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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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관은 텅 비어 있었지만, 아빠의 서재는 꽉 차 있었다. 일 년이 넘었어도 방에서는 여전히 면도 크림 냄새가 났다. 아빠의 흰색 티셔츠를 모두 만져보았다. 아빠가 한번도 찬 적이 없는 화려한 시계와 다시는 신고 저수지 주변을 달릴 일이 없을 스니커즈의 여벌끈을 만져보았다. 아빠의 재킷 주머니마다 손을 넣어보았다. (택시 영수증 한 장, 미니 쿠키 포장지, 다이아몬드 공급업자의 명함을 찾아냈다.) 아빠 슬리퍼에 발을 넣어보았다. 아빠의 금속 구둣주걱에 내 얼굴을 비춰보기도 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칠 분 만에 잠들겠지만, 나는 몇 시간이 지나도록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아빠의 물건들 속을 서성이면서 아빠가 만졌던 물건들을 만져보고, 쓸데없는 짓인줄 알면서도 옷걸이들을 좀 더 가지런히 정리하고 있노라니 부츠가 좀 가벼워졌다.

 

 

 

그래서 여덟 달 동안 뉴욕을 온통 헤매고 다니면서, 어딜 가려는건지, 언제 집에 돌아올 건지를 엄마가 물으면 이렇게만 대답했다. "좀 나갔다 올게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정말로 이상한 것, 내가 더 이해할 수 없다고 느꼈어야 마땅한 것은 엄마가 그 이상의 질문은 절대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소에는 나한테 그렇게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고, 특히 아빠가 돌아가신 후로는 더욱 그랬는데도, "어디 가는데?"라든가 "금방이라니 언제쯤?" 같은 질문조차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우리가 언제라도 서로를 찾을 수 있도록 나에게 핸드폰을 사주었고, 지하철 대신 택시를 타고 다니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경찰서에 데려가 내 지문을 채취해 놓기까지 했다. 근사했다.) 그런데 왜 엄마가 갑자기 나에 대해서 잊어버리기 시작했을까? 자물쇠를 찾으러 아파트를 나설 때마다 아빠에게 더 가까워졌기 때문에, 내 기분은 조금씩 더 가벼워졌다. 하지만 엄마한테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시에 조금씩 더 무거워졌다.

 


몇 시간을 기다리자, 2층 창문으로 네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그저 보통 소녀에 불과했지, 그녀가 뒤를 돌아 나를 봤어, 하지만 애나는 볼 수 없었어, 나뭇잎이 떨어졌어, 종이처럼 노란색이었지, 집에 가야 했어,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녀에게 다시 와야 했어. 나는 수업을 빼먹었어, 걸음은 아주 빨라지고, 얼굴을 숨기느라 목이 뻣뻣해졋어, 내 팔이 지나가는 이의 팔을 스쳤단다-튼튼하고 억센 팔- 누구의 팔일까, 농부일가, 석공일까, 목수일까, 벽돌공일까, 상상해 봤지. 그녀의 집에 닿아 뒤창 아래 몸을 숨겼어, 멀리서 기차가 덜컹거리며 지나갔고, 병사들, 아이들, 사람들이 오고 갔고, 창문은 고막처럼 흔들렸어. 온종일 기다렸어.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얼마나 슬픈지.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그리고 단것도 사양하지 않겠어요.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울고 울고 또 울고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울지 말아요.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상심하고 혼란에 빠져서.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너무 슬퍼요.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상심하고 혼란에 빠져서.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존재.

그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무.

나는 이 문장을 가리켰어, 존재.

아무도 이 문장을 가리키지 않았지, 당신을 사랑해요.

 

 

 

왜 아빠는 안녕이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가슴에 멍이 들었다.

왜 아빠는 "사랑한다."라고 말하지 않았을까?

수요일은 지루했다.

목요일은 지루했다.

금요일도 지루했다. 금요일이 토요일 바로 전날이라는 점만 제외하면. 그 말은 곧 자물쇠에 훨씬 더 가까워졌다는 뜻이고, 그건 행복이었다.

 

 

나는 거리를 건넜어.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떨어지는 사람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떨어지는 사람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건물을 들이박는 비행기들.

더 이상 네 앞에서 강한 척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지자, 난 한없이 약해졌어.

 

 

 


"육 개월이 넘도록 찾아다녔는데, 육 개월 전에 비해 더 알아낸 것이 한 가지도 없어요. 실제로는 오히려 아는 게 줄어들었어요. 마르셀 선생님의 프랑스어 수업을 죄다 빼먹었으니까요. 게다가 거짓말도 구골플렉스만큼 해야 했죠. 거짓말을 하면 제가 나쁜 놈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단 말예요. 게다가 여러 사람들을 귀찮게 굴었죠. 어쩌면 그 사람들과 진짜로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에요. 그뿐인가요, 지금은 이 일을 시작햇을 때보다도 더 아빠가 보고싶어요. 아빠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게 되는 게 목적이었는데도 말이에요."

 

 


그날 오후 악수를 나눌 때 다시는 블랙 씨를 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랬으면 놓아주지 않았을 텐데. 아니면 계속 나랑 같이 다니자고 억지라도 썼을 텐데. 내가 집에 있을 때 아빠가 전화한 이야기를 해줬을 텐데. 하지만 아빠가 나를 마지막으로 껴안아 주었을 때 그것이 영영 마지막인 줄 몰랐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시 몰랐다. 절대 미리 알 수 없는 일이니까. 그래서 블랙 씨가 "난 이만 끝내야겠다. 네가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구나." 라고 말했을 때,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이해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절대 그를 찾으러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의 전망대에 가지 않았다. 그가 거기 있다고 믿는 편이 더 행복하니까.

 

 

 

오스카 셸 : 아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를 거꾸로 말할 것이다.
아빠는 "왜 그러니, 얘야?"를 거꾸로 말할 것이다.
나는 "아빠?"를 거꾸로 말할 것이다.
아빠는 내게 여섯 번째 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맨 끝의 캔 속에 든 목소리에 대한 얘기에서부터 처음 시작까지, "사랑해"에서 "옛날 옛적에..."까지.
우리는 무사할 것이다.



좋은 책은 다시 읽고 싶다. 항상 곁에 두고.
대학생 시절 과외 학생 집에서 빌려 읽고 나서 너무 충격을 받아서 한동안 생각났던 책.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스페인 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에서부터 여유롭게 읽기 시작해서, 말라가 해변가에서 마지막 책장을 넘겼다.
여행의 절반이나 남은 시점에서 그 순간이 어찌나 아쉽던지. 

너와 나, 그리고 우리. 삶의 소통.
남겨진 이의 슬픔과 떠나는 이의 그리움.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안고 살아가는 삶이란.
"사랑해"란 흔하디 흔한, 하지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한마디의 소중함.

너무나 사랑스러운 오스카 셸. 그저 말없이 꽉 안아주고싶은 귀여운 탐험가.
그의 단어 카드에 나는 어떻게 기록될 수 있을까?
수천 수백의 블랙은 그 아이를 만나면서 조각조각 퍼즐을 맞춰나갔다.

Yes, No. 오른손과 왼손.
세상 모든 일이 단순하고 편하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그렇다면 구골플렉스만큼이나 걱정이 늘어나진 않을까.
열쇠,편지, 음성 메시지. 어떤 형태로든 추억을 남기고 떠난다는 건 가슴 먹먹한 일이다.

수많은 빈칸을 채울 수 있는 활자의 즐거움.
그 즐거움이 모든 이에게 작지만 든든한 위로가 되었으면.
알고 싶지 않은 일들이 내 주변에 가득할 때면, 잊고 싶지 않은 일들은 서서히 내 주변에서 멀어진다.
그러니 꼭꼭 기록을 남기고 손에 거머쥐려 발버둥쳐야지.

의식의 흐름. 그 끝은 언제나 푸른 바다 끝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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