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립자론의 세계 - 물질과 공간의 궁극에 도전 전파과학사 Blue Backs 블루백스 42
가다야마 야스히사 지음, 박정덕 옮김 / 전파과학사 / 198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2005년 11월 1일에 보담을 갔더니 민형이 녀석이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서 할 연극을 연습한다고 아직 안 왔다. 오후 8시가 넘어서야 온다고 해서 갑자기 1시간 동안 할 일이 없어졌다. 물론 이 녀석을 오랫동안 가르치면서 한 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는 하다. 그래도 나름대로 교재 준비해서 가는데, 애가 없다고 하면 허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짜증도 난다. 학교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어쩔 수 없이 공부방에 내려가서 민주 누나한테 애가 없다고 말하고 잠깐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런데 옥경이가 도서실이 있다면서 책을 보고 있는 것이 어떠냐고 나한테 물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곧 도서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책꽂이에는 제법 많은 책이 꽂혀 있었지만 대부분 어린이들이나 초, 중학생들이 읽을 만한 책이었다. 그러다가 이 책 '소립자론의 세계'를 발견했다. 값이 2500원밖에 안 되는 옛날 책이다.

 

옛날 책이라서 글자가 세로로 찍혀 있을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가로로 찍혀 있었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읽다가 몇 번이고 머리를 박박 긁어야 했다. 하긴 내 주위 사람들은 이 책 제목을 보자마자 그런 책을 왜 읽냐고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면 나는 읽고 싶어서 읽는 것일 뿐이라고 시큰둥하게 받아넘겼다. 읽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라면 어느 정도 재미가 있고 읽은 뒤에 남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둘 다 얻지 못했다.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 알아내고자 이미 고대 시대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고민했다. 그런 논의가 특히 활발했던 곳이 고대 그리스라고 알려져 있다. 탈레스는 물, 아낙시메네스는 공기, 데모크리토스는 원자, 플라톤은 4원소……수많은 철학자들이 각자 만물의 근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내세우며 논쟁을 벌였으나 결과는 신통하지 않았다. 신들이 모든 것을 지배한다는 미신에서 벗어나, 합리성을 보여줬다는 점에만 뜻이 있을 뿐이었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무대는 고대 그리스가 자연 철학자들이 활약했던 시기에서 무려 2000년이나 흐른 1900년대 초중반이다. 현대 물리학사를 새로 쓴 하이젠베르크, 파울리, 디렉, 유카와 히데키 따위 쟁쟁한 물리학자들이 나온다. 그들이 맹렬한 논쟁을 벌이면서 만물의 근원인 소립자를 하나씩 발견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게 써 놓았다. 역시 진리를 탐구하려고 힘쓰는 모습은 언제 봐도 감동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그 감동을 얼마나 크게 하느냐는 글 쓰는 사람에게 달려 있다. 그 점에서는 작가가 성공한 듯 하다.

 

솔직히 그 책을 보지 않고 자세한 내용을 여기에 일일이 다 쓸 능력은 전혀 없다. 1학년 때 들었던 물리학 수업에서 배운 내용도 아주 얼핏 기억이 나는 형편이고, 고등학교 때 공부했던 과학도 거의 다 까먹었으니, 말 다한 셈이다. 이런 교양 과학책을 읽을 때 내가 가장 걱정하는 점은 읽은 뒤에 자꾸만 까먹는다는 것이다. 진짜 기초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이런 어려운 책은 읽어봐야 쓸모가 없다는 생각도 요즘 자꾸 나를 괴롭힌다.

 

아무리 봐도 신문 경제면을 많이 읽으면 경제에 눈을 뜰 수 있다는 말과 마찬가지로 교양 과학책을 많이 읽으면 과학에 어느 정도 눈을 뜰 수 있다는 말은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 하다. 만약 그것이 분명히 내가 머리가 안 좋아서 그렇다는 반론이 들어온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저 부지런히 공부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덧붙이자면 '현대 과학의 30가지 화제'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일본이 자주 나온다는 사실이 매우 부러웠다. 가다야마 야스히로라는 일본 사람이 썼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필요는 없다. 날조한 것도 아니며 일본이 매우 높은 과학 기술을 지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 나온 교양 과학책에 우리나라에서 이룬 업적이 당당하게 소개되는 그 날을 이 책을 읽으면서도 상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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