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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40
오동궁 지음 / 네오픽션 / 2026년 4월
평점 :
처음 미식가들이라는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이 음식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얼마나 더 특별한 맛을 추구하는지에 관한 기묘한 상상력의 소설일 거라고 예상했다. 맛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맛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정치적이고 계급적이고 슬픈 일인지를 묻는 소설이다.
주인공 소민은 화재 사고 이후 전신 의체에 의지해 살아간다. 여전히 ‘나’이지만 예전의 몸을 잃어버린 존재다. 책 속에서 “저 분홍 덩어리가 나다. 아니, 나의 일부다”라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 오래 멈췄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정신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기억하는 것이 ‘나’라고 말한다. 정말 그럴까. 내가 만지는 감촉, 음식을 씹는 턱의 움직임, 배고픔이 밀려오는 시간,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는 따뜻함까지 잃어버린다면, 나는 온전한 나일까.
이 책이 무서운 이유는 괴물이 나와서가 아니다. 너무 현실적이라 무섭다. 미식가들의 세계에서는 감각이 거래된다. 그로톤인들은 직접 먹을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미각을 빌린다. 인간은 자신의 감각을 제공하고 돈을 받는다. 처음에는 낯선 SF 설정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지금 우리의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누군가는 자신의 시간을 팔고 누군가는 표정을 팔고 누군가는 감정을 팔고 누군가는 몸의 건강을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 플랫폼 노동자는 이동을 팔고 상담 노동자는 공감을 팔고 콘텐츠 노동자는 자기 사유의 일부를 판다. 미각 공유자는 정말 미래의 직업일까. 이미 현재의 은유일까.
가장 강하게 느낀 것은 ‘먹는 일의 존엄’이었다. 먹는 일을 너무 쉽게 말한다. 맛집, 다이어트, 식단, 폭식, 미식, 칼로리. 먹는다는 것은 취향이 아니다. 먹는다는 것은 내가 아직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증거다. 내가 음식을 먹는 순간 세상은 내 안으로 들어온다. 쌀 한 톨, 기름 한 방울, 닭고기 한 조각, 채소의 섬유질까지 내 몸의 일부가 된다. 먹는 일은 가장 원초적인 철학이다. 인간은 생각하기 전에 먹고 사랑하기 전에 먹고 꿈꾸기 전에 먹는다.
“먹는 건 숭고한 일이다”라는 문장은 이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심장처럼 느껴졌다. 종종 고상한 삶을 말하면서 먹는 일을 낮게 본다. 인간은 아무리 위대한 사상을 가져도 굶으면 무너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꿈을 꾸어도 몸이 버티지 못하면 끝난다. 몸은 영혼이 세상에 닿기 위해 빌려 쓰는 유일한 문이라고.
미식가들은 묻는다. 인간은 어디까지 자신을 내어줄 수 있는가. 나는 이 질문을 조금 바꾸고 싶다. 무엇을 잃고 나서야 그것이 ‘나’였음을 알게 되는가. 건강을 잃고 나서야 몸이 나였음을 알고 친구를 잃고 나서야 관계가 나였음을 알고 감각을 잃고 나서야 일상이 축복이었음을 안다. 가장 잔인한 지점은 잃어버린 뒤에야 선명해지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책을 덮고 나서 나는 오늘 먹는 한 끼를 다르게 바라보게 됐다. 밥을 먹는다는 것은 아직 내가 세계의 일부라는 확인이다. 맛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증거다. 책을 읽고 내가 행동으로 옮기고 싶은 것은 거창하지 않다. 하루 한 끼만큼은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먹기. 음식을 씹는 동안 내 몸이 어떤 감각을 느끼는지 관찰하기. 내가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을 내어주고 있는지 정직하게 적어보기. 타인의 노동을 볼 때 팔고 있는 것이 몸과 감각과 생의 일부일 수 있음을 기억하기.
미식가들은 독특한 SF소설이지만 내게는 오늘의 노동 보고서처럼 읽혔다. 모두 조금씩 미각 공유자다. 누군가의 욕망을 대신 느끼고 누군가의 기대를 대신 삼키고 누군가의 만족을 위해 내 감각을 조정하며 산다. 좋은 책은 원래 조금 불편해야 한다. 편안한 책은 나를 위로하지만 불편한 책은 나를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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