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함께 느껴 주는 태도는아픈 사람을 자신만의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한다. 마음은 단죄의 대상이 아니다. 비록 그늘지고 아픈 마음이더라도 그 마음을 박해할 필요도, 부정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되지 않는데 억지로 자신을 사랑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된다.
- P212

은희의 시기를 살며 나는 어떤 말들을 들었나. 바르게 살아라, 좋은대하에 가라, 어른들 말씀 잘 들어라, 단정해라, 몸 간수 잘해라......
불안과 두려움에 두 발을 딛고 선 나의 삶은 언제나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있었다. 지금은 미래에 투자하기 위한 자원이었고, 현재의 고통은 부정되거나 사소한 일로 취급되었다. "노래방 대신 서울대 가자"
라는 영화 속 담임의 말을 비웃을 수만은 없었던 건, 내게도 은희의시절이 비인간성을 강요받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 P212

한국 사회에는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가 있다. 상처받은 사람이 상처를 극복‘하고 강해지는 서사를 환영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상처는 언제나 사람에게 좋은가. 사람으로 살면서 받을 수밖에 없는 상처가 있겠지만, 받지 않아도 될 상처는 최대한 받지 않는 편이 더 좋지 않나, 상처를 미화하는 문화는 가해자에게 언제나 얼마간의 정당성을 주는 것 같다. 내가 너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정말 그런가. 인간은 상처가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만 성장한다. 사랑은 상처가 상처로만 머물게 하지 낞고, 인간을 상처 속에 매몰되어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무감한 사람으로 변하도록 두지 않는다. - P213

집합적 몽상의 질서 안에서 우리는 꿈을 누군가 침탈할까,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나만 실패할까 불안하고, 그 꿈이 내 인생을 전혀 설명할 수 없어서, 그 꿈 이외의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우울하다. 이 감정들의 에너지는 때로 직접적인 폭력으로 전환되어 가장 약한 곳에 위치한 은희에게 도달한다. 불안은 무자비한 폭력으로 전환되고, 우울은 무기력으로 이어진다. - P230

이런 검에서 영지는 사실상 은희가 처음으로 만난 의미 있는 타자‘
라고 말할 수 있다. 모두가 동일한 꿈의 질서에서 살아가는 공간에서은희는 지숙을 제외하면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지 못하지만 그들은모두 질서에 복무하다 잠시 일탈하여 은희를 만나고는, 다시 사라질 뿐이다), 영지는 질서 바깥에서 은희와 접속하고, 이 질서의 외부를 생각하도록격려한다. 세상에는 질서의 외부로 밀려나 사는 집조차 빼앗기는 타자들이 있지만 그들을 함부로 동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같은 질서 안에서 정상적‘으로 사는 듯 보이지만 모든 걸 걸고 맞서야 하는 내부의 ‘타자‘ (폭력적인 오빠)도 있다는 것을, 은희에게 알려 준다.
- P231

우리가 타자를 진심으로 염려하는 순간 그 타자는 나의 일부와 연결될 것인데, 그에게서 언젠가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의 모습을 발견하면 우리는 그의 모습을 미래의 나에게 투영한다. 그 미래가 도래하여현재가 되면, 이제 우리는 과거의 나를 찾아간다. 기억 속의 바로 그타자, 영지‘의 모습으로 과거의 시간을 방문해 어린 나(은희)를 만나고, 영지의 눈과 손을 빌려 자신의 과거를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꿈에 복무해야 할지 우리중 누구도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며 삶이 이어지는 동안 우리는 이렇게 타인을 통해 미래의 자신을 형성하고, 과거의 자신을 돌보면서, 여러 사람의 존재를 품고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 갈 것이다.
- P234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 앞에서 애도는 불가능했다. 사람들은 불안하고 우울하다. 집단의 꿈과 질서로부터 독립한개인이면서, 타인을 쉽게 동정하지 않으며, 작고 약한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고, 절대로 부당한 것에는 맞서라고 용기를 주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이 존재해야만 우리는 그 사람의 존재를 통해 미래의 우리를 꿈꾸고, 과거의 우리를 돌보는 일이가능할 것이다.
- P235

나는 지아 장커 감독의 〈스틸 라이프》(2007)가 1994년을 배경으로 하는 벌새〉와 현재를 연결한다고 생각한다.
두 작품 모두 글로컬glocal 자본주의의 전조가 이미 로컬에서 실현되고있음을 잘 보여 준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화로 노동의 종말이 시작되던 무렵, 지구 한편에서는 금융 유통 자본주의의질주가 시작되고 한국과 중국에서는 개발독재(‘건설‘)가 낳은 비극이본격적으로 가시화한다. 공간의 파괴 자체가 스틸 라이프〉와 〈벌새〉의 주제다.  - P239

이 영화를 보면서 다양한 가족 영화들이 생각났다. 임권택의 걸작 <길소뜸> (1986) 부터 도형일기(日記) (1999), <가족의 탄생>(2006).
똥파리》(2008), 〈박쥐〉(2009), 〈반두비〉(2009), 〈비밀은 없다〉(2016),
<우리들>(2016) 까지 .
위에 나열한 가족 소재 영화들은 대개 강렬하다. 계급의식은 가족에 대한 책임과 사랑을 간단히 제끼며, 남성은 여성과 아이를 때리고, 아이들은 방치되어 있다. 근대 가족은 인류가 발명한 가장 폭력적인 제도다. 여성은 전쟁보다 배우자에 의한 살해와 출산 중 사망으로 더 많이 죽었다. 그럼에도 가족 내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미투"가 어려운데, 이는 가족이 가부장제의 매트릭스matrix, 母型이기때문이다.
- P240

대신에 〈벌새〉는 ‘쎄‘지 않지만 일상에 스며든 폭력을 묘사한다. "오빠가 때렸어요"라는 딸의 호소에, 부모는 "싸우지 말라"며 가해자와 피해자를 평등하게 취급한다.  - P241

한국 사회에서 가족 구성원들의 관계는 대단히 도구적이다. 모든 사회복지 비용을 여성의 가정 내성역할로 떠넘기고, 학자와 관료 들은 이를 "한국형 사회복지"라고찬양한다. 한국의 가족 문화는 부부 중심이 아니다. - P241

두 모녀의 상실감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인간의 생로병사에 따른 불가피한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자본주의에 편입되기를 갈망하는 한국 사회는 오로지 재생산을 위한 ‘생‘에만 집착하고 ‘노병사老病死‘는 무시한다. 건강과 젊음, 동안만이 최고의 가치가 된 사회에서 이를 실천practice 하지 못한 이들은 우울하다. 상실과 외로움은 인간의 조건일지 모르지만, 우울과 자살은 그렇지 않다. 뻔뻔스러움의 시대에, 우울은 윤리적 능력이다. 본인의 우울을 타인에게 폭력으로 전가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 P244

앨리슨 벡델) 영화를 보면서도 줄곧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영화 속 장면들은) 분명 일상적인 삶을 보여 주는데도 일상적으로 보이지만은 않았다. 아주 멋진 방식으로 증강된일상이랄까. 지배적인 감상은 그렇다.
- P251

BK 마음에 드는 감상이다. 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뻔한 질문이라는 것을 알지만 당신에게서 직접 듣고 싶다.
AB 한 소녀의 삶을 의미 있고, 소중하게 그리고 전형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영화의 목적이었던 것 같다. 소녀의 삶 역시 인간의 삶이며,
폄하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대서사시epic 라는 말로표현해야 할 것 같다. 온전한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로 느껴졌다.
- P252

제목처럼 들리지 않아서 붙이게 됐다. 한국어로는 ‘벌새‘로도 충분했다. 벌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다. 이 작은 새는 꿀을 찾아 아주 멀리까지 날아가는데 그 모습이 은희의 여정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다.
은희는 아주 작은 여자아이지만, 사랑받기 위해서 또 진정한 사랑을찾기 위해서 많은 곳을 날아다닌다. 그리고 동물들이 가진 상징에 대한 책을 찾아 보았을 때 벌새에는 희망, 회복, 사랑 같은 좋은 상징들만 있었다. 그래서 영화에 붙이기에도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 P253

대부분 소녀들의 이야기는 하찮거나 진지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된다. 그렇지만 당신은 이소녀의 삶을 ‘인간‘의 삶으로 본다. 당신은 이 소녀의 모험과 주체성을마치, 그녀가 중세의 기사인 것처럼 진지하게 다뤘다. 그게 정말로 좋았다. 당신이 이 소녀의 이야기를 거대한 서사시로 재탄생시킨 거다!
- P254

AB 이 영화의 미덕이 거기 있다. 더 정리된 말로 표현하고 싶은데....
(벌새〉는 ‘보이지 않는 소녀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영화는 아주긴 시간 동안, 큰 관심을 가지고 섬세하게 그녀를 ‘본‘다. 당신이 담으려던 메시지와 형식이 아주 아름답게 융합한 거다.
- P258

BK 그런 얘기를 들으니 기쁘다. 이 영화를 그저 그런 귀여운 성장담이라고 생각하는 건 원치 않는다.
AB 성장영화라는 분류에는 나도 반대한다. 이 영화는 ‘인간됨Coming-of-Human‘에 관한 영화다. 단순한 성장담이 아니다.
- P258

BK사람들은 항상 여자들을 서로 비교한다. 그 사이에 아무런 공통점이 없다고 해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아무튼….
- P259

무엇보다도 페미니즘을 통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 대해다시 생각하면서 내가 겪은 트라우마가 나 개인의 잘못이 아닌 남성우월주의 Machoism 와 가부장제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페미니즘과 명상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페미니스트 친구들과함께 가족사를 써 보기도 했고, 우리가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부모님의 모습과 싫어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따라하지만 대물림해서는 안 될행동들을 쓴 리스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부모님에 대해, 내가누구인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게 됐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께 물려받은 많은 장점이 지금 내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전까지는 부모님을 그저 증오할 뿐이었다. 부모님이 내게 준 좋은 영향들에 대해깨달은 것이 가족에 대한 생각에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됐다. - P282

BK 맞는 말이다. 내 의도였다. 당신 작품 속 캐릭터들도 비슷하다.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 모두 복잡다단하다. 결코 일차원적이지 않다.
AB 그게 핵심이다.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은 어떤 것도 일차원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 P284

53 좋다. 알겠다. 사실 영화 안에서 ‘울음‘의 기능도 무척 흥미로웠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영화 안에서 울었던 캐릭터들은 아빠와 오빠뿐인것 같다. 남성중심적인 사회는 여성들뿐 아니라 거기에 속한 구성원모두를 다치게 한다.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은 방식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그 사실을 보여 줬다.
- P286

AB (곰곰이 생각하며) 삶 자체에 이미 이야기가 있다고 믿는다. 내가 할일은 그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대리석 덩어리 안에 이미 조각이있다는 (미켈란젤로의) 표현과도 비슷하다. 창조가 아니다. 이야기는 그냥 거기에 있고, 나는 그저 이야기가 아닌 부분을 들어내면 되는 거다.
벌새>를 보면서 항상 좋아하던 히치콕의 말이 생각났다. "드라마란인생에서 재미없는 부분을 잘라 낸 것에 다름 아니다" 라는. 그런데 당신은 그 재미없는 부분‘을 그대로 남겨 두었다. 예를 들어 가족들이 2분 동안이나 아무 말 없이 그냥 앉아서 밥을 먹는 장면 같은…. 당신은 그 순간들을 카메라에 그냥 담았다. 그게 정말 대단하다. - P298

AB 삶은 그저 계속된다. 그게 모든 예술 작품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어려운 이유인 것 같다.
- P304

AB 지숙이 은희에게 부모님이 이혼할 것이라고 말하는 멋진 시퀀스가 있었다. 그 사건은 아주 빠르게 전개됐다. 그러고는 1994년 10월21일 이라는 타이틀 카드가 등장한다. 그다음에 이미 철거된 컨테이너촌이 나온다. 길고 긴 느린 페이스 끝에, 갑자기 모든 것이 ...
BK 아주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AB그랬다. 아주 빨라졌다.
BK 맞다. 그게 서사의 중추이자 병원 시퀀스에서 이어지는 플롯 포인트였다. 사람들도 나라도 가족도 병들고,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통제불가능한 어떤 지점으로 향하는 거다. 그 끝에 다리가 무너진다.
- P306

그게 핵심이다. 그게 바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만들려는 이유다. 때로는 기이하게 보이는서로 다른 방식들을 가치 있는 것으로 보여 주는 일은 무척 중요하다.
그렇게 해서 서로 다른 이 사람들이 각자 가진 유별난 ‘다름‘이 다 괜 괜찮다고 느끼도록 말이다.
- P30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