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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당신의 손을 잡을 때
잭 캔필드, 마크 빅터 한센 지음, 이창식 옮김 / 푸른숲 / 2000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이 당신의 손을 잡을 때'
몇 년전에 헌책방에서 중고책들을 구입한 적이 있다.
책을 엄청 저렴한 가격에 판매하시길래,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구매할 수 있었다.
택배박스를 여는데, 주문하지 않은 낯선 책이 들어있었다.
포스트잇에 '서비스 책입니다. 감사합니다'라고 적힌.
그게 이 책과의 첫만남이었다.
선물과도 같은 책, 겨울철 난로보다도 참 따뜻한 책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이 책의 저자인 '잭 캔필드'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라는 책이 부모님 세대에 유명한 책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께서 좋아하시는 류시화 작가님이 번역하셨다고 해서, 그 이후에 개정판으로 읽어보았고, 잭 캔필드 작가님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책 제목에서 그렇듯이 이 책은 사랑에 관한 다양한 에피소드를 담은 책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친절함'에 대한 이야기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사랑'이라는 것이 단순히 누구를 좋아하는 감정만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본 최초의 사랑은 무엇이었나?
지난 날들을 떠올려보았다.
참 많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이상하게 사랑이 녹아있던 추억은 언제나 눈물과 함께 찾아온다.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 수업이 끝나고 청소당번이라서 담임 선생님과 함께 청소 중이었는데, 복도에서 기침을 심하게 하는 아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은 기침 소리만 듣고도 얼굴이 하얗게 변하며 갑자기 복도로 뛰어나가 그 아이에게 '기침 소리가 심하니깐 꼭 부모님하고 병원가야되 알았지?' 라며 거듭 당부했다. 당시 나는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었고, 선생님이 왜 그렇게 놀란 표정으로 그 아이에게 달려 나갔는지 이해가지 않았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선생님의 행동이 이해되었다. 내 막내 동생이 어렸을 때 폐렴에 심하게 걸려서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았었고, 간병하신던 어머니의 말씀으로는 몇번의 심각한 고비가 있었다고 한다. 그때 나는 중학생이었고, 동생이 잘못될까봐 학교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동생에게 줄 편지를 울면서 썼던 기억이 있다. 그제서야 그때 선생님의 행동이 이해가 갔다. 그 아이의 기침소리만 듣고도 선생님은 혹시라도 급성폐렴으로 아이가 위독해질까봐 갑자기 뛰쳐나가 아이에게 부모님과 당장 병원에 가보라고 말한 것이었다. 선생님 반의 학생도 아니었고, 전혀 모르는 아이였는데 그때 선생님의 세상 무너진 듯 걱정스러운 표정이 바로 내가 처음으로 느낀 '사랑'의 얼굴이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위하는 그 무엇, 그것의 행동. 나는 그것이 사랑이라고 느끼고 배웠다.
선생님같은 어른이 되어야지, 라고 그때 생각했었던 것 같다.
얼마전에 도서관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당시 첫출근 일주일 전, 나는 내가 일할 곳의 업무를 파악하기 위해서 주말 아침 일찍 도서관을 방문했다.
우리 지역의 시립도서관은 매년 50만명의 이용자들이 방문하여 책을 읽고 공부하는 곳이라, 특히 주말에는 아침 9시 문 열자마자 1시간도 안되서 자리가 다 찬다.
그날도 역시 자리가 빨리 차서, 앉을 곳이 없어 학생들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는 잠깐 물을 마시러 휴게실에 갔고,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 아이 둘이 책가방을 옆에 두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딱 봐도 도서관에 자리가 없어서 휴게실에 쪼그려 앉아있는 것 같았다. 부모님께서 차 태워서 도서관에 내려줬을테고, 아마 부모님께서 데릴러오시기 전까진 이 아이들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해야만 할것이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혹시 자리가 없어서 여기 있는거냐고 물었고, 아이들은 그렇다고 했다.
알고보니 둘이 형제였고 형은 이제 중1, 동생은 초등학생이었고, 공부하러 왔는데 자료실에 자리가 없어서 휴게실에서 공부하려고 했단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1층에 있는 어린이도서관에 가면 공부할 수 있는 자리가 많다고 했고, 동생이 초등학생이라서 같이 이용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그러자 갑자기 세상 가장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형과 동생이 두 손 꼭 잡고 1층 어린이 도서관으로 뛰어갔다. 사실 모르는 꼬마들한테 다가가서 말걸기가 부끄러웠고, 그 아이들이 공부할 자리가 없어 휴게실에 쪼그려 앉아있는 걸 그냥 지나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용기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고, 그 아이들이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공부할 수 있도록 돕고 싶었다. 절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도서관에서 일한다는 것에 어떤 책임감이 갑자기 느껴졌었다.
아직까지도 내 가슴에 남아있는 아름다운 장면은 그 형제의 뒷모습이었다.
오늘 도서관에서 동생이랑 같이 책도 읽고 공부하고 집에 갈 수 있다는, 그 생각에 너무 좋아서 동생 손 꼭 잡고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뛰어가는 그 형제의 뒷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동생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동생을 챙겨야 하는 첫째들의 책임감과 사랑을.
사실 첫째들도 동생을 챙기기엔 너무 어리고, 무섭고, 모든 게 다 처음인데 말이다. 그래도 첫째기에 언제나 강한 척, 모범을 보여야하는 숙명. 그런데도 그렇게 좋아서 동생 손 꼭 잡고 공부하러 도서관으로 뛰어가는 형제를 보며, 또 나는 '사랑'을 보고 느꼈다.
도서관에서 일할 때도 역시나 사랑을 경험한 순간이 참 많았다.
그 중 가장 기억나는건
도서관 마감시간 전, 책 정리하느라 가장 바쁜 시간이었고
아이들이 드넓은 도서관 구석구석마다 숨겨놓은 책들을 챙겨서 서가에 다시 꽂아야 할 때,
길게 줄지어진 소파 뒤로 아이들이 떨구어 놓은 책을 모조리 꺼내야하는데 그게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근데 소파에 어떤 아저씨께서 앉아계셨고, 그 아저씨 자리 뒤쪽으로 넘어간 책을 다 꺼내야되서 아저씨께 잠깐 비켜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아니 이게 웬걸. 이미 그 아저씨께서 소파 뒤로 넘어간 책들을 다 꺼내서 소파 위에 두셨던 것이다.
아마 내가 땀 뻘뻘 흘리며, 힘들게 구석 틈틈이 책을 꺼내는 모습을 보셨나보다. 정말 바뻤었고, 도저히 웃을 수 없을만큼 업무량이 많았을 때라 좋지 않은 표정으로 하루종일 일했을텐데. 내가 해야할 일이었는데, 책을 미리 다 정리해주신 아저씨께 너무 감사했다. 세상엔 이렇게 친절한 사람이 있구나. 나는 그때부터 더 책임감을 갖고 아무리 힘들어도 웃으며, 열심히 일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친절함'을 베푸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런 목적 없이 사람을 돕고 또 무심히 지나간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치인들의 거대한 신념과 담론보다,
그저 오늘, 내가 있는 자리에서 친절함을 베풀고, 선행을 실천하는 것이 진정 세상을 바꾸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사랑'의 참모습이다.
그저 누군가를, 혹은 어떤것을 좋아하는 '감정'에 놀아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내 감정만을 생각하고 그 감정 속에 빠지는 것이 어떻게 사랑이겠는가.
사랑은 대상에서 다른 대상에게로, 어떠한 영향이나 변화가 이루어지며 발생하는, 알수 없는 '에너지'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각자가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들이 다르지만, 나혼자만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들이 사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가질 수 있는 건 사랑이 아니다.
사랑은 적어도 어떤 것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어야 한다.
나의 행동이 어떤이에게 영향을 미치게 되고, 또 그것이 다른 것으로의 변화를 일으키게 되고.
'반향(反響)'이라는 단어가 사랑을 잘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원인과 결과라는 형식에 영향을 미치는,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그 무엇이든간에, 대상에서 대상에게로 끝없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인간의 의지. 나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느끼며 말하는 것들은 결국 어떤 감정이나 우리가 가진 것들이 절대 아니고,
그저 알 수 없는 원인과 결과들의 향연이라고 생각한다.
존재하는 건 다만 우리의 선택과 행동, 그리고 의지일뿐이다.
사랑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눈 앞에 펼쳐진 결과들 속에서 우리의 의지가 이끌어낸 어떤 영혼의 울림을 느끼는 것이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이야기들이 이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영화 '나비가 날개를 펄럭이면'에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의미를 잘 나타내주는 대사 있었다.
"보다시피 모든 사소한 행위 뒤에는 아무리 하찮을지라도 무한한 진실이 실려있네. 다시 말하면 끝없는 반향과 결과를 내포하는 거지" 라는.
마지막으로 이 책의 표지에 적힌 몇가지의 문장들을 적는다.
내가 그동안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잘 나타내주는 문장들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가 가진 것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주어야 한다.'
'가장 위대한 사랑의 실천은 작은 친절을 습관처럼 행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는 건 그 사람의 아름다움이 아닌 친절함 때문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던 때가 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은 순간이었다.'
'사랑으로 지어진 집은 천년을 견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