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일지 나남신서 302
김구 지음 / 나남출판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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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 들어오기 전에 나는 좌파 진영에서 한 해가 넘는 시간을 보냈다.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는 집에서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를 읽었기 때문에 우파 지식 체계를 철저하게 받아들여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대학교에서 우연히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내 머릿속은 매우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논리 체계가 충돌하면서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 제대로 파악하기도 어려워졌다. 철학까지 동원하자 과연 옳다는 표현이 맞는 것인지도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면서, 아무 것도 판단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한 쪽에 몸을 맡겨버리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어차피 각 논리 체계는 의심하지 않는다면 나름대로 정말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자연이 움직이는 원리처럼 사회학 이론이 예외 없이 들어맞는 것도 아니었으니, 의견과 논리는 자기가 제시하기 나름이었다. 수 백 년 동안 수많은 지식인들이 제시한 주장과 축적한 자료로 뒷받침한 논리 체계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했다. 한 해 넘게 그 지식 체계를 공부하면서 나는 한 때 그 방대함과 치밀함에 반하기도 했다. 의심할 필요가 없는 진리라고 여기고 새로운 것을 거침없이 받아들일 때는, 그야말로 배우고 익힐 맛이 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뒤에 돌이켜 보면, 그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어떤 특정한 영역에서 벗어나 무엇이든지 객관으로 바라보려고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챙기는 착각이었다. 그 착각에서 벗어난 뒤 나에게는 좌파든 우파는 완전하지 않아보였다. 각자 쌓아올린 논리 체계는 방대하면서도 치밀해 보였지만, 조금만 파고들어가 보면 서로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너무 많았다. 마치 칼과 방패를 든 두 무사가 서로 방패를 맞댄 채, 상대가 하는 공격을 무시하고 열심히 상대를 찔러대는 것 같았다.

 

각 진영이 제시하는 여러 가지 사회 현상에 관한 주장과 근거 자체만 바라봐서는, 그 까닭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밑에 깔려 있는 사상을 반드시 알아내야 했다. 작정하고 파고들었더니 유물론과 유신론에까지 손길이 닿았지만, 얼마 뒤에 굳이 거기까지 나아갈 필요는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철학이 아무리 정교하고 복잡하게 발달했다 하더라도, 고도로 발달한 철학이 보여주는 온갖 학설과 논리가 나타나는데 가장 밑에 깔려 있는 원인은 바로 생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단순하기 짝이 없고 사람들이 어떤 주장과 생각을 펼칠 때 거의 무조건 밑에 깔려 있지만, 미처 인식하지 못하든 아예 관심이 없든 어쨌든 무시해 버리는 것이 바로 생존 욕구이다. 아무리 사람과 짐승을 나누는 기준이 이성이라고 하고, 이성 덕분에 인류가 지금과 같은 첨단 문명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하지만, 사람도 생명체이기에 결국 살아야 하고, 살아남는데 필요한 논리를 가장 먼저 내세울 수밖에 없다. 이성이 생기기 전에 감정이 있었고, 감정은 살아남는데 필요한 방향으로 발전했다. 사람들이 좋다 싫다 따지는 것도 결국 따지고 보면 그 근원에는 생존 욕구가 있다.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문명이 굉장히 복잡해졌기에 생존 욕구가 매우 발달한 논리 체계로 덮여 매우 그럴듯해 보일 뿐이다.

 

옳고 그른 것도 가만히 따지고 보면 결국 좋은가 싫은가 하는 문제에 연결되어 있고, 좋은가 싫은가 하는 문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생존 욕구에 직결되어 있다. 그렇기에 나는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면서 그들이 가르치는 많은 것을 나름대로 충실하게 받아들이면서도, 그들이 보이는 친북 성향과 그를 뒷받침하는 논리에는 절대 동의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라고 하지만, 그리고 결국 끌어안고 함께 살아야 할 한 민족이라고는 하지만, 북한을 무조건 감싸고 들고 현대한국사에서 벌어진 모든 비극을 미국 탓으로 돌리는 까닭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북한이 남한에 끼친 피해는 정말 엄청난 것이었고, 그에 따라 우리 민족은 자칫하다가 끝장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그런 것은 무시하고 미군이 저지른 양민 학살 따위 전쟁 범죄만 강조하면서, 미군이 저지른 범죄가 아닌 미국 자체를 증오하는지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에 관한 문제의식이 있으면 당연히 질문과 반박을 쏟아내려고 힘쓰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실력이 부족했기에, 그들이 지니고 있는 허점을 정확하게 집어내지 못했고 궁지로 몰아넣을 수도 없었다. 몇 번씩 토론을 벌이면서 그들에게 내 어설픈 논리 체계를 들켜버렸고, 철저하게 깨지고 논박을 당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면서 어떤 이들은 내가 아직 많은 것을 제대로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더욱 열심히 좌파에서 제시하는 교양을 쌓으라고 권유하고 비판했다. 몇 번이나 연거푸 꺾이는 바람에 문제의식이 사그러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여러 사람들에게 내 뜻을 이야기하면서도 그 근거를 명확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 뚜렷한 소망을 가지고 나는 군대에 들어왔다. 신병교육대와 실무 부대에서 훈련병과 이병으로서 사회에서 생각했던 것들을 이어나갈 겨를과 힘도 없을 정도로 시달리면서, 그 소망은 잠시 묻어두어야 했다.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말이 사실이 되어, 우연히 기회가 찾아왔다. 나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정훈교육자료를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다시 내가 사회에서 생각했던 그 문제 의식을 다시 일깨웠다.

 

그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내가 바랐던 모든 논리 체계와 정훈교육자료 안에 들어 있었다. 군인 정신, 국가관, 안보관이라는 세 가지 큰 주제로 이루어진 정훈교육체계는 내가 좌파 진영에서 활동하고 있을 때는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것들을 아우르고 있었다. 잘 짜인 훈련 과정에 따라 교육 훈련을 받으며 굵은 땀방울을, 때로는 피와 눈물도 흘리면서 나도 모르게 내 정신도 정훈교육체계를 받아들이는데 알맞게 변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정훈교육자료를 정신없이 읽었고, 정훈 퀴즈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면서 나는 내 안에서 끊임없이 벌어지는 혼란이 가라앉을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인정하기 싫은 사실과 고된 실무 생활 때문에 너무 많이 지치고 상심한 나머지 그저 다 집어치우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쌓아올린 것들과 그것들을 이루고자 고민했던 시간이 아까워서라도 그럴 수 없었다.

 

다시 무엇이 문제인지 골똘히 생각하다가, 내가 항상 좌파와 우파를 아우르며 큰 바탕이 될 수 있는 사상을 찾고 싶어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좌파든 우파든 나름대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부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좌파 교양 자료이든 정훈교육자료이든 어떤 것에 바탕을 두어야 모든 것을 아우르는 올바른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찾아야 했다. 물론 앞에서 말한 올바른 결론이라는 것은 이 세상에 살아남는 것이었다.

 

그런데 살아남는 주체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면서 나는 눈을 크게 떴다. 내가 지금 이 땅에 살아서 숨 쉴 수 있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나 혼자서는 절대 지금처럼 살아있을 수가 없다.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까닭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있기 때문이며,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내 핏줄에서 뜨거운 피가 흐르고 내 살결이 숨 쉬게 해준 한민족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하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가만히 있어도 거저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강한 무력을 지닌 군대만이 쉴새없이 요동치는 국제 정세 속에서 나라를 지킬 수 있으며, 나라를 지켜야 민족이 살고, 민족이 살아야 내가 살아 숨 쉴 수 있다.

 

정훈교육자료가 가치가 있는 까닭은 나라를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는 국군이 얼마나 중요한지 밝히며, 나라와 민족을 생각하는 길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 바탕은 바로 민족이 살아나갈 분명한 방법을 제시하는 민족주의였다. 좌파 지식 체계를 공부하면서 많은 것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그들이 주장하는 국경을 뛰어넘은 프롤레타리아 국제 연맹 같은 초국가 단체는 인정하기가 힘들었다. 나라가 없는 민족은 결코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 자기 나라를 얻고자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 투쟁에 근본이 되는 것이 민족주의이거늘, 어찌 민족주의를 그렇게 쉽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좀 더 정확한 사실을 밝히자면, 우리나라 좌파나 우파나 시민단체나 군대나 분명히 그들이 믿는 정신과 교리 바탕에는 민족주의가 있었다. 그러나 좌파는 이상하게도 구시대 유물인 공산주의에서 비틀어진 주체 사상이라는 괴상한 사상을 붙들고 늘어지고 있는 북한을 변호하는, 한민족이 이 세상에서 살아남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일그러진 민족주의를 내세우고 있었다. 그들은 김구 선생이 말한 자주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거기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민족주의는 양날의 검과도 같다'는 정훈교육 내용을 되새기면서 좌파 비판에 더욱 열을 올렸다. 그러면서 '백범일지'에 담긴 김구 선생이 남긴 발자취와 그 사상을 돌이켜 보았다.

 

김구 선생은 근대 개화기에 제국주의 열강이 조선을 집어삼키려 하는 현실 속에서 성리학과 신학문을 모두 공부하며 성장했다. 대한민국이 일제 식민지가 된 시기에 청년기와 중년기를 보내며, 그 젊음과 열정을 오로지 '대한민국 자주독립'에 바쳤다. 다소 엉뚱하고 호방한 행동에 웃음이 저절로 나왔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올곧은 민족주의와 독립운동에 대한 선생만의 열정이 싹텄다고 하니, 그저 함부로 웃을 수는 없었다.

 

몇 번이고 독립 운동에 가담한 죄로 옥살이를 하고 민족이 처한 슬픈 현실을 헤쳐나가고자 많은 눈물과 피와 땀을 흘리면서도, 오로지 자주 독립과 민족 국가 정립이라는 올곧은 사상을 포기하지 않은 분이 김구 선생이다. 안두희에게 암살당하는 참극이 벌어지기 전까지 김구 선생은 일제 식민지 통치, 소련 지원을 받는 프롤레타리아 혁명, 모스크바 삼상 회의에서 결정된 신탁 통치 따위 자주성을 심각하게 해치는 온갖 정책에 단호하게 저항했다. 그러면서 자주 독립 국가를 건설하는데 온 삶을 바쳤다.

 

내가 김구 선생에게 특별히 주목한 까닭은, 그가 민족 자주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실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된다면, 어떤 학문이든지 사상이든지 기꺼이 받아들이려고 힘썼다는 것이다. 민족 자주성을 지키려면 실력을 갖추어 다른 세력이 절대 우리 민족을 무시하지 못하게 해야 했고, 그에 따라 편견을 버리고 어떤 사상과 지식이든지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나는 내가 군대에서 정훈 교육을 받은 뒤 일부 극좌파 사람들과 토론을 벌이면서 일어났던 일을 떠올렸다.

 

위정척사파를 대표한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완고한 성리학자인 고능선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고, 그 뜻에 공감하였거늘, 어찌하며 감옥에서 신문물이 담긴 책을 읽은 뒤 생각을 바꾸어 고능선 선생을 비판하였을까? 과연 그런 김구 선생을 고능선 선생이 변절자라고 비판한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김구 선생에게는 '대한독립'이라는 대명제를 현실로 만드는 데는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만을 생각하는 민족주의만이 단 하나뿐인 척도였다.

 

정훈 교육 자료에서 가르치는 내용을 충실하게 받아들인 나를 극단에 가까운 좌파들은 주저없이 변절자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매우 슬퍼했다.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가 지금까지 우리가 겪어온 현실 앞에서 얼마나 힘을 잃었는지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안타까웠다. 국제 정세는 엄혹하며 한반도는 그야말로 19세기 말과 같은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한 치 앞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힘들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일그러진 민족주의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실을 그대로 바라보며, 민족이 나아갈 길과 바람직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어릴 때 '백범일지'를 읽어보기는 했지만,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있었던 철없던 나는 그 속에서 어떤 깊은 뜻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백범일지'를 까맣게 잊고 지낸지 어느덧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극심한 이념 대립에 지쳐서 해답을 찾아나섰다. 그러다가 군대에서 다시 '백범일지'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이 지긋지긋하고 끝없는 이념 대립을 끝낼 수 있는 더없이 곧고 높은 사상을 찾을 수 있었다. 보다 큰 사상과 보다 큰 실천! 모든 것을 감싸안아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인류가 함께 번영하는데 이바지할 수 있는 사상을 김구 선생은 민족주의에서 찾았다.

 

그가 주장한 대로 좌우익 이념 대립이라는 것은 한때 일어나는 혼란밖에 되지 않으며, 결국 한민족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뭉쳐 이 세상에서 가장 굳건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룩하여 문명을 떨치는 것이야말로, 이 한반도에서 태어나 숨 쉬고 살아가는 이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민족주의가 지니고 있는 양면성을 항상 경계하면서 올바른 민족정신을 함양하는데 힘써야 한다. 군대에서 얻어갈 수 있는 가장 큰 성과 가운데 한 가지가 뚜렷한 국가관과 민족정신이라고 한다. '백범일지'를 다시 읽으면서 그 사실을 더욱 뚜렷하게 확인하고, 나는 어떠한지 점검해 보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어서 기뻤다.

 

우리가 확실한 국가관과 민족정신을 가지고 실력을 쌓고자 온 힘을 모을 때, 그때서야 김구 선생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바라는 '천지와 같이 넓고 자유로운 나라, 그러면서도 사람의 덕과 법의 질서가 우주 자연의 법칙과 같이 준수되는 나라'가 이루어질 것이다. 주저하지 말고 우리 앞에 분명히 보이는 길을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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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이재훈 2015-12-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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