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 아이돌론
사이토 미나코 지음, 나일등 옮김 / 한겨레출판 / 2017년 2월
평점 :
절판


서평계의 모두까기인형!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을 읽다

*사이토 미나코의 2002년작. 역자는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의 나일등 씨.


비판정신이란 무엇일까요? 남들이 다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말하는 태도? 상대의 논리적 허점과 전제의 불건전성을 논파하는 힘? 전체적인 완성도를 내려다보며 흠결을 찾아내는 능력? 

비판정신의 가장 소박한 정의는 ‘삐딱하게 보기‘가 아닐까요. 이미 설정된 시각에 대해 다른 각도를 설정하는 능력입니다. 비판적 읽기란 따라서 다른 각도에서 읽기라고 고쳐 말할 수 있겠습니다.

<문단 아이돌론>의 저자 사이토 미나코는 비판각을 철저하게, 중층적으로 둘러치고 담론을 구성할 수 있는 논자입니다. 페미니즘, 문예비평, 사회학, 문화인류학 등 여러 장르에 걸친 시각을 보유하고 있지요. 그중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문학적 상품에 관한 소비환경분석적인 시각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라거나 요시모토 바나나, 우에노 지즈코, 다치바나 다카시 등, 이 책에서 비평의 대상이 되는 저자는 다소의 미디어 리터러시(‘교양‘?)이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유명 작가들입니다. ˝미디어의 총아, 바로 문단과 논단의 아이돌˝(8쪽)이죠.

머리말에서 사이토는 이 책에서 그러한 아이돌을 둘러싸고 ˝작가와 독자, 저널리즘을 모두 포괄하는 시점에서 ‘아이돌이 되게 된 이유˝를 분석해보고 싶었˝(상동)다고 밝힙니다. 

게다가 대상 작가와 작품들의 발표시기는 80~90년대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때는 일본의 거품경제와 그 붕괴 여파로 인해 소비환경이 크게 요동쳤던 때입니다. 이런 시대상의 이유도 있기에, 문학적 상품(작품뿐 아니라 문학적 담론 역시 ‘소비되는 상품‘이라 본다면)에 대한 소비환경분석적 시각이 강화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사이토 미나토의 작업을 오해를 무릅쓰고 평하자면 ‘서평계의 모두까기인형‘이라고 할까요, ‘문학소녀판 진중권‘이라고 할까요. 이렇게 비유하는 게 ˝촌스럽고˝, 본질을 흐릴 가능성이 있다는 건 인정합니다. 

그러나 <문단 아이돌론>을 읽으며 느끼는 감촉은, 원조(?) 모두까기인형 진중권 선생의 초기작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시칠리아의 암소> <엑스 리브리스> 등에서 느꼈던, 대상을 가차없이 해체하여 볼품없는 민낯을 드러내게 만드는 말솜씨에 대한 신랄한 지적 쾌감이었습니다.


˝이런 수준의 감상문을 다 큰 어른이, 그것도 직업 문필가가 활자 미디어에 발표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16쪽,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호의적 평가에 대해)

˝이걸 촌스럽다고 하지 않으면 뭐라 해야 할까요...... 10년 전이면 몰라도 요즘 세상에 ‘오만코‘라는 말이 먹힐까? 이것이 당시 제가 느낀 솔직한 감상이었습니다.
(154쪽, 우에노 지즈코의 <오만코가 가득!> 본문 한 단락에 대해)

˝당시 이 책을 읽으면서 실소를 금치 못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여자는 남자에 비해 뇌세포 수가 적기 때문인지 천박함과 어리석음을 그 바탕으로 하며, 또 그것이 매력이 되기도 하지만 천박함과 어리석음이 이렇게까지 심해지면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다. (다치바나 다카시 <문명의 역설> 중 <시대와 상황의 병리학>, 1976)]
실로 ‘과학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209~210쪽, 다치바나 다카시의 위의 책에 대해)


위와 같이, 정도야 진중권 등에 비해 훨씬 부드럽지만 보통의 ‘서평‘에서는 볼 수 없는 냉소적인 ‘까는글‘은 우아하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 대상이 ‘세계의 대문호‘ 하루키와 요시모토 바나나, ‘현대의 르네상스적 지성‘ 다치바나 다카시 같은 ‘문단 권력자‘라는 점을 생각하면 더욱 스릴 있고 재밌지요.

그러나, 이 책을 읽는 독자로서 더욱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것이 독자의 소비태도에 대한 비판 역시 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단순히 한 작가의 책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책을 살 때, 실은 책을 둘러싼 모든 담론을 사고 있는 거죠. 국내 서점의 상품 소개란이나 책 띠지의 광고 문구 등을 보시면, 책의 ‘내용‘에 관해 소개하는 책이 의외로 적다는 걸 알게 됩니다. 

매대에서 중요시하는 건 그 책이 어떤 컨텐츠를 담고 있느냐가 아니라, 이것이 문단에서 - 혹은 시장에서 ‘이미‘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입니다. 

이 현상은 특히 ‘문학작품‘의 서지란에서 심합니다. 까딱하면 그 책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 채, 해외의 판매량과 저자의 성취(문학과는 상관이 없는 분야에서의 성취인 경우도 많습니다), 비평가들의 호의적인 평가 등의 정보만으로 구매를 결정해야 합니다.

베스트셀러가 만들어지는 구조 역시 콘텐츠의 질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담론에 의존하게 된 지도 오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정확히는 그 책의 ‘저자‘에 대한 담론 - 이 저자가 얼마나 ‘성공자‘인가 - 에 의존하는 거죠. 모든 담론이 저자로 집약된다 - 그것이 바로 ‘아이돌‘입니다.

우리는 책을 구매할 때뿐 아니라, 그것을 읽고 감상할 때에도 이러한 문학적 담론의 영향을 결정적으로 받고 있습니다. 즉, 나의 독서 경험은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나의 독서 감상은 나의 자유로운 감상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단 아이돌론>은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독자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독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담론에 취약한지, 뒤집어 말하자면 가장 내밀한 시간인 ‘혼자서 책을 읽는 시간‘ 자체가 얼마나 사회적 영향작용에 ‘오염‘(?)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은 결코 무서운 책, 어려운 책이 아닙니다. 신랄하고 우아하며 재치 넘치는 논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비판정신‘이 탑재되는, 그런 재밌고도 유용한 책입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아무래도 일본 문단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몇몇 작가는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80~90년대의 상황만을 다루기에 현재로선 시의성이 떨어진다는 점입니다. 이 정도면 감수할 만한 옥의 티죠.

사이토 미나코의 다른 책들도 정말 재밌어 보이는 게 많습니다. 하루빨리 번역되어 나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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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17-03-25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글 너무 잘읽고 갑니다!
책도 꼭 읽어보고 싶네요😄

Sophia 2017-03-25 11:3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책 정말 재밌습니다. 강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