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저는 제가 사냥개인 줄 았았죠. 


 잘 훈련된 짐승처럼 말이에요. 인간의 손에 길들여진

 사냥개, 혹은 양치기 개일 수도 있겠죠. 어쩌면 여우도 가능할까요?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가져오자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습니다. 

 엄연히 여우도 개과(科)잖아요. 사과나무 아래에서 만났던 붉은여우.


 "난 보통 다른 발자국 소리와는 다른 어떤 발자국 소리를 알아듣게 될 거야.

 다른 발자국 소리는 나를 땅속으로 들어가게 하지만, 네 발자국 소리는 마치

 음악 소리처럼 나를 굴 밖으로 불러내게 될 거야." (p.99 『어린왕자』, 오증자 역)


 실제로 저는 사람의 발소리를 구별하죠. 저는 당신의 발소리 역시 알아듣습니다. 

 수업이 끝난 오후의 복도 창가에 걸터 앉아 있다보면 종종 들을 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에는 읽던 책을 무릎 위에 엎어놓고 졸면서도 스치는 소리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가 철저하게 여우라고 믿고 있었나봅니다. 그래서, 놀랐습니다.


 "너는 내 장미잖아."


 내가 장미라니. 난 여우인데?

 그러나 곧 같은 맥락이라는 것을 알았죠.


 "내 여우도 전엔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았지. 하지만 내가 

 친구로 삼았으니까 이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된 거야." (p.104) 


 하나밖에 없는 여우. 하나뿐인 장미. 

 친구로 삼았기에, 길들였기에 이 세상 단 하나의 존재.

  

 그래요. 저는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신에게 길들여졌습니다.

 인간을 경계하고 사람을 무서워하는 제가, 아무도 믿지 못하는 제가,

 나도 모르게 종종 걸음쳐 당신을 뒤쫒고 마음 깊숙이 따르고 있었죠.


 당신이 가는 길을 감히 나역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뒤를 따르는 아들처럼, 스승의 발자취를 쫒는 제자답게. 


 이렇게 직접, 동시에 시적으로 듣게 되리라고 예상치는 못했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당신답다'고 여기며 소중하게 그 말을 담아두었습니다. 

 

 아, 어찌나 어리석었는지.

 아셨겠지만, 저란 녀석은 너무나 느립니다.


 그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별안간 깨닫게 되었습니다.



 "너에겐 내가 수많은 여우들과 똑같은 여우 한 마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만일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린 서로가 필요하게 된단 말이야.


 넌 나에게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테고, 너에게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게 될 테니까."


 "이제야 좀 알 것 같아." (p.97)



 내가 당신에게 길들여졌다면,

 당신 역시 나에게 길들여진 게 아닌가.



 나는 줄곧 당신이 나를 길들였다는 사실만 인지하고서

 내가 당신을 길들여버렸다는데는 생각이 닿지 않았었습니다.


 이 무슨... 얼마나 멍청한지. 그렇다면 당신이 그날 제게 했던 말은

 우회적인 질책이었던 셈입니다. 동화와 같은 비유가 아니라.



 "잊지 마. 넌 언제나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 책임감을 느껴야 해.

 넌 네 장미에게 책임감을 느껴야 해."(p.106)



 책임감. 내가 제자로서 스승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이미 스승님은 이 한심한 제자에게서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계시죠.  

 너무 무거워서 제가 빨리 덜어들어야 할 정도로.



 아무래도 제가 여우라는 착각은 

 지나친 오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영리함과는 일만 광년쯤 떨어져있는데, 

 여우는 무슨요. 사냥개는 더더욱 무슨요.


 저는 그냥 X싸는 선인장(*)입니다.

 손아귀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며

 사정없이 손바닥을 가시로 찔러대는.


 그런 말썽쟁이 녀석이 이제야 느즈막히

 새까만 사막의 밤을 건너 당신의 별로 가겠습니다. 



 


 

 *고슴도치를 이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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