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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 아이 블루?
마리온 데인 바우어 외 12인 지음, 조응주 옮김 / 낭기열라 / 2005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자, 여러분 주위 친구나 지인 중에 동성애자가 한 명도 없는 분? 어디 한 번 손 들어보세요. 아, 거기 몇 분 손 드셨네요? 네네, 지금 손드신 분들은 성격이 아~주 안 좋은 분들입니다. 반성하세요."
이는 '동성애 바로알기' 강의에 흔히 등장하는 농담 아닌 농담인데요, 아직까지 사태 파악을 못 하신 분들을 위해 잠깐 말씀드리죠. 세상 도처엔 동성애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눈에 '보이는' 동성애자들은 아주 적죠. 그들은 스스로도 동성애자임을 부정하거나, 극소수의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만 커밍아웃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당신에게 커밍아웃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동성애자에게 별로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 성격이 나쁘달 밖에요, 하하. 그렇다고 좌절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 농담은 어디까지나 세상에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동성애자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일 뿐이니까요. 그러니까, 당신 성격이 좋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당신 동성애자인가요?' 물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매우 무례한 데다, 때로 위험하기까지 한 일이니까요. 다만, 내 주위에 동성애자는 절대 없어! 라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만은 말아주세요. 이 책의 표제작 '앰 아이 블루?'에도 나오는 것처럼 세상은 넓고 파란빛의 '이반'은 많답니다.
'앰 아이 블루?' 얘길 좀 해볼까요. 이 소설은 빈센트가 친구(?)한테 얻어터지고 요정 대부를 만나 세 가지 소원을 비는 이야기지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살해당한 사람이 요정 대부로 등장하지만, 어두운 작품은 아니에요. 다른 분들이 말씀하시듯 오히려 밝고 유쾌한 얘기지요. 하지만 처음부터 제 눈길을 끈 건 빈센트도 아니요, 요정 대부도 아닌 부치 캐리건이었습니다. '호모 새끼'라며 빈센트를 두들겨 팼던 그 아이 말예요. 새파란 하늘빛을 가진 것으로 판명 난 그 아이는, 자기도 무서웠을 겁니다. 아마 무서워서 빈센트를 더 괴롭혔을 거예요(물론 그렇다고 폭력이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왜 무섭냐고요? 어렸을 때부터 '이성애'만을 세뇌 받고 자라게 되는 이 살벌한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자신을 동성애자로 명명하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스스로도 의식/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겠지요. 그리고 그걸 가장 극단적으로 부정하는 방식이 다른 동성애자 친구를 학대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실제로 많은 동성애자들 스스로도 동성애공포증/혐오증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 이보다 슬픈 일이 있을까요? 자신의 존재 자체를 무서워하고 혐오하는 일보다 더 슬픈 일이요? 전 모르겠습니다. 있다 하더라도, 내가 스스로에게 부정당하는 마당에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랍니까? '나'가 없는데.
이 책의 몇몇 작품과 옮긴이가 주장하는 바는, 동성애는 취향이나 선택이 아니라는 겁니다. 당신이 그저 이성애자인 것처럼 그들은 그저 동성애자인 것일 뿐이라고요. 하지만 사실 전 묻고 싶습니다. 선택이나 취향이면 왜 안 되지요? 문제는 '이성애'라는 한 가지 취향이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지, 그들이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인지 '주변 환경(무슨 환경? -_-)'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 어쩐지는 하등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동성애를 일종의 (선천적) 정신병으로 분류하거나 동성애자가 되도록 하는 DNA 인자를 규명하는 작업 따위에 제가 별 관심 없는 까닭입니다. 게다가, 자고로, 세상 많은 차별은 그러한 '분류'에서 시작되지 않았던가요?
이런 유의 발언은 아직 동성애자가 그 '존재'조차 인식되기 힘든 세상에서 좀 섣부른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데는 나름의 까닭이 있어요. 저는 지금껏 저를 이성애자나 동성애자, 양성애자, 무성애자(asexual) 따위로 정의해본 적이 없거든요. 저는 이성애자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지요. 지금껏 사귄 사람들이 모두 남자였으니까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제가 동성애자나 양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전 모르겠습니다. 저도 가끔 동성 친구에게, 남자친구에게서나 느낄 법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동성과 섹스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전 이성애자인가요?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전요, 사실 세상 사람들이 이성애자나 동성애자로 규정되는 게 싫습니다. 그냥 상대의 성이 뭐든, 자신에게 맞고, 서로를 지지해줄 수 있는 사람하고 사랑하고 살면 안 되나요? 그러니까, 모두 양성애자(사실 세상에 두 가지 성만 있는 건 아니니까 삼성애자 내지 사성애자...)가 되면 어떨까 하는 거죠. 일부 사람들에게야 끔찍한 일이겠지만 글쎄, 옵션이 많아지는 건 좋은 일 아닌가요?
어쩌면 이런 말도 이성애자니까 할 수 있는 거라는 비판을 받을지 모르겠어요. 아니라고는 못합니다. 하지만 어쨌든 제가 하고 싶은 얘긴 분명해요. 성정체성이라는 건, 제가 여성이고 학생이고, 여성주의자이고 하는 정체성이나 마찬가지로,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정체성일 뿐이라는 거죠. '백수'라는 제 정체성이 저를 규정하는 큰 요소가 되지 않는 것처럼 성정체성 또한 제게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또 이와 마찬가지로, 동성애자는 동성애자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존재하는 까닭은, 굳이 그들 정체성의 일부를 침소봉대해서 그것이 그들 존재의 전부를 규정하는 양,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망치기라도 할 것인 양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기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누군가의 딸이거나 아들이라고 할 때, 그 '딸'이나 '아들'로만 24시간, 혹은 평생을 살지 않는 것처럼 동성애자들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당신이 이성애자라고 해서 당신의 모든 정체가 '이성애'로 구성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장담하건대, 동성애자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살기 편해진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 혹시라도 그 비슷한 생각을 하고 계셨다면 이제 그런 생각일랑 버리세요. 아님 남의 일 상관 말고 '너나 잘하세요.' 그럼 최소한 쓸데없이 그들에게 돌팔매질하는 사람 하나는 주는 셈이니까요.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무엇보다 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책을 엮은이가 한 말과 같은 것입니다. 청소년 동성애자 여러분, 죽지 말아요. 10년 전 미국에서 이 책을 처음 내면서 엮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십대 10명 중 1명이 자살을 기도하는데, 그 자살 동기가 3명에 1명꼴로 성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라고 합니다. 이는 다시 말해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한 정보와 배려의 부족 때문에 위태로운 청소년이 전국 모든 교실에 한 명씩 있다는 뜻입니다(서문 중)." 옮긴이의 말을 굳이 따오지 않더라도,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이중의 마이너리티입니다. 여성일 경우 삼중일 거고, 백인이 아닐 경우 사중, 장애인일 경우 오중...의 마이너리티네요. 후, 상상하는 것만으로 숨이 막힙니다. 어쨌든, 안 그래도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청소년이 자신을 동성애자로 명명할 경우, 문제는 성인의 그것보다 한층 복잡해질 겁니다. 제아무리 "저 동성애자예요!" 해도 어른들이 안 들어줄 확률이 크잖아요. 넌 아직 어려. 크면 달라질 거야 어쩌구(사실 '동성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는 이럴 때를 위해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우리는'에도 나오잖아요. '선택' 운운하는 어머니에게 딸은, 이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고 답하지요. 이 말은 한 가지 옵션만을 강요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유용해 보입니다. 안타깝게도 그 어머니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자신의 딸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긴 합니다만). 그러니, 안 그래도 살기 힘든 시기에 성정체성 문제까지 겹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저라도 하루에 열두 번 다 때려치우고 싶겠어요.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죽지 말아요. 요새는 인터넷 커뮤니티도 있고요, 동성애자 인권운동 단체도 점점 늘고 있고요, 이런 책도 번역 돼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살아서 만나요.
요즘은 그래도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자신이 게이나 레즈비언임을 즐겁게 인정하는 사람들/아이들이 늘고 있다고 하지요. 다행스런 일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어느 한편에는 여전히,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부정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해방된 성적 소수자가 많다 하더라도, 이성애중심주의 사회에서 억압 받는 성적 소수자들이 있는 한, 저는 기꺼이 이반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소박한 다짐을 해 봅니다. 이 책, "앰 아이 블루?"처럼요.
* 덧붙임 *
이 책 판매액 1%는 '청소년 동성애자 인권학교'에 기부된다고 합니다. 많이 사서 많이 읽고, 많이 선물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