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째 아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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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


<마담 보바리>의 명대사는 <다섯째 아이>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맙소사, 내가 어쩌자고 출산을 했던가?"


3개월? 아니 정확히 따져보니 <다섯째 아이>의 마지막 장을 넘기는 데 6개월이 걸렸다. '본격 피임 권장 소설', '임산부가 읽으면 절대 안 되는 책'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도리스 레싱은 빙하시대의 유전자가 우리에게도 내려온다는 한 인류학자의 글과 정상적인 세 아이를 낳은 뒤 태어난 네 번째 딸이 다른 아이들을 망쳤다고 하소연한 잡지 글에서 영감을 받아 이 소설을 썼다. 아주 정상적인 두 남녀가 사랑을 하고 가정을 꾸몄지만, 다섯째 아이 '벤'이 가정의 행복을 산산조각냈다. 울고 보채는 게 아기의 본성이라면, 벤의 본성은 더욱 파괴적이고 기괴하다. 열악한 환경의 보호소에 강제 수용되지만 죄책감을 느낀 엄마가 다시 집으로 아이를 데려오지만 결국 감당하지 못한다. 전형적인 영국 비행 청소년의 길을 차근차근 밟아가는 아이를 그저 지켜볼 뿐이다.


번역의 난해함이 4할이라면, 소설 자체가 쉽게 읽기 힘든 어두운 내용이 나머지를 차지했다. 성인이 된 벤을 다룬 속편이 있다고는 하지만 절대 손이 가지 않을 것이다. 읽히지 않으니 책을 놓고 있는 기간이 길어졌고, 시간이 흐르니 내용을 까먹어서 다음 내용이 더 들어오지 않고. 악순환이었다. 그나마 후반부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던 초반부에 비해 조금은 낫더라. 양아치 존이 등장하며 처음으로 벤이 사랑, 아니 관심을 받으며 내용이 흥미진진해졌기 때문이다. 그전에는 마치 영문학 시간에 줄을 치며 함의를 파악하고 외워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계속 들더라.


아직도 출산, 아니 정확히 말하면 '양육'에 대한 환상이 더 크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과 나를 반반씩 닮은 새로운 생명체. 사소한 말투, 작은 행동에도 얼마나 큰 의미를 부여하며 사랑스러움을 느낄까? 모니터나 휴대폰 액정 속에서 사랑이나 재은이처럼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힐링하는데. 내 새끼라면 과연 얼마나 그 행복이 클까! 애초에 기본 논조가 아기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한 입장이라 그런지 책속 내용은 더욱 와 닿지 않았겠지! 막상 아기 때문에 잠을 설치고, 예상치 못한 지출과 감당하기 힘든 시간을 보낼 가능성도 당연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어떤 위험 부담에도, 나는 양육을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내 아버지의 모습을 나에게서 발견하는 순간. 그 느낌을 꼭 한번 느껴보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은 흘러갔다. 그녀는 주위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시간의 흐름에 묶여 있었지만 그래도 시간은 지나갔다. 그것은 임신한 여인의 느린 시간, 뱃속 보이지 않는 존재가 성장하는 일정표와도 다른 것이었다. 그녀의 시간은 고통을 내포한 인내로 가득 찼다. 그녀의 두뇌에는 환영과 망상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녀는 과학자들이 크기가 다른 두 종류의 짐승을 접목하는 실험을 할 때 그 불쌍한 모체가 느끼는 것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곤 했다. 그녀는 누더기를 깁듯이 조각을 부인 측은한 짐승을 상상했다. 그건 자신에게는 너무나 사실적이었다. 그레이트 데인 같은 큰 개나 보르조이 같은 러시아 개와 작은 스파니엘의 합작품, 사자와 개, 덩치 큰 짐마차 말과 작은 당나귀, 또는 호랑이와 염소의 산물, 그녀는 어떤 때는 발굽이, 어떤 때는 갈고리 발톱이 그녀의 연약한 내장을 자르고 있다고 믿었다.

그녀는 곧 포기하고 다시 그 애를 침대 아니 우리 속으로 데려갔다. 눕혀졌다는 좌절감에서 벤은 울부짖었고, 그녀가 「불쌍한 벤, 소중한 벤」이라고 말하면서 두 손을 그 애에게 내밀자 그 애는 그녀의 손을 잡고 자신을 끌어당겨 끙끙대며 일어서서 승리의 포효를 내질렀다. 네달배기가.... 그 애는 성나고 난폭한 작은 괴물 같았다.

어느 날 그 애가 갑자기 말을 했다. 그 애는 <엄마> 또는 <아빠> 또는 자기 이름을 말한 것이 아니었다. 그 애는 「난 케이크를 원해」라고 말했다. 처음에 해리엇은 그 애가 말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그 사실을 알자 모두에게 말했다. 「벤이 말을 해요. 그 애가 문장을 사용한다구요」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른 아이들이 그 애를 북돋아주었다. 「아주 좋아, 벤」, 「똑똑한 벤!」 그러나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날 이후 그 애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만 선언했다. 「난 저걸 원해」,「그걸 줘」,「지금 산보 가」그 애의 목소리는 무겁고 불확실했으며 그의 두뇌는 생각과 사물을 집어넣은 헛간인 것처럼, 그리고 그 애는 각각의 사물을 식별해야만 하는 것처럼 매 단어가 분리된 채 나왔다.

벤이 그 패거리들에게 애완견이나 마스코트같이 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들은 그 애를 거칠게 또는 불친절하게까지 다루는 것 같았다. 그들은 그 애를 멍청이, 난쟁이, 2번 외계인, 호비트, 그리고 꼬마 마귀라고 불렀다. 「이봐 멍청이, 네가 길을 막고 있어」,「잭한테 가서 담배를 받아와, 호비트」 그러나 그 애는 행복했다. 아침마다 그 애는 창가에서 그들 중 하나가 와서 자기를 데려가는 것을 기다렸다. 그들이 안 나타나든가 그날은 못온다고 말하려고 전화라도 하면 그 애는 분노와 상실감에 가득차서 소리치고 발을 구르며 집안을 돌아다녔다.

그럼 왜 그들은 이 나라에 머물까? 그들은 쉽게 잉곳을 떠나 이 세상의 대도시 아무데나 휩쓸려 그곳의 지하세계에 합류하여 그들의 머리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데이비드와 (단둘이) 새 집에서 살 것이며 거기서 텔레비전을 통하여 베를린과 마드리드, 로스엔젤레스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뉴스를 볼 것이다. 거기서 군중으로부터 약간 떨어져서 그 도깨비 같은 눈으로 카메라를 응시하거나 군중 속에서 자기와 같은 종족에 속하는 또다른 얼굴을 찾고 있는 벤의 모습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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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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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 부패, 관통 실험, 시체 들치기, 참수, 생매장, 인육 만두.
언뜻 나열해도 속이 메슥거리는 단어들이 가득한 <인체 재활용>. 주제들만 놓고 보면 절대 호기심이 생기거나, 혹은 궁금증이 들어도 왠지 애써 모른척하고 숨겨야 할 것 같다. (책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시체, 부패, 오염 등에 관련된 서적만 빌려야 했던 작가의 난처함을 상상해보라.) 하지만 지적이고 냉소적인 유머로 무장한 메리 로치와 만나면 이들은 결코 금기의 영역이 아닌 유쾌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그녀는 이미 죽음(『스푸크: 과학으로 풀어보는 영혼』)이나 섹스(『봉크: 성과 과학의 의미심장한 짝짓기』)처럼 흥미롭지만 다가가기 힘든 소재를 심도 있게 취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밌게 풀어냈다. (사실 책의 마지막인 <12.저자의 유해 - 그녀는 어쩔 생각일까?>에서야 작가가 여자란 걸 알아챘다. 심드렁하고 발칙한 개그 스타일로 무장한 빌 브라이슨처럼 당연히 털이 덥수룩한 아재일 줄 알았는데!)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시체를 볼 순 없다. 단순하지만 역설적인 전제를 기반으로 저자는 '죽음 이후의 삶',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음 이후의 '시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세미나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무 것도 비치지 않고 외과의사들은 자리를 정리한 뒤 복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머리레나는 실습이 끝난 머리 위에 하얀 보자기를 씌운다. 오늘 참석한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이렇게 보자기를 씌웠다. 그녀는 세세한 부분까지 의식적으로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따. 죽은 여자의 눈에 눈동자가 왜 없는지를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시체의 눈을 감겨준다. 그녀는 의자를 도로 밀어 넣으며 보자기를 내려다보고 "평화로이 in peace 쉬세요."라고 말한다. 내 귀에는 '토막으로 in pieces'라고 들리지만 그렇게 듣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 <낭비하기에 너무 아까운 머리>

 

원래 2004년 <스티프>란 제목으로 나왔지만, 2010년에 <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로 개정판이 출간됐다. '뻣뻣한,딱딱한'이란 뜻(은어로 '시체')의 <스티프>보다는 <인체재활용>이란 기괴한 제목이 훨씬 직관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니 적절한 선택이었다.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과학 서적임에도 수많은 독자들이 읽고 추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쉽고 재밌어서.' 메리 로치는 괴소문으로 지나칠 수 있는 인육만두를 확인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중국을 찾아간다. (통역과 함께 빚어낸 중국 에피소드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몹시 닮았다. '시체'를 공통분모로 엮어낸 다른 장과는 조금 차별화된 부록 느낌이랄까?) 게다가 중세에 행해졌던 수술, 영혼에 대한 고문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시체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과학 서적이라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전문적인 의학 용어나 어려운 개념은 배제했다. 대신 시체를 마주하고 느낀 다양한 감정들과 기괴할 발상에서 뽑아낸 절묘한 비유로 책을 가득 채워서 독자들은 거부감보다는 유쾌함을 느낄 수 있다.


추락할 때 살아날 확률이 높은 부분은 앞쪽인가, 뒤쪽인가? 그는 참을성 있게 대답한다.

"그건 어떤 식의 추락이 될지에 따라 다르죠."

말을 바꿔 묻는다.

"어디든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다면 어디에 앉을 거예요?"

"1등석이죠."

- <블랙박스를 넘어>

 

방대하고 자세한 취재에서 완성된 책에서 저자는 징그럽고 역겨운 시체를 대하는 팁을 한 가지 알려준다. 해부학 실습용, 과학 실험용 등에서 마주하는 시체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만 토막 내기도 하고, 일부러 부패를 시키기도 한다. 사람의 몸이 어디까지 부풀 수 있는지, 얼마나 강한 충격까지 척추가 버틸 수 있을지 시험한다. 눈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입안에서 참기 힘든 가스가 뿜어져 나오지만 시체는 시체다. 말 그래도 죽은 사람, 즉 살아있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장기 기증을 하는 경우는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 삶에 도움을 준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는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보다 시체가 더 다루기 쉽고 편한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보따리에도 불쾌하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시체 기증을 결정한 자에 대한 '존중'이 시종일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학생들은 시체를 우스갯거리로 장난스럽게 다루는 법이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의식처럼 노래를 부르고, 선서를 낭독하며 죽은 이의 선택을 감사히 여긴다.


나는 죽어가는 자들보다 죽은 자들을 대하는 게 더 편하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화제가 필연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어색한 침묵과 대화도 없다. 시체들은 무섭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보낸 반시간이, 고통 속에 죽어가던 어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단연코 쉬웠다. 어머니가 죽기를 바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쉬웠다는 말이다. 시체들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그것도 상당히 빨리 익숙해지곤 한다) 놀라우리만치 상대하기가 쉽다. 

- <죽은 자의 운전>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기 기증에 부정적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강조하며 조상이 물려준 신체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 생각한 탓일까? 국민 절반 이상이 장기 기증 의사가 없고, 희망자 중 실제 등록도 15%에 불과하다. ('국민 52% “장기기증 의사 없다” …희망자중 실제 등록도 15% 불과', 문화일보 2014.04.07 http://me2.do/FhTmlIAX) 장기기증 의향이 없는 이들의 가장 큰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46.5%), 그 중에서도 '사후 시신 훼손에 대한 두려움(32.5%)'이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인체재활용>을 읽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시체에 대한 오해가 많은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아픈 부위에는 같은 부위를 처방하는 식의 오래된 미신뿐이 아니다. 나 역시 카데바라 불리는 해부 실습용이 전부일 줄 알았다. (일하면서 자주 봤던 차량 충돌 실험도 인간 모형 더미만 이용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보면 별별 실험에 시체는 유용하게 사용되더라. 자동차 충돌, 스포츠 사고, 추락 실험, 부패 반응 속도 등 상상할 수 없도록 다양한 곳에서 말이다. 심지어 종교적인 이유에서까지 (돈을 내서라도) 자신의 시체를 기증하겠단 인원이 줄 서 있다니 놀라웠다.


주기베는 시체를 매달지 않고 자원자들을 이용하고 있다. 수백 명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근처에 있는 종교단체인 성 프란시스 성공회 수도회로부터 100명에 가까운 지원자들을 찾아냈다. 십자가에 매달릴 실험 대상들에게 수고비는 얼마나 주어야 할까? 한푼도 들지 않았다. 주기베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오히려 제가 돈을 내라면 냈을 겁니다. 다들 거기 올라가면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어 했거든요."

- <성스러운 시체>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니 저자의 말처럼 '세상을 뜨면서 공원 벤치를 하나 기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시체 기증에 대한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평화로이 in peace 쉬세요'를 '토막으로 in pieces'로 듣거나, 항공사고 전문가가 마음대로 앉을 수 있다면 당연히 1등석에 앉겠다는 식의 조크 때문만은 아니다. 심장, 간, 신장 등 각종 장기를 기다리며 애태우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단순히 거부감 때문에 장기 기증을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나는 이미 장기 기증을 대학생때 신청했다. 단순히 운전면허증에 한 줄 새겨진 '장기기증'이란 단어가 신기하기도 했고, 단순한 호의에 힘입은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내 신체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쓰일 수 있단 걸 자세하게 깨달았다. 거창한 과학의 진보까진 바라지 않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 시체가(혹은 시체의 일부가) 전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메리 로치처럼 어떻게든 시체가 윙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만한 유쾌함은 없지만.


만일 에드가 먼저 떠난다면 그때는 내 시신을 기증한다는 기증서 양식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 <저자의 유해>




"마지막으로 함께 낱말 맞추기를 하면 어떨까?"

동생은 차에 가서 신문을 가져왔다. 우리는 관에 기댄 채 소리 내어 문제를 읽었다.

울음이 터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런 식이었다. 그 주에 나를 울린 건 사소한 것들이었따. 어머니의 서랍을 정리할 때 발견한 빙고 상품들, 냉장고를 치울 때 나온 열네 개의 닭 조각들과(따로 포장한 닭 조각에는 어머니가 꼼꼼한 글씨로 공들여 쓴 ‘닭‘이라는 라벨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낱말 맞추기였다. 그럼에도 시신을 보는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닺지 슬프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 <시작하는 글>

하이커우에서는 더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버스를 타고 남쪽 산야로 내려갔다. 바닷가 경치가 아름답고 날씨도 화창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화장장을 또 하나 발견했다. (이 화장장의 국장에게 샌디가 전화를 했지만 먼저와 비슷하게 국장의 노여움만 돋우고 말았다) 그날 오후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 수건을 깔고 쉬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해변에 침을 뱉지 마시오."

나는 혼자 생각했다.

‘해변이 악몽이나 종기, 눈의 염증, 액취증 등의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 <날 먹어봐>




나는 이 실험의 보고서를 몹시 보고 싶어 정보안보부에 전화를 걸었다. 교환은 내 전화를 역사 부서의 어느 남자에게 연결해주었다. 그 사람은 먼저 정보안보부는 그렇게 오래도록 기록을 보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뺨 세포가 없이도 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긴 미국 정부니까. 이들은 모든 기록을 보관하니까.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모든 걸 세 부씩 보관해왔으니까.




심장과 간과 신장을 기증해주기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8만 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16명이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H의 가족과 같은 처지에 잇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기증을 거절하고 그 장기를 불태우거나 썩어가게 버려두기를 택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랍고 사무치게 슬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외과의사들의 메스를 받아들이지만, 낯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H에게는 심장이 없지만, 무심하다는 말은 그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내가 죽었는지 아는 법>

일반적으로 말해 비행기에서 추락하면 그게 마지막 비행기 여행이라고 보면 된다. 스나이더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안전한 자세인 발부터 입수할 경우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속도 중 최고 속도는 시속 110킬로미터이다. 인체가 낙하할 때 종단속도, 즉 공기 저항으로 인해 더 이상 빨라질 수 없는 속도가 시속 190킬로미터이고 그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고도가 15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입각해 볼 때, 8킬로미터 고도에서 폭발하는 비행기에서 추락한 다음 데니스 샤나한과 면담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항공국은 이럴 겁니다. ‘좋다. 어깨띠를 장착함으로써 앞으로 20년 동안 열다섯 명의 인명을 구하게 된다면 200만 달러 곱하기 열다섯 명, 즉 3,000만 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업계 쪽에서는 다시 돌아와 이렇게 말하겠죠. ‘그걸 다는 데는 6억 6,900만 달러가 드는뎁쇼.‘"

어깨띠는 그렇게 바이바이다.

인간의 부상 연구에서 자동차의 충돌, 총상, 폭발, 스포츠 사고 등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거나 사망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이 우리가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가장 큰 것들이고, 이것들이 바로 연구용 시체를 훼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이라는 사실은 불행한 조건이다. 스테이플러에 의한 부상이라든가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사람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시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마크리스는 "자동차든 폭탄이든 위협에 대한 보호책을 찾아내려면 인간을 극한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라고 말한다.

-<시체, 신고합니다!>




나느 이런 일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아르퍼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어떤 기분이라니요?"라고 되물었다.

"간을 자르다가 쏟아져 나오는 온갖 애벌레들을 뒤집어쓰거나, 내장에 고인 액체가 튈 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생생하게 말해달라는 이야기예요?"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 데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죠. 그러면 흉하다는 느낌이 조금은 줄거든요."

- <죽음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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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의 검은 잎 문학과지성 시인선 80
기형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8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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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나리 나리 개나리


누이여

또다시 은비늘 더미를 일으켜세우며

시간이 빠르게 이동하였다

어느 날의 잔잔한 어둠이

이파리 하나 피우지 못한 너의 생애를

소리없이 꺾여갔던 그 투명한

기억을 향하여 봄이 왔다


살아 있는 나는 세월을 모른다

네가 가져간 시간과 버리고 간

시간들의 얽힌 영토 속에서

한 뼘의 폭풍도 없이 나는 고요했다

다만 햇덩이 이글거리는 벌판을

맨발로 산보할 때

어김없이 시간은 솟구치며 떨어져

이슬 턴 풀잎새로 엉겅퀴 바늘을

살라주었다


봄은 살아 있지 않은 것은 묻지 않는다

떠다니는 내 기억의 얼음장마다

부르지 않아도 뜨거운 안개가 쌓일 뿐이다

잠글 수 없는 것이 어디 시간뿐이랴

아아, 하나의 작은 죽음이 얼마나 큰 죽음들을 거느리는가

나리 나리 개나리

네가 두드릴 곳 하나 없는 거리

봄은 또다시 접혔던 꽃술을 펴고

찬물로 눈을 헹구며 유령처럼 나는 꽃을 꺾는다 




바람의 집

- 겨울 版畵 1


  내 유년 시절 바람이 문풍지를 더듬던 동지의 밤

이면 어머니는 내 머리를 당신 무릎에 뉘고 무딘 칼

끝으로 시퍼런 무를 깎아주시곤 하였다. 어머니 무

서워요 저 울음 소리, 어머니조차 무서워요. 얘야,

그것은 네 속에서 울리는 소리란다. 네가 크면 너는

이 겨울을 그리워하기 위해 더 큰 소리로 울어야 한

다. 자정 지나 앞마당에 은빛 금속처럼 서리가 깔릴

때까지 어머니는 마른 손으로 종잇장 같은 내 배를

자꾸만 쓸어내렸다. 처마 밑 시래기 한줌 부스러짐

으로 천천히 등을 돌리던 바람의 한숨. 사위어가는

호롱불 주위로 방안 가득 풀풀 수십 장 입김이 날리

던 밤, 그 작은 소년과 어머니는 지금 어디서 무엇

을 할까?




엄마 걱정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젊은 나이에 극장에서 쓸쓸히 객사한 아들. 청춘의 '예민함'이란 감정을 이별과 배고픔으로 생생하게 그려낸 사내.

기형도 시인의 유일한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잎>.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었다. 아니 마음으로 받아들이려 곱씹었다.

이름마저 시 같은 사나이 기형도. 한때 20대 청춘의 바이블이나 다름 없는 그의 시집은 여전히 불티나게 읽힌다.

외로움, 고독, 슬픔, 그리움, 쓸쓸함, 가난.

트라우마 혹은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섬세하면서도 담담하게, 차갑고 딱딱하게. 높고 낮은 감정의 폭을 정확히 짚어내는 그의 문체는 예술 그 자체다.

그리고 교과서에서 만난 아름다운 시중 하나인 <엄마 걱정>.

''찬밥처럼 방에 담겨'란 표현이 어찌나 가슴 깊숙이 다가오던지.

동생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집안 청소를 하고, TV를 보며 온열매트 위에서 귤을 까먹다가도.

집으로 돌아오는 늦은 밤 엄마의 발소리에 귀가 쫑긋해지던 유년 시절의 '추억'이 눈앞에 펼쳐진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활자로만 적힌 글 한줄이 내 어린 시절의 오감을 자극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어서 고맙고 신기했다.

짧은 시, 긴 여운.

딱 두 마디로 그의 시를 평하기에는 너무나 범접할 수 없는 쓸쓸함이 담겨 있어서 자꾸 시집에 손이 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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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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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관은 텅 비어 있었지만, 아빠의 서재는 꽉 차 있었다. 일 년이 넘었어도 방에서는 여전히 면도 크림 냄새가 났다. 아빠의 흰색 티셔츠를 모두 만져보았다. 아빠가 한번도 찬 적이 없는 화려한 시계와 다시는 신고 저수지 주변을 달릴 일이 없을 스니커즈의 여벌끈을 만져보았다. 아빠의 재킷 주머니마다 손을 넣어보았다. (택시 영수증 한 장, 미니 쿠키 포장지, 다이아몬드 공급업자의 명함을 찾아냈다.) 아빠 슬리퍼에 발을 넣어보았다. 아빠의 금속 구둣주걱에 내 얼굴을 비춰보기도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칠 분 만에 잠들겠지만, 나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빠의 물건들 속을 서성이면서 아빠가 만졌던 물건들을 만져보고, 쓸데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옷걸이들을 좀 더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노라니 부츠가 좀 가벼워졌다.

 

 

 

그래서 여덟 달 동안 뉴욕을 온통 헤매고 다니면서, 어딜 가려는건지, 언제 집에 돌아올 건지를 엄마가 물으면 이렇게만 대답했다. "좀 나갔다 올게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정말로 이상한 것,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어야 마땅한 것은 엄마가 그 이상의 질문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나한테 그렇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고, 특히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그랬는데도, "어디 가는데?"라든가 "금방이라니 언제쯤?" 같은 질문조차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가 언제라도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었고,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경찰서에 데려가 내 지문을 채취해 놓기까지 했다. 근사했다.) 그런데 왜 엄마가 갑자기 나에 대해서 잊어버리기 시작했을까? 자물쇠를 찾으러 아파트를 나설 때마다 아빠에게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내 기분은 조금씩 더 가벼워졌다. 하지만 엄마한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조금씩 더 무거워졌다.

 


몇 시간을 기다리자, 2층 창문으로 네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저 보통 소녀에 불과했지, 그녀가 뒤를 돌아 나를 봤어, 하지만 애나는 볼 수 없었어, 나뭇잎이 떨어졌어, 종이처럼 노란색이었지, 집에 가야 했어,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녀에게 다시 와야 했어. 나는 수업을 빼먹었어, 걸음은 아주 빨라지고, 얼굴을 숨기느라 목이 뻣뻣해졋어, 내 팔이 지나가는 이의 팔을 스쳤단다-튼튼하고 억센 팔- 누구의 팔일까, 농부일가, 석공일까, 목수일까, 벽돌공일까, 상상해 봤지. 그녀의 집에 닿아 뒤창 아래 몸을 숨겼어, 멀리서 기차가 덜컹거리며 지나갔고, 병사들, 아이들, 사람들이 오고 갔고, 창문은 고막처럼 흔들렸어. 온종일 기다렸어.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얼마나 슬픈지.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그리고 단것도 사양하지 않겠어요.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울고 울고 또 울고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울지 말아요.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상심하고 혼란에 빠져서.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너무 슬퍼요.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상심하고 혼란에 빠져서.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존재.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무.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존재.

아무도 이 문장을 가리키지 않았지, 당신을 사랑해요.

 

 

 

왜 아빠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가슴에 멍이 들었다.

왜 아빠는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수요일은 지루했다.

목요일은 지루했다.

금요일도 지루했다. 금요일이 토요일 바로 전날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 말은 곧 자물쇠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고, 그건 행복이었다.

 

 

나는 거리를 건넜어.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떨어지는 사람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떨어지는 사람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더 이상 네 앞에서 강한 척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자, 난 한없이 약해졌어.

 

 

 


"육 개월이 넘도록 찾아다녔는데, 육 개월 전에 비해 더 알아낸 것이 한 가지도 없어요. 실제로는 오히려 아는 게 줄어들었어요. 마르셀 선생님의 프랑스어 수업을 죄다 빼먹었으니까요. 게다가 거짓말도 구골플렉스만큼 해야 했죠. 거짓말을 하면 제가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단 말예요. 게다가 여러 사람들을 귀찮게 굴었죠. 어쩌면 그 사람들과 진짜로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뿐인가요, 지금은 이 일을 시작햇을 때보다도 더 아빠가 보고싶어요. 아빠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되는 게 목적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날 오후 악수를 나눌 때 다시는 블랙 씨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놓아주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계속 나랑 같이 다니자고 억지라도 썼을 텐데. 내가 집에 있을 때 아빠가 전화한 이야기를 해줬을 텐데. 하지만 아빠가 나를 마지막으로 껴안아 주었을 때 그것이 영영 마지막인 줄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몰랐다. 절대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블랙 씨가 "난 이만 끝내야겠다. 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말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이해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절대 그를 찾으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가지 않았다. 그가 거기 있다고 믿는 편이 더 행복하니까.

 

 

 

오스카 셸 : 아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를 거꾸로 말할 것이다.
아빠는 "왜 그러니, 얘야?"를 거꾸로 말할 것이다.
나는 "아빠?"를 거꾸로 말할 것이다.
아빠는 내게 여섯 번째 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맨 끝의 캔 속에 든 목소리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처음 시작까지, "사랑해"에서 "옛날 옛적에..."까지.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좋은 책은 다시 읽고 싶다. 항상 곁에 두고.
대학생 시절 과외 학생 집에서 빌려 읽고 나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생각났던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스페인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여유롭게 읽기 시작해서, 말라가 해변가에서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여행의 절반이나 남은 시점에서 그 순간이 어찌나 아쉽던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삶의 소통.
남겨진 이의 슬픔과 떠나는 이의 그리움.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란.
"사랑해"란 흔하디 흔한, 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마디의 소중함.

너무나 사랑스러운 오스카 셸. 그저 말없이 꽉 안아주고싶은 귀여운 탐험가.
그의 단어 카드에 나는 어떻게 기록될 수 있을까?
수천 수백의 블랙은 그 아이를 만나면서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나갔다.

Yes, No. 오른손과 왼손.
세상 모든 일이 단순하고 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렇다면 구골플렉스만큼이나 걱정이 늘어나진 않을까.
열쇠,편지, 음성 메시지. 어떤 형태로든 추억을 남기고 떠난다는 건 가슴 먹먹한 일이다.

수많은 빈칸을 채울 수 있는 활자의 즐거움.
그 즐거움이 모든 이에게 작지만 든든한 위로가 되었으면.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이 내 주변에 가득할 때면, 잊고 싶지 않은 일들은 서서히 내 주변에서 멀어진다.
그러니 꼭꼭 기록을 남기고 손에 거머쥐려 발버둥쳐야지.

의식의 흐름. 그 끝은 언제나 푸른 바다 끝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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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 민음사 모던 클래식 41
다니엘 켈만 지음, 임정희 옮김 / 민음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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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의 이야기 속의 이야기'

"잊히고, 사라지고, 자신을 잃어 가고, 해체되는 것에 관한 책"

독일 문학의 차세대 유망주 다니엘 켈만의 <명예>를 설명하는 한 줄은 강렬했다. 액자식 구조를 넘어서는 러시아 인형 마트로슈까를 연상시킨다는 추천평 역시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단편 여러 개를 다 읽고 나면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고 엄청난 반전을 찾아낼 것만 같았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독서의 진도가 쉽사리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실에서 짬짬이 시간 날 때마다 읽다 보니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지지 않았고, 오래 묵혀둔 느낌이었다. 중반을 넘어가자 어느덧 의무감에 단편을 빠르게 읽어나갔고 다 읽고 나니 애초에 기대했던 반전보다는 밀린 숙제를 끝낸 기분이었다. (아내 한나와 애인 루치아 사이에서 이중생활을 하는 이동통신사 팀장의 이야기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가 그나마 제일 흥미진진했다.)


나는 '슈퍼무비스'에 포스팅을 많이 하고, '저녁뉴스', '리터러쳐4유'와 '토론 사이트'에도 글을 게재하지만 허튼소리를 써 대는 블로거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한다. 닉네임은 늘 '몰위트'로 쓴다. 실제 인생(진짜 인생!)에서 난 삼십 대 중반으로 키가 상당히 크고 약간 뚱뚱하다. 주중에는 넥타이를 매고 돈벌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다니는데, 그건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한다. 내 경우에는 분석, 관찰, 토론의 글쓰기가 인생의 의미다. 문화, 사회, 정치적인 일에 기여하는 것이.

- <토론에 글 올리기>


소설은 휴대폰, 컴퓨터, 인터넷 등 우리 일상에 너무나 녹아든 기계에서 소외된 인간의 본질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되는 '목소리', 언젠가부터 전화가 오지 않는 유명 배우 랄프의 이야기 '탈출구', 낯선 곳에서 휴대전화 배터리가 나가 세상과의 소통이 단절된 마리아의 이야기 '동양'.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에서 그 비밀이 풀리지만, 앞선 이야기가 기억나지 않는 나에게는 무의미한 복선이었다.) 아홉 개의 에피소드들은 퍼즐 조각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공통점은 그저 통신 기기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캐릭터가 캐릭터를 만들고, 다시 그 캐릭터가 또 다른 캐릭터를 만들며 이어지는 단편은 그 자체로 실험적이고 색다른 접근 방법이었다.


과연 휴대폰 없이 하루를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당당하게 '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영양가 없는 스팸이 뒤섞여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무의식적으로 새로 고침을 누르게 되는 자극적인 SNS, '읽음' 표시가 서로에게 더욱 부담스러운 카카오톡. 가장 편리하고 효과적인 소통 수단이 휴대폰인 시대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결코 타인과의 관계에서 완벽히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수단과 본질이 뒤바뀐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타인과의 소통이 목적인 휴대폰이 오히려 타인과의 소통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정 필요한 정보를 토대로 유의미한 소통을 하는 건 엄청난 장점이다. 명예를 잃어버리는 일, 명예를 얻는 일. 통신 기술을 통해 포장되고 결정되는 소설 속 사회는 실제 현실과 무척 맞닿아 있다.


스페인 여행을 떠났을 때 가장 골치 아팠던 것은 '휴대폰'이었다. 내 손안의 작은 아이폰은 여행에서 필수불가결한 존재였다. 아름다운 풍경을 담을 카메라면서 동시에 구글맵 기능을 통해 목적지를 안내해줄 지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야심 차게 가져간 충전기는 보기 좋게 고장이 났다. 보조배터리는 당연히 유명무실한 짐이 되어버렸다. 버티고 버티다 눈물을 머금고 산 중국산 충전기는 일회용이었다. 산 지 이틀 만에 보기 좋게 고장이 나버렸고, 결국 호스텔 데스크에서 빌리며 겨우겨우 연명했다. 식당에 가서도 항상 콘센트를 제일 먼저 찾기 바빴고, 여행 중간에 호스텔로 돌아와 충전을 위해 반강제로(!) 휴식을 취하기까지 했다. 사실 돌이켜보면 휴대폰이 없이도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아름다운 광경은 눈으로 담을 수 있었고, 지도는 종이로도 충분히 대체할 수 있었다. 그저 내가 더 익숙한 기계에 지나치게 의존했다.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떠난 여행지에서도 결국 넓은 자연이 아닌 작은 디지털에 사로잡혔다.


결국 본질은 '소통'이다. 디지털인지, 아날로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순히 수단의 문제가 아니다. 면대면으로 대화한다고 해서 진심을 다해 소통한다고 보장할 수 없다. 오히려 상대를 속이고,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건 마주 보고 하는 편이 더 쉬울 수도 있으니. 그렇다고 모두에게 진심을 담아 소통할 필요는 없다. 100명의 사람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소통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진정 나를 이해해주고 소중히 여기는 단 한 명의 사람만이라도 남는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다. 최신 기기가 사람들 사이의 벽을 만든다는 건 핑계일 뿐이다. 오히려 기계가 우리를 가깝게 해주는 긍정적인 사례도 매우 많기 때문이다. (멀리 있는 할머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 행복한 가족 사진을 휴대폰에 담아두고 힘들 때마다 보는 일, 차마 눈앞에서 하기 곤란한 이야기를 전하는 일. 등)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다면, 애써 그런 관계에서 오는 오해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게 좋다. 결국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고, 마음이 맞는 이가 중요한 법이니 말이다.


"충고 한 마디 덧붙이죠. 지금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전화하세요. 인생은 아주 빨리 지나갑니다. 그러라고 조그마한 휴대전화기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모두들 이 전자용품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신사 양반?"


"왜 이렇게 안 되는 일이 많은지 묻고 계십니까, 신사 양반? 사람들이 많은 걸 되고 싶어 하기 때문이죠. 말 그대로입니다. 사람들은 많은 게 되고 싶어 하죠. 다양하게. 여러 개의 삶을 원합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렇고, 내심으로는 그렇지 않아요. 마지막 갈망은 하나가 되고 싶어 합니다. 자신과 모든 것과 말이죠."

- <내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며 죽어 갔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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