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유동하는 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한상석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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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시리아 난민 아기가 바닷가에 엎어져 죽어있는 사진으로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난민 문제가 SNS와 방송의 힘으로 별안간 내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안쓰러운 감정마저도 사실은 영화 보듯 일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질 뿐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모두스 비벤디: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를 읽고나니

생각이 달라졌다. 정도와 상황의 차이만 있을 뿐 현대인은 이제 누구나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을 맛보는 난민이 될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지그문트 바우만에 의하면 현대인은 이전까지는 결코 마주한 적이 없는 일련의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첫째, 근대성이 '견고한 solid 국면에서 유동하는 liquid 국면으로 바뀌었다. 사회적 형태들이 순식간에 해체되고 소멸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장기적인 생활 전략을 세우거나 행동의 기반으로 삼을 준거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이다.

둘째,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어 권력 가운데 상당 부분이 정치적으로 규제 받지 않는 전지구적 공간으로 이전되고 있다. 국가가 방출한 기능들은 변덕스럽고 본래 예측할 수 없기로 악명 높은 시장 세력들의 놀이마당이 되버린다.

셋째, 과거에는 개인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지면 공동체가 보호해 주는 국가 공인 장치가 있었으나 이제는 이런 장치가 점점 일관되게 줄어들고 있다.

넷째, 장기적인 안목으로 생각하고 계획하며 행동하던 유형이 무너지고 오랫동안 이런 유형을 유지해 주던 틀인 사회구조들도 사라지거나 약해진다.

다섯째, 끊임없이 순식간에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당혹스러운 일들을 해결해야 하는 책임을 이제 개인이 떠맡게 된다.


'열린 사회' '유동하는 세계'란 표면적으로는 개방성을 소중하게 여기는 자유로운 사회를 의미하는 듯 하지만, 이제 '열린 사회'란 운명의 횡포에 무방비로 노출된 사회를 일컬을 뿐이다.

이는 권력과 정치가 분리되었다는 사실과도 관계가 있다. 전지구적 자본주의 권력은 그저 자본에 의해서만 움직인다. 지구인들의 안전과 자유와 미래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한편 전지구적 문제 해결에 관심이 없는 정치는  그저 국가내에서의 권력 유지를 위해 공포를 퍼트리는 정책으로 생존한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풍경이다.

해마다 선거철이면 북한의 도발이 만들어진다. 뉴스에서는 매일 더 충격적인 사건 사고들이 생방송 된다. 수백명의 아이를 죽음에 몰아넣은 세월호 사건은 원인 조차 파악이 안 되고 있다. 지금 당장 월급을 주고 있는 회사가 언제 회사를 그만 두게 할런지 알 수가 없다. 개인의 삶은 위험하고 공포로 가득 찬 삶이 되었다. 미래를 생각하기 보다는 지금 당장의 삶을 소비하며, 개인적인 삶을 사는게 왠지 현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인간적 유대는 소멸하고 연대는 약화된다.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의 특징들로 인해, 우리 개인들은 점점 더 우연성이 지배하게 되는 세상에서 영원히 폐기처분되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 살아간다고 주장한다. 이런 세상에서 한번 쓰레기가 되면 영원한 쓰레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난민이다.


'난민들은 도착해서 잠시 머무는 곳에서 담당할 쓸모 있는 기능도 없고, 새로운 사회집단에 동화되거나 통합될 현실적인 전망도 의도 없는 '인간쓰레기'의 화신 자체다.'


바우만에 의하면 유동적 근대는 사냥꾼의 세계관이 지배한다.

머릿 속에 바람직한 설계도, 즉 유토피아를 구상해 놓고 이대로 정원을 가꾸어 가던 '정원사'와 비교해, '사냥꾼'은 사물의 균형 따윈 신경 쓰지 않으며 오로지 사냥감을 죽여 자루를 채우는 데만 관심을 가지는 존재다. 이들 사냥꾼에겐 사냥의 끝이 있으면 안 된다. 그들은 사냥을 계속 해야한다. 자본주의의 속성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삶의 의미는 생각지 못한 채 끝없이 뭔가를 추구해야 하는 삶,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삶, 과연 이것은 유토피아인가?


물론 사냥꾼의 삶이 무슨 문제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의 삶만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들일 것이며 전지구적 권력에 심취에 있는 초엘리트일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분명 느끼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명백히 '지옥의 삶'이며 무엇인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누리는 안락함이란 누군가가 흘린 피눈물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카라치나 바그다드의 어린이들이 잠자리에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미국의 어린이들도 그럴 것이다.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이 박탈감과 굴욕감에 젖어 있다면 유럽인들이 아무리 자유를 자랑하더라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책속에 인용된 벤저민 바버의 지적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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