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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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어부들] 은 읽는 이에게 다양한 생각과 즐거움을 선사한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나이지리아는 여러 부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이며 60년 이상 영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960년 독립하며 정치적 혼란을 겪는다. 이야기의 화자 벤의 가족은 가정 내에서 여러 부족의 언어와 영어를 함께 사용한다. 벤의 부모가 부족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은유가 담긴 언어를 그들의 아이들은 때때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석해 버린다. 이들 가족처럼 나이지리아 안에서도 세대간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가 있으며, 부족간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가 존재한다. 서로 이해하고, 함께함에 있어 어려움이 존재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부들]은 작품 속 표면적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힘이 있지만, 당시 나이지리아의 상황과 형제들에게 닥친 일들을 대치하여 생각해 볼 수도 있어 더 흥미롭다.

육 남매의 생계를 위해 포조 504를 타고 가족들과 떨어져 도시로 전근을 가게 된 아버지를 대신해 형제를 잘 이끌었던 이켄나는 마을의 광인에 의해 한 순간 쉽게 무너져버린다. 이켄나의 친구 솔로몬의 제안으로 이켄나와 그의 동생들은 마을의 버려진 강, 오미알라 강으로 낚시를 하러 간다. 낚시가 잘 되어 자신들의 용돈벌이는 물론 재미를 느끼기를 바랬던 형제들은 스스로를 '어부들'이라 명한다. 하지만 그들의 즐거운 낚시는 오래가지 못한다. 마을의 광인이 형제들을 이끌고 보듬었던 어부들의 선장 이켄나에게 저주를 내렸기 때문이다. 저주 이후 '어부들'과 그들의 가족은 무너진다.

작품 전반에 존재하는 감정은 '두려움과 증오'이다. 이켄나의 비극이 그의 두려움 때문이었을지, 저주의 힘이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결코 증명 불가능하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믿고 있는 광인 아불루의 저주는 폭력적이다. 아불루의 저주는 무지한 마을 사람들의 이유없는 신뢰를 야금야금 먹고 힘이 생긴 것이다. 힘을 가진 악인은 저항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려운 존재이다. 따라서 저주를 내려받은 사람은 자신의 저주를 믿게 되고, 저주를 믿게 되는 순간, 저주의 문을 '스스로' 열게 되는 것이다. 처음부터 말도 안되는 저주였다. 표면적으로 누구나 다 아는 형제들의 돈독함을, 그들이 강가에서 부르던 어부의 노래를 알고 있던 아불루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저주를 제조하고 형제들 모두의 머리 위에 솔솔 뿌려댄 것이다. 저주를 뿌려댔던 아불루는 인간의 두려움이 스스로를 파괴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이켄나 이전 저주의 가루를 뿌렸던 사람들을 통해 확인을 것이다. 결국 이켄나의 비극은 '두려움'이 몰고 온 결과이다. 무지와 두려움은 우리를 파멸시킬 수 있으며, 그걸 이용하려는 악인들은 항상 우리 주위에 도사리고 있다.

[어부들]은 작가 치고지에 오비오마의 첫 장편 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첫 소설은 화려한 찬사와 성과를 이루었다. 독특하고 아름다운 은유의 문장들과 개인의 이야기를 역사적 사실과 잘 조화하여 부드럽게 풀어나가는 힘을 가진 작품이었다. 책의 표지와 제목만으로 [노인과 바다] 이야기를 연상했을 만큼 은유적이다. 풍랑을 헤치며 리더와 동료를 잃었지만 바다를 항해하는 어부들의 배가 침몰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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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들
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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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320
두려움이라는 모래바람이 나를 집어삼켰다. 제정신이 아닌 채로 나는 최대한 빠르게, 집들과 덤불이 있는 오솔길 사이로 도망친 끝에 아불루의 망가진 트럭에 다가갔다. 그런 다음 나는 멈춰 서서 두 손을 무릎까지 늘어뜨리고 살려고, 공기를 마시려고, 평화를 얻으려고-그 모든 일을 동시에 하려고 숨을 헐떡였다.

● p. 334
다음 날이라는 미래가 두려워 괴로웠다. 그때 나는 조용히, 가능한 한 희미한 귓속말로, 그날이 절대 오지 않기를 , 다음 날의 다리뼈가 부러지기를 기도했다.

✍ 오벰베와 벤의 응징이 옳은 것이었을까? 모두가 이켄나와 보자의 비극을 자신들의 작은 실수로 만들어진 구멍이 벌어진거라 생각한다.  저주가 고약해서 그들이 비극을 맞은 것일까? 그저 한낮 광인의 주절거림인데 그들이 너무 나약해서 초래한 비극일까? 나이지리아 군부가 너무 극악무도해서 그들이 불행했던 것일까? 그들이 나약하고 무지해서 군부가 극악무도해진 것일까? 그 모든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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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고지에 오비오마 지음, 강동혁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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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201
보자는 곰팡이였다.
그의 몸은 곰팡이로 가득했다. 그의 심장은 곰팡이로 가득한 피를 펌프질했다. 그의 혀는 곰팡이로 감염되어 있었고, 아마 다른 신체 기관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 p.266
증오는 거머리다.
사람이 살갗에 달라붙는 것. 사람을 먹고 살며, 인간 영혼의 진액을 빨아내는 것. 증오는 사람을 바꾸어놓으며, 그들의 평화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 먹기 전에는 떠나지 않는다.

✍ 생물의 몸에 기생하여 파괴를 불러오고,  목적을 다하여 스스로를 파괴하는 '슬픈' 곰팡이였던 보자. 보자도 이켄나 못지 않게 상대를 참아내지 못한다.  형제의 충돌이 가족 전체를 아프게 한다. 그 시간, 그 곳에 존재하지 못했던 부재에 대해... 그 시간, 그 곳에 존재했지만 마음을 나누지 못한 것에 대해서... 그 시간, 그 곳에 존재했지만 부딪힘을 잠재우지 못한 것에 대해서...가족 전체는 스스로를 탓하며 병들어 간다. 

그들의 비극은 정말 운명이었을까? 파국으로 치닫는 그들의 운명을 막을 수 없었던 건 정해진 시간이었기 때문일까? 아불루는 정말 악의 전령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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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광유년
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자음과모음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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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 473~474
두바이가 말했다.
"바깥세상은 변했더군. 토지도 분배된 지 여러 해가 지났어. 개방이 됐다고. 형님이 토지를 분배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밖에 나가 장사도 하지 못하게 막는데 누가 수로 준설 공사에 참여하려고 하겠어? 사람들이 피부를 팔아서 번 돈을 몰수해서 수로 공사에 쓰는 걸 누가 원하겠어? 누구든 초가집을 부수고 기와집으로 새로 짓고 싶어 해.

✍  산싱촌의 불운은 쓰마란이 몰고 온 것이 아닌가 싶다. 촌장이 되고 싶다는 그의 욕망은 처음부터 잘못된 단추였다. 거짓, 음모, 압박, 일방적 강요는 리더의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세상은 변했는데 변한 세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미래를 위해 무조건적인 희생을 강제하는 쓰마란의 모습은 누구와 무엇을 풍자한 것일지 궁금해졌다. 피부를 팔러 시내로 나가게 된 산싱촌의 주민들은 바깥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바깥도 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 더 이상 수로에 무조건적인 희생을 거부한다. 당연한 행동이다. 모두를 위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선 나의 행동에 따른 다양한 보상은 필요하다. 그러나 언제나 쓰마란은 확실하지도 않은 생명연장이 가능한 미래를 볼모로 지나칠 정도로 모두를 밀어붙이고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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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세트 - 전10권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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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열린책들 창립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세트 (NOON)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길들인다는 것' 등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고전 [어린왕자]는 책을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익숙하고 친숙하여 읽었을 거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고전 중 하나이다. 인류가 사랑하는 이야기 [어린왕자]는 우리의 잃어버린 순수성과 현대인들이 가지는 다양한 모순을 자각하게 해주는 안내자 역할을 함으로써 오래도록 사랑받았으며, 앞으로도 사랑받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비행기 조종사인 '나'는 사막에 불시착하고, 그곳에서 이상한 차림새의 한 아이를 만난다. 아이는 자기를 B612라는 먼 행성에서 온 '어린 왕자'라고 소개한다. 어린 왕자는 '나'가 오랫동안 손을 놓았던 그림을 그리게 하며 자신의 별에 대해, 지구에서 오기까지 거쳤던 다양한 별들에 대해 이야기 한다.

어린 왕자가 지구에 도착하기 전 들렸던 다양한 별들 속 다양한 군상의 사람들 중 세 번째 별의 '술꾼'이 제일 한심하게 느껴졌다. 난 음주를 즐긴다. 한 계단 기분을 올려주기도 하고, 생각이 폭발하여 다양한 비판과 감정을 일으키기도 하기 때문에 술을 즐긴다. 술을 즐기는 나에게 "술을 먹는 자신의 모습을 잊기 위해 술을 먹는다"는 '술꾼'의 말은 비겁한 자기합리화로 느껴졌다. 술꾼은 '균형'을 잃은 것이다. 즐기는 것이 지나치면 중독이 된다. 중독자의 모습은 모두의 얼굴을 찡그리게 한다. 술꾼은 멈추지 못하였고, 자신이 앞으로도 멈추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자신의 나약함을 잊기 위해 술의 망각을 이용한다는 '술꾼'은 평생을 휘청거리며 살아갈 것이다. 무언가를 온전히 오래도록 즐기기 위해선 멈추어야 할 때를 알고, 멈출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모두의 인정을 받으며 제대로 즐기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잘 멈추어야 겠다.

작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의 경비행기 조종사 '나'처럼 비행기 조종으로 우편을 배달하기도 하고, 전쟁에 참가하기도 한다. [어린 왕자] 이외의 그의 작품들을 쭈욱 나열해 보면 그의 작품들이 그가 겪은 일들을 바탕으로 쓰여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린 왕자] 속 경비행기 조종사처럼 작가 자신도 사막에 일주일간 불시착했었다고도 한다. 그는 사막에 불시착했던 기간동안 자신의 잃어버린 순수함을 일깨웠던 무언가를 만나고 그것을 형상화하기 위해 펜을 들었을 것이다. 작품 말미 어린 왕자가 모래사막에서 나무가 쓰러지듯 천천히 넘어져 사라졌듯이 그도 참전 비행 중 사라진다. 어쩌면 작품 속 어린왕자는 작가 본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철학을 이렇듯 멋진 방법으로 세상에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라는 직업의 매력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어린 왕자]는 전체적인 작품의 줄거리를 알지 못하다라도 개별적 이야기들만으로도 우리에게 다양한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또한 가볍지만 깊은 이야기들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서로 다른 색깔로 특별함을 선사할 신비로운 작품이다. 학창시절, 초보 엄마 시절, 사춘기 자녀를 둔 지금까지 여러 번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선사했던 [어린 왕자]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나의 곁에서 또다른 깨달음을 줄 것 같다. 많은 출판사의 많은 [어린 왕자]중 열린책들의 '황현산 선생님'의 번역이 가장 좋다는 추천을 받았다. 시처럼 아름답게 다가오는 문장들이 역시나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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