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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 지하철 앤솔로지
전건우 외 지음 / 들녘 / 2022년 7월
평점 :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독특한 디자인의 표지가
시선을 사로잡는 도서는, 공포· 미스터리·스릴러
장르를 주로 집필해 왔던 이야기꾼들이 모여서,
지하철이라는 배경을 소재로 일곱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풀어낸 앤솔로지 작품이다.
일상에서 서민의 발이 되어주는 서울의 지하철은,
전 세계의 여느 도시보다도 발달된 기술로 빠른 이동을
가능케 해주는 대표적인 우리 교통수단일 것이다.

서울 도심을 달리는 1호선부터 9호선 이외에도,
공항, 경기, 인천, 소사, 경춘선 등 수도권 이상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어서 너무 편리한 노선일 것이다.
갠적으로는 서울 시내 한두 군데 정도의 경로 외에는
어디로 연결되는지 모를 정도로 너무나 많은 노선이
있어서,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도 정말 새롭고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볼 수 있는 장소라 생각이 든다.
아마도 거의 대부분은 지하철에서 정말 안사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살짝 허접하면서도 저렴한
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는 보따리 장사 아저씨들과
지옥에 갈 거라는 엄청난 악담을 퍼부으면서
포교하는 종교(?) 신도자들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지하철 앤솔로지에
참여한 작가들은 서로 다른 지하철 노선과 장르도
서로 겹치지 않게 초기 기획을 해서 작업을 했기에,
책 한 권에 다양한 소재로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침 출근 시간에 사람이 많이 몰려서 '푸시 맨'
특별한 명칭의 도우미가 등장했던 시절도 있었고,
지난주에는 그렇게 최첨단의 안락한 서울 도심
지하철을 자랑했건만 갑작스러운 폭우에 여기저기
침수가 되면서 서민들의 발이 묶이기도 했었다.
그만큼 대한민국에서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우리 서민들이라면 지하철은 삶의 일부이기도 하다.
첫 작품의 문을 연 <호소풍생>의 저자인 전건우는
그동안 공포 소설 중심의 작품을 써왔다고 하는데,
이번 앤솔로지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공항철도'를
배경으로 주인공 편관장이 펼치는 코믹과 무협이
결합된 다소 엉뚱하면서도 유쾌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어지는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두 번째는,
정영섭 작가의 '2호선'을 배경으로 그린 <지옥철>
실제 서울 노선 중에서도 가장 많은 유동인구가
모이는 신도림역을 중심으로 연결되는 2호선
녹색 노선을 전부터 지옥철이라고 다들 손꼽고 있는데,
저자는 좀비가 등장하는 공포 소재로 미스터리한
내용을 다루면서 우리 내면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지하 노선의 경우에는 사실 안전에 대한 문제도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일 텐데, 불가항력적인 괴물의 등장
보다도 인간이 만들어내는 공포심을 흥미롭게 그려냈다.
각 단편 소설 뒤에는 작가들이 선택한 지하철
노선과 주제에 대해서 진솔한 후기를 담아내고 있기에,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노선에 대해서도 공감을 하고
머릿속으로 함께 상상의 날개를 펼쳐볼 수 있었다.
특히나 아침저녁으로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이라면,
거의 동일한 시간대에 서로 마주치기도 하면서
또 다른 인연으로 사람들의 관계가 확장되기도 한다.

세 번째 '6호선' <버뮤다 응암지대의 사랑>의
저자 조영주는, 다양한 순문학과 웹 소설을 통해서
각종 공모전 수상을 하면서 영화화 작업을 위해서
기존 단편 작품도 준비하고 있는 열혈 작가라고 한다.
저자가 선택한 6호선의 독특한 노선도를 찾아보니깐,
정말 응암 - 역촌 - 불광 - 독바위 - 연신내 - 구산 - 응암
위치가 마치 올가미처럼 동그랗게 연결되어 있어서
뒤로 되돌아가는 반대 차선이 없이 한 줄로 된 단방향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작품에서는 미래의 꿈을 위해
열심히 앞만 보고 달리고 있지만 늘 실패를 거듭하는
두 남 녀가 우연히 만나서, 서로의 도전을 응원해 주고
사랑을 키워가는 애달픈 로맨스를 그려내고 있다.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이어지는 네 번째
'4호선' 지하철 사당역 주변으로 조각가 윤과
재홍의 범상치 않은 만남과 스릴러적인 이야기를
그려낸 <4호선의 여왕>도 꽤나 독특한 전개였다.
마지막까지 미스터리한 옆집 여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내용이었다.
...(중략)...
그제야 재홍은 윤에게서 풍기는 음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덧붙여 경비 아저씨의 경고를
떠올리고 보니, 윤은 더더욱 위험한 여자처럼
보였다. 복잡한 사연이 그녀의 과거를
넝쿨처럼 옥죄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_P. 128
'5호선' <농담의 세계>의 저자 김선민은
도시 괴담과 판타지 장르 소설 작품 활동을 많이
하고 있는 작가로, 이번 이야기에서도 공사가
중단된 유령역이라는 소재로 막차를 타면 또 다른
평행 세계 차원으로 이동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슷한 콘셉트로 이어지는 정해연 작가의 '1호선'
<인생 리셋>에서는, 저자가 집필할 당시에는
창동역 역사에 스크린도어가 설치되지 않았기에
실제 안타까운 인사 사고도 발생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에서는 과거로의 여행을 할 수 있는
배경으로 지하철역을 이용하고 있는데, 정말
우리가 과거로 돌아간다면 최선의 선택으로 현재의
실수를 되돌리고 윤택한 삶을 새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밀지 마세요, 사람 탑니다 마지막 작품인
'3호선' <쇠의 길>은, <지옥철> 정명섭 작가의
두 번째 공포 장르의 단편이 하나 더 실려있다.
좀비를 다루었던 앞 작품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지하 속에 존재하는 미지의 생명체에 대한
두려움을 그리고 있는데, 이 작품 역시 괴물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인간관계를 다루고 있다.
지저분하고 불쾌한 냄새가 나는 노숙자들을
바라보는 우리 시선에는, 그들은 존재하지만
마치 존재하지 않는 듯 눈앞에서 지워버리곤 한다.
과연 실제 눈으로 확인 못하지만 미지의
괴생명체의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으로 믿으면서,
우리 앞에 함께 숨 쉬고 있는 그들에 대해서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도 고민하게 되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