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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이 있는 여름별장 ㅣ 매드 픽션 클럽
헤르만 코흐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9월
평점 :
절판
일 때문에 출판사 페이스북 쪽에 메시지 남기고 하다보니 어느 순간 페이스북 뉴스피드에서 이런저런 책들과 작가 소식 포스팅을 계속 접하게
되는 상태가 되었다. 그 작가의 책을 단 한권도 읽지 않았으나 괜시리 친근하고 반갑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고... ^^;;;;
퇴근 후에 페이스북에서 확인할 게 있어서 로그인 했는데 은행나무에서 요 소설 서평단 모집 포스팅 올린 걸 보게 되었고, 비교적 간단한 신청
방법이라 일단 지르고 봤는데 덜컥 책이 왔다. 원래 뭐가 그 전에 언질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잠깐 당황했다.
처음 몇 챕터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여서 계속 잡고 읽게 되지는 않았다.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는 좀 궁금했다. 정말 이기적이고
자기합리적으로 보이는 마르크가, 웬만큼 큰일에는 꿈쩍도 안할 거 같은 그의 결말이 궁금했다.
일반 개업의 마르크는 환자들에게 친절한 듯 보이나, 실제로는 환자에 대한 혐오감과 건성 진료로 일관하는 사람이다. 어느 날, 유명한 배우
랄프가 마르크에게 진료를 받으러 오게 되고, 랄프의 연극 초청에 부부동반으로 참석하여 랄프의 부인 유디트를 만난다. 부인조차 자신에게 걸맞는
짝이라는 계산하에 전략적으로 접근했었던 마르크는 겉으로는 싫어하는 척 하면서도 랄프 부부의 파티 초대, 별장 초대에 모두 응한다. 자신의 부인
카롤리네에게 추파를 던지는 랄프를 혐오하면서도 랄프의 부인에게 꿍꿍이가 따로 있었던 마르크는 별장이 있던 해변가 근처에서 강간당해 정신을 잃고
있던 큰 딸 율리아를 발견하고 죄책감과 무력감으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초반부를 읽으면서는 마르크에 대해서 욕하고 싶었다. 이런 속물 같으니라고...! 속물이 나쁜 건 아니지만 직업이 의사인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사람인데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냐?! 그리고 자신의 부인이나 딸들에게 던지는 다른 남자들의 시선에는 깊은 혐오감을 드러내면서 남의
부인에게 집착하는 걸 보고는 정말 짜증이 났다. 이런 돼먹지 못한!!
그런데 딸의 사건을 계기로 달라지는 그에게 묘하게 공감이 가기 시작했다.(초반 그의 대처가 모두 다 마음에 든 것은 아니다) 결국 그의
복수의 칼날은 좀 엉뚱한 사람에게 향하기는 했으나 그의 행동을 비난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그 사건을 계기로 달라져버린 딸을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을 수도 있으니... 그가 잘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
정말 놀라웠던 사람은 랄프의 부인 유디트였다. 나는 그녀가 남편의 죽음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미망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마르크의 진료실에서 행패
끝에 보여준 그녀의 모습은 한없이 자기중심적이고 뻔뻔한 여자의 맨얼굴이었다. 맙소사...
나는 처음 접했지만 헤르만 코흐는 네덜란드의 국민작가라고 한다. 이 작품은 그동안 읽었던 어떤 소설하고도 좀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같이 읽고 얘기하다 보면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운 이 느낌, 등장인물 모두를 비난하기도 응원하기도 애매한 이 마음 한 구석이 조금 더 명확해질지도
모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