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7년 간 배웠던 제자가 말없이 떠났어요.

물론 제가 가르친 기간은 1~2년 남짓에 불과해요.

하지만 이곳에서 아이가 있었던 기간은 그렇게나 길었다고 해요.


그럼에도, 그렇게 가르쳐준 선생님들께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는

말 한 마디 남기지 않고 가버렸다는 아이가 원망스러워지는 밤입니다.


저에게 아무 말 하지 않았다는 건 상관없어요. 제가 뭐라고. 그런데,

그 선생님들에게 그래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손편지도 바라지 않아요.

그냥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면 충분했는데, 그 진심이란 것도 없었던 것이죠.


표현에 서투르니까, 아이들은 무릇 그러하니까, 라며 이해해보려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 보호자분의 마지막 태도를 보고 확신했습니다. '별 거 아니였구나.'

몇 달 밀린 수업료를 이번에 한꺼번에 정산해주셨다는데 그 금액이 5만원이래요. 

여기 한달 수업료가 얼마인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요. 그분이 생각하시기에 

이곳 수업의 가치는, 선생님들의 노고와 가르침의 가치는 고작 그정도였다는 겁니다.


보호자의 태도에서 아이의 태도를 겹쳐 읽는 것이 오독일까요? 과대해석일까요?

대수롭지 않게, 별 거 아닌, 아무렇지도 않은, 고작 그것밖에 되지 않은 인연일까요.

아이의 성장을 기대하며 쏟았던 각별한 애정이, 오랜시간동안 어릴 때부터 받아와서

너무 익숙해졌던 걸까요. 당연한 도움, 당연한 혜택. 사실 당연한 건 아무것도 없었는데.

더이상 곁에 있지 않다는 걸 실감하는 순간, 깨닫게 되는 걸까요. 



선생님의 사랑도, 보호자의 사랑도, 내리사랑이란 무릇 그러했던 것인가 새삼스럽습니다.

어릴 때는 몰랐어요. 굳-이 스승의 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이유를요. 선생님과 보호자,

언제나 감사한 분들인데 왜 하루를 정해서 유-독 소란을 떠는 것인지. 이제는 알겠어요. 

'그렇게라도' 그날만이라도 듣고 싶다는 것을. '그렇게라도' 듣게 해드려야한다는 것을.

   

사실 꽃이나 선물은 중요하지 않죠. 그래서 캡틴도 그렇게나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죠.

제자들에게, 제발 챙겨오지 말라고. 그게 유치한 반어법이나 가식적인 인사치레가 아닌

백 퍼센트의 진심이었다는 것은 저뿐만이 아닌 거의 모든 제자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말씀 그대로를 잘 지켰고, 간혹 부득이도 부득부득 챙겨오는 분도 있었지만요.)


캡틴을 기억하는, 캡틴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했던 제자들이 찾아오는 것이 

진심으로 반가웠던 당신은 손수 커피를 내리거나 차를 우리며 그들을 대접하고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누었죠. 그리고 이따금 수업시간, 흐름을 환기할 타이밍에

옛 제자들에 대한 안부 중 자랑스러운 것들만 골라 현 제자들에게 들려주곤 했습니다.

'무릇 스승이란 자기만 빛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빛나게 하는 것'이라며. 그렇게

'스승의 이름이란 제자들로 인해 빛나는 것'이라며 말이지요. (쓰다보니 찔리네요)

 

이야기마다 흥미로워서 즐겁게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에는 그런 분야도 있구나', 

'그런 분야에서 활약하는 선배들이 부럽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나 단편적으로만 생각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그 이면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매 학기 수업이 끝나면 단체사진을 찍으시죠, 캡틴은. 그리고

수업 게시판에 "함께 해준 그대들, 고맙습니다"라며 올려주시죠.

그들은 모두 평생 잊지 못한 수업을 들은 걸거예요. 하지만

그들 모두가 캡틴을 찾아오거나, 안부를 전하는 것은 아니죠.


각자의 생활이 있으니까요. 다들 바쁘고 치열하게 살고 있을테니까요.

제자들의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생각하고 있다는 캡틴의 말이 진심인 걸 알지만

그럼에도 종종 소식을 전해주는 제자들로 인해 진심으로 기뻐한다는 것 역시 알아요.


캡틴, 캡틴. 언제까지나 제자이기만 하다가

제가 제자(라고 하기엔 깜냥이 안 되지만)를 두어보니

새삼 또 당신의 입장을 다시금, 새롭게 생각하게 되네요.


웃으실지도 모르겠어요. 어린 제자가 오랜 스승의 맘을 다 알겠냐며.

그래요. 아직 저는 당신에 비해 어리고, 앞으로 알아야할 것도 한참이나 남았어요.

그래도 이번에 '실망'이라는 걸 느끼게 되어서, '허탈감'이라는 것을 알아버려서-

오래전 스승님의 입장이라는 걸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네요.


내리사랑이란 이런 건가봐요. 어쨌든 윗사람이 더 퍼줄 수밖에 없나봐요.

아깝진 않아요. 돌려받을 거란 생각은 애초에 하지도 않고요. 다만 알아줬으면,

'아무것도 아닌' 걸로 취급해버리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아프니까요, 제법.


상처받은 마음이 채 아물기도 전에 쓴 글이라 이후 지울게 될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이야기만 전하고 싶은데, 좋은 내용만 남기고 보여주고 싶은데.


칭얼거리고 싶은가봅니다. 처음으로 선생으로서 받은 상처를 말하고 싶었나봐요.

아이들을 보면 언제나 회복되곤 했거든요. 없던 힘도 생겨날 정도로 행복했는데.

언제나 치유 받는 기분이었는데. 이렇게 다칠 수도 있는 것이었군요.



그럼에도 계속 사랑해야죠. 한 명에게 상처받았다고 열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에요. 그리고 사랑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내리사랑은 늘 불리한 것 같지만, 채워지고도 남는 것 같아요.

계속 상처 받더라도, 상처가 아닌 무언가도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캡틴, 평안한 밤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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