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단 한순간이라도 뜨거울 수 있다면 저는 그저 행복할 것입니다"

 라고 말하던 한 학생을 기억하시겠지요. 위 사진은 그 학생이 찍어준 것입니다.


 유독 이번 계절에 생각이 납니다. 매년 가을마다 떠오르는 사람이기는 했지만,

 올해는 더더욱이 그런 것 같습니다. 매년 가을은 제게 '미칠 것 같은 계절'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그리워서냐고요? 아니오. 아니, 맞아요. 그 한 사람이 상징과도 같았으니까요.


 내가 미치도록 뜨거웠던 계절. 나 스스로 인지조차 하지 못했던 사랑스러웠던 계절.

 아니, 인지하고 있었지만, 훗날 그리워하게 되리라는 걸 예상하다 못해 확신했지만

 닥쳐온 현재는 예측보다 더 하리란 것까지는 미처 짐작하지 못했던 시간과 순간들.


 그런 것들을 하나로 압축한다면 그 학생 한 사람의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당신의 수업들 가운데는 그 학우가 연달아 세 번인가 끼어있었거든요.

 첫 번째가 <논픽션>, 두 번째가 <문화영상광고론>, 마지막이 <수필론>이었던가요.

 제목과 순서조차 헷갈리지만 그 외에는 모두 생생합니다. 수업과, 과제와, 학우들과, 열정.


 사진을 찍는 그 학우는 초소형 방수카메라(아마도 캐논) 광고로 모두를 놀라게 했지요.

 논픽션 수업의 첫번째 과제 다큐멘터리에서는 본인을 피실험자로 삼아 채식을 하더니,

 두번째 여행 수필에서는 야생동물- 그것도 날짐승이자 천연기념물인 백로를 찍겠다며

 일주일간 수업도 빠지고, 머리도 감지 않고 (인공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 강가를

 쏘다녔다지요(1급수에서만 서식하는 백로). 그의 사진은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고

 몹시도 아름다웠습니다. 지금도 그의 사진 몇몇 장은 눈앞에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유월의 바다에는 잠자리가 산다>가 그의 사진 수필 제목이었을 겁니다.

 (새파란 수평선을 배경으로 빨간 잠자리가 날고 있는 사진, 아직도 당신 서재에 있겠지요.) 

 당신은 수필 수업에서 여러가지 형식을 제안하셨는데 '사진이 있는 수필'도 그중 하나였죠.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당신의 수업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그것은, 어느 학생에게

 물어보아도 역시 노래 수필, '노래가 있는 수필'아니겠습니까. 


 저는 무려 세 번이나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세어보니 그렇더군요.

 어리고 풋풋했을 때 한 번(뭘 불렀는지 기억도 안 나네요), 친구를 도와주러(구경하러) 한 번,

 그리고 아직도 그 우레와 같은 함성과 박수소리에 웃음이 절로 터지는 마지막 한 번.


 저의 완벽하고 멋진 무대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이었죠. 정확히는 제가 그 사람에게-

 연주를 마치고 무대에서 내려오는 그 사람에게 열 송이 백장미 꽃다발을 내밀었기 때문이었죠.

 "사겨라!, 사겨라!" 짖궃은 학우들의 목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앞서 다른 학우에게 홍장미 다발을

 건넸을 때보다 두 배는 되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둘 다 사귀라고?? (참고로 두 명 성별도 달랐음)


 시들지 않게 제때 꽃을 건네는 것이, 제 차례인 발표보다도 더 신경쓰일만큼, 그렇게 사랑하고

 아끼던 수업 시간이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과, 그걸 받아들여 재능을 터트리는 학우들과

 그외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에워싸 완벽 이상의 무언가를 만들어냈던 수업 이상의 수업.


 캡틴의 수업. 최고의 수업. 도무지 끝을 받아들이기 어렵고, 그래서 발버둥치게 했던...

 당신의 곁을 떠난다는 건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되었냐고요?

  


 훗날, 신기하게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사귀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평범한 날 느닷없이 날아온 연락을 확인했을 때 든 첫번째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연극 같다' 신이 무대를 꾸며 희곡 작가처럼 이런 장면을 마련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매번 다른 사람들을 피사체로 삼아 찍어주는,

 구도나 형태는 거의 바뀌지 않는. 그러나 그가 '사람을 찍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는 그런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그의 표현입니다)에서도 무언가를 찾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한번더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중이었습니다. 주위 여러사람들의 조언을 들어보는 중인데, 

 마침 여러가지 우연이 겹쳐 저에게도 연락해볼 생각이 들었다는군요.


 마땅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그를 몹시 좋아했습니다. 글도, 사진도, 서툰 연주까지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가 쓴 수필은 모조리 필사해둘 정도로 그의 글을 좋아했습니다.

 심지어, 수기로. 뿐만 아니라 수업 게시판에 쓴 출석글마저도 옮겨 적어두었습니다. 그의 글이라면,

 무조건이다 싶을 정도로 좋아한 저이니 그가 저를 떠올리지 않는게 되려 이상할 일일 정도로.


 심지어 문집에 실린 그의 수필 맨 마지막 장에 사인을 받기까지 했으니까요. 그렇게나,

 그렇게나 좋아했습니다. 그런 시간들을. 그때의 수업을, 그 수업을 담아냈던 계절까지.


 그가 노래 수필에서 연주했던 곡은 S.E.N.S의 <Like Wind>였고, 수필 제목은 <바람처럼>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걸 꼭 <가을처럼>이라고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수필 내용 중에서도 저 곡이 가을과

 잘 어울린다는 대목이 있지요. 마지막 수업은 늦가을의 절정과 초겨울이 머지 않았던 시기였을 겁니다.


 오랜 짝사랑 중이던 그가 상대방을 기다리는 내용이었던 수필, 그 수필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고, 바람이 바뀌고, 네가 변하고, 또 내가 변해도, 분명 이것 하나만큼은 

 평생 변함이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내가 온몸으로 마주하고 있는 이 바람을 오래도록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갈 것이다. 이 바람이 가져다준 아련한 여운만큼은 평생 기억하며 살아갈 것이다."


 저 역시 그러할 것입니다. 그와 함께 한 시간, 그들과 함께 한 시간, '그'로 대변되는 모든 시간들. 

 당신의 수업, 캡틴 당신의 수업, 캡틴 당신과 함께 했던 모든 수업과 수업과 수업과 수업과 수업들.

 몇 번이고 곱씹어보아도 떨쳐지지 않는 그리움. 정말 수없이 되뇌어보는 '당신'과 '수업'이라는 말...

 

 그래서 한 사람의 이미지로 압축하고, 그속에 응축하여 모아놓고, 그것도 모자라 페인트를 들이붓듯

 새빨갛게 칠한 다음, 가을이란 계절 속에 치밀하게 꼭꼭 숨겨뒀던 것일테죠.


 그래서 그 학생은 현재 어떤 길을 걷고 있을지 궁금하시겠지요. 마지막으로 안부를 물었을 땐

 여전히 '사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분야가 약간 바뀌고, 또 그 자리에서 꽤나 안정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캡틴은 '또 한 명의 제자가 잘 지내고 있구나'

 여기시면 될 것 같습니다. 좀체 연락하지 않는 제자들로 인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는다던 캡틴.


 저 역시 그런 제자 중 한 명이라 이 글을 쓰는 중 괜시리 민망해지는군요.

 그리고 뒤늦게야 제 선배격인 그 제자분들의 심경을 이해하게 된 것 같습니다.

 좀 더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고 싶은 것이겠지요. 금의환향, 까진 아니더라도.

 뭔가 멋지고 당당한 무언가가 되어 인사드리고픈 게 아닐까... 싶습니다.


 당신은 도저히 잊기 힘든 스승이니까요. '아버지'라고 당신을 부르고 싶어했던 제자가

 저 하나뿐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런 스승입니다. 선장님, 나의 선장님.


 가을 밤, 개요도 없이 그저 쭉 써내려간 편지를 또 유리병에 담아 띄어보냅니다.

 그거 아시나요. 이무렵 새벽 3-4시쯤에는 남서쪽 하늘에 오렌지색 별 하나가 빛난다는 걸.

 정말 밝아요. 초등학생 때 배운 별자리등급에서는 흐리게 보이는 색깔이라고 배웠던 것 같은데.


 까만 밤하늘에 투명한 검정 유리병을 던지면 첨벙, 검은 웅덩이가 솟았다 희게 가라앉겠죠.

 편지를 담은 병은 부디 가라앉지 않고 둥실둥실 흘러서 계절을 담은 저 별을 향해가길 바랍니다.


 짐작하셨겠지만 이 글을 쓰는 내내 S.E.N.S의 <Like  Wind>를 틀어두었습니다. 

 그러니 운좋게 이 편지가 당신 손에 닿는다면 함께 담겨있는 노래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이만 줄이도록 하겠습니다. 오, 선장님. 나의 선장님.


 매 수업이 마칠 때마다 그는 버릇처럼 같은 문장, 또는 비슷한 문장을 남겼습니다.

 "단 순간이라도 뜨거울 수 있다면 저는 그저 행복할 것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좋아했지만

 끝내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저도 틀림없이 행복했습니다. 그러나, 

 '그저'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로부터 까마득한 먼 훗날인 지금에 이르러서는


 행복하고, 그립습니다. 



 그럼 이만 진실로 진실로 줄이겠습니다. 늘 마지막 인사를 하고서도 

 꼭 한마디를 더하는 버릇어디 안 갑니다. 평안한 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무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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