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아고라 폐인들 엮음 / 여우와두루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이 두 권 다 2008년에 타오른 촛불을 그 무엇보다도 더 생생하게 증언한 책이다. 그렇기에 전자를 읽고 독후감을 쓰자마자 이 책에 관한 독후감도 그에 이어 단숨에 쓰고 싶었다. 하지만 억지로 밤을 새면서 독후감 한 편을 겨우 쓰는 바람에, 몸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 글을 쉴새없이 이어서 쓸 수가 없었다. 밤을 굳이 새 가면서 아무도 시키지 않은 글을 쓸 필요는 너무나도 사기성이 짙은 중도 실용을 외치는 세상에서는 전혀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그렇게 한 까닭은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너무나도 많지만 글 한 편도 제대로 써내지 못한 채 멍하니 신문만 쳐다보는 몇 년째 계속 되는 이 미친 고질을 밤을 샌 다음 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려고 했기 때문이다.

 

사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여름마다 반복되는 이 고질을 2006년과 2007년에는 군대 근무와 당직이 이어나갔고, 2008년에는 뜨거운 여름 내내 이어진 촛불 집회가 유지했다. 낮에는 정신 없이 아고라에 올라오는 글을 읽고, 저녁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집회에 참석하러 나갔다. 집회가 한창일 때는 밤을 새는 일이 부지기수였고, 낮과 밤이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그 여름은 부산대학교 학생이자 촛불 예비군 중대 제 1소대원으로서 주로 보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 엉망진창인 일상에서 나는 분명한 모순을 체험했다. 한 편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죽어가는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산 역사 현장에 나가서 나름대로 한몫하고자 힘썼다고 자부했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면서 분명히 느낄 수 있는 길어진 시간 동안 전공 공부와 개인 공부도 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일단 전체 평점이 3점 이하로는 절대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지키기는 했지만, 조금만 더 강한 의지를 발휘해서 수업도 꼬박꼬박 잘 들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 모순을 더 심하게 했다. 되든 안 되든 항상 그랬지만 특히 그 때 더 심하게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안락은 위기에 처한 사회 앞에서는 뒷전이 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에 가까운 무서운(!) 논리까지 동원했지만, 혼란스러운 자아를 진정시키는 데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2008년에 생활 박자(circadian rhythm)는 엉망이 되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민중이 바랐던 것처럼 이명박이 대국민 하야 선언이라고 했거나 국정 기조를 전환했더라면 그나마 대한민국사 속에서 한 몫 했다는 아주 작은 보람이라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바랐던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고라에서 저지하려고 했던 것들 대부분이 현실이 되었고, 촛불 집회에 참가하는 인원이 차츰 줄어들면서 수구 세력은 맹렬한 보복을 가하고 있다. 흔히 말하는 '촛불 - Season 2'에 접어들었다는 판단이 우세해지면서 '촛불 - Season 3'를 준비하고자 부경 아고라에 들어갔다가 어처구니없는 내부 분란에 휩싸여 쫓겨나듯이 탈퇴하고 말았다. 2009년 1월 1일에 희부옇게 밝아오는 부산대학교 앞 거리를 힘없이 터벅터벅 걸으면서, 속으로 얼마나 서럽게 울부짖었는지 모른다. 촛불이 타오르던 현장과 관련된 모든 것들이 그 때는 그저 한없이 원망스럽기만 했다.

 

사실 이 책 또한 그 절규 속에 내가 원망한 대상 가운데 하나다. 이 책에 담긴 모든 사진과 글(이 책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인터넷 댓글도 분명히 '글'이라는 칭호를 얻었다)을 다음 아고라에서 직접 읽으면서, 나는 이런 글을 나중에도 다시 읽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 모든 글이 세상에 이렇게 망조가 짙게 드리우지 않았다면 나타날 필요가 없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고라에 올라오는 글을 그토록 심각하게 읽고 고민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책이라는 개념을 모호하게 만드는 이 책이 나온 뒤, 이상하게도 현실은 더욱 암담해졌다. '어둠은 빛을 밝힐 수 없습니다'보다 훨씬 더 생생한 민주주의 쟁취 투쟁 현장을 담았지만, 현실은 그에 보답하지 못했다. 이 책 마지막에 남은 아이 손에 든 촛불마저 꺼져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탄압은 더욱 거세지고 상식은 죽어가며 촛불은 횃불로 다시 타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켜져 있는 촛불을 보면서 희망을 찾기에도 이제는 지친다.

 

촛불이 다시 타오를 그 날을 기대하면서 그나마 여유로운 시간에 내가 한 사람으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만 부지런히 닦아도 모자라거늘, 2009년 가운데 벌써 반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는데도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놓은 것이 없을 정도로 숱한 시간을 방탕하게 흘려보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알고 있으면서도 정작 필요한 때 냉철하게 판단하고 행동하지 못했기에, 억지로 밤을 새면서 몸을 축내가며 하지 않아도 될 생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줍잖은 지식을 가지고 '천민 민주주의', '디지털 마오이즘', '디지털 포퓰리즘' 따위 해괴한 망언을 늘어놓는 코 빨간 주성영을 선거철만 되면 어김없이 국회의원으로 내밀고 몇 개월 뒤도 예측하지 못하고 포퓰리즘에 속아넘어가 능력도 없는 공식 전과 14범(?!) 사기꾼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앉힌 국민들이 대가를 치르는 것과 같이 말이다. 

 

책을 뒤적거리며 독후감을 쓰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아침을 맛있게 먹었거늘 입맛이 쓰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이 책에 들어간 모든 내용을 남긴 수많은 누리꾼들이 겪었을 좌절과 분노를 자꾸만 곱씹을 수밖에 없었기에 그렇다. 그래도 점심 때가 다 되어가자 어김없이 침이 고이는 입을 쩝쩝거리며, 이 책 뒤를 이은 '대한민국 논술사전 아고라'를 읽고 독후감을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이 책에서 강조했듯이 지금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형편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상식(물론 그 상식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들 가운데 지극히 일부일 뿐이지만)'마저도 모르거나 알면서도 곡해하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무료로 나누어 준 떡을 먹으며 싱긋 웃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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