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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지음, 조석현 옮김, 이정호 그림 / 알마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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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 연휴 끝자락에 집어들어 읽었다. 이 책은 작가가 신경과 전문의로 일하며 만났던 환자들의 사연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다루는 과가 과이기도 해서 그런지 굉장히 특이한 증세의 환자들이 나온다. 제목인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경우도 실제로 한 환자가 신경 손상으로 사물을 구체화하지 못하여 아내를 모자로 착각해 머리에 쓰려던 에피소드에서 따왔다.

하지만 책은 그런 사례들을 단순히 흥미위주로 소개하거나 뇌과학적인 측면에서만 접근하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병력, 그러니까 질병의 자연사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그 병과 싸우고 이기려는 인간의 경험에 더 집중한다. 그 기록에는 신기하게도 예술과 세상과의 교감, 유머 그리고 영혼이 있다. 신경학적으로는 아무런 가망이 없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분명 하나의 길을 살아간다. 그건 아마도 경험과학이 제시하지 못하는 길이다.

병에 걸린 하나의 개체에 마음을 둔다는 것은 의사가 세상에 필요한 이유이고, 올리버 색스는 너무나 따뜻한 시선으로 병에 걸린 인간들을 바라본다. 그 기록으로서의 이 책은 정말 보물이다. 작가의 영혼과 인간적 시선이 깃든 의사란 이 세상에 얼마나 축복인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나셨다니 너무 슬프다.

여담이지만 올리버 색스가 게이여서 찾아보니 참 특이한 삶을 사셨다. 의사이자 마약중독자였고(실연의 상처로..ㅠㅠ), 수영과 역도가 취미인데다(어쩐지 젊은시절 몸이 엄청 좋으시더라..) 오토바이 덕후셨다고..ㅋㅋ 세상을 떠나시기 전 마지막 파트너였던 작가분이 올리버 색스의 마지막 나날들을 기록한 책도 있던데 언젠간 읽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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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등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2
다와다 요코 지음, 유라주 옮김 / 민음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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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와다 요코의 소설 <개 신랑 들이기>와 <용의자의 야간열차>를 읽고 너무 좋아서, 다른 책들도 읽고싶어 찾아보니 마침 이 <헌등사>가 절판이었다. 중고로 어렵게 구해서 읽어야지 하던 차에 민음사에서 새로 출간이.. 표지력도 출중하여(?) 그냥 새로 샀다. 헌등사 구판 필요하신 분 드려요..


 표제작인 헌등사는 모종의 이유로 세계의 국경들이 폐쇄된, 디스토피아 세계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더 이상 늙지않는 증조할아버지 요시이와, 방사능으로 허약해진 증손자 무메이 두 사람이 일본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그린다. 


 이 소설의 닫혀버린 세계라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국경뿐만이 아니라, 외래어를 비롯한 다른 나라의 언어들을 쓰는 것조차 금지한 세계다. 그야말로 지금 이 안에 남은 것으로 내일을 궁리해야 한다. 우리 모두 이런 비슷한 상황을 겪어본 적이 있다. 맥주 이름 역병이 세계에 퍼진 뒤 방 안에 갇혀 냉장고 안에 남은 것이 무엇인지, 내가 사놓은 책중에 안읽었던 책은 무엇인지 훑어봤던 시간이 있었다. 


 사람이란 참 신기한 것이, 무언가를 오래 응시하면 그것이 갑자기 낯설어진다. 독일어와 일본어로 글을 쓰는 이중언어 작가로서 다와다 요코는 이 감각을 정말 잘 표현한다. 익숙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바라볼 때의 낯섦. 언어를 넘나들며 사고하다 허물어지는 자아의 경계.


 다와다 요코가 그린 닫힌 세계에서는, 안에 남은 것들이 서로 뒤섞인다. 정지해있던 언어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확장하는 세계가 아닌 침잠하는 세계의 에너지를 그린다. 인간이 그어놓은 경계라는 것은 이처럼 우습다. 나와 , 이쪽과 저쪽으로 나뉘어 소리치는 세상에서, 가만히 응시하는 것으로 경계를 더듬는 다와다 요코의 글들은 나를 마구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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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쿠쿠 랜드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 민음사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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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 진혁이, 동구리, 영인이와 함께 전주여행을 갔었더랬다. 원래 태민이와 유리도 함께해서 먹는모임 하계MT가 되어야 했지만 그 때 두 사람이 일이 너무 바빠 아쉽게도 4명만.

 익산에 살고있는 동구리는 우리가 오기 한 달 전부터 숙소를 비롯해서 같이 가볼 곳들을 여기저기 알아보았는데, 그 중에는 산 중턱에 있는 한옥도 있었다. 차를 타고 꽤 올라가니 정말 산 중턱에 한옥으로 된 근사한 카페와 식당, 그리고 서점이 있었다. 이런 곳에 서점이?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껏 여유와 멋이 느껴지는 서점이 나타났다.


“오 박준 시인이 사인한 시집이네. 이것봐”


내가 신기한듯 말하자 진혁이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인쇄한 것일 거라며 흘려 넘겼다. 괜히 약오른 나는 다른 시집을 펼쳐 필체를 대조해보이며 친필 사인임을 증명해냈다. 진혁이는 ‘그렇담 꽤 멋지군’ 하고 패배를 인정했다.


 집에 읽지 않은 책들이 아직 한가득이면서, 나는 한 손에 박준 시인의 시집을 들었다. 아니, 아직 읽지 않은 책들로 가득한 곳만큼 근사한 곳이 또 어디 있겠나, 라고 책을 사모으는 것을 합리화하며 다른 책들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여행지의 기념품으로 책을 산다는 것은 참 곤란한 버릇 중의 하나인데, 기본적으로 인터넷에서 다 구할 수 있으며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꼭 10년 전 1월, 25살 전재산을 털어서 갔던 한 달간의 유럽여행에서, 나는 프랑스 앙굴렘 만화축제에 눈이 뒤집혀 책을 말 그대로 가방 한가득 샀었다. 스페인으로 축구를 보러 갔다가 이탈리아에서 다시 만난 고등학교 친구는 책으로 가득 찬 트렁크를 끌고 나타난 나를 어이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내 싸구려 아메리칸 투어리스터 트렁크는 결국 바퀴가 박살이 나버렸고 자라(ZARA)에서 급하게 가방을 사 책을 낑낑대며 들고다녔던 기억이 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앞으로 트렁크는 무조건 비싸고 튼튼한 것만 살것이며, 이제 절대 여행에서 책을 사오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도 친구도 그게 거짓말이란 것을 알았다. 리모아 캐리어가 그런 가격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전주 서점에서는 시집 딱 한 권만 사야지 싶었는데 낯익은 이름이 보였다. 인스타 이웃분이신 안대근님이 쓰신 에세이집이었다. 평소 그 분의 글을 좋아하면서도 막상 책 사는 것을 까먹고 있었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기쁜 마음으로 책 두 권을 계산대에 올렸다. 대부분의 에세이는 과대평가되었다고 궁시렁대는 진혁이 명치를 한 대 치고 결제를 했다.


 여행하며 그 동네 서점을 들리는 것이 습관이라, 여행하며 들른 서점 이야기는 끝도 없다. 월터형과 놀러간 제주에서 산 슈니츨러의 <한밤의 도박> (아마도 여행 얼마 전 강원랜드에서 신나게 돈을 딴 강렬한 기억으로 선택..), 선우정아가 내내 흘러나오고 짧은 머리의 여자분이 운영하셨던 익산의 서점에서 산 토머스 핀천 소설집, 파리의 ‘셰익스피어 인 컴퍼니’에서 산 헤밍웨이 소설들까지. 여행 내내 소설을 이고지며 여행하다 마침내 오디세우스처럼 집으로 돌아와 책장에 가지런히 꽂아 놓는다. 거짓말이고, 사실은 책상 위에 탑처럼 쌓아 놓는다. 


 친한 형님의 추천으로 소설 <클라우드 쿠쿠 랜드>를 읽고 그런 여행들이 생각났다. 책을, 이야기를 운반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대를 넘나드는 700년간의 이야기. 소설 속 지노와 안나, 오메이르처럼 목숨을 걸고 책을 지키고 운반한 것은 아니지만, 그 책들의 물성에는 그 때의 여행들이 담겨있다. 진혁이의 궁시렁거림, 제주 서점 강아지의 입냄새, 셰익스피어 인 컴퍼니의 분위기와 도장. 


 아마도 다음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 이삿짐 센터에 추가요금을 왕창 물며 월터형한테 욕을 한바가지 먹고 같이 책을 정리할 것이다. 아 이 책은 그 때 샀었지. 이건 10년 전 여행에서.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만 감춰있을 뿐이고, 때로 다시 발견된다. 그 이야기는 헤밍웨이의 것이기도 하지만, 내 이야기기도 하다. 얼마 전 다시 본 영화 <더 폴>에서 꼬맹이가 소리쳤던 것처럼. 


 파라데이소스(παράδεισος)는 고대 그리스어로 정원을 뜻하는 단어다. 이게 파라다이스가 되었다니, 참으로 재미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가장먼저, 책상 위의 식물들이 보인다. 식물등과 높이를 맞추려고 읽은 책들을 화분 밑에 잔뜩 쌓아놓았다. 식물과 책이 쌓인 작은 정원을 보며 난 비로소 낙원에 도착했구나 싶다. 낙원을 찾아 떠났던 10년 전의 나는 고향으로 돌아와 비로소 세상이 지금 이대로 충분함을, 말없이 가없는 세계가 육박함을 느낀다.


아마도 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사랑해 마지 않을 책인 같다. 민음사 유튜브를 보고 언젠가 읽어야지 하며 사놨다가 친한 형의 추천으로 꺼내들었다. 덕분에 행복한 연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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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스터리츠 을유세계문학전집 19
W. G. 제발트 지음, 안미현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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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때 의학드라마 <하우스>에 빠져서 살았다. (지금도 내 책상 위에는 빨간색 프린스턴 플레인스보로 머그컵이..) 하우스(House)라는 이름 자체가 셜록 홈즈(Holmes)에서 따오기도 했고, 원인 불명의 병을 찾는 것이 탐정이 범인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드라마 답게 의학드라마임에도 추리물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는, 정말 추리물 느낌이 진하게 들었던 시즌4의 시즌피날레 에피소드인데, 자기가 탔던 버스가 교통사고를 당해 기억을 잃어버린 하우스가 교통사고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찾아내는 에피소드다. 뭔가 중요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직감하기에 하우스는 단체로 병원에 들린 버스의 승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하다가, 급기야 그들의 소지품을 한군데 다 모아놓고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실제로 후각은 기억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마도 그것은 기억에 대한 어떤 감정일텐데, 난 월터 형이 비오기 직전의 흙냄새(실제로는 미생물 냄새라고 한다. 인간이 이 냄새를 다른 동물보다 월등하게 잘 맡도록 진화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줄곧 궁금했지만, 아직 시원한 답변은 읽어보지 못했다)를 맡으면 나에 대한 따뜻한 기억이 떠올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비싼 거금을 들여서 이 ‘비오기 전 흙냄새’ 향수를 사서 쓰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스터리츠>를 읽으면 인간의 기억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게 된다. 작가 제발트는 기억을 공간과 엮고싶었나보다. 300페이지 내내 공간에 대한 묘사만 주구장창 하기 때문이다. 나는 원체 내 주위의 세상에 관심이 없는 족속이라, 때때로 누군가 부산의 볼거리나 맛집을 물어보면 당황한다. 부산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집 근처에 뭐가 있는지 조차 별 관심이 없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정자동 맛집도 잘 몰라서, 처음 남자를 만난 뒤 준비된 레파토리가 끝나면 메뉴 선정에 고민이 시작된다. 그런 나에게 300페이지짜리 공간묘사는 정말이지 고난이었다. 저 기둥의 생김새는 나에게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걸. 내가 빠져드는 부분은, 외부세계보다는 인간의 내면이다. 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을 좋아하고 그 사람의 머릿속으로 들어가는 경험이 좋다. 사실 책보다 인간이 더 흥미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인간의 내면이란, 시간 바깥에 존재한다. 기억과 감정의 편린들은 어디에도 도달하지 못하고 그저 쌓인다. 마치 방 안에 잘못 들어온 나방처럼. 길 잃은 나방은 잘못된 공간과 시간 속에서, 가만히 정지한 채로, 혼란스러워하다 죽는다. 길 잃은 나방에게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난 그저 내가 이해한 내면들을 이야기로 남길 수 있길 간절히 소망할 뿐이다.

소설을 읽다보면 비로소 인간의 기억에 공간은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느끼게 된다. 길잃은 마음과 기억에 비치는 영원한 햇살. 공간은 사라져가는 기억을 구해낸다. 중반까지 너무나 지루했던 이야기에 결국 설득당해 이런 글을 쓰게 되는 이유다. 난 내 안으로 깊어지며 자라왔다. 혼자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면서. 월터형을 만나면서 동시에 넓어져가는 기분이다. 정선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충정로에서 철길 떡볶이를 먹으면서. 공간은 또한 삶을 넓힌다.

소설 중간 중간에 나오는 흑백 사진들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아우스터리츠에게 소중했던 공간과 가구, 잡동사니, 그리고 그의 어린 시절의 사진들이 기억에 물성을 더한다. 나도 사진을 찍고싶어졌다.

난 펜탁스 필름카메라를 하나 가지고 있는데, 셔터가 고장나 셔터스피드를 낮춰서 찍으면 카메라의 거울이 다시 내려오지 않는다. 어두운 것을 가만히 응시해 밝힐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다보니 손이 잘 안가 안에 들어있는 필름이 몇 달째 그대로다. 문득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하나 사볼까 싶어졌다. 최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셔터스피드와 조리개도 조절이 가능하다던데. 현상하러 사진관 가는것도 귀찮으니까. 한 달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 결국 어제 배송이 왔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 흘러나온 내 자아들이 눌러붙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그득그득한 내 집에서 형을 한 번 찍어봤다. 종종 사진을 남겨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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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카디아
로런 그로프 지음, 박찬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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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떠나고 나면, 혹은 어딘가를 떠나온 뒤에, 그것은 더이상 현실이 아님을, 그리고 내 안에 이야기로 남을 것임을 안다. 그리고 어떤 기억은 이야기로 남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야기라는 것은 결국 어딘가를 떠나와야 쓰여지는 것인지. 그곳에 머물러서는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없는 것인지. 아마도 좋은 이야기란, 그 때와 지금 사이의 간극이다.

소설 <아르카디아>는 1970년대 이상주의자 공동체에서 태어난 주인공 비트의 삶을 그린다. 주인공 비트가 어디로 향하는지, 어디로부터 떠나왔는지를 되내이다보면 밀려오는 먹먹한 감동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어디로 돌아왔는지를. 잠시 머무르는 곳에 삶이 있다는 것, 어딘가로 내딛는 순간에 이야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아마도 창작이란, 떠나온 곳을 향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사람들이 순진하다고 비웃을 이상 공동체를 그리지만, 그 모든 순간에는 행복한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잊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사상이나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 보다도, 그 이야기를 하고 듣는 사람들이다.

머무르지도, 떠나지도 못하는 어쩔 줄 모르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책 한 권이 그 해답을 내려줄 리는 만무하겠지만, 내가 떠나온 것을 돌아볼 고요한 밤들과, 내게도 돌아올 곳이 있다는 위안에 감사하며 글을 끄적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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