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서윤빈 지음 / 래빗홀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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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로 내게 눈도장 쾅 찍은 래빗홀에서 신간이 나왔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
영원한 저녁이 있을 수가 있던가,
호기심이 저녁노을처럼 스며드는 제목이다.
사실 ‘저녁의 연인들’까지는 황학주 시인의 시 제목이다.
그의 시 중 이런 부분이 있다.

“이제 찾아오는 모든 저녁의 애인들이
인적 드문 길을 한동안 잡아들 수 있도록
당신이 나를 수습할 수 있도록
올리브나무 세 그루만 마당에 심었으면”

여기에 ‘영원한’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사람의 장기를 임플란트처럼 대체할 수 있는 미래다.
하지만 비용이 꽤 되기 때문에 장기렌탈할 금액을 낼 수 없는 이들은 죽음을 선택한다.
그런 죽음을 계획하는 사람들의 연인, 유온이 주인공이다.

따지고 보면 서윤빈 작가님이 저녁의 연인들이라는 시 제목에 ‘영원한’이라는 임플란트 수식어구를 장기렌탈했구나 싶다. 댓가는 무엇으로 지불하려나.

이 소설의 장르를 따지자면 SF Romance 정도 될 것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디테일이다.

“버디의 등장으로 우리 시대의 인간은 장기를 하나씩 임플란트로 갈아 끼우며 영원히 살 수 있게 되었고,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버디, 모드라는 신기술이 등장한다. 이름도 가볍게 참 잘 지었다)

“버디를 달지 않은 옛날 사람들은 막연한 불안에 시달렸다고 하는데, 이 시대에는 불안이 당신에게 직접 말을 건다.”(버디는 3세 경 뇌에 문신하듯 새기는 기술이다. 이제 현대인의 불안이 해결될 날이 머지 않았음을 이 근미래 소설에서 느껴본다. 만세!)
“발전하는 기술은 휴대전화를 바꾸는 걸로 따라잡을 수 있으니 기술 발전에 밀려 버디가 낙후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더 이상 내가 노인이 되었을 때 기술을 못 따라가서 낙후 될 걱정또한 필요없다. 모듈화가 잘 되어 있어 걍 돈으로 휴대전화만 사면 된다)
“기본적으로 운동은 건강에 좋지만, 신체에 불필요한 손상이 쌓여서는 본말 전도다.”(노화에 대한 많은 이론들이 있는데 많이 쓰면 그만큼 많이 닳는다는 게 진리인 세계인 것이다. 지난 주에 궤도님이 티비에 나와서 비만은 10년 내로 해결될 것이라는 이야기 급으로 쇼킹했다)
“근육은 임플란트도 없어.”(아니 장기보다 근육이 훨씬 만들기 쉬울 것 같은데 대체 왜 근육이 없단 말이냐!)
SF 장르는 작가의 상상력을 구경하는 재미가 큰데 이 소설은 120% 만족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유온이 서하와의 데이트로 급하게 나가는 와중에 옷을 잘 차려입는 부분이 있다. 그때 이런 문장이 써 있다. “작은 성의가 큰 차이로 이어지는 법이다. 신이 디테일 안에 산다면 사랑의 신도 아마 그 안에 있을테니.” 그렇다. 이 작가님의 SF 신도 이 디테일에 살고 있는 듯하다.

해가 저무는 시간이다. 중랑천에 가득한 벚꽃 사이로 손을 맞잡은 연인들이 보인다. “영원한 저녁의 연인들”이라 불러본다. 나는 황학주 시인님처럼 올리브 나무 가지 말고 벚꽃 가지로 꽂혀있고 싶다. 일 년에 며칠뿐이지만 이런 꽃길을 만들어내는 저 벚나무는 내년에도 필 것 같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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