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전출처 : 코코죠 > 죽음에 관한,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과 가까워 지는 일이라고, 얼마 전 친구의 아버지 상을 다녀온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기 전에도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 있는 자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언제나 슬픈 것이다.

이 책에서 베리티의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집안에서 '죽음' 에 관한 말은 묵계처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묵계란 깨지기 마련이다. 베리티의 늙은 고양이 메이블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베리티는 이 고양이를 어떻게 했을까. 묻어야 한다고? 아니 어떻게 사랑하는 고양이를 시커먼 흙 속에,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땅 속에 묻을 수 있단 말인가. 베리티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목욕용 라벤더 소금을 잔뜩 부어, 붕대를 둘둘 감아, 베낭 속에 담아 옷장 깊숙이 숨겨두면 매이블은 죽은 것이 아니다. 언제나 베리티 곁에서 지켜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슬펐다. 물론 나는 다 컸기 때문에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 울컥거리는 부분이 있었음을 시인해야겠다. 나같은 어른에게도 죽음이란 슬픈 일이니까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죽음이란 우리들이 인정하고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삶을 모두 형성하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죽음의 이야기를 회피한다. 마치 그들에게는 언제나 펄펄 넘치는 생명의 에너지만이 가득한 것처럼 떠들어 댄다. 하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죽음, 혹은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의 죽음, 그리고  강아지나 고양이의 죽음을 아이들은 목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이런 동화가 필요하다.

재클린 윌슨은 조앤 롤링 다음으로 영국에서는 인기가 좋은 동화작가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지만, 나는 깔끔하고 편안한 문체로 가장 예리한 부분만을 콕 집어내어 술술 풀어내는 그녀의 화법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보통 그녀의 동화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흔히 겪기 쉬운 심리상태와 죽음, 장애, 따돌림 등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칙칙하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고, 교훈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적당한 박진감과 스릴, 그리고 하나 하나 알레고리를 풀어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재클린 윌슨은 확실히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닌 작가다. 그녀와 콤비인 일러스트레이터 닉 샤랫의 그림은 오징어와 땅콩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그녀의 글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그림은 마치 플러스 펜으로 꼭꼭 눌러그린 듯 예쁘고 단순하다(거추장스러운 치장이 없다는 소리다) 

고양이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은 묘하게 맞물려져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리고 메이블은 땅에 묻히고, 아빠에게는 또다른 사랑의 무드(이건 나의 오바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죽음이란 내 곁에서 떠나보내는 일이다. 사랑하므로, 사랑하기 때문에, 덜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곁에 묶어두고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니까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 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동화는 말해준다. 죽음이란 헤어짐이지만, 결국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전출처 : 코코죠 > 우리 모두 언젠가는 세상을 뜨는 것

어릴 적에는 항상 강아지를 키웠었다. 누렁이거나 얼룩이거나 뽀삐 혹은 돼지라는 이름으로 불렀었다. 강아지는 내 동생이었고 친구였으며 든든한 보디가드였다.
이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키웠던 강아지 뽀삐에 대한 이야기다.

뽀삐는 쥐약을 집어먹고 죽었다. 이건 아주 흔한 이야기다. 그때에는 어디에나 쥐가 들끓었고 박하사탕같이 생긴 쥐약이 여기저기 던져져 있었다. 뽀삐가 왜 쥐약을 집어먹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쨋든 내가 사랑했던 개 뽀삐는 그렇게 죽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비린내나는 혓바닥으로 내 코를 핥아주던 뽀삐는 빳빳하게 굳어 디귿자 모양으로 차갑게 죽어 있었고, 벌써 파리가 꼬여들고 있었다.

나는 뽀삐를 화단에 묻어 주었다. 뽀삐가 가장 좋아라 했던 오십원짜리 맛쥐포도 함께 묻어 주었다. 그건 내 생애 첫 장례였고, 내가 목도한 첫번째 죽음이었다.

그 후로 나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당연히 영원할 줄 알았던 어떤 사람들을 하나 둘씩 떠나보내기 시작한다. 나는 번번이 절망하며 그때를 떠올리는 것이다. 그때 나에게, 죽음에 대한 이런 동화책 하나 건네주었더라면. 

이 책은 애완동물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머핀 아저씨는 젊고 건강한 기니피그였고, 젊었을 때는 오이 하나를 통째로 나를 만큼 힘이 셌다. 그러나 우리 모두가 그렇듯 머핀 아저씨에게도 죽음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기니피그 머핀 아저씨가 차근차근 과거를 회상하고 현재를 정리한다는 구성은 지루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머핀 아저씨에게 날마다 편지를 보내는 아이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그로 하여 무척 슬펐을  머핀 아저씨의 죽음이 아름다워졌다는 것을 그 아이는 알까. 다만 머핀 아저씨는 글씨를 읽을 줄 몰라 그 편지를 잘게 찢는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

나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코를 싸쥐어야 했다. 안 그랬다면 나는 아마 '뽀삐야' 하고 외치며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책은 마음을 여는 책이라는 제목의 시리즈 물이다. 같은 시리즈로 '죽으면 아픈 것이 나을까요' 라는 책은 동생의 죽음을 겪은 다섯 살짜리 아이가 쓴 이야기이다. 그 책도 추천할 만 하다. 누구에게나 생애 첫번째로 목격하게 되는 죽음이 있다. 우리는 그 아이가 당황하거나 혹은 두려워 하지 않도록 보듬어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이런 책이 필요하다. 아마 머핀 아저씨도 그걸 원했을 것이다. 자기가 떠난 후에 남은 사람들이 많이 슬퍼하지 않기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