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망하는 국가 - 다치바나 다카시의 일본 사회 진단과 전망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언숙 옮김 / 열대림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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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동안 일본에서 집권한 자민당 정권이 드디어 종말을 맞이했다. 8월 30일 중의원 총선에서 480석 중 야당인 민주당이 단독 과반수인 241석을 훨씬 뛰어넘는 308석을 차지했다. 이로써 자민당과는 사뭇 다른 일본 정책 기조를 분명히 기대할 수 있게 되면서 미국, 중국, 한국 세 나라에서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미국, 중국, 한국 세 나라에서는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특히 재정건전화 정책, 서민복지 강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지 또는 대안 마련 따위 여러 가지 정책은 동북 아시아 여러 나라, 특히 대한민국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아소 다로 총리가 민주당에게 정권을 맡긴다면 일본 경제는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곧 17대 대통령 선거 유세 때 이명박 후보자가 했던 것과 똑같은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일본 국민들에게는 전혀 먹혀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막판 변수 또한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 극우 세력이 아무리 자민당을 탄탄하게 뒷받침한다 하더라도, 대다수 국민들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아베 신조, 아소 다로로 이어지는 자민당 정권이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저지른 온갖 실정에 지친 듯하다. 평생 동안 처음으로 자민당을 찍지 않았다고 하는 노인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걸 보면, 자민당이 지금까지 정말 엄청나게 잘못하기는 한 것 같다. 그 근본에는 자민당이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미명 아래 추진해 온 신자유주의 정책이 있다.

 

전영수는 저서 '일본을 통해 본 한국경제 프리즘'에서 2002년 2월에 일본경제는 바닥을 찍고 완연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했지만, 정작 일본 국민들이 느끼는 삶은 경제가 어렵다고 외치던 때나 뚜렷하게 회복된다고 하는 때나 변하는 바가 거의 없어보였던 것 같다. 국고는 나날이 풍족해지고 주가는 뛰었지만, 정작 서민들 지갑은 갈수록 얇아지고 프리터(아르바이트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 결국 한 마디로 비정규직 신세)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될 만큼 비정규직 문제와 양극화 문제가 심각해졌다. 도시든 시골이든 일본답게 깔끔하기 짝이 없지만, 정작 그 위에서 벌어지는 현실 자체는 정돈된 거리답지 않게 너무나도 암울하고 추악한 것이었다.

 

결국 미국과 긴밀한 경제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던 일본 또한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불러일으킨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오죽하면 '덴노 헤이카 반자이(천황 폐하 만세)'를 외치는 극우주의자인데도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며 일본과 같은 처지에 놓인 한국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어하는 일본 가수도 있을까. 2008년 8월에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투쟁 결의 대회 때 일본에서 연대하고자 찾아온 일본 여자들을 나는 분명히 기억한다. 국가 재정은 갈수록 풍요로워지고 거리는 갈수록 화려해지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이 꾸려가는 삶은 갈수록 비참해지며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런 암담한 현실에 일본 사람들은 넌덜머리를 냈으며, 결국 나라를 그 모양 그 꼴로 만든 자민당 정부를 투표로써 심판한 것이리라.

 

사실 나는 지금까지 다치바나 다카시가 쓴 글 가운데 정치와 관련된 글은 그다지 많이 읽어보지 못했다. 그가 젊은 시절에 실제로 반핵 운동도 전개했으며 학생 운동에도 많이 참여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런 글만을 보고서는 그가 한중일 삼국 관계에 관해서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절대 미루어 짐작할 수 없었다.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新 다나카 가쿠에이 연구', '거악과 언론' 같은 명작을 써서 썩어빠진 일본 자민당을 혼쭐냈다 하더라도, 최근에는 어떻게든지 변했을 수도 있다는 의심을 솔직히 가끔씩 하기도 했다. 일본 공산당을 비판하기에 조총련과 북한 또한 바람직하지 않게 보다가 일본 극우 세력과 통하는 논리를 제시할 수도 있다는 설레발에 가까운 생각에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열광했던 다치바나 다카시가 정작 정치면에서는 나를 그토록 실망시키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전전긍긍하다가 이 책 '멸망하는 국가'를 사서 읽었다. 역시 다치바나 다카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한 장씩 책을 넘길 때마다 역시 열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이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언론 시장, 천황론, 근현대사 문제, 헌법론, 신자유주의……현대 일본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이 책에서도 거침없는 필력으로 거침없이 다루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일본 사례를 분석하면 한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논리가 왜 타당성이 있는지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주요 내용과 그에 관한 생각을 간단하게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1. 라이브도어 사건 - 회사는 누구의 것인가

 

리먼브라더스(2008년 8월에 조선일보가 인수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가 9월에 부도나는 바람에 크게 망신을 당한 그 회사)와 라이브도어(일본 미디어 시장을 손아귀에 넣으려고 시도했다가 결국 리만브라더스 배만 잔뜩 불려준 그 회사)가 짜고 일본 미디어 시장 장악 공작을 펼치다가, 소프트뱅크 인베스트먼트(SBI)에서 나서는 바람에 실패한 사건. 이와 관련해 일본 경제계를 움직이는 여러 가지 거대한 흑막이 밝혀져 충격을 주었다. 특히 리만브라더스가 짠 어떻게든지 자기들은 이익을 보게 만드는 라이브도어 융자 계획은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증권거래법이나 분식회계 사건이 아닌 더 거대한 어떤 것이 도사리고 있다고 판단한 검찰이 무려 특수 검사 100여 명으로 이루어진 전담반을 편성해 수사를 벌였다고 한다. 라이브도어 사장 호리에가 지하 금융계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에, 그동안 실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일본 지하 금융계가 실물 금융계에 어떻게 부정하게 개입해 왔는지 드러날지가 많은 관심을 끌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거기에 관해서는 어쩌다가 실물과 관련된 쓸만한 정보가 나오기도 한다고 간단하게 언급한 뒤, 더 큰 문제는 리만브라더스로 대표되는 미국금융자본이 일본에서 금융 이익을 강탈해 가는 구조라고 분명하게 지적한다. 그리고 미디어는 적대 인수 합병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산업이라는 사실 또한 확고하게 밝힌다.

 

지금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것처럼 미국 금융 자본이 정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된다면, 앞으로 대한민국에서도 라이브도어 사건 같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벌어지지 않을 까닭이 전혀 없다.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자본은 국적이 없다고 거짓말을 일삼는 이명박 정부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덧붙이자면 정작 일본을 보고 배워야 할 점은 배우지 않고, 자기들 뿌리를 유지해 주는 안 좋은 것들만 배우는 친일 수구 세력이라는 사실을 드러낸다.

 

이미 이명박 정부를 보위하는 조선일보가 앞에서도 밝혔듯이 리만브라더스를 인수해서 금융 강국으로 거듭나자고 주장했다가, 리만브라더스가 갑작스레 몰락하는 바람에 신문으로서 공신력은 이미 바닥에 이르렀음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게다가 라이브도어 사건이 일본 언론과 관련된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조중동 중심 언론 장악 기도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보여준다. 공신력이 극도로 떨어진 조선일보가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미디어 시장에 적극으로 뛰어들어 대한민국 언론 개혁 선두에 서겠다고 하니, 그야말로 기가 막힐 일이다. 거짓투성이인 언론 관련법은 무조건 철폐되어야 한다.

 

 

2. 천황론과 대일본제국 - 태양신은 여성이었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천황과 도쿄대'라는 방대한 저서를 최근에 출간했다. 그 안에 담긴 내용을 여기에서도 간략하게 다루며, 천황제가 근대 일본과 현대 일본에서 어떤 구실을 하고 있는가에 관해서도 설명한다. 그리고 여성 천황 논쟁 안에 숨어 있는 여러 가지 일본 근현대사 문제를 명쾌하게 파헤친다. 대한민국에서도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근현대사 논란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일본 근현대사 논란에서 한국 사람들이 배울 것이 분명히 있어 보인다.

 

 

3. 야스쿠니론, 헌법론 - 생각과 태도를 바꿔라

 

흔히 일본 극우 세력은 일본 평화 헌법 9조가 일본이 강대국으로 거듭나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주장하면서, 틈만 나면 헌법 개정을 주장한다. 사실 1955년에 일본 보수당 두 곳이 합쳐져서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일본 극우 세력에게서 비호를 받고 있는 자민당이 무려 54년이나 집권했는데도 헌법이 개정되지 않은 게 정말 신기하다.

 

다치바나 다카시는 헌법이 지금까지 개정되지 않은 것 자체가 천만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일본 극우파들이 장악한 자민당 정권에서 자꾸만 나오는 개헌론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론을 비판한다. 제 2차 세계 대전 때 일본이 어떤 조약을 근거로 국제 사회와 평화를 수호하고 안전과 신의를 보장받기로 약속했는지 분명하게 밝히며, 극우 세력은 그런 기본 상식조차 없는 주장을 내뱉는다고 일갈한다. 국가보안법이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대한민국 수구 세력이나 몇 십 년 동안 지속되어 온 평화를 일그러진 신념 때문에 스스로 깨뜨리려고 하는 일본 극우파나 몰상식한 측면에서는 그다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4. 고이즈미 개혁의 진실 - 그 정치 방법과 일본의 앞날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앞에서도 몇 번이고 강조했듯이 고이즈미가 추진하는 개혁 자체는 일본에게는 이득이 하나도 없으며 모든 이득을 미국이 챙겨가는 '미국식' 신자유주의 완성판이다. 고이즈미가 기를 쓰고 추진한 그 대표 정책이 우정국 민영화 정책이다.

 

놀라운 것은 우정국 민영화 정책이 참의원에서 좌초되자 중의원을 해산시켜 버리는 고이즈미 전 총리가 보여준 과감함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설사 가결되엇다고 하더라도 중의원을 해산시킨 뒤 총선거로 가려고 했다는 것이다. 우정국 민영화 가결을 개혁 실적으로 내세워서 총선에서 대승을 거두면, 자기 권력을 더욱 공고히 굳힐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부흥을 추진하려면 처음부터 개혁을 추진한 세력이 계속 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워서 18년이라는 유례 없는 장기 집권을 실현한 것을 보고 배우는 듯하다.

 

하지만 다치바나 다카시는 그런 꼼수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우정국은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이며, 그런 우정국이 적자가 난다고 해서 개혁(?)해서 민간업자에게 팔아넘기는 것은 얼토당토않은 짓이라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업을 일부 민간업자들이 챙길 이득을 위해 넘겨주는 것은 애당초 당위론에서부터 어긋나며, 민영 체제로 바뀐 우정국에서 제공할 서비스가 국내 투자를 가장한 외국 자본 침탈에 따라 부실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우정국이 적자가 나는 까닭 또한 우정국 자체가 부실한 탓이 아니라 우정국과 관련된 정책을 자기들이 콩고물을 챙겨먹기 좋도록 변질시킨 자민당 정권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민영화라는 이름을 내걸었다가 거대한 반대에 부딪치자 이번에는 '선진화'라는 말을 내세워서, 기득권이 더욱 막대한 이익을 챙길 수 있도록 보장하려고 하는 이명박 정부와 수구 세력이 저지르는 작태 또한 고이즈미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과 어쩌면 그렇게 흡사할까. 최근에는 멀쩡하게 잘 돌아가고 있는 건실한 인천국제공항을 팔아넘기겠다고 난리를 피우고 있는데, 인천국제공항노조를 지원하고 반대 운동을 전개하여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리고 자민당이 저지른 실책을 한국에도 널리 알려서, 한나라당이 얼마나 많은 거짓과 기만을 일삼는 추악한 정당인지 사람들이 하루빨리 깨닫도록 해야 한다.

 

본문이 다루는 주제와는 약간 빗나간 이야기를 하자면, 일본 국철이 부도난 뒤 민간에서 경영하게 되면서 일본 철도가 국가 물류 동맥으로서 새롭게 거듭난 사례를 제시하면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는 선진화 정책 또한 그런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철도 애호가들 사이에서 가끔씩 보인다. 하지만 이 또한 짧은 판단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본 국철이 부도가 난 뒤 민영화가 이루어진 데는 정략 판단이라고 볼 만한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지금 추진되고 있는 선진화 정책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결국 그 수혜자가 국민도 아니고 선진화 대상 기업도 아닌 일부 투기 세력과 기득권층일 뿐이기 때문이다. 

 

 

5. 포스트 고이즈미의 미래 - 킹 메이커의 집념과 야망

 

오랫동안 이어진 자민당 독재 체제 안에서 최근에 대적할 사람이 없을 정도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 온 고이즈미 전 총리 또한 자민당에서 총리로 선출되면서부터 이미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적한 것처럼 '킹(총리)'에서 '킹 메이커(총리로 올라설 사람을 지명할 수 있는 배후 권력자.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이라고 볼 수 있다)'로 거듭나고자 자민당 안에서 항상 힘겨루기를 벌여왔다.

 

다치바나 다카시가 보기에는 이미 고이즈미는 '킹 메이커'라고 불려도 적합할 만한 정점에 올라섰으며, 그에 따라 자민당이 추진하는 개혁이 좌초될 확률은 그다지 높지 않다고 본다. 그렇기에 다치바나 다카시가 전망하는 일본 정계와 사회 앞날은 그다지 밝지 않다. 이미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 정책을 가지고 그렇게 기를 쓰는 마당에, 무슨 희망을 볼 수 있겠는가? 하긴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쓴 뒤 3년 만에 그 희망을 보기는 했지만, 그 당시에는 그랬던 것 같다. 중국과 한국이 본 일본 군국주의가 부활하고자 꿈틀대는 모습을, 다치바나 다카시는 극우파와 같은 생각을 일삼는 고이즈미가 의회에서 전제 군주와 같은 대접을 받는 진풍경에서 보았다.

 

언론 관련법을 국회법을 무시해 가면서까지 통과시킨 한나라당에서 이제는 개헌을 주장하고 있다. 이원정부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2006년에 고이즈미 총리가 이끌던 자민당이 꿈꾼 '포스트 고이즈미 시대가 고이즈미'가 킹 메이커로 군림하면서 다음 총리 후보와 주요 각료 후보를 지명하는 시대(비록 지금은 실패로 돌아갔지만)라면, 2009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한나라당이 꿈꾸는 '포스트 이명박 시대'는 이번에 한나라당이 추진하는 개헌안에서 그 윤곽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이명박 대통령이 고이즈미와 마찬가지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둘러서 한나라당 안에서도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마당에서 권력 분화를 한나라당이 제기하는 건 어떻게 봐야 할까? 단순하게 한나라당 안에서도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짓을 보니까 도저히 대통령에게 모든 권력을 줘서는 안 되겠다는 판단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한나라당이 지니는 속성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나라당이 장기 집권을 노리고 있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 봤을 것이다.

 

어디에서 조사했는지도 알 수 없는 이상한 여론 조사 결과를 들이대면서 애써 지지율을 40%까지 끌어올리고 있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민심이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서 떠날 대로 떠났다는 사실을 한나라당 또한 모를 까닭이 없다. 그렇기에 나중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대통령과 여당이 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으려는 포석이라고 보는 게 더 타당할 것 같다. 만약 이것이 현실이 된다면 암울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일본처럼 국민이 투표로써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6. 이라크 문제 - 부시 정권의 기만과 일본의 책임

 

앞에서 이야기한 평화 헌법 9조에 관한 비판이 다시 한 번 펼쳐진다. 평화 헌법 9조 덕분에 일본은 제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세계 어디에서도 전쟁 때문에 피를 흘리지 않았으며, 그 덕분에 평화를 수호하는 국가라는 이미지를 전세계에 심어줄 수 있었다. 이는 일본이 그토록 소망하는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에 여러 나라, 특히 한국과 중국이 거부감을 덜 느끼게 하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 때도 한국처럼 미국 요구를 견디지 못하고 이라크에 파병하는 바람에 치르는 곤욕 또한 아예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극우 정치인들이 주장하는 대로 평화 헌법 9조를 개정해 버리면, 그 뒤에는 미국이 일본에 요구하는 군사 지원을 감당할 수 없게 된다. 군산복합체를 기반으로 경제 난국을 타개하는데 익숙했던 미국인지라 경제 불황이 닥치면 전쟁은 필연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전쟁에서 일본이 더는 손을 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미국과 일본이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미국식 신자유주의에 따른 경제 구조 개편이 공동으로 이루어지는 마당에, 군사 행동마저 함께 할 수밖에 없게 된다면 일본에는 더는 답이 없다. 일본 헌법을 뒷받침하는 역사 배경에 관한 몰상식 때문에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속설을 생생하게 증명하는 고이즈미가 이끄는 자민당 정권이 내세우는 '보통국가론'을 다치바나 다카시는 통렬하게 비판한다. 덧붙여서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애국과 안보라는 이름 아래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이 후퇴했는지도 빠뜨리지 않는데, 이는 반공과 안보 논리가 지배한 대한민국사에 크나큰 경종을 울린다.

 

여기에서 다치바나 다카시가 이라크 문제에 관해서 한국을 교훈으로 삼은 것은 한국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미국과 대등한 관계를 실현해 나가겠다고 공약한 노무현 대통령도 막상 미국이 파병을 요구하자 선뜻 거절하지 못했다. 동북아 균형자론을 내세우면서 국방 예산 8~9% 증액을 보장하고 군사력 증강에 힘쓰기는 했지만, 막상 미국과 혈맹을 강조하는 보수 세력이 하는 주장을 과감하게 물리치기는 힘들었나 보다. 수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결국 파병은 실현되었고, 자국민 김선일 씨가 이라크 무장 반군에게 참살당하는 비극이 벌어졌다.

 

그런 이라크 파병을 놓고 한나라당 탓만 하기에는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는데, 다치바나 다카시가 주장한 평화 헌법 9조 효용론과 미일 군사협정론을 보고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앞으로 한국 또한 미국과 맺은 한미상호방위조약(SOFA)을 정말로 대등한 나라끼리 맺은 조약답게 개정해 나가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숭미 수구 세력 때문이 아니더라도 미국에게 군사 문제 때문에 휘둘리지 않기는 힘들 것이다.

 

 

7. 미디어론 - 인터넷 시대, 언론의 사명과 미래

 

투철한 언론인으로서 한평생을 자민당 정권이 저지른 부패를 고발하는데 바친 다치바나 다카시는, 마지막 장에서 자민당이 언론에 자기들에게 불편한 것은 보도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행사하고 언론 또한 권력 입맛에 맞추고자 논조를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하고 기회주의에 따른 태도를 보이는 현실을 고발한다. 덧붙여서 미국에서 벌어진 챌린저 호 폭발 사고가 왜 벌어졌는지에 관한 자세한 분석까지 덧붙여서, 사회가 유지되는 근간이 일본에서는 이미 심각하게 삐걱거리며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그런 삐걱거리는 사회에서 일어나지만 절대 정의로운 심판을 받지 않는 추악한 일들을 폭로하고 감시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매체라고 강조한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어디나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따라서 사회 정의가 제대로 작동하느냐 못하느냐가 결정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많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처럼, 대한민국사에서 사회 정의를 끈질기게 가로막은 수구 언론은 아직까지도 대한민국에서 대표 언론으로 군림하며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며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있는 수구 세력이 다시 집권할 수 있었던 까닭도 김대중 & 노무현 정권 때 언론이 집요하게 그들을 깎아내린 탓에 있다. 조갑제나 지만원 같은 작자가 사회 정의를 외치면서 수많은 지지자들을 확보하고 있는 마당에, 과연 대한민국에서 다치바나 다카시 같이 훌륭하고 정의로운 언론인을 찾는 게 가능한 일인지도 알 수가 없다.

 

 

이 책에 담긴 글은 2005~2006년에 쓰여진 것이다. 곧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라 현직에 있으면서 우정국 민영화 정책을 추진하다가 입법 부결이라는 장애물을 만나자 의회 해산이라는 파장을 일으킨 시기에 쓰여진 글이다. 고이즈미는 결국 아베 신조를 차기 총리로 낙점했고, 아베 신조는 2009년 8월 30일에 민주당에게 참패를 당한 아소 다로를 차기 총리로 내세웠다. '미국식'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일본 국민들을 도탄으로 몰아넣고, 끊임없는 극우 책동으로 동북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다치바나 다카시가 지적한 '킹 메이커'로서 군림하려고 끊임없는 정치 공작을 일삼은 고이즈미는 결국 국민들에게 철퇴를 맞아 '킹 메이커' 자리에서 물러나는 쓰디쓴 패배를 맛봐야 했다. 

 

일본에는 55년 동안 정권을 쥐고 흔들며 동북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권력에서 나오는 더러운 단물을 빨아온 자민당이 있다면, 한국에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잠시 정권을 내 줬지만, 2007년에 다시 집권해 '잃어버린 10년'을 외치면서 대한민국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북한과 갈등을 조장하며 부정 축재를 일삼는 한나라당이 있다. 과연 2011년 총선과 2012년 대선에서는 일본과 같은 대변혁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한 결 같이 부패한 수구 세력에 맞서는 투철한 사명감을 지닌 언론인을 대한민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진심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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