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대하는 삶 - 도로시 데이, 평화와 애덕의 83년
로버트 콜스 지음, 박현주 옮김 / 낮은산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도로시 데이가 누구인지 몰랐다.

 

그녀의 책을 읽어본 적도 없고, 어떤 인물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로버트 콜스라고 하는 한 정신분석학자가 그녀와의 인터뷰를 통해 그녀의 정신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가 만만할 리가 없었다. 더군다나,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도로시 데이가 얘기하고 있는 가톨릭 용어들이 섞인 영성의 세계를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일단, 이런 이유로 읽기에 버거웠다는 지루한 서두는 여기까지...

 

도로시 데이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는 사회주의 운동에 젊음을 바쳤고, 어떤 운명에 이끌려 가톨릭 신자가 된 뒤에는(회심이라고 한다) '가톨릭 일꾼' 운동이라는 것을 시작해 '환대의 집'을 운영하여 수많은 가난한 자들의 삶의 동반자로 평생을 살다간 평화운동가였다.

간단하게 정리하였지만, 그녀가 살았던 20세기 초반 미국의 사회적인 분위기를 보건데, 그녀의 행보는 온통 가시밭길이었을 것이다. 이제 막 산업사회로 진입한 당시 미국에는 흑백 인종 문제 뿐만 아니라, 빈곤의 문제, 반전 운동 등 다양한 이슈가 있었고, 그녀는 불과 스무 살이던 1917년에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과 함께 행진을 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갈 정도였다. 당시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이것이었다.

"지금 이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젊은 시절, 수없이 감옥을 드나들던 열혈 사회운동가였던 도로시는 딸이 태어나던 해인 1927년, 가톨릭에 귀의하면서 다른 행보를 택한다. 물론 불의를 보면 못 참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는 모습 자체는 변함이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심리의 변화를 느끼게 된다. 그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이 책의 저자 로버트 콜스는 찾아내려 한다.

당시 가톨릭은 가난한 사람들 편에 서기 보다는 자기 배 불리기에 급급하거나, 부자 편에 서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이 많았는데, 이상주의에 빠져있던 도로시가 왜 하필 종교에 귀의하게 되었는지는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의문거리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혼 관계에 있었으나 그녀가 딸을 세례받게 하는 바람에 이혼하게 된 남편 포스터 배터햄이 그녀에게 '누구지? 당신을 가톨릭으로 몰아간 사람이?"라고 물었던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종교란 인민의 아편이 아니었던가?

 

"나의 회심 말이지요? 나의 회심은 내가 자신에게 말을 하는 방법이었어요. 내가 어딘가로 가려 한다는 걸 알고, 남은 인생 동안 그곳에 가려 노력하면서, 정처 없는 짧은 여행이나 소풍에 정신이 산란해지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에게 알려 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녀의 회심은 과거 관점으로부터의 극적인 전환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새롭게 긍정한 사고방식의 연속선상에 놓여 있었다. 예수의 삶과 예수의 설교를 받아들이고, 자신이 교회에 발을 들여 놓기 오래 전에 지지했던 이상과 조화를 이루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았기에 회심을 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녀는 가톨릭에 귀의한 후에는 '가톨릭의 정신'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 동료 피터 모린과 단돈 57달러로 시작한 <가톨릭 일꾼>은 공동체주의, 평등주의, 민중주의를 제시하며 아무도 관심없어했던 수많은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매체로 자리매김한다.

 

"우리가 기본 원리로 삼은 것은 노동자의 생산수단 소유, 조립 라인 폐지, 공장의 분산, 수공업의 회복과 토지 소유를 추구하는 장기적인 계획이었다. 당연히 이것은 우리 경제에서 농업과 지방을 강조한다는 뜻이며, 도시에서 지방으로 중점을 옮긴다는 말이다."

놀랍게도, C.더글러스 러미스가 주장했던 중간기술, 불교경제와도 맥이 닿는 것들을 주장했던 것. 역시 최고의 생각은 최고의 사람들끼리 통하는가 보다.

특히  '가톨릭 일꾼 운동'의 주요 사업중 하나였던 <환대의 집>은, 노숙자를 비롯해 가난한 이들에게 흔히 무료 급식소에서 하듯 줄을 서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시혜를 베풀기보다는 그들을 손님으로 맞아 먹을거리와 잠 잘 곳을 대접했다.

하지만 여전히 도로시 데이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있었다.

"가톨릭 일꾼 운동이 비현실적이며 그것으로는 이 나라가 가진 문제점의 99퍼센트에 어떤한 변화도 일으키지 못하리라"의 비판적 견해가 있었던 것이다. 그런 의문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대답을 찾기 위해서 그녀는 '환대의 집'에서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일상의 실천 속에서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하루 24시간을 '지역' 현장에서 민중을 만나며 함께하는 것이 그녀가 택한 '혁명'의 장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사람들의 태도, 도덕적 삶, 인간으로서의 총제적인 윤리적 목표를 들여다보고자 했다. 전반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 서로가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본인도 모르게 자신이 대하는 사람들의 위에 서려고 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다. 그래서 도로시 데이의 삶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유혹, 그것은 '행세하는 태도'였다. 조금은 병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도로시 데이는 로버트 콜스와의 대화에서, 그런 자신의 마음을 내비친다. 책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가혹한 자기 검열이었다. 그런 엄격함이 있었기에 비로소 그녀의 삶 자체가 예수의 모습을 닮아간 것 아닐까 싶다.

요즘처럼 남의 말 하기 좋은 시대에 도로시 데이의 삶은 내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말로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던가? 나의 삶은 나의 이상에 맞닿아 있는가?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 내 삶은 지향점이 있는가?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그녀의 자선전을 먼저 읽고 접했으면 더 좋았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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