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캡틴.

 학교 및 도서관을 비롯한 각 기관 곳곳에 

 초청 강연을 다니곤 하시는 캡틴, 오 마이 캡틴. 



 오늘은 친구를 만났던 소식을 전해드리려고요.

 근 1년간 서로 안부만 전하다가,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지라 

 혹여 대화거리가 떨어져 서먹해질까 좀 준비를 해 갔습니다.

  

 《도망가자 Run with me》선우정아 지음, 곽수진 그림, 2021

 《산책 Promenade》 이정호 지음, 2016


 너무 좋은 그림책들이라 사실 어제 만나고 또 보는 거였더라도

 챙겨갔을 겁니다. 캡틴께서도 아시다시피 저는 좋은 책이 있으면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녀석이니까요. 


 그런데 저의 우려가 무색하게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할 얘기가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특히 서로의 '친구 이야기'가 그렇게 재밌더라고요.


 여행을 가는데 휴대폰은 두고 왔으면서 스파이더맨 인형은 챙기는 친구,

 자취를 하는데 냉장고에 편의점 봉투째 넣어서 보관해버리는 친구, 

 덕분에 여행 단체사진마다 인형이 찍혀서 볼때마다 킹받게 되는 친구,

 덕분에 냉장고를 열어보면 봉지째 유통기한이 지나 있어 매우 킹받는...  


 누가 누가 더 굉장한 친구인가 대결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인간이 있으며, 둘 다 '나 아니면 누가 얠 챙기나'

 라는 마음으로 지내는 덕에 친구는 '우렁각시'라는 별명으로 불린다더군요.

 친구도 저의 근황을 듣더니 저 역시 우렁각시가 아니냐고 웃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캡틴도 저를 '우렁집사' 내지 '작은집사'라고 부르셨는데

 역시 사람은 좀체 바뀌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도 뒤늦게 드는군요.)


 그렇게 정신없이 웃긴 친구들 이야기, 재밌게 본 영화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챙겨온 그림책들이 뒤늦게야 생각이 났습니다. 부랴부랴 꺼내보이자

 친구도 기대 이상으로 반가워하더군요. 


 "아, 그림책이 이렇게 큰 거였지."

 "아니, 이 책이 유독 큰 거야..."  


《산책》을 보고서 한 말이었습니다. (좀 크긴 하죠)

 그리고 선우정아 님의 책을 보고 놀라워하더라고요. 


 "내가 아는 그 선우정아?!"

 "와 이거 내 친구 애창곡인데."라며 역시 반가워하고요.

 찬찬히 넘겨보는 모습이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달까요.

  

 (그리고 전공수업과 전공책의 무게에 어지간히 시달린 탓인지

 "그래, 책의 질감이란 본디 이런 한 것이었지...! 종이...!"

 라던가 하는 반응에서는 말 그대로 '웃플' 수밖에 없더군요.)

   

 선우정아 님의 노래〈도망가자〉의 가사에 곽수진 님이 그림을 그린

《도망가자》는 참 인상적인 책이었습니다. 이미 독자적으로 완성된 가사에

 그림을 더한다면 단지 보조적인 장치로만 그치지 않을까-라는 기우는 정말

 괜한 것이었어요. 그림만 따로 보더라도 독자적인 스토리가 완성되는,

 기존의 '그림책'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을 깨는 그림책이라고나 할까요.


 "그림책에서- 그림은 글을 보조하지 않고, 글은 그림을 보조하지 않는다. 

 서로는 '보조'하는 관계가 아니라, '둘 다 있음'으로써 온전히 완성되는 것이다.

 즉 두 가지는 분리될 수 없다."


 유리 슐레비츠의 정의를, 저는 나름대로 저렇게 이해하고 기억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발전이란 멈추지 않는 거라서, 이렇게 '각자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으며-

 붙여놓아도 온전히 하나의 작품으로 기능한다'는 사례를 보게 되어 놀랍기만 했습니다.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는 아픈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우리를 위로하는 내용이죠.

 곽수진 님의 《도망가자》는 어느덧 나이를 많이 먹은 반려견과의 애틋함을 그려낸 것이었습니다.

 그 둘을 함께 보았을 때, 힘든 나(독자)에게 어떤 형태(반려동물, 친구, 연인 등)로든 

 '도망가도 돼. 너무 힘들다면'라고 말해주는 메시지가 전해진다는 게 너무나 좋았습니다.


 《산책 Promenade》은 이정호 님께서 글과 그림을 모두 함께 완성한 것이라

  또 그만의 특색이 있었지요. 위 책과 반대로 그림의 내용이 앞뒤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하지만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마치 미술관의 액자 하나하나를 감상하는 기분으로

  오래오래 들여다보게 되고,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게 된답니다.


 "이 그림 속에 있는 거, 다 '책'인 거 알았어?"


  친구의 눈이 접시처럼 커졌습니다. 

  산, 케이크, 호수, 눈밭… 이 모든 것이 

  자세히 들여다보면 '책'이거든요. 


  서둘러 다시 책장을 넘겨보는 모습이 어찌나 뿌듯하던지.

  그리고 앞서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짚어주었습니다.


  "멋지다… 마치 거대한 전공책의 산앞에 무력한 나 자신 같아."

  "이것도… 겹겹이 쌓인 책 속에 내려치는 벼락같은 전공책…."

  "오, 이것도. 저 광활한 하늘이 마치 나의 전공과 같군."

  "저 별도, 저 우주도…."


  (그, 그만해 美친자야…!)

  -아무쪼록, 학문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참으로 고된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

 

 이 친구는 열여섯 살 때부터 알아온 녀석입니다.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되었지요. 그제나 저제나

 언제나 학업에 짓눌려(?) 있다는 게 참 안쓰럽기 하고

 애잔하기도 합니다. (저라고 그와 다를 바는 없습니다만)


 오랜만에 보니 키가 좀더 자라고 

 얼굴 윤곽이 좀더 또렷해졌을 뿐 (10키로 빠졌대요)

 사려깊은 성품과 현명한 면모는 그대로인지라

 언제봐도 반갑고 소중한 친구입니다.


 캡틴, 당신께선 꼭 한번 이 친구를 보신 적 있었죠.

 고등학교 강연 때 말입니다. 강연을 들은 친구가 제게

 '이런 강연을 들었는데 혹시 전부터 말하던 그 분이 아니냐'

 라고 물었고, 이름을 들은 저는 깜짝 놀라 맞다고 했었죠.


 단순히 강연만 들은 게 아니라 간단한 문답도 나누었고,

 이 얘길 전해들은 캡틴은 '그래, 기억이 난다'며 웃으셨죠.

 바로 그 친구였어요.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것이 쉬운지 어려운 일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 친구는 언제보아도 열여섯살 그 모습 그대로인거 같거든요.

 캡틴을 떠올릴 때도 처음 만난 그 해 그 모습으로만 기억되고요.


 그래서 햇수가 얼마나 되었는지, 셀 필요도 필요하단 생각도 들지 않아요.

 그냥 그대로 소중한 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문득 또 떠오르고

 문득 또 연락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P.S.

 그리고 막상 만나고보니 할 얘기가 어찌나 많은지,

 장장 카페에서 4시간을 이야기했더라고요. (기록입니다, 기록)

 책 얘기 뿐만 아니라 근황 얘기 (지난달 한라산 오르며 초코바 10개 먹은 얘기, 

 너도 가다면 꼭 초코바, 아니 '쫀득한 초코칩' 필수라는 얘기-그맛을 잊을 수 없다며),

 즐겨보는 유튜버 채널 이야기 (너도 그거 봐? 너도? 야 나도…), 영화 이야기…. 

                                                                 정말 정말 많았습니다.



          ―이렇게, 저의 근황과, 책 이야기와, 잡다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참, 이토록 잘 놀고 왔으면서 편지 제목은 왜 이렇냐고요? 사진을 보세요.

오늘 첨부한 사진은 편지 본문과 좀 관계가 있습니다.


실은 저도 여행 때 인형을 챙기는 타입이거든요. (스파이더맨은 아니고,

애니메이션 영화 〈몬스터 대학교〉의 마이클 와조스키 인형입니다.) 

그래서 친구의 친구, 휴대폰은 두고와도 '가장 아끼는 인형'을 챙고오고픈

마음을 백분 공감할 수 있었거든요. (친구야, 보고 있니…?)


아무튼 싱글벙글, 유쾌한 하루였습니다. 

이렇게 하나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기록해두고 싶은 하루요.

(사실 이것도 많이 생략된 것이지만)


그럼 캡틴, 근래에 일교차가 너무 심하더라고요.

햇빛이 닿는 곳은 뜨겁고 바람을 세차게 불어서 순간 

나그네가 된 것인가 착각이 들만큼 놀라운 날씨더라고요. 


모쪼록 건강 조심하시며 지내시길 바랍니다.



                                 -바람이 미친듯이 불던 봄날, 사무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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