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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의 사랑들 - 흙과 틈 사이로 자라난 비밀과 상실 그리고 식물에 관한 이야기
쿄 매클리어 지음, 김서해 옮김 / 바람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월터형은 원체 식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기분이 안좋을 때 식물을 사는 버릇이 있다. 어느날 형 집에 식물이 많이 늘어났다면 아마도 그 주엔 내가 형 속을 크게 썩였다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전에 발부터 목까지 풀코스로 마사지를 해드려야 편히 잠들 수 있다.
식물은 왠만큼 잘 키우시면서도 유독 고사리는 못키우시는게 재밌다. 누구는 햇빛에 두라고 하고 누구는 그늘에 두라고, 또 누구는 물을 많이 주라고/주지 말라고 말이 다 다르다며 결국 자기 마음대로 키우시다 그렇게 보낸 고사리가 대여섯 개는 되지 싶다. 그럼에도 고사리를 너무 좋아하셔서, 이번에 큰 집으로 이사를 하며 엄청나게 큰 고사리를 두 개나 사셨다. 올리버 색스처럼 고사리성애자(테리도필리아)라도 되는 것인지. 마음대로 기르면서도 이번엔 잘 클 것 같다는 (아마도 이로서 다섯 번째)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자랑했다. 형의 고사리 사랑에는 어떤 낙천성이 있다.
주말에 <바깥의 사랑들> 이라는 책을 읽었다. 주인공이 아버지의 장례식 이후, 유전자검사를 통해 아버지가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되며 시작되는 에세이다.
군대를 전역할 때 즈음, 이 군대만 끝나면 제대로 된 삶을 시작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때가 있었다. 서른살이 되면 으른의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 믿었던 이십대도 있었다. 전역과 서른살은 가만히 있어도 바지런히 다가오기 마련일터인데, 가만히 앉아 일과 사랑을 얻을 것이라는 태연자약은 어디서 가지게 된 걸까. 삶은 고사리보다 잎이 마르기 쉬울텐데.
저자는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다면 자신의 세계가 더 명확해질거라 믿는다. 적어도 나완 다르게 과단한 면이 있다. 다만 우린 어떤 연유로 그런 믿음들을 가지게 되는 걸까 궁금할 따름이다. 어떤 시간이 다가오면, 어떤 답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면 우린 원하던 것을 얻을 수 있을까? 그것이 어떤 답이 될지, 아니 어떤 질문이어야 하는지 요령부득한 채로 가지는 그 믿음들의 기층엔 무엇이 있는걸까?
저자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엄마에게 생부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질문한다. 원하던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명료하게 하려는 모든 시도들이 실패하는 것. 물은 일주일에 한 번씩 주어야 한다는 규칙이 실패하는 것. 이야기를 닮았고, 삶을 닮았다.
침묵에 지친 저자는 엄마의 방에서 찾은 사진들을 보며 엄마와 예사로운 대화를 한다. 이 원피스는 누가 사준건지, 이 뒷모습은 누가 찍어준건지. 진실에 가닿는 방식은 언제나 이렇게 근처를 서성이는 것이다.
허구헌날 돌아다니며 영화나 보는 워커 퍼시의 <영화광>의 주인공 빙크스에게 위로를 받은 것이 작년, 그리고 올해는 쿄 매클리어의 <바깥의 사랑들>을 보며 또 한 번 위로받는다. 경계를 서성이다 보면 조금씩 진실에 가닿게 될거란 나의 낙관에 한 권의 응원을 더한다. ’고사리를 잘 키우는 법’ 같은게 세상에 있겠지만서도 남의 말은 듣지 않는 형의 고집에 역시 식물 영양제 하나 더해 드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