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 <스티프> 개정판
메리 로취 지음, 권 루시안 옮김 / 세계사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시신 부패, 관통 실험, 시체 들치기, 참수, 생매장, 인육 만두.
언뜻 나열해도 속이 메슥거리는 단어들이 가득한 <인체 재활용>. 주제들만 놓고 보면 절대 호기심이 생기거나, 혹은 궁금증이 들어도 왠지 애써 모른척하고 숨겨야 할 것 같다. (책을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시체, 부패, 오염 등에 관련된 서적만 빌려야 했던 작가의 난처함을 상상해보라.) 하지만 지적이고 냉소적인 유머로 무장한 메리 로치와 만나면 이들은 결코 금기의 영역이 아닌 유쾌한 과학의 영역으로 넘어온다. 그녀는 이미 죽음(『스푸크: 과학으로 풀어보는 영혼』)이나 섹스(『봉크: 성과 과학의 의미심장한 짝짓기』)처럼 흥미롭지만 다가가기 힘든 소재를 심도 있게 취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밌게 풀어냈다. (사실 책의 마지막인 <12.저자의 유해 - 그녀는 어쩔 생각일까?>에서야 작가가 여자란 걸 알아챘다. 심드렁하고 발칙한 개그 스타일로 무장한 빌 브라이슨처럼 당연히 털이 덥수룩한 아재일 줄 알았는데!)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아무도 자신의 시체를 볼 순 없다. 단순하지만 역설적인 전제를 기반으로 저자는 '죽음 이후의 삶', 아니 정확히 말하면 죽음 이후의 '시체'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세미나는 거의 끝나가고 있다. 모니터 화면에는 아무 것도 비치지 않고 외과의사들은 자리를 정리한 뒤 복도로 빠져나가고 있다. 머리레나는 실습이 끝난 머리 위에 하얀 보자기를 씌운다. 오늘 참석한 사람 중 절반 정도가 이렇게 보자기를 씌웠다. 그녀는 세세한 부분까지 의식적으로 정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따. 죽은 여자의 눈에 눈동자가 왜 없는지를 묻자 그녀는 대답 대신 손을 뻗어 시체의 눈을 감겨준다. 그녀는 의자를 도로 밀어 넣으며 보자기를 내려다보고 "평화로이 in peace 쉬세요."라고 말한다. 내 귀에는 '토막으로 in pieces'라고 들리지만 그렇게 듣는 건 오로지 나뿐이다.

- <낭비하기에 너무 아까운 머리>

 

원래 2004년 <스티프>란 제목으로 나왔지만, 2010년에 <인체재활용 : 당신이 몰랐던 사체 실험 리포트>로 개정판이 출간됐다. '뻣뻣한,딱딱한'이란 뜻(은어로 '시체')의 <스티프>보다는 <인체재활용>이란 기괴한 제목이 훨씬 직관적이고 흥미를 유발하니 적절한 선택이었다. 선뜻 선택하기 쉽지 않은 과학 서적임에도 수많은 독자들이 읽고 추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하다. '쉽고 재밌어서.' 메리 로치는 괴소문으로 지나칠 수 있는 인육만두를 확인하기 위해 혈혈단신으로 중국을 찾아간다. (통역과 함께 빚어낸 중국 에피소드는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과 몹시 닮았다. '시체'를 공통분모로 엮어낸 다른 장과는 조금 차별화된 부록 느낌이랄까?) 게다가 중세에 행해졌던 수술, 영혼에 대한 고문서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이렇게 차곡차곡 쌓인 시체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되어 있다. 과학 서적이라 하기에 무색할 정도로 전문적인 의학 용어나 어려운 개념은 배제했다. 대신 시체를 마주하고 느낀 다양한 감정들과 기괴할 발상에서 뽑아낸 절묘한 비유로 책을 가득 채워서 독자들은 거부감보다는 유쾌함을 느낄 수 있다.


추락할 때 살아날 확률이 높은 부분은 앞쪽인가, 뒤쪽인가? 그는 참을성 있게 대답한다.

"그건 어떤 식의 추락이 될지에 따라 다르죠."

말을 바꿔 묻는다.

"어디든 마음대로 골라 앉을 수 있다면 어디에 앉을 거예요?"

"1등석이죠."

- <블랙박스를 넘어>

 

방대하고 자세한 취재에서 완성된 책에서 저자는 징그럽고 역겨운 시체를 대하는 팁을 한 가지 알려준다. 해부학 실습용, 과학 실험용 등에서 마주하는 시체를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머리만 토막 내기도 하고, 일부러 부패를 시키기도 한다. 사람의 몸이 어디까지 부풀 수 있는지, 얼마나 강한 충격까지 척추가 버틸 수 있을지 시험한다. 눈에서 구더기가 나오고, 입안에서 참기 힘든 가스가 뿜어져 나오지만 시체는 시체다. 말 그래도 죽은 사람, 즉 살아있는 사람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특히 다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 장기 기증을 하는 경우는 더욱 직접적으로 인간 삶에 도움을 준다. 게다가 어떤 점에서는 아프고 고통받는 사람보다 시체가 더 다루기 쉽고 편한 존재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에서 이어지는 이야기 보따리에도 불쾌하거나 혐오스럽지 않다. 왜냐하면 시체 기증을 결정한 자에 대한 '존중'이 시종일관 유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부학 실습실에서 학생들은 시체를 우스갯거리로 장난스럽게 다루는 법이 없다. 오히려 하나의 의식처럼 노래를 부르고, 선서를 낭독하며 죽은 이의 선택을 감사히 여긴다.


나는 죽어가는 자들보다 죽은 자들을 대하는 게 더 편하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화제가 필연적인 부분으로 이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어색한 침묵과 대화도 없다. 시체들은 무섭지 않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보낸 반시간이, 고통 속에 죽어가던 어미니와 보낸 수많은 시간보다 단연코 쉬웠다. 어머니가 죽기를 바랐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쉬웠다는 말이다. 시체들은 일단 익숙해지고 나면 (그것도 상당히 빨리 익숙해지곤 한다) 놀라우리만치 상대하기가 쉽다. 

- <죽은 자의 운전>

 

우리나라는 여전히 장기 기증에 부정적이다. 신체발부수지부모(身體髮膚受之父母)를 강조하며 조상이 물려준 신체를 손상하지 않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 생각한 탓일까? 국민 절반 이상이 장기 기증 의사가 없고, 희망자 중 실제 등록도 15%에 불과하다. ('국민 52% “장기기증 의사 없다” …희망자중 실제 등록도 15% 불과', 문화일보 2014.04.07 http://me2.do/FhTmlIAX) 장기기증 의향이 없는 이들의 가장 큰 이유는 막연한 두려움(46.5%), 그 중에서도 '사후 시신 훼손에 대한 두려움(32.5%)'이었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인체재활용>을 읽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시체에 대한 오해가 많은지 알 수 있다. 단순히 아픈 부위에는 같은 부위를 처방하는 식의 오래된 미신뿐이 아니다. 나 역시 카데바라 불리는 해부 실습용이 전부일 줄 알았다. (일하면서 자주 봤던 차량 충돌 실험도 인간 모형 더미만 이용하는줄 알았다.) 하지만 책을 보면 별별 실험에 시체는 유용하게 사용되더라. 자동차 충돌, 스포츠 사고, 추락 실험, 부패 반응 속도 등 상상할 수 없도록 다양한 곳에서 말이다. 심지어 종교적인 이유에서까지 (돈을 내서라도) 자신의 시체를 기증하겠단 인원이 줄 서 있다니 놀라웠다.


주기베는 시체를 매달지 않고 자원자들을 이용하고 있다. 수백 명에 이른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근처에 있는 종교단체인 성 프란시스 성공회 수도회로부터 100명에 가까운 지원자들을 찾아냈다. 십자가에 매달릴 실험 대상들에게 수고비는 얼마나 주어야 할까? 한푼도 들지 않았다. 주기베는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오히려 제가 돈을 내라면 냈을 겁니다. 다들 거기 올라가면 어떤 기분일지 알고 싶어 했거든요."

- <성스러운 시체> 


개인적으로 책을 읽고 나니 저자의 말처럼 '세상을 뜨면서 공원 벤치를 하나 기증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시체 기증에 대한 마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평화로이 in peace 쉬세요'를 '토막으로 in pieces'로 듣거나, 항공사고 전문가가 마음대로 앉을 수 있다면 당연히 1등석에 앉겠다는 식의 조크 때문만은 아니다. 심장, 간, 신장 등 각종 장기를 기다리며 애태우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가운데, 단순히 거부감 때문에 장기 기증을 머뭇거릴 이유는 없다. 나는 이미 장기 기증을 대학생때 신청했다. 단순히 운전면허증에 한 줄 새겨진 '장기기증'이란 단어가 신기하기도 했고, 단순한 호의에 힘입은 즉흥적인 결정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어차피 썩어 문드러질 내 신체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쓰일 수 있단 걸 자세하게 깨달았다. 거창한 과학의 진보까진 바라지 않고 조금이나마 도움이 필요한 곳에 내 시체가(혹은 시체의 일부가) 전해진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울 것 같다. 메리 로치처럼 어떻게든 시체가 윙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만한 유쾌함은 없지만.


만일 에드가 먼저 떠난다면 그때는 내 시신을 기증한다는 기증서 양식을 작성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나는 나를 해부할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약력을 첨부할 것이다.(신체 기증자는 이렇게 할 수 있다.) 그러면 학생들은 못 쓰게 된 내 껍질을 바라보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야, 이것 좀 봐. 이 여자는 시체에 대한 책을 한 권 썼어."

그리고 가능하다면 어떻게든 내 시체가 윙크하는 것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

- <저자의 유해>




"마지막으로 함께 낱말 맞추기를 하면 어떨까?"

동생은 차에 가서 신문을 가져왔다. 우리는 관에 기댄 채 소리 내어 문제를 읽었다.

울음이 터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런 식이었다. 그 주에 나를 울린 건 사소한 것들이었따. 어머니의 서랍을 정리할 때 발견한 빙고 상품들, 냉장고를 치울 때 나온 열네 개의 닭 조각들과(따로 포장한 닭 조각에는 어머니가 꼼꼼한 글씨로 공들여 쓴 ‘닭‘이라는 라벨이 하나씩 붙어 있었다.) 낱말 맞추기였다. 그럼에도 시신을 보는 게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닺지 슬프지는 않았다. 어머니가 ‘아니었던‘ 것이다.

- <시작하는 글>

하이커우에서는 더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버스를 타고 남쪽 산야로 내려갔다. 바닷가 경치가 아름답고 날씨도 화창했다. 그리고 거기서 나는 화장장을 또 하나 발견했다. (이 화장장의 국장에게 샌디가 전화를 했지만 먼저와 비슷하게 국장의 노여움만 돋우고 말았다) 그날 오후 나는 바닷가 모래밭에 수건을 깔고 쉬었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는 바닷가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팻말이 세워져 있었다.

"해변에 침을 뱉지 마시오."

나는 혼자 생각했다.

‘해변이 악몽이나 종기, 눈의 염증, 액취증 등의 증세에 시달리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지.‘

- <날 먹어봐>




나는 이 실험의 보고서를 몹시 보고 싶어 정보안보부에 전화를 걸었다. 교환은 내 전화를 역사 부서의 어느 남자에게 연결해주었다. 그 사람은 먼저 정보안보부는 그렇게 오래도록 기록을 보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뺨 세포가 없이도 그가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거긴 미국 정부니까. 이들은 모든 기록을 보관하니까. 시간이 시작된 때부터 모든 걸 세 부씩 보관해왔으니까.




심장과 간과 신장을 기증해주기를 기다리며 줄 서 있는 사람들이 8만 명이나 되고 그 가운데 16명이 매일 죽어가고 있는데, H의 가족과 같은 처지에 잇는 사람들의 절반 이상이 기증을 거절하고 그 장기를 불태우거나 썩어가게 버려두기를 택한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놀랍고 사무치게 슬프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생명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외과의사들의 메스를 받아들이지만, 낯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서는 그러지 않는다. H에게는 심장이 없지만, 무심하다는 말은 그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 <내가 죽었는지 아는 법>

일반적으로 말해 비행기에서 추락하면 그게 마지막 비행기 여행이라고 보면 된다. 스나이더의 보고서에 따르면 가장 안전한 자세인 발부터 입수할 경우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는 속도 중 최고 속도는 시속 110킬로미터이다. 인체가 낙하할 때 종단속도, 즉 공기 저항으로 인해 더 이상 빨라질 수 없는 속도가 시속 190킬로미터이고 그 속도에 도달하기 위해 필요한 고도가 150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입각해 볼 때, 8킬로미터 고도에서 폭발하는 비행기에서 추락한 다음 데니스 샤나한과 면담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항공국은 이럴 겁니다. ‘좋다. 어깨띠를 장착함으로써 앞으로 20년 동안 열다섯 명의 인명을 구하게 된다면 200만 달러 곱하기 열다섯 명, 즉 3,000만 달러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업계 쪽에서는 다시 돌아와 이렇게 말하겠죠. ‘그걸 다는 데는 6억 6,900만 달러가 드는뎁쇼.‘"

어깨띠는 그렇게 바이바이다.

인간의 부상 연구에서 자동차의 충돌, 총상, 폭발, 스포츠 사고 등 사람들을 불구로 만들거나 사망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이 우리가 공부하고 연구할 필요성이 가장 큰 것들이고, 이것들이 바로 연구용 시체를 훼손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들이라는 사실은 불행한 조건이다. 스테이플러에 의한 부상이라든가 발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사람이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에는 시체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마크리스는 "자동차든 폭탄이든 위협에 대한 보호책을 찾아내려면 인간을 극한에 노출시켜야 합니다. 파괴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라고 말한다.

-<시체, 신고합니다!>




나느 이런 일을 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아르퍼드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어떤 기분이라니요?"라고 되물었다.

"간을 자르다가 쏟아져 나오는 온갖 애벌레들을 뒤집어쓰거나, 내장에 고인 액체가 튈 때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떠오르는지 생생하게 말해달라는 이야기예요?"

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잠자코 있었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그런 데는 그리 신경을 쓰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하고 있는 일의 가치를 생각하죠. 그러면 흉하다는 느낌이 조금은 줄거든요."

- <죽음 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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