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거나 이 조촐한 낭패들은 지나고 보면 웃을 수 있는 귀여운 해프닝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이방인‘으로서의 내 존재를 어렴풋이 자각시키곤 했던것은 언어나 문화의 명백한 차이에서 오는 그런 낭패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눈에 잘 안 보이는 소소한 차이, 이를테면 세심함의 정도 차 같은 부분에서 그들과 나 사이에 깊은 강이 흐른다는 것을, 나라는 사람은 그 강을 결코 건널 수 없다는 것을 느꼈다.
- P31

하지만 이방인인 내게는 이곳에서 무엇이 보통의 친절이고 배려인지를 판정할 경험치나 기준이없었다. 고마움과 미안함과 부담감과 죄책감이 뒤섞여 표출되는 내 행동은 늘 어딘가 부족하거나 넘치는 것만 같았다. 모두가 섬세하게 분화된 지느러미로 살랑살랑 헤엄치는 가운데 나만 둔탁한 지느러미로 물살을 따라잡지 못하는 기분. 그리고 그것이 나의 이질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듯한 느낌,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을 이상한 감정이었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는 이런 내 심리 자체가
‘뭘 그렇게까지..‘일 수도 있겠지만.
- P32

한편 『이윽고 슬픈 외국어』에는 이런 문장도 나온다.

외국에서 지내는 것의 메리트 중의 하나는 자기가단순히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 이방인에 불과하다고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 가령 약자로서 무능력한 사람으로서, 그런 식으로 허식이나 군더더기가 없는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는(혹은 될 수바에 없는) 상황을 가져보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귀중한 경험이 아닐까 하는 느낌마저 든다.

이십대 때 읽은 이 책을 최근 다시 읽어보니 예전에는 가볍게 흘러모낸 이 대목에서 100 년 전 내가 맛본 ‘이방인에 불과하다는 실감‘이 되살아났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무능력한 외국인‘으로서 ‘완전한 자기 자신이 될 수밖에 없는‘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스스로를 세련된 교양인쯤으로 끝까지착각했을 수도 있다.  - P34

욕구가 있었다. 그 애와 나의 만남에는 특수한 상황과 제약이 뒤따르기는 했지만, 결국 우리의 연애도지극히 평범했다는 사실을 글로 정리함으로써 뒤늦게나마 확인해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현재의 내가 궁지에 몰릴 때마다 과거를 미화하고거기에 매달리지 않기 위해,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더욱 소중히 여기기 위해.
- P45

아이의 미소를 보면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다는 거짓말은 누가 먼저 퍼트렸던가.
내 경험상 미소가 사랑스러운 것과 피로는 별개다.
꽃향기가 아무리 좋아도 그걸 맡았다고 결린 어깨가 풀어지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 P49

요컨대 얼핏 보기에는 내성적이고 고독한 소년 같지맘 함께 있으면 그 다정하이 서서히 배어나는 사람, 자신에 대해 큰소리로 떠벌리지않아도 그 내부에는 틀림없이 근사한 게 있으리라는믿음을 주는 사람에게 나는 매번 반한다.
- P58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을 오랜만에 다시읽다가 어떤 단락에서 내 이상형의 원형 같은 것을발견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하지메는 고등학생 시절의 자신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나는 많은 책을 읽었고 음악을 들었다. (…) 그러나나는 그런 책과 음악에 대한 체험을 다른 누군가와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은 없었다. 나는 내가 나 자신이며 다른 누구도 아니라는 사실에 오히려 마음 편히 느끼며 만족했다. 그런 의미에서는 나는 지독히도고독하고 오만한 소년이었다. 팀 플레이가 필요한 운동은 아무리 해도 좋아할 수 없었다. 다른 사람과 점수를 놓고 겨루는 경기도 싫었다. 내가 좋아한 운동은 오로지 혼자서 묵묵히 하는 수영뿐이었다.
- P59

로그 말대로 고흐의 그림처럼 동시대인들에게는 외면당해도 나중 세대로부터는 인정받는 일,
요컨대 스타일이 시대를 앞서 나가는 일이 소설이나음악, 그림과 같은 예술 분야에서는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번역은 대체로 동시대인에게만 유효하다. 고전 작품은 시대마다 새롭게 번역되어야 한다고들 하는 이유는 사람들의 언어 습관이나 당대의 상황, 심지어 표준어규정과 외래어표기법마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대를 뛰어넘는 소설‘은 있어도 ‘시대를 뛰어 넘는(=견디는)번역‘은 웬만해서는 존재하기 힘들다. - P87

그러므로 번역에서는 정확도가 아름다움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그것을 위해 때로 번역가는 거친 문장을 굳이 그대로 두는 선택을 하기도 한다. 하루키도 『장수 고양이의 비밀』*에서 처음부터독특한 맛을 내려고 노린다면 번역자로서는 이류이며, 번역의 참된 묘미는 세세한 단어 하나하나까지얼마나 원문에 충실하게 옮기는가에 있다고 말하지않았는가.
- P90

그런데 지금 생각해뵈 주인공이랑 감정적인 관계를 맺는 여자들이 속속 나오고 또 사라지면서 도구적으로 소비되는 게좀 싫어져서 안 읽게 되었던 것 같네.
윤정 : 하루키도 변했고 우리도 변했지. 시대 보정을 안 하면 참을 수 없는 지점이 많아.
- P136

지수 -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만나는 것에 대하여」라는 단편 기억 나? 하루키 초기작인데, 이 단편의 ‘서로에게 100퍼센트로 완벽한 남녀‘라는 구도는 『국경의 남쪽태양의 서쪽의 시마모토와 하지메의 관계에서그대로 나타나지.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사에키와 고무라, 『1Q84」에서는 아오마메와 덴고.
- P13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