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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사세요? -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
경향신문 특별취재팀 지음 / 사계절 / 2010년 12월
평점 :
대한민국에서 만나게 되는 가장 큰 문제는 뭘까?
보수와 진보 간의 이념 대립? 남북 문제?
세대간의 첨예한 대립?
이 책 <어디 사세요?: 부동산에 저당 잡힌 우리 시대 집 이야기>를
읽고 나면, 단연 '집'이야말로 한국인의 행복을 발목 잡는 가장 큰 문제라는 인식을 하게 될 것이다.
'집'은 이제 주거 이상이다. 정치, 경제,
사회 각 분야의 모든 문제를 농축하고 있다. 선거 때마다 당락을 가르는 토건공약, '사는 집'이 아닌 '파는 집'에 매달려온 건설업체, 여기에
편승해온 우리 안의 욕망이 유착한 결과다. 세입자의 경우 2년마다, 집이 있더라도 5년마다 이사를 가는 '신(新)유목민' 사회의 주원인이다.
정치·사회의 지형까지 바꿔 놓은 악순환의 3각 고리는 깨지기는커녕 갈수록 공고해지고 있다. -프롤로그
이책은 경향신문사에서 2010년
3월부터 5월까지 19회 걸쳐 한국사회의 주거 문제를 심도 있게 분석한
기획기사를 묶어낸 책이다. 비록 5년 전 이야기이지만, 하나도 달라진 건 없다.
도대체 한국인에게 집이란 뭘까?
먹고 잠잘 수 있는, 그러면서 마음의 평안을
줄 수 있는 그런 공간이라면 충분히 나의 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왜 우리는 2년 마다 오르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 해 이사를
해야하며, 집이 있더라도 더 큰 집, 돈이 될 집, 자식 교육에 필요한 집을 찾아 또 이사를 하는 것일까?
20대에는 20평, 30대에는 30평,
40대에는 40평의 집을 소유하고 있어야 정상이라는데, 언제부터 우린 집의 넓이로 인생의 성공 여부를 평가하게 됐을까? 세입자와 주택 보유자를 불문하고 전 인구의 19%가 해마다 이사를 다닌다고 하니,
대한민국 사람들은 모두 이방인인 셈이다. 모두가 이방인으로 뿌리 없는 삶을 사니 애향심은 커녕 무관심이 우리 사회의 주된 정서가 된다. 해마다
투표율이 낮아지는 이유? 투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어차피 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텐데, 내고장 내일꾼을 뽑는다는 생각이 들기나
하겠나?
임금에 비해 지나치게 비싼 주택비용은 소득과
고용의 불안정과 더불어 미래 세대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젊은 세대는 결혼과 출산을 꺼리게 되고, 무리해서 집을 사더라도 하우스푸어가
되어 곤궁한 삶을 살게 된다. 2년에 한번씩 서울에서 점점 멀어진다는
우스갯소리는 처절하게 들린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이렇게 토건 공화국이
되었을까?
사실상 대한민국은 건설사의 낙원이다.
"국내 건설사들은 소비자보다는 공급자 위주의
제도인 아파트 선분양제를 활용해 막대한 수익을 남겨 왔다. 아파트를 다 짓기도 전에 분양하면서 분양가를 주변 시세에 맞춰 수익을 남긴다. 택지는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구입하고, 건축비는 분양대금을 미리 받아 충당한다. 여기에다 공사기간에 발생하는 세금과 이자는 모두 분양가에
반영한다."
하지만 건설사가 낙원의 잇점을 누리기
위해서는 뒤를 봐주는 세력들이 있어야 한다.
건설 재벌, 부동산 관벌, 정치인,
보수언론, 일부 학자로 구성된 '부동산 5적'이 투기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막대한 수익을 나눠먹기 위해 부동산 5적이
똘똘 뭉쳐 '아파트를 사야만 부자가 될 수 있고, 부동산이 살아야 대한민국이 부자가 된다'는 환상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낸다. 특히 집값 펌프질하는 언론의 보도는 건설사와 부동산업자의
입장에 편향되어 있다. 신문사 수입의 절대량을 대기업(대부분의 대기업들은 서너개 쯤의 건설사를 갖고 있다) 광고에 의존하고 있으니 건설사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수준의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다. 마치 건설업체들을 살려야 한국경제가 산다는 식의 보도도 매정권마다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 주위에는 심심치 않게 부동산 투자로 부자가 됐다는 사람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부동산 투기는 대한민국의 신화가 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거주형태인 아파트 단지는
도시 맥락으로 볼때 '섬'과도 같다.
주변 건물, 도로나 보행자 동선 등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장소로서 배려가 이뤄지기 전에 최대 용적률과 건폐율의 '이익'과 '효율성'만이 공간을 지배한다. 풍경의 공공성은 상실한지 오래다.
아파트에 산다는 것은 그 아파트의 브랜드가 과시하는 차별적인 신분을 산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파트 단지 자체가 군사문화를 연상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규칙적 간격으로 늘어선 건물들, 위병소처럼 내부 출입을 통제하는 입구는 폐쇄적인 공간의 심상을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야간에는
이들 아파트를 지은 대기업의 '브랜드'를 과시하는 조명을 밝히며 주변 지역과 차별화가 시도된다. 광고 속 아파트는 언제나 궁전이다. 거기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은 언젠가 그들만의 리그에 낄 수 있는 어떤 날을 꿈꾸며 동경한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은 주택 문제로 인해 정치지도마저 바뀌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원래 서울은 전통적으로 진보개혁진영의 당선
비율이 (14대 56.8%, 15대 41.3%, 16대 62.2%, 17대 66.7%) 높은 편이었으나 18대 총선에서는 48개 선거구 중
40개를 한나당이 가져갔다. 당시 한나라당은 재개발과 뉴타운 공약을 내세워 몰표를 가져갔다. 당시 유세를 하던 한나라당 후보들은 거리 곳곳마다
뉴타운 도면을 걸어 놓고 주민들의 몰표를 얻어갔다고 한다. 물론 그 이후, 재개발과 뉴타운 공약이 서민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지만, 이미 화살은 떠난 상태였다.
자, 그럼 이렇게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주택 문제, 어떻게 해야 해결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주택의 탈상품화에 해결방안이
있다고 한다. 주택의 소유권과 임대권 전반을 공공이 갖고 있는 이른바 탈상품화 주택의 비율을 전체 주택에서 20~30%까지 늘려야 한다. 또한
아파트 위주의 공공 임대주택 패러다임도 변화가 요구된다. 임대주택을 아파트로 지으면 비용이 많이 들어 많은 가구를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된 다가구주택을 도시형 생활주택으로 바꾸는 방법도 유용하다.
그밖에도 이익 중심의 재개발이 아닌, 지역
주민 중심의 '도시 재생'으로의 패러다임 변화, '수익권은 공공에, 이용권과 처분권은 개인에게 두는 시장친화적인 토지 공개념의 도입 등
해결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물론 쉬운 건 하나도 없다.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생각을 갖고 덤벼야 할 정도로 첩첩산중의 문제들이다. 부동산 5적이 다 달려들테니 어디 쉬운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그냥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는 문제인 것도 명백하다. 한번뿐인 인생을 부동산에 저당 잡혀 살고 싶지 않다면, 지금 당장 우리들의 인식의 변화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