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캡틴, 마이 캡틴.

올해의 벚꽃도 잘 보셨나요. 이번에도 변함없이

교정 가득히 흰 벚꽃이 만발 했으리라 믿습니다.


저는 어째서인지 올해의 봄날이 무척 기다려졌습니다.

아무 것도 약속된 것이 없는데,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이 없는데

왜 그렇게 기다려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문득

마음 편히 봄날을 만끽한지가 무척 오랜만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남들은 어처구니 없어 할 정도로 

올해의 저는 많은 벚꽃 명소를 돌아다녔습니다.

당연히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있다면 십중팔구 

커다란 카메라를 목에 걸고 출사를 나온 사람들이었죠.)

그래도 그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벚꽃은 당연하지만 눈이 부시게 예뻤고, 예뻤습니다.



어느날은 늦장을 부리다가 그만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한 적이 있었습니다. 초행길이라 헤맨 탓도

조금은 있을 겁니다. 다행히 어느덧 해가 많이 길어져 

노을이 지기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있고요.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고 방향을 짐작하여 천천히 걸어올랐습니다.

'○○동 벚꽃길'이라고 불리는 명소는 산자락에 위치하고 있더군요.

정확히는 등산로 입구와 동네 사이에 자리한 짧은 나무계단길이었습니다.


사진 속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몇번이나 지도를 확인해보았습니다. 

드디어 이 길이 맞다고 확신한 뒤 고개를 들었습니다. 좌우로 늘어선

낮은 가옥들… 그들이 조용히 내려다보는 고요한 골목길과 한낮의 빛.

분명히 처음 오는 장소인데, 어째서인지 익숙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물지 않은 하늘, 소란하지 않은 공기. 

분명히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인가(人街), 동네.



아주 예전에, 당신의 뒤를 쫒던 소년시절에 거닐어본 기억이 났습니다.


지금과 비슷한 늦봄, 평일, 대낮, 비슷한 장소. 

사람들이 모두 각자의 일을 하러 떠난 조용한 동네.

벽화로 유명하여 주말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린다는 곳.  


그곳으로 저는 여행을 떠난 적이 있죠. 정확히 당신의 수업과제 때문이었는지,

당신이 라디오 방송에서 소개한 〈골목길 여행〉이란 주제의 책 때문이었는지,는

이제 잘 기억나지 않지만 말입니다. (아마 둘 다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캡틴, 당신 때문에 떠난 여행이었고,

당신 덕분에 떠났던 저의 첫 여행이기도 합니다.


그 시절 저의 고향은 '내 방'이었죠. 

(내방동이 아니라 진짜 제 방, My Room말입니다.)

극도의 내향인인 제게 제 방은 완벽한 세계였으니까요.

곁에 책이 있다면 어느 곳에도 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믿었는데, 아니 그렇게 생각했는데-

당신의 이야기를 들으니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무턱대고 그렇게 떠났던 것 같습니다. 


숨이 찼고, 더웠습니다. 무작정 걷는다는 건 

좀 무모한 일이 아닌가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낯선 골목의 흰벽에 반사되던 빛은 아직도 기억 속에서 

눈이 아리도록 부십니다. 그렇게 시작한 첫 여행.



그 길을 걸으며 줄곧 당신 생각을 했습니다. 

과제 구상…이라기보다 내가 본 것들을 어떻게 

당신에게 전해줄 것인가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결국 같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제출해야할 과제도 없는데 

어째서 줄곧 캡틴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냥… 우연히, 계절은 돌고 도는 것이니까, 

지구의 자전과 공전이 가끔은 거의 똑같은 결과값을 내기도 하는 거니까….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든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길을 걷는 내내 이 이야기를 

당신께 편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너무도 그리운 봄날이었습니다.


화살과 같던 햇살이 사실 누군가가 

돌려놓은 시계바늘이었던 것처럼.



*


캡틴, 올해도 따뜻한 봄날 되시길 바랍니다.



-봄날의 새벽, 사무엘 올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