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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이어령 유고집
이어령 지음 / 성안당 / 2022년 8월
평점 :
이어령 선생님은 문화부 장관을 지닌 교수이자,
함께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거 한국과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하나로 관통하는 통찰력으로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셨던 이야기꾼으로 기억하고 있다.
이번에 읽어본 이어령 유고집 작별 도서에서는,
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던 저자가,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을
더욱 잘 가꾸면서 미래에도 잘 있으라는 안부 인사였다.
삶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도,
책을 읽고 글을 썼던 이어령 선생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을 담고 있는 유고집이기에 살짝 긴장을 하고
조심스럽게 페이지 한 장 한 장 넘겨 보게 되었다.
그의 마지막 글인 <작별> 이후로 더 이상 세상을
꿰뚫어 보던 선생님의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기에
더욱 소중한 글로 간직할 수밖에 없는 도서였다.

그 이전에는 방송에서도 종종 얼굴을 비추었던
그였기에 더 익숙하기도 했지만, 학생들에게
수업을 진행했던 대학교수의 자리에 있기도 했던
저자이기에 무언가 지식을 전달해 주는 교육자로의
생전 모습이 더 강하게 기억에 남아 있는 듯하다.
그 외에도 여러 글과 강좌에서 평소에 우리에게
한국인으로 가슴이 뜨겁게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을
어쩜 그렇게 콕콕 집어내는 건지, 그의 철학이 담겨있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면 저절로 몰입이 되곤 했었다.
이번 도서는 마지막 유언과도 같은 책이 되었는데,
그렇다고 지난 힘겨웠던 본인의 회환에 찬 삶과
과거를 돌아보는 무거운 무게의 회상이 아니라,
잠시 우리에게 안녕을 고하고 그가 없는 세상에도
계속 오늘의 하루는 지나가기에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후손들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남기고 있다.
이어령 유고집 마지막 인사말을 전하면서,
그는 뜬금없이 우리가 어릴 때 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구전 동요인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노래를 키워드 삼아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너무나 그 다운 마지막 말이지 않았나 싶다.
우리의 어린 세대들도 여전히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지금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그 노래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렇게 백두산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말잇기 처럼 연결되는 노래였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보다 하고 당연한 듯 어린 시절
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였었다. <작별> 본문에서
이어령 선생님이 짚어가는 이유를 돌아보면서, 정작
왜 원숭이를 대상으로 노래를 시작하고, 맛있는 게
사과였을까? 정말 궁금한 적이 없었던 게 놀랍기만 했다.
그저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온 우리 어린 시절
놀이로만 여겼던 그 노랫말에서, 그는 우리의 아픈
역사와 우리가 앞으로 이어나가야 할 유산에 대해서
그의 통찰을 통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어 볼 수 있었다.
종교, 역사, 과학, 인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해박한 지식을 나누어 주었던 그였기에, 무심히
넘겨 버렸음직한 노랫말에서 화수분처럼 끄집어내는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끝나지 않고 무한대로
여전히 저세상에서도 이야기를 남겨주실 듯싶다.
서구에서 산업화의 불꽃이 확산된 것도 기차의
빠른 교통수단이 촉매제가 되었을 터이고,
일제가 대륙 침략의 야심을 위해서 우리나라에도
철도를 깔았었지만, 우리에게 기차는 이별과 아픔의
역사를 가지고 있기에 구슬픈 노래로 연결되었다고 한다.

그 노랫말의 총 다섯 개 키워드 주제어를 토대로
그의 마지막 화두를 <작별>에 기록하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노래가 끝나는 백두산 앞에 등장하는
키워드인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는 모두
우리 고유의 것이 아님을 콕 짚어서 강조하고 있다.
원숭이는 그렇다 쳐도, 사과도 우리 토종 과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정말 놀랍고 충격적이었다.
...(중략)...
외국 문화와 우리 문화가 접촉하면 가장 처음
바깥에서 먹거리가 들어옵니다. 개화기를
상징하는 먹거리는 사과하고 바나나예요.
먹거리죠. 아무렇게나 만든 거 같습니까? 사람이
나오고 먹거리가 나옵니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사람,
없던 짐승, 원숭이, 인간과 가장 닮은 짐승.....
P. 014
그러나 마지막에는 우리의 뿌리 근간이자
미래의 통일을 염원하는 백두산으로 노래가
마무리되기에, 그 의미를 깊게 새겨보게 되었다.
이어령 유고집 <작별>에서는, 이렇게 그 옛날
아이들과 뛰놀며 읊었던 놀이 노랫말에 등장하는
원숭이, 사과, 바나나, 기차, 비행기 다섯 가지
키워드를 통해서 우리 시대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다.
아담과 이브의 선악과에서부터 스티브 잡스의
사과에 이르는 연결까지도 흥미롭게 연결하면서
우리의 역사뿐만 아니라 넓은 세계로 확장되면서
인문학적인 소양도 더욱 커지는 내용이었다.
여전히 분단되어서 대륙과 해양 침략 세력에
휘둘려 왔던 대한민국의 운명을 진심으로
걱정하면서, 은유와 비유 가득한 재치 있는 문답을
내놓고 있는 진솔하고 공감 가득한 이야기였다.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그의 삶을 마감하면서
우리가 미래에 백두산 이후의 새로운 키워드를 연결해
나가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당부도 잊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