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출근합니다 소원라이트나우 7
김선희 외 지음 / 소원나무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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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알바에 대한 에세이인줄 알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각각 색다르며, 전혀 예상이 되지 않는 스타일과 내용이 담긴, 아찔하며 흥미진진한 단편소설이다. 다 읽고 난 지금, 이 다섯꼭지를 묶어 ‘오후에는 출근합니다’로 묶인 제목에게 조차 박수를 보낸다. 표지에도 잘 드러나듯이 오후에 출근하는 청소년 다섯명의 아르바이트를 소재로 한 이야기다.

첫 번째 단편 <인형 탈을 쓰면>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나’가 주인공이다. 일상에서 엄마에게 느끼는 서운함과 가족들의 고충은 “어차피 인간은 언젠가 헤어질 텐데 인간관계를 맺으면 뭐 하나, 나중에 헤어질 때 괴로울 뿐이지,”(p.37)로 이어져 세상에서 ‘나’만이 알고 있는 우물을 파게 한다. 하지만 절친, 단아가 하던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대신하게 된 주인공 ‘나’는 여러 인형탈을 써보면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한 편견에 대해 생각한다. 이 객관화는 “세상을 보는 시선이 뭐랄까, 더 넓어지고 깊어졌달까. 예전에는 평면으로 보이던 것들이 이제 입체적으로 보이게 됐어.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싶어.”(p.37)로 이어진다. “아무튼 탈을 쓰고 있으니까 없던 용기도 막 생기네. 아니지. 없던 용기가 생길 리는 없지. 원래 용기는 있었는데 내가 꺼내지 못했던 거잖아. 용기 말고 또 어떤 것들이 내 안에 숨어 있을까? 앞으로는 꺼내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씩 꺼내보고 싶어.”(p.37)라고 소심하게, 하지만 주인공의 성격상으로는 매우 대범한 고백으로 이어진다. 사실 나는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친구, 단아가 요새 아이들처럼 매우 쿨했다는 것과 친구인 이단아, 최주우도 이름이 있고, 방에서 나오지 않는 동생도 은우라는 이름이 있는데 주인공 ‘나’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는게 인상적이었다. 여러 인형탈을 쓰듯 우리도 인생에서 여러 이름이 필요하다는 의미도 될 것이고, 이 책을 읽는 독자 모두의 이름을 대입할 수도 있을테니 말이다.

<마법소녀 계약주의보>는 알바할때는 계약서를 자세히 읽으라는 메시지를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편으로는 핑키에게 속는 주인공들을 본다. 사실 아르바이트를 시키는 이들은 주로 자영업 종사자들이다. 비싼 임대료 때문이라는 핑계에 청소년들의 임금을 파묻는 주인들 말이다. 청소년들이 직접 보기에 사장님들이 나빠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겉모습에 속아 임금이 체불되는 등의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것들을 생각해볼 때, 작가의 핑크색 쥐, 핑키는 정말 잘 만든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청소년 알바라는 소재에 판타지 장르를 녹아낸 작가님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 소설이기도 했다.

요새 독서동아리 분들이 정해연 작가님의 <홍학의 자리>에 열광 중이다. 세 번째 이야기, <그 아이>를 읽으며 같은 작가님이구나 싶어 놀랬다. 그리고 들은 바와 너무 달라 또 한번 놀랬다. <그 아이>는 픽션인 데 논픽션인 듯 느껴져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그 정도로 홍구와 민준이는 내 주변에도 있는 아이 같기도 했고, 그런데 그렇게 신고까지 해서 챙겨줄 아이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이런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져서 문학적으로 다가온 신기한 소설이었다. 따뜻함은 덤.

<역방향으로 원 스텝!>은 AI의 상담자 역할을 하는 청소년이 주인공이다. AI가 인간 지적능력을 보조하는 4차산업혁명 시대의 미래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근미래를 담은 SF소설이다. “우리를 아르바이트로 소모한다는 말, 그리고 보완재의 보완 아르바이트라는 말, 우리가 일종의 도구라는 표현까지, 하지만 난 동의할 수 없다. 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뿐이지, 존재 자체가 아르바이트일 수 없으므로. 말 그대로 임시로 일을 하는거지 임시로 살고자 하는 게 절대 아니니까 말이다. 임시로 하는 일이 나의 정체성의 근간을 흔든다면 관둬야 한다. 난 도구로서 삶을 살 수도 없고 부정한 도구로 쓰이는 일을 해서도 안 된다.(pp.187~188)
아르바이트라는 도구에 불과한 쓰임이라 해도 결코 나의 주체를 잊어서는 안된다는 작가의 목소리가, 청소년들을 향한 좋은 어른의 글이 아이들에게 닿기를 응원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호 탐정의 조수가 되고 싶어> 미다스의 딸이 대체 누구인지를 알아내는 추리소설이다. 이 작품의 전개 역시 흥미진진했다. 개인적으로는 이 작가분이 우리 아파트에 사셨던 분이실까, 내 이웃이었을까 추리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난 다행히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보다는 벌레를 잘 잡는 편이라..

몇 년 전 들었던 김누리 교수님의 강연 중 ”우리나라 교육은 아이들 모두 대기업의 관리자가 될 것을 가정하는 수업들로 이루어져있다“라는 내용이 생각났다. 수업을 듣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노동자가 될텐데 어째서 관리자 수업만을 하고 있느냐고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단순히 대학에 가기 위한 공부를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에 도전한다. 그 아르바이트가 프리즘이 되어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색을 보여준다. 이 다섯 가지 단편에 나오는 청소년들은 자라서 관리자가 될지 노동자가 될지는 알 수 없다. 하나는 확실하다. 자기 삶의 당당한 주인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응원한다. 이 책 주인공들 뿐 아니라 이 책을 읽을 청소년들을. 미래에 당당한 노동자 혹은 삶의 주인이 되어 있을 아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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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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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로 내게 눈도장 쾅 찍은 래빗홀에서 신간이 나왔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영원한 저녁이 있을 수가 있던가,
호기심이 저녁노을처럼 스며드는 제목이다.
사실 ‘저녁의 연인들’까지는 황학주 시인의 시 제목이다.
그의 시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이제 찾아오는 모든 저녁의 애인들이
인적 드문 길을 한동안 잡아들 수 있도록
당신이 나를 수습할 수 있도록
올리브나무 세 그루만 마당에 심었으면”

여기에 ‘영원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사람의 장기를 임플란트처럼 대체할 수 있는 미래다.
하지만 비용이 꽤 되기 때문에 장기렌탈할 금액을 낼 수 없는 이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죽음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연인, 유온이 주인공이다.

따지고 보면 서윤빈 작가님이 저녁의 연인들이라는 시 제목에 ‘영원한’이라는 임플란트 수식어구를 장기렌탈했구나 싶다. 댓가는 무엇으로 지불하려나.

이 소설의 장르를 따지자면 SF Romance 정도 될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디테일이다.

“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버디, 모드라는 신기술이 등장한다. 이름도 가볍게 참 잘 지었다)

“버디를 달지 않은 옛날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 시대에는 불안이 당신에게 직접 말을 건다.”(버디는 3세 경 뇌에 문신하듯 새기는 기술이다. 이제 현대인의 불안이 해결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이 근미래 소설에서 느껴본다. 만세!)
“발전하는 기술은 휴대전화를 바꾸는 걸로 따라잡을 수 있으니 기술 발전에 밀려 버디가 낙후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더 이상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기술을 못 따라가서 낙후 될 걱정또한 필요없다. 모듈화가 잘 되어 있어 걍 돈으로 휴대전화만 사면 된다)
“기본적으로 운동은 건강에 좋지만, 신체에 불필요한 손상이 쌓여서는 본말 전도다.”(노화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있는데 많이 쓰면 그만큼 많이 닳는다는 게 진리인 세계인 것이다. 지난 주에 궤도님이 티비에 나와서 비만은 10년 내로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 급으로 쇼킹했다)
“근육은 임플란트도 없어.”(아니 장기보다 근육이 훨씬 만들기 쉬울 것 같은데 대체 왜 근육이 없단 말이냐!)
SF 장르는 작가의 상상력을 구경하는 재미가 큰데 이 소설은 120% 만족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유온이 서하와의 데이트로 급하게 나가는 와중에 옷을 잘 차려입는 부분이 있다. 그때 이런 문장이 써 있다. “작은 성의가 큰 차이로 이어지는 법이다. 신이 디테일 안에 산다면 사랑의 신도 아마 그 안에 있을테니.” 그렇다. 이 작가님의 SF 신도 이 디테일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다. 중랑천에 가득한 벚꽃 사이로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보인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이라 불러본다. 나는 황학주 시인님처럼 올리브 나무 가지 말고 벚꽃 가지로 꽂혀있고 싶다. 일 년에 며칠뿐이지만 이런 꽃길을 만들어내는 저 벚나무는 내년에도 필 것 같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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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베프가 되고 싶어 - 제1회 한솔수북 선생님 동화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 초등 읽기대장
김지원 지음, 김도아 그림 / 한솔수북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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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베프가 되고 싶어>

*2학년때 단짝이었던 민정이로부터 곰돌이가 그려진 물병을 작별선물로 받으며 이사 온 소은이가 주인공이다. 전학생인 소은이는 이곳에서 목소리가 큰 동찬이, 그런 동찬이에게 시끄럽다고 귀를 막는 지연이를 만난다. 지연이는 수상한 단짝클럽을 운영하는 아이다. 그 클럽에 끼지 못하는 단아도 만난다.
*나는 이 책의 줄거리보다 줄곧 파란 물빛으로 그려진 이 책이 참 수상했다. 표지에서 2/3을 차지하는 파란 바탕부터 물병을 선물하는 민정이, 파란 원피스와 파란 리본을 달고 있는 지연이, 물빛요정 루루 스티커, 푸른 공작새, 소은이의 눈물, 글에는 써있진 않지만 동물원에서의 친구들과 소은이가 비를 맞고 있는 장면, 지연이가 잃어버린 하늘색 가방, 동찬이의 파란 야구모자 등, 이 책은 푸르른 은유가 가득한 책이었다. 이 물빛의 은유를 수수께끼 삼아 유추하는 즐거움이 있던 책이다.
*생각해보면 2학년때 민정이와 진정한 우정을 경험해본 소은이로서는 지연이의 행동이 요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곳에서 친구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급했을 것이고. 물병을 선물해주며 작별인사를 하는 민정이를 따라 물빛의 루루를 선물하지만 지연이는 등급으로 친구를 나누는 아이였고, 소은이처럼 기다려주지 않는 친구였다. 물병을 잃어버린 사건 이후 블랙 루루, 화이트 루루를 요구하는 지연이에게 “네 부탁 못들어주겠어. 먼저 갈게.”(p.80)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소은이가 된다. 민정이가 선물해준 물병은 물을 담는 용도로 우정은 친구를 소중하게 대하는 태도라는 것을 소은이는 알게 된 것이다. 파란 치마를 입고 있던 지연이는 물빛과 닮아 소중하게 담아보려 했지만 오히려 소은이의 눈에 눈물만 쏟는 경험을 한 후 진정한 우정을 알아보고 동찬이에게 소세지를 건넨다. 사실 지연이의 행동은 어른과 다를바 없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나에게 필요한 친구, 필요하지 않은 친구를 나눈다. 하지만 그렇게 만든 친구들은 정작 지연이가 가방을 잃어버렸을 때 진위가 가려진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읽으며 첨에 소름이 돋았다. 이 책에 그려진 소은이는 영락없는 슬이였다. 머리길이만 빼면 부스스하고 취향없는 엄마가 골라준 아무 옷이나 걸쳐입고 밖에서 뛰노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 신경써주지 못하는(사실 나는 비쥬얼 쪽으로는 나도 애아빠도 문외한이라...) 아이의 겉모습은 호감형은 아닐 것이다. 내 아이가 사귀고 싶어하는 친구가 생각하는 등급에서 밑이라면 슬이보다 내가 더 슬펐을 것이다. 지연이는 왜 그랬을까? 지연이의 엄마가 그랬을까? 저 모습은 암만봐도 가까운 누군가의 모습을 따라하는 걸테니 말이다. 난 사실 선생님동화공모전에서 선생님이 쓴 작품이라는 게 충격이기도 했다. 선생님 눈에는 요새 지연이같은 친구들이 많다는 이야기일테니 말이다.

*베프란 무엇일까, 하늘이 파란 날 만나서 재미있게 뛰노는 친구, 비 오는 날이면 그런대로, 함께 맞으며 즐거운 친구. 목마를 때, 꼭 진짜 목마른 거 말고 감정적으로 그럴 때 함께 하면 갈증이 해소되는 친구. 슬플 때 변하지 않는 친구. 우정은 물빛이다. 이 책이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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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문방구 1 : 뚝딱! 이야기 한판 - 제2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 수상작 아무거나 문방구 1
정은정 지음, 유시연 그림 / 창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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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그려진 도깨비 생김새는 꼭 알라딘에 나오는 램프의 요정 지니 같기도 하고, 달마대사 같기도 하다. 사물에서 탄생한 장난꾸러기 도깨비는 현대에 와서 문방구 주인이 되었다. 이처럼 전래동화라고 불리우던 옛이야기의 소재들이 오늘날의 버전으로 이 책에 그려져 있다. 마치 책 속에만 존재하고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들이 아니라, 어린이 독자의 삶 속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해주는 작가의 메시지가 들리는 듯하다.

*앞으로도 시리즈물로 계속 나올 것만 같은, 나와야만 하는 이 책의 프롤로그는 다음과 같다.

옛날 옛날 깊은 산속에 이야기를 무지무지 좋아하는 도깨비가 살았어. 마을에 불쑥 나타나서는 사람들에게 대뜸 이야기 내기를 걸었지.
“어때? 나랑 재밌는 이야기 한판!”
사람들은 깜짝 놀라 벌벌 떨며 말했어.
“무.......무슨 이야기요?”
“아무거나! 이야기라면 다 돼!”
그런데 그게 또 희한해. 도깨비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이야기가 절로 술술 나오지 뭐야?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말이야.

여기서 도깨비가 원하는 이야기는 꼭 재미있어야만 하는 이야기라던가, 할머니에게 전해들어야 알 수 있는 그런 유명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 속 인물들만의 속마음이 담긴 이야기를 원한다. 따지고 보면 도깨비는 굉장한 경청자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어른들도 함께 읽고 이 도깨비에게서 한 수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슬이 친구 중에 가끔 눈을 마주쳐주면 더 열심히 이야기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다. 이렇게 눈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나서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일단 부럽다. (슬이가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 두 번째 드는 생각은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누군가 앞에서 이야기할 때 에너지가 증가하는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I인 나는 도가 지나치면 기가 빨..) 이런 점을 생각해보면 이 이야기좋아하는 도깨비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줌으로 아이들에게 해결할 수 있는 에너지를 보태주는 존재다. 우리 어른들도 본받아야 한다. 명령형으로 이야기하기보다, 아이앞에서 ‘라떼는~’ 은 좀 적게하고(안할 순 없을테니) 아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우리아이들이 힘을 받고 그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또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 또 다른 도깨비가 되어 아이들에게 힘을 주는 존재가 되는 선순환의 사회를 작가가 이야기하는 게 아닐까?
*이 ‘아무거나 문방구’를 들어가게 되는 아이들은 선택받은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운이 좋아야 아무거나 문방구 근처에 살고 있는 운이 있어야 할테니 말이다. 이즈음 생각하며 걷다보니 우리 동네 문방구가 보인다. 30년 운영하셨다는데 이제는 문을 닫는다는 현수막이 붙어있다. 사실 나는 이사를 왔기에 내가 어렸을 때 다녔던 곳은 아니지만, 몇 년 사이에 부쩍 나이드신 주인 할아버지가 어디 편찮으신가 생각하게 된다. 이제 아이들이 많이 줄었고, 인터넷이나 다이소에서 학용품을 사는 분위기다. 무인 문방구도 있고, 우리 때는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했던 도화지나, 리코더, 단소 이런 물품은 이제 학교에서 제공해준다. 어쩌면 문방구도 이야기 책 속에나 존재하는 곳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다 없어지고 그 자리에 무인편의점이나 하나 더 생길지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
전천당에 빠져 있는 아이라면 120% 좋아할 우리의 이야기이다.
새학기를 맞아 친구들과 우당탕탕 우정을 쌓고 있는 아이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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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사상과 종교공부 -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1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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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벽사상과 종교공부
K사상의 세계화를 위하여

나이가 불혹을 넘어 지천명으로 가는 중간 지점, 주변 분들은 논어를 읽기도 하고 주역을 공부하기도 한다. 내 윗세대가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다. 지천명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럽다. 그런 시기에 이 책을 만났다. 20세기의 우리나라 사람들만이 가졌던 사상에 대해. 비록 동학농민운동의 실패로 역사에는 한줄 남짓 외에는 기록되진 못했지만 그들이 가졌던 생각에 자랑스럽게 K를 붙여도 된다고 말하는 이 책을 말이다.
1장 정도를 읽으면서는 안중근도 천주교 집안이었다고 하고(그러니까 서학일 것이다) 유관순 언니(열여섯에 죽었지만 언니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이 분!)의 집안은 기독교집안(역시 서학)이었고 윤동주 역시 그러했다는 부끄러운 지식을 가진 나로서는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동학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이 책에는 문학에 있어서도 동인지 창조, 백조 보다 개벽이라는 잡지가 훨씬 많은 부수가 팔려나갔다고 한다. 민중들이 선택한 동학, 그게 대체 무엇이냐 궁금하다면 바로 이 책을 집어들어야 한다.
사실 근처에 휘경이라는 이름을 단 학교가 있어 원불교라는 종교가 낯설진 않았다. 0교시 채플시간에 한국어인 듯 한국어가 아닌 경전을 읊는다는 그 학교의 재단이다. 대체 불교와 뭐가 다르냐고 물으면 전혀 몰랐지만 이제는 대충 안다. 수운과 소태산에 대해 백낙청 저자로부터 들으며 상당히 스케일이 크고 그들이 꿈꿨던 세상의 디테일을 보며 이렇게 욕심 이 많은 사상가였음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런 욕심을 글로 쓰며 이 분들 얼마나 행복했을까, 하지만 근대의 그 시대는 얼마나 암울했나를 생각해보면 대단하다라는 말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한국인이 절대 피해야 할 대화 주제인 정치, 종교, 육아에 들어가는 터라 내가 어디까지 수용할 수 있을까 경계선을 세워야 다음이 읽히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백낙청 저자님이 서문에 “종교학 공부는 아니고 개벽사상과 개벽운동을 탐구하며 심화하는 것이 주된 목표”(p.5)였음을 밝히고 있다. 처음에 제목을 보았을 때, ‘개벽’이라는 단어가 옛것처럼 보이면서도 이날 이때껏 살며 경험해보지 못한 명사라 새롭게 다가왔음을 고백한다. 이 책에서는 “여기서 말하는 개벽은 물론 후천개벽인데, (...) 하늘과 땅이 처음 열린 ‘천천개벽’ 같은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일어나는 근본적 변화와 더불어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대변혁을 ‘후천개벽’으로 규정하고 추진한 것은 유독 한반도에서 시작된 현상이요 사건이다.”(p.6)라고 설명하고 있다. 처음에 이 단어를 사용한 수운 최제우 선생이 <용담유사>에서 ‘다시개벽’이라는 표현을 한 차례 쓴 것에 대해 시작된 이 개벽은 해월 최시형, 증산, 강일순, 소태산 박중빈등으로 이어진다. 이 개벽사상이 동학농민운동으로 이어졌고 3·1운동과 4·19, 5·18, 6월 항쟁 그리고 2016~2017년의 촛불운동으로 이어졌으며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백낙청 저자님을 포함한 대담자들의 이야기가 바로 이 책이다.
사실 서문만 읽어도 저자가 무엇을 담았는지 잘 보인다. 그는 1장에서 ‘K사상의 출발’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한반도가 세계에 내놓을 고유의 사상이 동학에서 더 멀리는 “원효나 최치원에서, 늦춰 잡아도 조선시대에 중국과는 여러모로 구별되는 유학 전통이 성립됐고 유·불·도 회통의 노력도 병행했다는 점에서”(p.8) 동학을 시작으로 잡는 게 부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 말한다. 하지만 “동아시아문화권 내에서도 완연히 구별되는 사상적 돌파가 그때 획기적으로 이루어졌고 21세기 지구인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역사가 출범했다는 점에서 예의 부제가 의미있다고 생각한다”(p.8), “‘K 사상’의 자랑은 그것이 남다른 실천의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사실이다.”, “수운, 증산, 소태산 등이 각자 뚜렷한 특징과 성향의 사상가들이지만 크게 보아 한반도의 후천개벽사상이라는 하나의 흐름을 이루었고, 그 전통이 소태산에 이르러 한층 세계화된 ‘K사상’에 도달했다는 주장이다. 이는 소태산에 와서 후천개벽이라는 한반도 특유의 흐름과 불교라는 오래전부터 세계종교의 반열에 올라 있던 사상의 융합이 이루어짐으로써 세계사적으로 의미있는 새 길이 열린다는 인식” 등을 설명하고 저자의 결론까지 일찍이 밝힌다.
총 4장으로 이루어진 이 책을 읽으며 나는 동학에 대한 이해로 시작하지만 여기서 파생된 종교인 원불교의 이야기가 절반 이상, 기독교가 반성해야 할 지점 1/4정도로 읽혔다. 분량면으로는 그렇고 기독교를 다룬 4장이 나에게는 개벽과 같은 장이었음을 고백한다. 나는 신학에 대해 무식했고(지금 이 책 한권 읽었다고 유식해진 건 아니겠지만)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점에 반성했다. 개인적으로는 ‘욥기’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대심문관’에 대한 토막토막 문장들이 의미있었다. 이 책을 덮으며 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동아시아인으로서 한국인이다. 여성이며 부모님으로부터 모태신앙을 선물받은 기독교인이다. 이 중 나의 사고 근간을 생각해본다. 기본적으로 한국인 여성의 시각으로 생각하지만 나에게 닥친 윤리 문제의 끝에는 기독교가 서 있다. 무식한 기독교인에게 숙제를 안겨주는 책이었다. 아마도 풀어내지 못할 것 같은 숙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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