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희망
고희석 지음 / 청동거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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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복지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현직자들의 생생한 삶의 현장 이야기를 찾아보다가 알게 된 고희석 작가님의 에세이 '절대희망'.

작가님은 물리치료사이면서 동시에 사회복지사로 30년을 근무해오셨다고 한다.

원래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하시다가, 28살에 슈바이처의 '나의 생애와 사상'을 읽고, 의료봉사의 삶에 매료되어 뒤늦게 입시 준비를 하시다가 현실적 여건에 부딪히게 되면서

물리치료학과로 진학하시게 되고, 물리치료사로서 사회복지시설과 신망애재활원 등에서 장애인을 위한 치료와 사회복지 업무를 평생 해오셨다.

이 에세이에 담긴 이야기들은 작가님께서 평생을 장애인과 함께 시설에서 생활하시면서 겪었던 것들을 모은 것이다.

예전에 고 이태석 신부님의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라는 에세이를 읽은 적이 있다.

고희석 작가님께서 슈바이처의 책을 읽고 의료봉사의 꿈을 가진 것처럼, 나는 이태석 신부님의 책을 읽고 의료봉사의 삶을 꿈꾸었다.

그 책에서 결정적으로 감명받은 한 구절이 있다.

전쟁으로 버려진 땅인 남수단의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해봤더니, '그들과 함께 사는 것'. 이것만이 의식주,교육,의료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는 남수단의 사람들에게 신부님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한다.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국제적 여론의 그 어떤 '말'보다도, 역시 직접 '실천'으로 행하는 것이 중요한 것임을 신부님의 책에서 배웠고, 이 책 '절대희망' 에서도 다시 한번 배우게 되었다.


작가님은 물리치료사로서 재활원에 근무하셨지만, 사회복지업무에 대한 뜻이 강하셔서 생활재활교사 업무에 지원하셨었다고 한다. 생활재활교사의 업무가 얼마나 고된 것인지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작가님 또한 가장 힘들었던 기억으로 남아있는 한 경험을 소개하셨다.

백명이 넘는 장애인들을 모시고 어느 단체의 초대를 받아 서울의 유명 아트홀의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고 한다. 관람 중에 한 지적장애인 분께서 대변실금을 하셨고 작가님께서 그분을 급히 모시고 화장실로 가서 바지를 타고 흘러내린 대변을 닦아내고 씻기고 하시는데, 한참을 그렇게 땀범벅이 되어 해결하고 나왔더니 공연 중이라 다시 못 들어간다는 안내에, 밖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공연장 안에서 들리는 유명인사들의 축사 소리를 듣는데, 방금 화장실에서 타인의 대변을 닦느라 힘들었을텐데도, 작가님은 자신이 한 일이 저 공연장 안의 연설보다 더 값지고 귀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렇게도 꿈꿔왔던 봉사의 삶을 사는 것, 지금 누군가의 똥을 닦는 일에서 보람과 가치를 느꼈다고.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내가 진정 느꼈던 두가지는, 사회복지시설의 생활재활업무를 담당하시는 사회복지사의 일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와, 말로써 봉사의 삶을 외치는 것은 쉽지만 실제로 그것을 실천하는 삶이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였다. 작가님은 그 업무를 3년간 하시고 다시 물리치료의 일로 복귀하셨다고 한다. 단지 월급 때문이라면 그 고된 일은 절대 못할 것이다. 희생, 헌신, 사랑 이런 것들이 없다면 사회복지사로서의 삶은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없을 것이다. 그 현장에서 평생을 일해오신 모든 사회복지사분들이 정말 존경스러웠다.


'오롯이 오늘을 사는 분들이기에, 오늘의 행복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사회복지사가 해야 할 일인 듯 싶다.' 라고 하신 부분에서 참 많은 것을 느꼈다.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사회복지사 본인의 헌신은 그 행복 이상으로 커야만 겨우 전해질 수 있을 것 같았다. 품고 있는 사랑이 얼마나 강하고 커야만 누군가의 삶을 지탱할 수 있는 걸까? 봉사의 삶이란 정말 가볍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고희석 작가님께서 재활원의 장애인 환자들을 치료하실 때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하셨다고 한다.

'신체'를 치료한다는 관점과 '사람'을 치료한다는 관점. 복지시설의 환자들은 소위 세상 끝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어떻게해서든 세상의 '안'으로 밀어 넣고 싶으셨다고 한다. 사람을 지탱하고 세상의 안으로 밀어 넣는 일, 이것이 '사회복지'의 일이다. 작가님은 자기자신을 시설의 '일부' 라고 생각하시면서 장애인 환자들의 치료에 임했다고 하신다. 시설과 시설의 장애인 분들과 '하나가 되는 삶'을 살아오신 것이다. 그 오랜 세월 속에서도 항상 배우시고 행복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실천하는 삶을 살아오신 작가님의 '직업'으로서의 물리치료, 사회복지 일은 사랑과 헌신 그 자체의 삶인 것 같다.


작가님께서 신망애재활원에서 장애인분들과 함께 지내시면서 그들에게서 배우고 싶은 세상이 있다고 하셨다. 첫째는 '뛰어난 현실 수용력', 둘째는 '욕심이 없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는 '속도 대신 흐름을 선택한다' 는 점이다. 특히 세번째에서 나는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비장애인들의 사회에서는 '속도'가 곧 생명이다. 빨리 성공하고, 지위를 획득하고, 성취하기 위해 살아간다. 몇개월 안에 자격증을 따고, 시험에 합격하고, 몇년 안에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몇년 안에 집을 사고, 몇년 안에 승진을 하는 등등. 신체적 장애를 가지지 않은 비장애인들은 최대한 빠른 기간 안에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단히 움직이고 노력한다. 이런 꿈들이 장애인이라고 없겠냐마는, 장애인에게 있어 속도에 해당하는 '느림'과 '빠름'은 선택 사항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흐름'에 삶을 맡긴다. 순간순간 존재의 욕심과 한탄이 있지만 결과에 바로 순응한다. 신체의 장애로부터 오는, 겪을 수 밖에 없는 현실에 곧바로 순응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운명'이라는 것은 절대 남한테 맡겨서는 안되는, 오로지 내가 선택하고 끌고가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온전히 결정할 수 없는 장애인의 삶과, 그들의 삶을 헌신과 희생으로 지탱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삶을 이 책에서 간접적으로 체험하면서, 자신의 운명을 남에게 기꺼이 맡기는 것과 그 운명을 따뜻하게 감싸고 돌보는 거룩한 공동체가 있음을 보았다. 희망으로 온전히 극복되는 것만이 있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절대희망'이라는 것이 장애인과 그들을 지탱하는 복지시설의 많은 종사자들의 가슴 속 한 켠에서 단단히 자리잡고 있다는 걸 이 책에서 배웠다.

사회복지 일을 꿈꾸는 나는 책을 읽는 내내, 그 공동체에서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을 가진 건 사실이다. 하지만 고희석 작가님께서 20대 시절 의료봉사의 꿈을 품게 되고 평생 실천해오신 것처럼, 나도 그 일을 쉽게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이 이처럼 위로가 되는 날도 있다. 꿈을 포기할 순 없기에, 이젠 정면돌파 할 일만 남았다.

이 책을 쓰신 고희석 작가님께 감사드린다. 희망은 역시 약한 것이 아님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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