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코코죠 > 죽음에 관한, 경쾌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

나이가 든다는 것은 죽음과 가까워 지는 일이라고, 얼마 전 친구의 아버지 상을 다녀온 지인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나이가 들기 전에도 죽음은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살아 있는 자가 어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죽음이란 언제나 슬픈 것이다.

이 책에서 베리티의 엄마는 일찍 돌아가셨다. 아빠는 엄마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그 집안에서 '죽음' 에 관한 말은 묵계처럼 해서는 안 되는 말이 되었다. 하지만 묵계란 깨지기 마련이다. 베리티의 늙은 고양이 메이블이 죽어버렸던 것이다. 베리티는 이 고양이를 어떻게 했을까. 묻어야 한다고? 아니 어떻게 사랑하는 고양이를 시커먼 흙 속에, 벌레들이 우글거리는 땅 속에 묻을 수 있단 말인가. 베리티는 학교에서 배운 대로 고양이를 미라로 만들기로 결정한다. 목욕용 라벤더 소금을 잔뜩 부어, 붕대를 둘둘 감아, 베낭 속에 담아 옷장 깊숙이 숨겨두면 매이블은 죽은 것이 아니다. 언제나 베리티 곁에서 지켜줄 것이다... 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 책이 너무 슬펐다. 물론 나는 다 컸기 때문에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끔 울컥거리는 부분이 있었음을 시인해야겠다. 나같은 어른에게도 죽음이란 슬픈 일이니까 그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죽음이란 우리들이 인정하고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주제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직 삶을 모두 형성하지 않은 어린이에게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아이들에게 죽음의 이야기를 회피한다. 마치 그들에게는 언제나 펄펄 넘치는 생명의 에너지만이 가득한 것처럼 떠들어 댄다. 하지만 할머니나 할아버지의 죽음, 혹은 부모님과 형제, 친구들의 죽음, 그리고  강아지나 고양이의 죽음을 아이들은 목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에겐, 이런 동화가 필요하다.

재클린 윌슨은 조앤 롤링 다음으로 영국에서는 인기가 좋은 동화작가라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듯 하지만, 나는 깔끔하고 편안한 문체로 가장 예리한 부분만을 콕 집어내어 술술 풀어내는 그녀의 화법이 마음에 들어버렸다. 보통 그녀의 동화에서는 여자아이들이 흔히 겪기 쉬운 심리상태와 죽음, 장애, 따돌림 등을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칙칙하거나 지루한 것은 아니고, 교훈이 가득한 것도 아니다.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고, 적당한 박진감과 스릴, 그리고 하나 하나 알레고리를 풀어나가는 즐거움이 있다. 재클린 윌슨은 확실히 이야기 솜씨가 보통이 아닌 작가다. 그녀와 콤비인 일러스트레이터 닉 샤랫의 그림은 오징어와 땅콩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 싶다. 그녀의 글 만큼이나 사랑스러운 그림은 마치 플러스 펜으로 꼭꼭 눌러그린 듯 예쁘고 단순하다(거추장스러운 치장이 없다는 소리다) 

고양이의 죽음과 엄마의 죽음은 묘하게 맞물려져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되어진다. 그리고 메이블은 땅에 묻히고, 아빠에게는 또다른 사랑의 무드(이건 나의 오바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죽음이란 내 곁에서 떠나보내는 일이다. 사랑하므로, 사랑하기 때문에, 덜 사랑해 주었기 때문에 곁에 묶어두고 보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사랑하니까 보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은 하늘나라로 가 천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동화는 말해준다. 죽음이란 헤어짐이지만, 결국 우리는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살아남은 자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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