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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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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간서치', 즉 책만 보는 바보라고 불린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덕무는 서자인 탓에 조선 후기 사회에서 딱히 할일도 없었던 불우한 지식인 입니다. 그런데 '책만 읽는 바보'라니 발을 잘라놓고 절름발이라고 놀리는 거 같아 안스러운 생각이 듭니다.

이 책은 우선 '옛글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다가옵니다. 인상적이게도 이덕무라는 낯선 조선사람은 '나'라는 1인칭으로 등장합니다. '책읽기의 정도가 무엇이냐?'라는 것은 해답이 없을 테지만 나의 변화, 삶의 드높임--이런 것과 관계가 깊다면, 책의 내용이 내가 되는 독서의 과정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책은 이덕무를 읽고 그 시대를 읽고 그것을 나로 다시 변용시키는 과정을 아름다운 글로 보여주고 그 덕택에 우린 인간 이덕무에 한결 더 가깝게 다가서게 됩니다.

책을 펼치면, 책읽기의 이로움을 이덕무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첫째, 굶주린 때에 책을 읽으면, 소리가 훨씬 낭랑해져서 글귀가 잘 다가오고 배고픔도 느끼지 못한다.   

둘째, 날씨가 추울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의 기운이 스며들어 떨리는 몸이 진정되고 추위를 잊을 수 있다.

셋째, 근심 걱정으로 마음이 괴로울 때 책을 읽으면, 눈과 마음이 책에 집중하면서 천만가지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넷째, 기침병을 앓을 때 책을 읽으면, 그 소리가 목구멍의 걸림돌을 시원하게 뚫어 괴로운 기침이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출세의 길이 막힌 궁한 처지의 인간 이덕무에게 닥친 굶주림, 추위, 근심 걱정, 괴로운 기침병!- 도대체 이 속에서 가망없는 글읽기를 계속 해야만하는 절박함이 무엇인지 우선 궁금합니다. 한편 이런 고통이 오히려 책읽기의 계기가 되고있다는 점에서 숙연해 지기까지 합니다.

그러고 보면, 이글의 저자 안소영 선생님도 특이한 이력이 있는 분입니다. 안소영 선생님의 아버지 안재구 교수님은 79년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형 선고를 받아 복역하다 10년만인 88년 9월에 가석방 되시는데 이때 따님 안소영과 나눈 편지가 [우리가 함께 부르는 노래]라는 책입니다. 남민전 사건이란 무엇인가요? 76년 조직되어 반유신투쟁을 전개하고 민청학련 등 학생운동의 배후였던 비밀단체로 79년 84명의 조직원이 구속되었던 유신말기의 최대 공안사건이었습니다.

남민전 사건은 우리가 잘아는 홍세화 선생이 프랑스에 망명할 수 밖에 없게 만든 사건입니다.그동안 '남민전 -> 주사파-> 전교조 또는 한총련'이라는 구도로 악의 축으로 지명되었던 사건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사정이 달라져서, 2006년 3월 관련자 29명이 민주화 운동관련자로 인정되었고, 홍세화선생은 돌아와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시며, 심지어는 남민전 사건으로 5년동안 복역한 이재오선생은 한나라당 대표입니다.세월이 그렇게 하염없이 흐른 것입니다.

어쩌면 이덕무 선생의 인생에는 안소영 선생님의 아버지, 안재구 선생님이 투영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마도 10년의 징역과 20년의 자격정지는 안소영 선생님도 함께 겪으셨을 터이기에 이덕무라는 출세가 거세된 불우한 지식인을 더욱 절절히 표현할 수 있었던 거 아닐까 생각합니다.이덕무가  한서를 이불삼고, 논어를 병풍삼으며, 맹자에게 밥을 얻고 좌씨에게 술을 얻는 장면은 세상살이의 혹독함과 더불어 결코 무릎꿇지 않는 지식인의 오기, 그럼에도 자식과 친구에게는 한없이 약해지는 인간에 대해 말해주고 있으며, 이런 장면을 지켜보는 우리는, 어느새 마음이 그윽해져서 눈가에 촉촉히 눈물이 고이게 됩니다. 그런데 그런 이덕무의 인생 뒤에 안소영 선생님 가족의 실루엣도 어른거리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의 무게가 그림자로 어리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기 보다는 편안해집니다. 워낙 글을 유려하게 쓰셔서 문학책을 읽는 듯 하기도 하고, 강남미 선생님의 그림이 여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전혀 힘들이지 않고 어린 아이의 심정에서 죽죽 긋는 듯한 그림에서 우리는 소박함이야말로 정말 여유로운거고, 무언가 앞으로 앞으로만 내닫지 않았는가 하는 반성이 일어납니다.

정말 좋은 글과 좋은 그림 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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