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가 어쨌다구? - 벌거벗은 말들의 세계 우리 시대의 질문 2
윤보라 외 지음 / 현실문화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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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혐모가 어쨌다구?]


[여성 혐오를 찾으신다면 다른 책을 일기를 권합니다]


[★★]


[2016. 5. 12 ~ 2016. 5. 13 완독]



 가부장제 사화에서 기대(강요)되는 여성의 역할은 남성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p96

 여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은 나쁜 여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여성을 참조해 사회적 필요에 따라 재구성 되는 것이다.

p16


 2016년.

지금 시대를 관통하는 단어를 하나 꼽으면 '혐오'라는 단어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특히, 벌레 충(蟲)이라는 한자를 사용하여 OO충, XX충 식으로 특정 프레임을 만들어 까내리는 혐오 열풍은 시대를 아우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연일 뉴스에서는 여성 혐오에 대한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뿌리깊이 박혀있는 방향성 잃은 유교 사상으로 인해 여성의 입지는 남성보다 낮다는 인식을 일단 깔고 간다. 회사가 어려워져 인력감축을 해야될 시에 나이순으로 짜르는 것 이외에도 남성보다는 여성을 더 쉽게 감축 대상으로 잡고 있는 것을 흔히 볼 수가 있었다. (역차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여성 혐오가 궁금해서 빌려본 책이니...)


 아마 가장(家長)의 책임감 같은 전통적인 가치를 더 부여했다는 추측이 들기도 하고... 음...? (아...오늘 필력이 부족하다)



 아무튼.

세상에 만연해 있는 '남여/여남 성 대립'이라는 프레임에 관해서 몇몇 여성 작가의 시선은 어떠한지 궁금해서 빌려본 책이였으나 시덥지 않은 결말로 끝나버리는 책이였다. 서로를 자극하기 위해 특정 사건에 대한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카더라~"라는 식의 조작/ 날조되어 이러한 프레임을 가속화 시키고 있음을 흔히 볼 수있다.


 이러한 사건에 휩쓸리는 우리는 둘째로 치더라도,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의 시작인 대화를 할 작은 틈 조차 용납하지 않는 지금의 세태는 어디서 부터 잘못되었는지 모르겠다. 혹자는 어릴적부터 내몰린 치열한 경쟁 사회가 계속되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어졌다고도 하고, 초원의 절대율법인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소수/약자로 칭할 수 있는 이들을 물어뜯으며 쾌락을 느낀다고 하는 등 여러 가설들을 들어왔지만 시원한 대답은 아직 찾지 못하였다.


 


 여성의 외모와 성적 매력은 취업, 연애, 인간 관계 등 모든 영역의 성패를 좌우하는 자산 가치의 최종 심금이 되었다.

p31

MBC 스폐셜 - 노처녀가.

 인격의 통일성은 더 이상 미덕으로 간주되지 않는다. 살벌하게 경쟁적이고 굴욕적인 일상을 견디는 방식이 어딘가, 누군가에게 자기혐오, 비루함, 억울함, 불만, 짜증을 부려놓은 것이다. 그래야 다음 날 말짱한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견딜 수 없는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것이 자기 분열이다.

p51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기존의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전통적인 가족이 1인 가족, 딩크족(아이를 낳지않는 부부), 비혼(주체적으로 결혼을 하지않음), 동성 가족 등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가족으로 바뀌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음을 기억하자. 우리가 이러한 새로운 가족을 호불호(好不好)와 상관없이 확대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에따라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의 끝자락에서 그 몰락을 지켜보고 있는 시대가 우리일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그래서 옛날부터 아버지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는 가장의 책임감, 어머니라는 단어와 연관되어 있는 육아/가사와 같은 것들에 대한 가치와 의미가 위협, 또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세대가 확실히 많아졌다.


 통계청 2015년 사회지표의 3번째 단락에서 (#링크 : 2015 한국의 사회지표 주요결과) "결혼은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감소하고, 이혼은 '할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증가하고 있으며"라는 구절로 미루어 보아 확실히 옛날과 변화하고 있는 세대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반발이 각종 프레임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가설을 세워본다.


 책에 대한 얘기가 하나도 없었지?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라는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성별 프레임 싸움에 대한 사족밖에 되지 않는다. 여성 혐오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해 나가야 하는 목표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고, 프레임 싸움을 가속화 할 논란 거리만 무수하게 남겨줬을 뿐이다. (겉만 핥았다는 소리다.) 그래, 지금 익명을 빌미로 벌어지고 있는 인터넷 싸움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일정한 거리에 일정하게 놓여있는 두개의 직선처럼 끝나지 않는 싸움에 지치기만 하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대중의 수용도가 가장 빠르게 증가한 국가 중 하나다.

p245

 오늘날 한국 성소수자들은 오래된 혐오의 새로운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 성소수자들의 가시화와 인권 운동의 성장, 대중 인식의 변화를 통해 뿌리 깊은 편견에 균열이 갔지만, 동시에 신자유주의 위기와 경제/정치적 양극화, 강경 보수 정권 재집권이라는 맥락속에서 성소수자 혐오가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p229


 오히려 여성 혐오 보다는 뒷편에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얘기를 읽어보기를 권한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성별 프레임 싸움보다는 전통적(...)으로 엄청난 억압을 받았던 성소수자들에 대한 이야기가 더 생각할 거리를 주고 있다. '부모 - 자녀' 라는 '정상 가족'이라는 의식에 사로잡혀, 종교에서 정해줬기 때문에 자행되었던 성소수자 억압. 지금도 '질병'이라는 의식에 묶여 강제적으로 성정체성을 찾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


 이제는 동성 커플에 대한 반발로 옛날 보다는 많이 줄어든 것이 사실이지만, 이러한 새로운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다시 새로운 편견/이데올로기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무섭다. 그리고 내가 그런 생각을 가질까봐도 무섭고...




 혐오가 파괴하는 누군가의 존엄은 나의 존엄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질문에 함께 답해야 할 때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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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 그들은 왜 세상 모든 게 버거운 어른이 되었나
미하엘 빈터호프 지음, 송소민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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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


[2016. 5. 15 ~ 2016. 5. 17 완독]


[인터파크신간리뷰단 활동]





현실 도피자, 무사안일주의, 영원한 어른아이...

나는 이들에게 외치고 싶다.

"여보세요, 제발 성인이 되세요."

서문

뭔가 크게 잘못되고 있다.


 해가 지나면 지날 수록, '성인'이라는 단어가 어떤 사람을 뜻하는지 모르겠다. 소싯적에는 어른의 조건으로 '법적으로 성인으로 인정받는 20살의 나이', '결혼해서 자녀가 있음' 정도였는데, 진짜 성인이 되고 내 앞가림을 하고 있는(하고 있냐?) 지금은 더욱 모르겠더이다.


 결혼을 해야한다는 의식이 줄어들어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가 아닌 '결혼할 마음이 없거나,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뜻의 '비혼'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으며, 1인 가구의 증가( #링크 : 통계청, 2015년 사회지표, 정책 뉴스) 등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했던 '부모 - 자녀'(최소) 이루어진 가족의 형태가 깨지고 있다. (이미 많이 깨졌지)



 무언가. 새로운 것을 낳고 있는데, 내가 그 새로운 것을 좋아 할지는 잘 모르겠구나. 하지만 나는 여기에 없어서 그걸 못볼테고, 너는 보겠지. 형이나 나같은 사람들은 폐물이 되었고 세상을 떠나야 하지만, 이 사회의 의미있는 것들을 가져가야 한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야.

 도서 <파수꾼> p281

 오늘날 우리는 인류의 역사에서 지금처럼 물질적으로 풍족한 적이 한번도 없었던 시대에 살지만, 전 시대의 어느 사회에서도 지금 처럼 스트레스와 과도한 요구라는 문제가 확연하고 빈번하게 나타난 적은 없었다.

p39

 우리는 날마다 실제로 전혀 관심이 없는 일에 매달리도록 강요를 당한다.

p76


 시대가 변화하기 때문에 새로운 세대의 의식이 이전 세대와 차이가 있음은 당연시되어 왔던 흐름이지만, 이리저리 치이고 부딪히며 온갖 문제에 연루되어 있는 세대도 드물지 않을까? 어른이 되지 못한 지금의 미성숙한 사회를 향해 작가 나름의 생각을 엿보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작가는 미성숙이라는 단어를 청년층에만 국한 시키고 있지않다.)


 지금의 고도의 성장을 이룬 사회에서는 테크놀로지(=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어디서나 타인과 연결되어 있다. 이는 스마트폰과 같이 개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항시 연결되어 있는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일은 24시간 해야되며 같은 시간안에 가정도 돌보아야 하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으며, 수많은 일을 한번에 처리해야하는 멀티테스킹 능력과 끝없는 분주함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요구로 명명되어지는 끊임없는 자극은 개개인의 의식이 필요한 곳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의미함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심리학에서 다루는 보편적인 삶의 목적 중 하나는 자아(自我)의 실현을 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자아를 위해서는 본인 스스로나 어떤 대상 등에 관한 사유(思惟)가 필수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는데, 24시간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사회는 개인의 의식이 내부를 향하게 하는 찰나의 시간조차 허용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내가 제일 잘나가 - 2NE1

 겸손은 힘들어 - 리쌍


 거기에 사람이라면 지니고 있는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SNS라는 테크놀로지를 만나 이미지(=타인의 시선)에 집착하는 경향이 이전보다 훨씬 더 증가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한 나 를 위해 연극하는 모습은 흡사 의무에 비견될 정도의 스스로를 가혹하게 내몰고 있다.


 성숙한 자아와 같은 고차원적인 태도가 아니라 돈자랑(좋겠다..), 물건 자랑 등과 같은 1차원적인 모습은 정신이 자라나 단단해지는 (소위 멘탈이 강한) 과정을 경험할 수가 없어 미성숙한 어른이 되고 있음을 꼬집어 말한다. 결국,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인한 많은 자유가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 자아 상실이라는 결과로 나타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결정 하라는 요구로 머리가 가득 채워진 당신은 지속적으로 자극된 상태에 빠진다. 당신은 더 이상 상황을 지배하는 주인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에 의해 조종되는 것이다.

p83


 이러한 자기중심적 태도의 확산를 개인주의로 살며시 포장하는데 둘은 확연하게 다른 것이다. 자기중심적 태도는 이기주의와 동선상에 놓여있는 단어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타인을 기꺼이 벼랑으로 내몰아도 좋은 태도이다. 그러나 개인주의는 타인을 인정하고 배려하여 존중하여 주체적인 '나'를 드러내는 태도이기 때문에 둘의 갭(gap)은 크다.



 그렇다면 미성숙한 어른이 성숙한 어른으로 되자면 어떤 것이 필요할까?


 무조건 노력하라는 것이 아닌 본인이 할 수있는 실현가능한 최선(노오오오력이 아니다), 타인의 나이와 성별을 따지지 않고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는 것,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 자아 성찰을 위한 전진 등을 찾을 수가 있겠다. 갖춘다면 우리는 조금이나마 성숙한 어른이 될 기회가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행동한다. 하지만 행동의 결과는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p158

 오늘 포기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내일 좋은 수확을 얻을 수 있다.

p117


 작가의 의견 중에는 동의 할 수 없는 원론적인 생각도 몇가지 보인다. <The 마시멜로 이야기>, "어릴적 눈앞에 놓인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참으면 성인이 되어서 성공하는 사람이 많다."는 유명한 이야기. 수저계급론이 만연한 사회에서 오늘의 마시멜로를 먹지 않으면 타인에게 뺏기고 말 것을... 아니냐! 이제는 시대에 맞지 않는 옛날 옛적 클리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두에 언급했듯이 기존 가족의 해체와 새로운 가족 형태의 등장은 더 이상 성인의 요구조건에 '결혼/ 아이'가 포함되지는 않는다는 흐름으로 가고 있다고 보는 편이며, (최근에 카페에서 대학생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결혼에 대한 회의적인 말이 오가는 것을 들을 수가 있었다. 아마 전통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강제되었던 요구에 대한 의구심/반발심이겠지..) 자꾸 청년층이 미성숙하다라는 틀을 사회가 만들어 내는 것 같아 불편하기도 하다. (후반에는 '어른' 전반을 다루었지만 초반에는 새로운 세대에 문제가 있다는 식의 말투는...)


 시원한 대답은 <미성숙한 사람들의 사회>에서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겪어 왔거나 지금 겪고 있던 현실에 대해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그런 책이랄까. 작가의 말을 듣고 당신의 생각을 정리해 보기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케케묵은 역할을 꽉 붙들고 있어야 할까? 물론 아니다! 자유는 무엇보다 우리가 스스로 역할을 선택할 수 있다는데 있다. 다만 선택이 이성적을 이루어져야 한다.

p251




+ 이 리뷰는 인터파크도서 신간리뷰단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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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 일방통행에 들어선 청춘에게
전아론 지음 / 샘터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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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


[두려움을 이길 필요는 없다]


[2016. 5. 12 완독]


[샘터 서평단 활동]




 집중력 부족은 내 오른쪽 발목의 빨간 점처럼 타고난 것이다.

p13

 문장과 문장 사이로 주고받는 위로들.

훈훈하다.

p17

 "왜 살아?"

내가 물은 건 단지 그것 뿐이었다.


 하지만 가끔은, 술기운을 빌려서라도 그 금지된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이 궁금하니까.

"왜 살고 있어요?"

p155


 우리는 여러가지 가면을 가지고 있다. 친구에게 보여주는 가면, 회사에서 보여주는 가면, 연인에게 보여주는 가면 등 상황에 꼭 맞는 가면들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가면 아래 숨겨진 맨 얼굴은 어떠한 모습일까? 아마 자신이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다면 죽을 때까지 모를 것이다. 아마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모든 것을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모두 "빛남"라는 단어와 "예외"라는 단어의 조합이 참 재미있다.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최고! 그런데 예외라니. 후후 재미있다. 아마도 개개인의 삶 모두가 아름답고 소중함과 동시에 독립적인 개체임을 강조하는 뜻이라 추측했다.


 

 이렇게 글쓰기를 통해 렌즈를 갖게 된다면 주연도 조연도 될 필요가 없잖아. 관찰자, 다시 말하면 '내 인생의' 작가가 되는 거니까.

p49


 책이라는 형태를 갖추어 세상에 나왔지만 <우리는 모두 빛나는 예외>는 오직 작가 전아론을 위한 책이 아닐까. 삶 일부를 떼어서 만든 양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스로를 관찰하고 조사하고 분석을 거쳐 써내려간 글들이 나를 반긴다.


 오늘 처음 만나게 된 작가지만 집중력이 조금 부족하고, 요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요리책을 수집하는 것이 취미이며, 글을 쓰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자신이 가진 장점뿐만 아니라 장점까지 끌어 안으며 "이 모습이 나다!"라고 외치는 강렬함까지 느낄 수 있었다.


 꼭 어제 봤던 친구를 오늘 다시 본 느낌이랄까. 친숙하다.



 사람이든 책이든 뭐든, 다안다고 생각하는 건 대단한 착각이라는 것을.

p61

 만약, 나란 사람이 하나의 책이라면 그건 온전히 나를 위한 것이 겠다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종종 한두 페이지씩 들춰보곤 하겠지만, 책 한권을 통째로 소유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p71


 친근한 어투로 말을 걸어오니 너무 친숙해 졌나보다. 자신을 알리며 나를 알고 싶다는 물음 속에도 작가는 모든 것을 내어 놓지는 않는다. 이 또한 매력이구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고 끌어안으면서 보이는 타인을 향한 관심. 그리고 슬며시 내밀고 있는 따뜻한 손.


 좋다. 매력적이다.


  


 자기만의 기준이 확실하고 그걸 충실히 따르는 사람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는 걸. 그들에게 결핍은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게 만드는 일이고, 나는 그들의 지난하고 괴로운 여행을 지켜 보는게 즐겁다. 그리고 나 역시도 자기 자신을 꼭 쥐고 나아가는 생의 강렬함을 위해 어떤 고단함도 견뎌볼 예정이다.

p88

 그는 남들의 평가나 성공에 관심이 없다. 그릴 수만 있다면 괜찮다. 보편적인 행복이란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자신만 아는, 자신만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p94

 두려움을 이길 필요는 없다.

 어쩌면 흉터가 많다는 건 더 새로운 사람, 더 다양한 공간, 더 낯선 상황, 그런 것들에 겁없이 뛰어들었다는 얘기일 테다.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건 멋진 거니까, 적어도 나는 꾸준히 흉터 투성이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p195






+ 이 리뷰는 <샘터> 출판사 서평단 활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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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인가 - 존엄한 삶의 가능성을 묻다
오종우 지음 / 어크로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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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인간인가 : 존엄한 삶의 가능성을 묻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길 바란다]


[2016. 5. 11 ~ 2016. 5. 12 완독]


[인터파크신간리뷰단 활동]




인간은 신비롭습니다.

인간이라는 신비를 풀수만 있다면

전 생애를 바쳐 풀수만 있다면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겁니다.

인간이 되고 싶어서

인간의 신비를 탐구하려고 합니다.

- 친형 미하엘에게 보내는 편지 1839 -

p7

 인격은 하나의 우주로서 유일무이하다.

p28


 <무엇이 인간인가>라는 인문학의 냄새가 풀풀 풍기는 책이라 바짝 긴장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한권의 거대한 독서감상문이라고 해도 좋겠다. 한번쯤은 들어봤지만 본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죄와 벌>. (나만 그런가!) 특정한 책을 통해서 인간을 탐구하는 방법이 신선했고, 이 점이 인문학이라는 딱딱함을 부드럽게 만들어준 느낌이라 높은 점수를 준다. (하지만 <죄와 벌>이라는 책을 완독하고 보면 더 좋았겠지....)(요건 장점)


 <죄와 벌>을 개략적으로 읽은 느낌이다. 그리고 기분이 묘해졌다. 독서가 취미이다 보니, 스스로 정한 독서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지켜지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는 온전히 한명의 작가와 한명의 독자가 만나 생각을 나누는 장소라고 본다. 물론 작가의 손에서 떠난 책이지만, 재미와 흥미를 지니고 한장 한장 책을 읽어 나가고 작가의 생각에 동의하기도 하고 반대 하기도 하며 '나만의 생각'을 쌓아가는 사유(思惟)의 시간이 송두리째 사라졌다.


 독자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작가가 <죄와 벌>이라는 책을 꼼꼼히 기록하고 내용을 꼭꼭 싶어 주었다. 고맙기는 하지만 원하는 바는 아니였다. '이 책은 나를 어떤 식으로 전율시킬까?'라는 기대감이 사라지니 슬프기도 하다. (요건 단점)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

-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880 -

p16

 산다는 건 회계장부를 만드는 일과 다르다.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일도 아니다. 수량을 세어 점수를 매기고 도표로 실적을 헤아리는 게 인생이 아니다. 산다는 건 한 점의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고,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일과 같다.

p18

 고전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힌다. 자꾸 생각해보라고 한다. 왜 그러는 걸까. 우선 진짜 세상을 만나게 해주고, 다음으로는 정답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정답을 찾고자 하는 자세가 소중하다는 점을 알려 준다.

p21


 잡설이 좀 길었다. 뭐 어찌하겠는가. 일어난 일은 이미 지난 일이거늘... 해악이 되는 것도 아닌 것을. '고전'으로 불리는 책을 '꼭' 읽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하는 서문이 마음에 든다. 좋은 책은 독자를 괴롭힌다. 그저 즐겁게 상상을 하며 책장을 넘기게 두지 않는다. 생각하라고 강요한다.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다음장에 다시 생각하라고 외친다.


 그렇게 생각하고 생각하다보면 어느 순간 특정 주제에 대해 나만의 의견이 생긴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입밖으로 내지 않는, 남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한 것. 오~~~ 뭐 그렇다. 손으로 일일이 기록하기가 힘들고 귀찮아 인터넷을 통해 오픈 형식으로 내 생각을 늘어놓고 있지만, 모든 것은 나를 위한 것이지 남을 위한 것이 아님은 확실하다. 그래서 작가가 던진 몇가지 질문에 답해보고자 한다.


 


 가난은 죄가 아니라는데, 그건 진리요. 하지만 극빈이라면, 극빈은 죄악이라오. 가난하더라도 타고난 감정의 품위를 지킬 수 있지만, 극빈 상태에서는 그 누구도 절대 그럴 수 없지. 그 정도로 가난하다면 아예 사무치도록 수모를 주면서 빗자루로 인간 사회에서 쓸어내버리지. 당연한 일이오, 극빈 상태에서는 자기가 먼저 자신을 모욕하려 드니까.

<죄와 벌 中>

 특정 브랜드의 물건으로 인격을 대신하려 든다.

 가난과 달리 극빈은 영혼을 죽이고 인격을 말살한다.

p41

 가족을 위해서 몸을 팔아야 했던 로쟈의 첫째 딸 소냐를 통해 들여다보는 찢어지게 가난한 '극빈'한 삶. 과연 내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한가지 떠오르는 얘기가 있다. 햇볕도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살면서 빚이 몇억이 쌓여있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빚이 가족에게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도록 열심히 일하는 부모와 해맑은 웃음의 아이들. 하지만 이들에게 돌아왔던 첫번째 댓글은 "외식할 시간이 어디있나? 그 시간에 돈을 벌어 빚을 갚아야지." 맞다, 아니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다.


 빚이 그들을 극빈한 삶으로 내몰았기에 얼른 청산을 하고 사람다운 삶을 살아야 하는 우려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그러나 한달에 분식집에서 외식도 못할 정도여야 할까? 삶이 어려운 사람은 단란한 가정을 위해 한끼의 식사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얘기하면 능력도 없는 사람이 얘를 낳아가지고... 라는 식의 원론적인 수준의 답변만 돌아오니 입을 닫겠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알수 없는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을 저당잡히고 싶지는 않다. 쩝... 서글프다.



과학이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을까

악을 근절할 수 있을까

과학은 악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작가 일기> 1877

 '내 주제에 뭘 돕겠다고 남의 일에 끼어든단 말인가. 서로 잡아먹든 말든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p68

 온갖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에서는 낮은 비율의 사례는 어쩔 수 없다거나 별 문제 안된다는 태도를 우리도 자주 대한다.


ex) 메르스의 사상자가 38명 '밖에' 안나왔으니 별문제 없다거나, 수백만명 사는 도시에 노숙자가 몇십명 '밖에' 되지 않으니 별 문제 없다는 등.

p68


 내가 남의 어려움을 보고 기꺼이 돕는 사람이고 말하지 않는다. 분명 최고의 대답은 '무조건으로, 마음으로 돕는다'라고 하겠지만 최선은 '적당한 선에서 돕는다.' 거나 '나에게 큰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돕는다.' 겠지. 아, 세상과 적당히 타협할 줄 아는 어른의 가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서글프다.


 가족을 위해 몸을 파는 소냐와 가족을 위해 돈이 많은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이는 두냐. 자신을 희생하여 가족을 살리는 선택을 한 그녀들을 이해하고 싶지 않다.



 희생이란? 소멸이나 죽음이 아니라 생성이자 삶이다.

p75

 그녀들의 희생으로 가족이 빚에서 벗어나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되었으니 된 것인가? 희생이 죽음이 아니라 생성이자 삶이라는 문구에 동의 할 수가 없다. 희생을 선택한 그 한사람으로만 한정짓는다면, 과연 생성일까? 새로운 삶의 시작일까? 지옥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희생하는 삶, 타인을 위한 삶이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은 범인은 섣불리 택하지 않을 일일뿐만 아니라, 그 희생의 댓가로 자신이 파멸할 수 있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옹졸한 나는 감히 상상조차 못할 일이다.



 현대에 널리 퍼진 힐링이나 자기계발서니 하는 것들이 다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자신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우선 아끼라며 자기 중심주의를 강조한다.

p102

 지금 시대에서 '배려'라는 단어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몸이 으스러지도록 달리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타인이 존재할리가 없다. 돈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우리는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있으며, 서로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저 안타까운 일이고 나는 우리는 그러지 않는가? 모두 마지막 남은 자아'를 지키기 위해 치열하게 살고 있을 뿐이 아닐까. 어려운 이가 TV에 나오면 도움의 손길이 쏟아지지만,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도움을 주는 이는 얼마나 될까. 남을 배려하는 아름다운 모습은 이상향이나거 일부일뿐, 현실은 이렇다. (오..너무 염세적으로 가네?)


 

 자살은 문제를 긍정하게 만든다. 즉 문제로 다뤄야 할 일을 문제가 없는 것으로 묶어 버린다. 실제로 어떤 문제에 연관되거나 책임있는 인물이 자살하면 사회는 더 이상 그 문제를 다루지 안고 덮어 버린다. 자살은 문제의 시비를 따지는 일을 중단 시킨다.

p216

 자신을 선하고 옳다고 여기는 것보다 어딘지 잘못한 점이 있고 옹졸했던 점도 있다고 인정하는 태도는 훨씬 가치있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준다.

p228

 자신만이 진리라고 주장하고 나서면 사람을 죽이는 일이 발생한다. 꼭 생물학적으로 목숨을 앗는 일만이 살해가 아니다.

p235

 테크놀로지는 이제 단순히 수단이나 도구에 그치지않고 삶을 구성하는 근본 토대가 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인이 자유롭지 못한 이유는 바로 테크놀로지에 의존하려는 태도에 있다.

p251


 애지중지 키워온 딸들이 몸을 팔거나 팔려가는 최악의 상황과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전당포 노파를 죽인 로쟈. 이렇게 쉽게 볼 수 없는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삶을 태도를 반추 할 수 있었다.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기 바란다. 세상은 항상 빛이나고 아름다운 일이 가득하다고 말이다. 웅크리고 있는 작디 작은 '나'에게 당신의 따뜻한 손길을 건내주기 바란다. 내가 아니라고 말해주기 바란다. 세상은 지켜져야 하는 곳이라고 말이다.

 




 산다는 건 회계장부를 만드는 일과 다르다. 손익계산서를 작성하는 일도 아니다. 수량을 세어 점수를 매기고 도표로 실적을 헤아리는 게 인생이 아니다. 산다는 건 한 점의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같고, 한 곡의 노래를 부르는 일과 같다.

p252





+ 이 리뷰는 인터파크도서 신간리뷰단 활동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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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오리진 Origin 1
이경영 지음 / 네오픽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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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Origin. Vol.1]


[익숙한 즐거움]


[2016. 5. 6 ~ 2016. 5. 10 완독]


[네오픽션 서평단 활동]





 

"붉은 장발, 회색망토, 보라색 검 …… 설마, 가즈 나이트, 리오 스나이퍼?"

p234

 

"네놈만큼은 없애주마!"

"과연?"

p427

 

 "기사라면 실패했을 때 서슴없이 목을 내밀 수 있는 당당함이 있어야 하네."

p185

 


 익숙한 즐거움.

<가즈 나이트 오리진>을 5분의 1쯤 보다가 문뜩든 생각이다. 학창 시절에 판타지와 무협 장르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라면 <가즈 나이트>를 모를 수가 없다. 도서 대여점은 물론 도.서.관에 까지 그 마수(?)를 뻗쳐 있는 작가 이경영의 히트작.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기를 몇번이나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심심하면 봤던 기억이 난다.


 특히 공립, 시립, 대학 등의 도서관에서 일관성있게 꼽혀있는 판타지 장르 중 하나라서... 어디쯤 봤는지만 기억하면 손쉽게 다음 내용을 찾아 볼 수 있다는 재미있는 장점도 존재한다.


 살짝 덕내가 나는 (솔직히 책의 내용과 아무 상관없는 토끼 머리띠는..) 책의 표지가 예전부터 보아왔던 <가이 나이트>라고 생각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시대의 흐림이려니 했다. 리오, 휀, 바이런, 지크, 슈렌 등 개성 넘치는 가즈 나이트 (God's Knight)의 매력에 판타지 장르 중 먼치킨물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했던 시리즈의 새로운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한정판으로 온 책갈피는 반짝여서 코팅까지 했는데..코팅하니 사라졌어..)


 우직하게 자신의 정의(선은 아니라고 본다.)를 위해 묵묵하게 전진하는 리오와 동료들, 하렘물을 만들어내는 능력남의 바람끼(?), 그리고 고대 신, 악마, 마족 등의 강대한 적과 싸우는 가즈 나이트를 보면 상상력이 자극되는 느낌을 받는다.



 제 정의는 이 검입니다. 비록 최선의 선택은 아니겠지만, 저는 지금까지 부끄럽지 않게 살아왔습니다.

p208


 그러한 기대감을 안고 책을 읽어 나간 나로써는 실망이 이만저만 아니였다. 방대한 페이지와 잘 숙성된 작가의 필력이 오랜만에 판타지를 보는 나를 자극했으나, 분명 이미 몇번이고 구해져서 안전하게 잘 모셔져 있는 리오의 연인 '레나'가 다시 등장하며 알고 있는 내용을 그대로 따라가니 보기가 쉽지 않았다.


 결판이 났었던 마녀 타르자와 고대 신, 다시 납치된 연인 레나와 주체적으로 싸우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주신의 살아있는 마리오네트와 다름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가즈 나이트들. (바이칼은 언제나 아름답... 책의 중간에 들어있는 삽화에 있는 뒷태가.. ㅎㄷㄷ) 익숙한 즐거움이 무수하게 흘러나오지만 추억이라는 단어를 꺼내들어야 할만큼 시간이 오래되기는 했나보다. 나에게는 Origin이 아니고 Again이 되었나 보다.



 

 "설마요. 그 녀석, 좀 이쁘다 싶으면 나이를 관여하지 않고 사탕 발림을 하는 인간인데 공주님이 잊으시다니 …."

p281

 "휘익, 스리 사이즈 35-23-35의 미인 언니! 하지만 리오에게 이미 꼬심을 당한 상태로 보임! 아, 안타깝습니 ……윽!"

p401


 재미있다. 다른 말이 뭐가 필요가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판타지와 무협 장르를 찾아보지 않을 정도로 많이 봤지만 (가끔 보기는 하지만) , <가즈 나이트> 시리즈 만큼 재미있는 소설은 접하기 힘들다. 하지만 대부분의 가즈 나이트의 이야기가 만들어질 정도로 (슈렌 단독 시리즈는 없었던 것 같은데...아닌가? 리오랑 캐릭터가 겹쳐서 안습) 많이 확장이 된 시리즈를 다시 리부트 하는 이유는 뭘까?


 그저 자본주의의 논리로 봐야하나? 아니면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 온고지신의 마음으로 옛것을 새로 다듬는 중인 것인가? <가즈 나이트>를 좋아했던 팬의 입장에서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할 뿐이다.








+ 이 리뷰는 <네오 픽션> 출판사 서평단 (yes24 리뷰어) 활을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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