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 한국
공병호 지음 / 해냄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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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국경제는 저성장, 고실업을 맞고 있다. 게다가 몇 주 전 정부는 경제성장 목표치를 낮췄다. 이 책은 현재의 한국경제의 이런 문제를 진단하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개략적인 내용은 한국인 특유의 정서를 버리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에게 있어, 연대, 연고, 정, 민족이라는 말은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어왔다. 특히 정치인들은 침울한 경제상황을 이용하여, 민족이니, 평등이니 하는 말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유혹하며, 국민들은 그 수사에 현혹된다.

저자는 특히 평등주의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가한다. 한국인에게 있어 이웃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나는 땅도 없는데, 왜 저 사람은 땅을 사는 거야” 라는 이상한 심리가 작동한다. 부자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부자가 비난받아야 특별한 이유는 없다. 하지만 착취당했던 과거의 경험을 부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부자로 하여금 한국을 떠나게 만든다. 특히 자본의 이동속도는 가속화되고 있다. 국제자본시장에서 자본흐름이 자유화됨에 따라, 과거보다 더 쉽고 편하게 이동시킬 수 있다.

교육 분야에 대해서도 동일한 일침을 가한다. 한국의 교육이 점점 하향화, 평준화됨에 따라 해외 유학생수가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움직임은 지식인층과 부유층에서 이미 일반화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의 하버드를 동경하면서도, 한국의 대학에 대해서는 정부는 평준화를 위해 규제를 가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서울대와 정부간의 대학입시 문제가 불거지고 있는 이유인지도 모른다.

이처럼 한국사회는 아직도 전근대적인 사고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모든 것이 민족이나 정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모든 분야에 크게 작용하고 있다. 통일문제에서도, 미군 주둔문제에서도, 정치문제에서도, 경제문제에서도. 이런 요소들은 사람을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하기 보다는 감정적으로 치우게 하여 편협한 시각을 갖게 한다.

저자는 이러한 한국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체, 기업, 개인이라는 세가측면에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즉 10년 후 한국을 위한 대비책을 말하고 있다. 간략히 살펴보면 공동체 측면에서는 기업가 정신, 관용, 개방성을 가지라고 한다. 기업 측면에서는 국가리스크를 최소화하고 시장규칙을 기업에 적용하고, 기회를 찾아 나서라고 한다. 개인 측면에서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을 버려라, 자유시장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라, 홀로 당당히 맞서라고 한다. 이처럼 저자의 해결책은 저자의 신념과 역사적 고찰을 통해 제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저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이 글을 끝맺고자 한다.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 스스로 판단하고 준비해야 한다. ‘주어진 제도에서 열심히 공부했는데, 왜 일자를 잡을 수 없는가?’라는 탄식이 흘러나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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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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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홀로 존재하지 못한다. 항상 누군가와 있어야 한다. 때론 정신적 고독을 즐길 수도 있을 것이다. 가끔은 그런 정신적 고독을 통해 한 인간의 성숙함을 고양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인간은 홀로됨을 할 수 없는 존재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우린 과연 얼마나 혼자의 시간을 가졌었는가? 태아 때는 혼자였다고? 아니다. 어머니와의 정신적 교감을, 때론 육체적 교감까지 느꼈을 것이다. 인간은 이처럼 항상 누군가와 함께 있음으로 해서 정신적·육체적으로 성장을 해간다.

이 책의 세 편의 소설의 주인공, 미카게, 사츠키들도 그랬다. 할머니를 잃고 홀로 세상에 남겨진 미카게, 애인을 잃고 큰 슬픔에 잠긴 사츠키, 그들에겐 누군가를 잃었다는 것이 보통 사람보다도 더 크게 다가온다. 왜?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탱시켜주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역시 공평한가보다. 그들을 위로해 줄 또 다른 주인공, 유이치, 우라라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하루키 현상'에 버금가는 '바나나 현상'을 만들어낸 저자의 의도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실도 그럴 것이다. 누군가를 잃어버리면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고 계속해서 그 연(緣)은 되풀이된다.

저자는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려는 시도에서 이 소설들을 집필했을 것이다. 짧은 단편 소설에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심오한 분위기를 불어넣은 저자는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주위의 죽음에 이은 죽음과 그 죽음을 극복해보려는 한 인간, 아니 한 인간의 무리들. 유이치와 우라라 또한 주인공들의 아픔을 겪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삶이란 역자의 후기처럼 '상처깁기'를 하는 것인 줄도 모른다. 하지만 상처라기 보다는 인생의 한 경험으로 치부하고 싶다. 상처라고 하면 왠지 쓸쓸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 책은 삶이란 감싸안기를 통해 우리의 일상을 좀 더 내밀히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때론 저자의 환상적인(?) 분위기는 왠지 이 책을 읽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게이바의 주인인 유이치의 어머니 아니 아버지의 분위기, 그리고 어디서 왔는지, 누군지도 모르지만 이상하리만큼 끌리는 우라라의 분위기와 백년만 일어난다는 환상 아니 환영. 어쩌면 이 책 자체도 이해할 수도 없을지 모른다. 이 책의 제목인 키친, 말 그대로 부엌이란 뜻이다. 왜 부엌인가? 이 책의 주인공 미카게가 부엌을 좋아해서, 이 책의 저자가 여자여서.

모두 아닐 것이다. 이 책은 부엌이라는 일상적인 공간을 통하여 인간의 내밀함을 좀 더 그려 내보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친숙하지만 그 친숙함에 눌려 몰랐던 것을 우리에게 말해보고자 했던 것을 아닐까? 우리 주위의 친숙함을 한 번 생각해보고 그 친숙함을 다시 한 번 새겨보자. 사람이든 사물이든 상관없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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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김호영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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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 빨개지는 아이>라는 이 책은 단순히 호기심에서 구입한 책이었다. 책 내용이 어떻고 독자들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상관이 없었다. 단지 내성적인 성격인 나에게 얼굴 빨개지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왜 얼굴이 빨개졌을까라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구쳐 오르는 호기심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다. 어쩌면 이 아이도 나와 같은 일을 겪고 있을 거라는 동질감으로부터 나온 것 인줄도 모르겠다.

이 책의 주인공 얼굴 빨개지는 아이 마르슬랭은 유난히 갑자기 얼굴이 빨개지는 아이였다. 아니 항상. 얼굴만 빨개졌으면 다행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황에 맞지 않게 빨개져야 할 때는 빨개지지 않고, 빨개지지 말아야 할 때는 빨개지는 아주 이상한 병(?)을 갖고 있는 아이다. 하지만 이 병을 누가 탓할 수 있으랴?. 그러나 세상은 참 잔혹하기도 하지. 마르슬랭은 이 희귀병 때문에 따돌림을 당하고 홀로 남게된다. 자연히 혼자 노는 것을 좋아하게 된다.

하지만 재채기를 유난히 자주 하는 로토라는 또 한 명의 희귀병을 가진 아이를 만나고 나면서부터 마르슬랭은 삶의 기운을 되찾는다. 어쩌면 동질감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마르슬랭에 동질감을 느낀 나처럼. 둘은 항상 같이 붙어 다니고 조용히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친구가 된다. 하지만 세월은 그 둘을 떨어뜨리고 많은 세월이 흐른 후, 둘은 운명적인 만남을 갖고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그 당시 했던 장난과 놀이를 맘껏 같이 즐긴다. 책은 둘의 이런 운명적인 만남으로 끝을 맺는다.

단순하다고?. 그렇지 않다. 이 책의 저자 장 자끄 상빼의 그림과 함께라면 이 글을 단순하지 않다. 진한 감동의 물결이 마음을 뚫고 나올 싶을만큼 감동스럽지 않다고? 그렇지 않다. 빨개지는 얼굴과 재채기라는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아이들이 서로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는 그것을 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가를 이 책을 보면서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생각할 수 있다. 또 바쁜 일상으로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책은 진한 우정을 느끼게 해줄 것이다.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끼리의 만남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친구로서의 만남을 생각나게 해줄 것이다.

어쩌면 빨개지는 얼굴과 재채기라는 동기가 이 책의 주요 내용인 것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아이들의 진한 우정을 그린. 하지만 나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콤플렉스는 목적을 위한 단순한 수단일 뿐이다.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뿔뿔이 흩어져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우정이란 언제나 진한 감동을 주고 또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우정이란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진한 감동을 더 느끼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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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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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이 책이 <마지막 수업>이라는 책과 비슷한 여운을 주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책 뒤표지에 '떠나는 자와 남는 자의 마지막 수업'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추측컨대 떠나는 자는 선생님 남는 자는 학생이라고 혼자 생각했었다. 너무나도 당연한 하지만 상상력이 없는 추론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책을 펼쳤을 때 이 책의 저자 미치 앨봄, 그리고 왠지 주인공일 듯한 모리 슈워츠, 마지막으로 번역자 이름이 쓰여있었다. 역시 생각한대로. 주인공이 모리라는 사회학 교수였고 저자 미치 앨봄은 칼럼니스트니였으니.

하지만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이 책의 분위기는 잿빛 안개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생각한 것과와는 달리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었고 너무 암울하고 슬픈 내용이 가득 실려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과정을 그린 이 책의 내용은 죽음의 벼랑에 서있는 교수와 그의 제자인 저자의 마지막 대화(수업)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죽음. 누구나 생각하기 싫어하는 단어이다. 말 그 대로 죽음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암
울함밖에 주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잃는다는 그 상실감이 사자(死者)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또 다른 상실감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미한 생물일지라도 죽음 앞에서는 담담하지 못하는 법인데, 그 미미한 생물보다는 때론 더 미미한 존재인 인간은 더 그렇지 않겠는가?

하지만 삶과 죽음은 겉과 속일 뿐이다. 어떤 것이 겉이고 속일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인생에 있어 삶과 죽음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다. 이런 인생을 이 책의 주인공 모리 교수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맞서고 오히려 죽음 앞에서 더 활동적이고 생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천상병 시인이 <귀천>이라는 시에서 인생을 소풍이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소풍 온 것처럼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린 모리 교수는 죽음을 달갑게 맞이하고 오히려 이전 보다 더 많은 지식을 우리에게 심어준다. 교육자로서의 길이 점점 좁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오히려 그 길을 더 넓혀 죽음이란 것이 내 인생의 최대의 행복을 주고 있다고 말할 정도다. 저자가 좋아하는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는 말처럼 인생이란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하는 것처럼.

이런 또 다른 삶인 죽음 앞에서 모리 교수는 자신이 후학들에게 가르쳤던 '상반됨의 긴장'을 몸소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는, 당연시 할 수 없지만 당연시 해야하는 인생의 아이러니에 대해서.

인생은 행복한 것이다. 모리 교수는 자신의 마지막 강의를 온 세상 사람들에게 단순하면서도 상반됨의 긴장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인생을 행복한 것이라도 상기시켜주고 있다.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그 죽음이란 또 다른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면서. 오늘 인생이란 죽음보다도 더 슬픈 일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죽음 앞에서는 슬퍼져야 하는 현실을 박차고 일어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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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대한민국 1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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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사회의 강권화된 술 문화, 스승에 대한 지나친 의식과 의식화된 보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착취, 규율적인 선후배 관계.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들이다. 이런 문화에 관성화된 우리에겐 너무 당연시 받아들여진다. 이런 문화 속에 무의식적으로 다수의 횡포에 휩쓸려 다닌다. 다수가 저런 문화에 익숙해져 융통성 있게(?) 대처해 가는데, 나만 소수가 될 수 없지, 외톨이가 될 수 없지라는 생각은 너무 오래되었다. 민주사회가 도래했다고 한 게 엊그제 같은데 언제부터 이런 몰이성적이고 강권적인 문화가 잔존해있는 것일까?

잔존했었다고 보기보다는 간과했다고 보는 것이 낫다. 그런 사회의 비윤리적 모습을 묵인해주고, 그런 묵인은 겉만 반듯한 민주사회를 만들었다. 저자가 자주 쓰는 오야붕-꼬붕의 관계는 아마도 우리 사회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말일 것이다.. 교수와 조교의 관계는 어느새 식민지 시대의 저속한 일본 문화의 한 단편이 되었고, 아첨과 아부는 가장 대표적인 수단이 되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에 귀화한 박노자씨는 이런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자신을 돌아보라는 말을 한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곳에 다시 한 번 시선을 돌리고, 생각해보라고 한다. 그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뿐이다. 책 제목에서처럼 타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 사회였고, 한국 사회의 주체는 우리이기 때문에.

서양이 동양을 야만적인 비문명으로 본 것에 분개하는 우리가, 이젠 우리 스스로를 비문명국으로 만들고, 사회 내부의 타인을 비문명인으로 만들고 있다. 사회가 급격한 발전을 하면서 선진국 대열로 향한 열망은 고개 숙일 줄 몰랐고, 그런 열망에 우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위를 바라보던 우리가 이젠 아래를 바라보게 되었다. 아래에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들이 있고, 그 국가들의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상적인 국가를 향해 몰려든다. 마치 우리가 미국을 이상적인 국가로 보는 것처럼.

몰이성적인 패거리주의는 어느새 우리 의식 속에 침투돼 악성 바이러스처럼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닌다. 혈연, 지연, 학연이라는 삼연(三緣)은 패거리 속에 좋은 수단으로 작용해 비이성적인 민족주의를 외치고, 만성 부패의 늪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게 한다.

타인의 시선이 객관적인 반면 한 곳에 치중될 수 있는 단점이 있지만, 10여년을 한국 사회와 함께 했던 저자에게 이런 단점은 보이지 않는다. 아니 없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병폐에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 경종을 울리는 좋은 책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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