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탄생 - 한 아이의 유년기를 통해 보는 한국 남자의 정체성 형성 과정
전인권 지음 / 푸른숲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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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유년기의 경험을 통해 한국 남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짚어 본다. 그 모습은 여느 한국의  집안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는 풍경이며, 저자의 경험을 미시적 한 개인의 경험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통경험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권위적인 아버지. 억압적 국가주의 교육, 종적인 질서 관계 주입 등을 통해 우리는 남자로 태어나지만 모두 편견과 아집에 똘똘 뭉친 우리 아버지와 같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저자의 경험을 엿듣다 보면, 나는 어땠을까? 나의 유년기는 어떻게 형성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돌이켜 보면, 별 탈 없이 지내온 유년기 같지만, 그 안에서도 기억을 더듬게 하는 사건들이 분명히 있다. 그 사건들이 나를 어떻게 형성했는 지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도 왜곡되지 않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어떤 만들어진 질서에 순응한다는 것. 그것은 달콤한 유혹이다. 그 유혹을 스스로 깨고 자아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대의 인생은 그 전보다 풍부해져있을 것이다. 내 안의 아버지를 죽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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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전
김규항 지음 / 돌베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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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급 좌파라는 '별칭'을 갖고 있는 김규항이 쓴 예수평전이다. 좌파면 좌파지 B급은 무엇인가? 그는 사회주의자다. 사회주의자라면 냉정히 말하면 사상은 좀 과격하지만 별 영향력은 없는 사람인 셈이다. 주류 좌파도 아닌 B급이니 우리 사회를 보는 냉정함에는 좀 더 날이 서 있다.

그가 본 혁명가 예수. 인간 예수는 교회가 가르치는 그런 예수가 아니다. 혁명을 꿈꾸는 이에게 예수는 가장 성공한 롤모델이다. 그는 분노할 때 분노하고 자기 길을 굽히지 않고 걸었으며 세상을 변화시켰다.

 

썩고 부패한 목사들의 설교에 분노를 넘어 이제는 들어도 그냥 졸리기만 한다면 새로 성경을 읽자. 이 책은 마르코복음(신약의 마가복음)을 기본 텍스트로한 주해서이다. 김용옥이 설명했듯 예수 본연의 모습이 첨삭없이 가장 잘 드러난 텍스트가 마가복음이다. 성경 속 행간에 숨어있는 진짜 인간 예수, 혁명가 예수를 느껴보자. 


김규항의 몇 가지 평을 들어보자.  

" ... 콘스탄티누스는 처음엔 그런 신학 논쟁에 별 관심이 없었으나 이내 예수가 하느님의 지위를 얻으면 자신의 지위도 함께 격상된다는 점을 간파했다. 교리의 통일을 통해 자신의 통치력을 한껏 가오하할 수 있다는 점도.
 그런 정치적 의도로 내려진 결정은 더 이상 다른 견해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정이 오늘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다. 그후 오늘까지 거의 모든 지식과 신앙에서 예수는 교리 속의 주인공으로 출발한다... 이성으로든 신앙으로든, 예수를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

 

"예수 당시 바리사이인들이 자신들이 비난받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라 생각했듯, 오늘 바리사이인들은 자신들이 바리사이인인 줄 모른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이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들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

 

"성전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말은 성전에 대한 비판을 넘어 그에 대한 '부인'이다... 그 교회들이 이미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가장한 상점 혹은 기업이라면, 그것은 비판과 개혁의 대상이 아니라 부인의 대상일 뿐이다. 예수가 '그래도 성전인데'하며 침묵하던 사람들 앞에서 "강도들의 소굴"이라 외쳤듯이 우리는 '그래도 교회인데'하며 침묵하는 사람들 앞에서 "강도의 소굴"이라 외쳐야 한다. "

 

"이를 테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예수는 정치적 혁명이 아니라 영적인 혁명을 하려 했다'고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말은 '정치적 혁명' 혹은 '영적 혁명'에 대한 그들의 편협한 사고와 이해를 기반으로 할 뿐이다. "

 

"그런 모든 해석이나 의견을 존중하더라도 절대 생략되어서는 안 되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예수가 예수가 '지배체제에 의해 사형당했다'는 사실이다... 비폭력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예수가 비폭력주의자인데 왜 사형당했는지 대해 설명해야 한다... 사형은 커녕 1년 내내 뺨 한번 맞을 일 없이 안락하게 살아가면서 예수 흉내로 세상의 존경과 명예를 구가하는 건 예수를 팔아먹는 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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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
조지 프리드먼 지음, 손민중 옮김, 이수혁 감수 / 김영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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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 문고에 들렸다가 베스트셀러 목록 중에서 집어들게 된 책. 난 사실 미래서를 좋아하지 않는다. 미래서와 자기계발서. 두가지는 책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사보게 된 것은 지정학적인 관점에서 미래를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정학과 힘의 균형. 현실주의 외교론에서 지겹게 보던 내용들 아닌가. 과거의 틀 그대로 미래를 설명할 수 있을 거라고 하니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 것이다.

저자 조지 프리드먼은 몇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한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면

 

1. 미국은 향후 100년도 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미국은 압도적인 군사력. 지역 패권을 좌지우지하는 능력. 침략이 어려운 지정학적 위치 등으로 세계를 압도한다.

 

2. 중국은 2020년을 기점으로 쇠퇴한다. 잘 이해는 되지는 않지만 대양국이 아닌 국가가 세계를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한다. 중국이 쇠퇴하는 시기에 한국도 통일한다.

 

3. 미국은 2030년 위기를 겪는다. 일본, 터키가 연합하고 우주전쟁이 일어나지만 미국이 압도적으로 승리하고 우주 기술로 미국은 다시 크게 번성한다.

 

4. 2050년 이후는 멕시코가 부상한다. 그러나 미국은 이 위기를 극복한다.

 

등이었던 것 같다. 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이해관계의 충돌과 선제하지 않을 경우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절박함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래에 전쟁의 원인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요새 미래서는 다들 중국에 주목하고 있는데, 미국이 여전히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는 책이라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중간 중간 황당해서 책장을 빨리 넘길 수 밖에 없는 부분도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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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의 역설 - 한자는 중국을 이렇게 지배했다
김근 지음 / 삼인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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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만큼 거창한 역설은 없는 것 같다. 그보다는 우리가 배운 한자 형성 원리에 대한 심화 학습서로 보면 되겠다. 분량도 많지 않아 하루 저녁에 읽을 수 있다. 본문 중 몇 부분을 인용해 본다.

 

1. 다시 말해서 인간 앞에 던져진 카오스의 실재 세계를 사람이 살 수 있는 문화적 공간으로 만들려면 사물을 분절해서 창조하고 사물들 간의 관계와 질서를 부여해서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해야 하는데, 과학적 사유 능력이 덜 발달했던 고대인들에게 신화적 사유는 매우 중요한 논리적 도구로 작용했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화는 체제 이데올로기를 사회 구성원들의 뇌리에 흔적을 남기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신화가 구축해놓은 현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헤게모니가 획득된다. 한자의 경우 이러한 메타 인식적 기능은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 차원에서 각각 일어나고 있다. 시각이미지의 차원이란 앞에서 설명한 바 있는 이미지 자체로부터 존재론적으로 의미를 형성해내는 가차를 뜻하는 것이고, 청각 이미지의 차원이란 한자의 독음을 따라 속성이 구체적인 사물로 발현되는 전주를 각각 지시하는 것이다.

 

2. 중국에서는 중용사상이란 게 있어서 역사가 극단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최대한 연기시키는 기능을 수행했는데, 기실 이것때문에 중국의 문화는 그렇게 종교적이지도, 또한 이성적이지도 않은 속성을 갖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까 중용의 연기 기능은 이러한 모순을 흡수해서 역사의 발전이 극단적으로 흐르는 것을 억제하는 기능에 다름 아니었다. 중국인들의 중용이라는 지혜를 고안한 것은 바로 한자를 사용하는 가운데 터득한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 한자가 잉여의 모순을 흡수할 수 있었던 패러다임의 구조는 이러하다. 한자도 상징체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틀에서 배제되는 잉여가 만들어지기는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자의 표의 기능은 잉여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고 체제 속의 존재로 인정함으로써 실재계를 커버하려 한다. 앞서의 '란(亂)자를 다시 보면 '헝클어진 실타래와 두 손'이라는 상황은 '어지럽다'를 상징하기도 하고, '다스리다'를 상징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표상하더라도 다른 쪽은 배제되지 않은 채 여전히 문자 속에 존재하면서 실재계로 기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상징으로서 실재계를 커버하는 한자 패러다임인 것이다.

 

4. 중국이라는 큰 나라를 유지시켜온 변하지 않는 관념적 틀이 있다면 그것은 삼강오륜의 윤리로 요약되는 유교봉건주의일 것이다. 이 질서의 요체는 태양과 같이 완벽하면서도 변치 않는 상징적 존재를 체제의 정점에 설정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아래에 세상의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귀속시키면 사회는 안정적으로 유지, 운영된다. 그러려면 이 체제가 당위적일 수밖에 없다는 헤게모니를 가져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렇게 믿게 만들 합리성이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 한자의 이미지 속성과 조자(造字) 구조는 이 합리성을 제공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도구가 된다. 그래서 한대 이후 청대에 이르기까지 한자학(또는 문자학)은 권력이 중시해온 학문 분야로 자리매김해왔다. 왜냐하면 한자학은 사물의 질서를 세움으로써 권력을 당연한 행위로 규정해주기 때문이다.

 

5. 이 역설을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들이 중국에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자의 존재론적인 의미 작용이 비즈니스나 일상생활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므로 이 때문에 적지 않은 갈등과 심지어는 분쟁까지도 발생한다. 그래서 1990년대 중반 중국과의 교역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할 무렵, 한국무역협회는 중국에 진출할 사업자들에게 몇 가지 주의 사항을 주지시킨 바 있는데, 그중 하나가 중국의 사업자와 계약서를 쓸 때에는 반드시 영어로 작성하라는 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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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벌 코드의 비밀 - 서양 문명에 숨겨진 이단의 메시지, 개정판
팀 월레스-머피 지음, 김기협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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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최근 다빈치코드를 비롯해 서양의 야사, 비전(秘傳)에 대한 영화, 소설 등이 많다. 이 책은 이러한 서양의 야사를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원래 비하인드 스토리를 총정리하는 게 목적은 아니고, 여기저기 남겨져있는 심벌을 소개하는 입문서이다.

 

나같은 경우는 책에서 심벌에 대한 얘기에서는 졸음이 오다가 그보다 좀 더 기초에 해당할 야사의 배경에 대한 글에서는 다시 흥미가 나곤 했다. 야사에 대한 좀 더 간편한 입문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간 이 책을 읽어도 입문은 완료하는 셈같다. 이단의 역사를 좀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1. 성경의 해석과는 달리, 야훼신앙이 이집트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 모세도 이집트의 왕 중 하나일 거라 추측한다.

2. 예수는 실존 인물로 형제, 부모, 자녀 등이 뚜렷했다. 세례요한의 후계자였을 가능성이 높고 예수 이후의 후계자는 동생 야고보가 이어갔다. 그러나, 이후에는 로마인 바울에 의해 유대인의 메시아는 부정되고 교회권력은 강화된다. 

3. 수세기 후 템플기사단은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수많은 보물을 발견한다. 그 중에는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무엇이 있었을 것이고 템플기사단은 그 가르침을 여기저기 상징으로 남겨둔다.

4. 템플기사단 몰락 후 프리메이슨 조직이 그 뒤를 잇게 된다.

 

하여, 세례요한, 인간예수, 야고보, 막달라 마리아 등을 상징하는 심볼은 이단의 표시로 읽힌다는 것이다. 

아래는 향후 미술품을 볼 때 기억할만한 내용이다.

 

성마태오는 사람이나 천수의 모습으로 상징되고, 성마르코를 상징하는 사자에는 날개가 달려 있기도 하다. 성루가의 상징인 황소 역시 날개 달린 것이 많고, 성요한은 독수리로 상징된다. 네 사도의 상징이 함께 나타나는 경우도 많은데, 십자가의 네 끄트머리에 하나씩 자리 잡기도 하고 한 줄로 늘어서기도 한다.

 

세례자 요한은 보통 키가 크고 수염을 기르고 여윈 몸매에 짐승가죽 옷을 허리띠로 묶어 입고 길고 커다란 십자가 또는 주님의 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접시 위에 놓인 머리로 상징되는 경우도 있고, 갈대밭에 서 있는 모습, 또는 나무 그루터기의 도끼로 나타나기도 한다. 도끼로 세례자 요한을 나타내는 것은 그의 말 때문이다.

 

성베드로는 예수의 제자와 사도들이 대개 그렇듯 수염을 기른 모습인데, 손에 들고 있는 열쇠(보통 두 개)로 알아볼 수 있다. 또한 순교자 초상이 대개 그렇듯 순교에 쓰인 도구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그의 경우 십자가를 거꾸로 메고 있다. 성바울로는 다른 복음 전도사들과 마찬가지로 뾰족한 수염과 벗겨진 머리를 하고 있다. 대개 책과 칼을 들고 있는데, 교회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그는 칼 아래 순교했다고 한다.

 

막달라 마리아는 붉은 옷을 입은 긴 머리 젊은 여자의 모습으로 향료가 든 설화석고 항아리를 들고 있다. 두루마리나 책을 들고 있는 인물은 복음 전도사일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교회의 박사나 교단의 창시자 등 학식과 거룩함을 갖춘 사람을 표현한 것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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