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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름의 끝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86
이성복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0년 6월
평점 :
이성복, <그 여름의 끝>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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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복 시인의 <그 여름의 끝>은 1990년 출간된 그의 세번째 시집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이 시집은 사랑에 그리움이 섞인 색채로 빛나고 있다.
이성복 시인의 <서해> 라는 시를 아마 수능 공부를 했던 수험생들은 다 알 것이다.
EBS 수능특강 문학에 실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라는 시 속의 문장에 흠뻑 빠졌던 적이 있었다.
시를 읽고 어떠한 사랑이 떠올랐다.
당신의 자리를 마련해두고, 그 공간을 마치 지켜주는 듯 환히 밝혀주는 등대같은 사랑.
그러나 등대는 바다 한 가운데서 자신은 어둠에 감추고, 늘 외롭게 존재한다.
바다의 방문객들을 밝혀줌으로써 자신을 유일하게 드러내는.
모두가 그것의 빛을 따라갈 때 등대는 또 모두와 멀어지게 된다.
그의 빛은 언제나 만남과 동시에 이별을 고한다.
자신의 빛이 모두와 인연을 맺게 하지만, 그들이 안전하게 항해하는 뒷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숙명.
그것이 등대의 사랑이다.
그러니 등대는 매 순간 사랑과 그리움에 마음이 들끓을 것이다.
그리움은 사람을 얼마나 무력한 존재로 만드는 것인지.
서해라는 시에는 등대라는 단어와 이미지는 등장하지 않지만, 나는 시를 읽으며 등대의 사랑이 느껴졌다.
바다 한가운데 뿌리 박혀, 움직일 수 없으면서도 사랑과 그리움의 애달픈 감정에 끝없이 파도치는 마음.
그것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인생.
거룩하면서도 우아하고 아늑한 품이 느껴지는 사랑이다.
<그 여름의 끝>에 실린 마지막 장의 시의 제목 또한 바로 <그 여름의 끝>이다.
이 시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이다.
시를 읽으면서 백일홍의 붉은 빛깔이 무수한 비바람을 이기며, 중력을 거슬러 위로 솟구치는 영상이 눈 앞에 계속해서 그려졌다.
거센 바람에도 날카로운 빗방울에도 지지 않는 그 꽃은,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다고 한다.
넘어져도 무너져도 그럼 그것대로, 그 자리에서 다시 기어오르고 달라붙는 끈질긴 생명력.
인간의 생에 대한 의지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인간은 그 아름다운 백일홍의 꽃보다는 더 비참하고 처절한 외양을 갖고 있다.
고통과 두려움 속에 잠식된 인간의 민낯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어떻게든 삶 쪽으로 나아가려는 투쟁은 멀리서 보기엔 비장한 아름다움이 있다고 해도, 그것을 품고 있는 인간의 겉모습은 심지어 자신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을 만큼 초라하게 느껴진다.
생과의 사투는 그것의 웅장한 이미지에 비해 인간에게는 끝없이 처량함을 느끼게 하면서, 때로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게 만든다.
비극이란 것이 나 자신에게서 마지막 남은 아름다움까지 모조리 빼앗아 가는 걸,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찰리 채플린이 말한 바로 그대로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그러나, 나는 조금은 다르게 생각한다.
그 처량하고 초라한 모습이 과연 비극의 색채만 띠고 있을까?
바닥에서 허공으로 수없이 기어오르는 의지, 단 한번 웃기 위해 처절하게 움직여야 했을 그 부단한 노동이 비극으로 보이는가?
아니, 나에게는 그것이 희극으로 보인다.
살아있는 것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생에 대한 눈부신 의지 뒤에 감춰진 끝없는 눈물과 인내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면,
그 삶이 희극으로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여름의 끝>에서 백일홍의 생명력이 희극으로 보인 건, 그가 아름다운 외양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몇차례 폭풍 속에서도 쓰러지지 않아서 그의 삶이 희극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절망을 끊어내었기 때문에 희극인 것이다.
비바람 속에 무너져 매달리고 타오르는 자신의 모습이 비록 굴욕적이라 할지라도,
스스로는 그것을 희극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까이에서도 희극인 것이다.
오히려 그 장엄한 사투를 밖에서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은 그것을 비극이라 볼 것이다.
하지만 기꺼이 안으로 들어가 삶을 함께 살아본다면, 멀리서 보기에 초라하고 비극이었던 것들이 얼마나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생과의 사투를 벌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그 세계에 기꺼이, 기쁘게 함께 해보길 바란다.
힘겹게 나아가는 자신의 삶을 부디 희극으로 보았으면 좋겠다.
의외로 사람들은 타인의 삶을 아름답게 볼 줄 알면서도 자신의 삶은 아름답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희극으로 볼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진정 행복한 삶이 아닐까?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부디 이 시 속의 백일홍처럼 자신의 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다시 말하고 싶다.
"삶은 멀리서 보면 비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