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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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니 녀석이 '잘 사는 것'의 비결을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멈추지 말고, 뒤돌아보지도 말며, 마치 사춘기 소년 같은 활력, 용기, 호기심, 장난기로 가득 찬 하루하루를 보내라. 스스로를 젊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달력이 몇 장이 넘어가건 여전히 젊은 것이다. -259쪽

 개를 키우다 보면 벽이 상하기도 하고, 쿠션이 찢어지기도 하며, 카펫이 망가지기도 한다. 다른 모든 관계와 마찬가지로 개와의 관계에서도 대가가 따른다. 이러한 대가를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사실 이것은 말리가 우리에게 주는 기쁨, 만족, 보호, 동반자 역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말리에게 들어간 비용과 말리가 망가뜨린 것을 복구하는 비용을 다 합치면 작은 요트라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문간에서 하루 종일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요트가 과연 몇 척이나 되겠는가? 주인의 무릎 위로 올라가거나 주인의 얼굴을 핥으며 터보건을 타고 언덕을 달려 내려가는 순간을 즐기는 요트가 몇 척이나 되겠는가? -306쪽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유나이티드항공 93편이 겪은 엄청난 비극의 현장에 서서 나는 여전히 이제 곧 겪게 될 상실의 아픔을 미리 느끼고 있었다. -351쪽

 

 언제나 커다란 멍멍이가 나의 위시리스트 위쪽에 있다.

하지만 아파트에서 개를 키우는건 개에게나 사람에게나 할 짓이 못된다는것이 내 입장이고, 하여 여태 이 집에서 작은 개 하나 못 키우고 있다.

 세상에서 제일 멍청하고, 제일 둔하고, 제일 말썽꾸러기인 래브라도 리트리버 종 말리와 13년간 가족으로 살았던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실화가 갖는 힘이 있다.  멍청하고 항상 배고프고 항상 말썽꾸러기인 말리의 소동을 읽으며 동생이 키우고 있는 코카스패니얼이 떠올랐다. 지은이가 말리를 떠나 보낸 후 칼럼을 썼을 때, 수백명의 사람들이 '우리집 개도 그렇다, 말리보다 더 심할거다'라고 메일을 보낸 것을 이해한다. 당최 사냥개 종류는 모두 그런 모양이다. 한시도 가만 못 있고, 끝없이 놀 거리, 뛸거리, 먹을거리를 찾아 헤맨다.

 애완동물을 키우는게 아니고, 반려동물과 함께 산다는것이 어떤 의미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말리를 떠나 보내는게 읽고 있는 나로서도 괴로웠다. 만남은 이별을 담보하는것이랄까? 또, 그것이 단순한 타인과의 관계가 아닌 가족의 관계이기때문에 헤어짐은 더욱 힘이 든다. (입버릇처럼 내가 말하잖아. 멍멍이를 하나 키우느니 애를 하나 낳아 키우지. ㅜㅜ)

  

말리와 아이 셋과, 부부의 13년간 이야기를 절묘하게 잘 풀었다. 무엇보다 저자의 유머감각이 매우 맘에 든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는 뻔할 수도 있지만, 자신의 개를 떠올릴 수 있음에 행복한 시간들이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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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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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도시의 방과 방 사이, 집과 집 사이는 다닥다닥 붙어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물리적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편하다며 늘 투덜거리곤 한다. 타인과 가까이 있어 더 외로운 느낌을 아느냐고 강변한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언제나 나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나만의 사람, 여기 내가 있음을 알아봐주고 나지막이 내 이름을 불러줄 사람을 갈구한다. 사랑은 종종 그렇게 시작된다. 그가 내 곁에 온 순간 새로운 고독이 시작되는 그 지독한 아이러니도 모르고서 말이다.-180쪽

 스무 살엔, 서른 살이 넘으면 모든 게 명확하고 분명해질 줄 알았었다. 그러나 그 반대다. 오히려 ‘인생이란 이런 거지’라고 확고하게 단정해왔던 부분들이 맥없이 흔들리는 느낌에 곤혹스레 맞닥뜨리곤 한다. 내부의 흔들림을 필사적으로 감추기 위하여 사람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일부러 더 고집 센 척하고 더 큰 목소리로 우겨대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말들은 잘한다. 각자의 등에 저마다 무거운 소금가마니 하나씩을 낑낑거리며 짊어지고 걸어가는 주제에 말이다. 우리는 왜 타인의 문제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판단하고 냉정하게 충고하면서, 자기 인생의 문제 앞에서는 갈피를 못 잡고 헤매기만 하는 걸까. 객관적 거리 조정이 불가능한 건 스스로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차마 두렵기 때문인가.-227쪽

 ".....정말 나를 걱정한 거였어요? 걱정하고 있다는 그 느낌이 싫었던 게 아니고?"

맥이 탁 풀렸다. 사랑이 저무는 느낌은 어떻게 오는가. -235쪽

  

그녀가 가진 고민이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아서  뚝딱 읽어버리게 된 책.

물론 사랑에 목숨 걸게 되는 것이 또한 인간이라서, 애정고민이 생의 고민 전부가 되어 버릴 수 있다는것도 인정한다. 그러니 애정고민이라고 깊은 고민이 아니란 뜻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 오은수는 사랑에 목숨을 걸지도 않았다. 평범하고 지루한 삼십대 미혼 직장여성.

그렇다고 일에서 똑 부러지는 성과를 거둔것도 아니고, 하루하루가 힘들게 지나는 회사 직무.

그녀 앞의 남자들- 이 사람은 이래서 흠이고, 저 사람은 저래서 싫고, 그 사람은 그래서 걸리고. 그러니까 입맛에 딱 들어맞는 남자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거다. 착하고, 잘 생기고, 돈도 많고,능력있고, 나만 사랑하는 남자가 어디있니.

힘들고 지치는 회사에서는 기회주의자인 상사에게,때론 당돌한 후배에게도 치이고 배신당하는 일상. 세상에는 또 입맛에 딱 맞는 상사도, 후배도 참으로 드문 것이다.

 이러저러한 오은수의 결함에도 이 책이 재미있었던 것은, 지금 이 시간의 직장 여성들이 모습이 참 정직하고 솔직하고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서였다. 메신저의 대화명을 심리상태에 따라 바꿔댄다. 사랑에 냉소적인척, 쿨한척 해도 어쩔 수 없이 그 놈의 사랑때문에 가슴에 상처를 만든다. 문자메시지를 시의적절하게 쓸 줄 안다. 얼마간 지갑이 쪼들릴 것을 알면서도, 몇 개월의 할부를 감수하면서라도 백화점에서 보드라운 블라우스를 산다. 친구의 좋은 소식이 그저 좋은 소식으로만 다가오지 않고 어느새 조바심을 만들게 된다. 오은수와 그녀의 친구들을 보니 꽤나 익숙하고 정겹다.

 그녀(들)의 고민이 거대하고 철학적이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사는게 어디 거대한 고민만으로 만들어지는것이더냐. 섹스 앤 더 시티의 서울 버전쯤 되려나.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처럼 대단한 직업에, 화려한 옷차림과 대단한 남성편력은 없지만, 그래서 더욱더 서울스러운 이야기.

  

아니, 어쩌자고 태오를 놓치고 그러냐. 어리고 착한 남자는 아무때나 오는게 아니지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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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 지음, 정영목 옮김 / 강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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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알드 달은 분명히 잘난 척 하는 사람들 꼴을 참지 못하는거다.

이 단편집의 모든 주인공들은 잘난척 하다가 결국 엉뚱한 사람들에게 (혹은 자신이 무시하던 사람들에게) 뒤통수를 맞고야 만다. 그것도 엄청나게. 그러게 왜 그리 오만방자하게 사는거냐고 소리라도 지를 셈이었을까?

 

이 단편집에 대한 많은 평들이 '대단하다, 재미있다, 치밀하다'로 요약되고, 로알드 달의 소설을 다섯 손가락 안에 놓겠다는 성석제의 추천사도 있지만, 그정도로 대단한지는 모르겠다. 이미 비슷한 많은 이야기들을 경험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또는 샤말란처럼 대단한 감독들의 영화들을 보아서 내성이 생겼으려나.

 

10편이 모두 잘난 척 하다가 뒤통수 맞은 이야기로 일관한다는 건, 단편집으로선 흠이 될 수도 있다. 10편 중 단 하나 '피부'만이 뒤통수 맞는 사람이 안쓰러울 뿐, 나머지 인물들은 그래도 싸다 싶을 정도로 좀 재수가 없는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인물의 성품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 내내 같은 패턴이 반복되니 마치 오쿠다 히데오의 <공중그네> 읽는 것처럼 처음의 신선함이 점점 기운을 잃고 급기야는 뻔한 스토리가 내 머릿속에서도 그려지니까. (앗, 감히 로알드 달을 오쿠다 히데오에 비교하다니! 라고 말씀하시는 그대라면, 그대가 맞다. 하지만 나는 나이므로, 내가 맞다)

 

 

누가 그랬다더라.

그 뮤지컬, 볼 만은 했지만, 볼 가치는 없다.

  

살짝 훔쳐다가 말하자면, 그거다.

재미는 있지만, 굳이 찾아 읽을것 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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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퐁
박민규 지음 / 창비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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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다면

 평범하게 사는 것이다. 따 같은 거 당하지 않고,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고, 다수인 척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게 전부다. 일정하게, 늘 적당한 순위를 유지하고, 또 인간인만큼 고민(개인적인)에 빠지거나 그것을 털어놓을 친구가 있고, 졸업을 하고, 눈에 띄지 않게 거리를 활보하거나 전철을 갈아타고, 노력하고, 근면하며, 무엇보다 여론을 따를 줄 알고, 듣고, 조성하고, 편한 사람으로 통하고, 적당한 직장이라도 얻게 되면 감사하고, 감사할 줄 알고, 이를테면 신앙을 가지거나, 우연히 홈쇼핑에서 정말 좋은 제품을 발견하기도 하고, 구매를 하고, 소비를 하고, 적당한 싯점에 면허를 다고, 어느날 들이닥친 귀중한 직장동료들에게 오분, 오분 만에 갈비찜을 대접할 줄 알고, 자네도 참, 해서 한번쯤은 모두를 만족시킬 줄 아는 그런 사람.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런 사람이 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버스는 오지 않았다. 좀더, 나는 버스를 기다려본다. 열시 반, 2교시가 한창일 시간이다. 다수인 척, 스물서너 정거장이 떨어진 곳에서는-다수가, 다수에 의한, 다수를 위한 수업에 열중해 있을 것이다. 행복할 수, 있을까? 인류에게도 2교시란 게 있을까? 나는 버스를 기다린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류의 속셈을 모르겠다. -34-35쪽

 따를 당하는 것도 다수결이다.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치수가 원인의 전부라 믿었는데, 그게 아니었따. 둘러싼 마흔한명이, 그것을 원하고 있었다.  -29쪽

 와아, 잠잠한 숲속으로 들어가 칠년을 매미의 유충으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그 순간 들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 역시나 생각했지만, 나는 말없이 돈을 건네받았다. 의외로 좋은 기분이었다. 백만원을 손에 쥐면 백만원어치의 유전자가 업그레이드 되는 게 아닐까. 인간이란, 의외로 그런게 아닐까, 뒤척이는 중국인 여자의 숨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계단을 내려왔다. -83쪽

 그래서 좋다고도, 나쁘다고도 할 수 없는 곳이야. 누군가 사십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면 또 누군가 멸종위기에 처한 혹등고래를 보살피는 거야. 누군가는 페놀이 함유된 폐수를 방류하는데, 또 누군가는 일정 헥타르 이상의 자연림을 보존하는 거지. 이를테면 11:10의 듀스포인트에서 11:11, 그리고 11: 12가 되나보다 하는 순간 다시 12:12로 균형을 이뤄버리는 거야. 그건 그야말로 지루한 관전이었어. 지금 이 세계의 포인트는 어떤 상탠지 아니? 17383456792929921:17383456792929920. 어김없는 듀스포인트야. -110쪽

 왜 우리일까? 답 같은 건 찾을 수도 없겠지만, 내 결론은 그거야. 뭐?

 너와 나는 세계가 <깜박>한 인간들이야. -219쪽

 

책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하고 불편한 마음을 누를 길 없다. 못과 모아이가 언제 또다시 불려나가 맞을까 싶어서 말이다. 중학교 3학년인 이 둘은 '그냥' 따를 당하고, 그래서 늘 맞고 지낸다. 이유같은건 없다.  자신들을 괴롭히던 치수가 사라졌지만, 남은 치수 패거리들에게로 폭력을 꼬리를 물고, 도주 중이던 치수는 잊을만하면 전화하고 나타나서는 다정하게 굴다가 느닷없이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언제 어떻게 시작될 지 모르는 폭력을 기다리는것은 제삼자인 내게도 두려운 일이었다.

 못과 모아이가 치수 패거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들 말고는 모두 몽환적이고 환상적이다. 핼리를 기다리는 모임과 탁구를 가르치는 세끄라탱과 그의 아이들과 편의점 주인과, 스쳐지나는 사람들까지도 현실적인 존재감이 없다. 인류를 언인스톨할지를 결정하는 탁구경기라니, 터무니 없는 발상 아닌가. 하지만 모두 안개같은 사람들과 현상들 사이에서 그 경기는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끝없는 폭력에 길들여진 두 아이는 그 폭력을 피하거나, 대항하거나, 빠져나갈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냥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는 당신도 왕따에 적극적으로 찬성한 다수라고 비난한다. 그러면서도 인류와 세계가 어느 쪽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좋지도, 좋지 않기도 한 그런 세계라는 것이다. 누군가는 악을 뿌리고, 누군가는 선을 베풀고 있는게 이 세상이란다. 저 대목을 읽으며 뜨끔했다. 모른 척, 아무일도 없는 척 살아가는 것도, 그렇다, 누군가를 괴롭히는 다수편에 서 있다는 뜻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존 메이슨이라는 작가의 소설들은 박민규의 단편집을 보는 듯, 발랄하고, 엉뚱하다. 소설은 왕따 이야기로 시작하여, 탁구로 끝난다. 결코 왕따에 관한 어떤 답도 보여주지 않는다. 치수는 다시 전화를 걸어올지도 모르고, 치수의 패거리 중 또 누군가가 치수를 팔아서 못과 모아이를 괴롭힐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소설의 결말이 힘이 없다거나, 유아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라기 보다는 이미지와 상상과 인류에 대한 근본적인 죄책감의 짜임으로 읽힌다. 그래서 그 결말이 그리 엉뚱하지 않았고, 그네들의 결정도 타당해 보였다.

 박민규의 문체는 여전하다. 여전히 엉뚱하고, 여전히 재기가 넘친다. 상상력이 넘친다.  현실을 바탕으로 한 듯, 그렇지만 현실에 발을 담그지 않는 이야기들. 뜬금없는 곳에서 문장을 자르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수다스러운 대화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듯 작은 폰트의 글자. 간결한 문장은 전혀 아닌데, 그렇다고 늘어지는 문장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것저것 섞인 문장들.

 꽤나 맘에 드는데, 무엇 때문인지 한마디로 말하기는 좀 힘이 든다.

우선은 작가 박민규를 대하는 기울어진 애정.

라운 상상력들.

전적이고 평범함 문장을 거부하는 대담함.

현실의 이야기 따위 관심없다는 자신만만함.

 

그러면서도 약간은 부족한 느낌. 그것이 무엇인지 역시 말할 수 없는 나의 얄팍한 내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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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만나다
조병준 지음 / 디자인하우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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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중독되었다는 조병준의 감성이 넘치는 글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커스를, 눈물나도록 아름다운 서커스를 보여준 이들은 조병준에게

절망스럽게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했더라. 딱 그렇다)

이 책을 읽은것이 벌써 몇 해전이었던가.

다시 읽고 있자니 어찌 이리도 새로운것인지.

처음 읽었을때처럼 난 그저 나도 떠나봤으면...하고 쓸모없는 소망만 중얼거릴뿐.

책이 새로운것마냥, 내 결심이 새롭기만 하지만

또 몇 년이 흘러 똑같은 소망을 중얼거리고 있을까 싶어, 그나마도 소리내어 말하지 못한다.

 

길에서 만난 아름다운 영혼들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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